목차가기 |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
마12:46-50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간 독일에서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전쟁 직후에 흑사병이 창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개입해 승리를 이끌었던 프랑스가 천주교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격전지이었던 실레지아(Silesia)에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목사가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종탑도 없어졌고 그저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 하나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교회가 담당하는 교구는 주변의 36개 마을이나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종탑도 세울 수 없었고 심지어 장례식도 허락을 맡아야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벤자민 슈몰크 목사 부부는 실망하지 않고 선교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던 1704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슈몰크 목사는 언제나처럼 여러 지역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나무로 지은 사택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두 아들이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잿더미 속에서 타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슈몰크 목사 부부는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슈몰크 목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절규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Mein Jesu, wie du willt)라고 고백한 시의 내용이 바로 찬송가 431장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에 대해 본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49절입니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나의 동생이고 나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즉 제자들처럼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교회가 어떠한 곳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교회는 혈연과 지연을 뛰어 넘어선 믿는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비록 시작은 혈연과 지연에서 시작하지만 교회는 그러한 것들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가족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에서 '뜻' 은 히브리어로 '에차' 또는 '레브' 헬라어로는 '불레마' 라고 합니다. 이는 마음, 생각, 계획, 의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같이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찬양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려면,
첫째로 증인되어 전함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목사입니다. 더프 목사는 오랫동안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늙고 나이가 많아져 고향에 뼈를 묻기 위해 귀국하였습니다. 환영하는 식장에서 그는 인도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깨어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단상에 다시 세워달라고 눈물로 간청합니다. 단상에 서서 백발이 성성한 흰머리를 숙이며 말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지원병을 모집할 때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지원했는데, 하나님이 선교사를 보내고자 하는데 한사람의 지원자도 없다니 정말 섭섭한 일입니다. 나는 고향 스코틀랜드에 뼈를 묻으러 왔지만, 다시 인도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까지 저들의 영혼을 위하여 백골을 인도의 갠지스 강변에 묻으러 왔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젊은이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인도에 선교사로 자원하였다고 합니다. 더프 목사야말로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이며 그의 감화를 받고 인도로 들어간 젊은이 역시 충성된 주님의 증인들입니다. 주님은 충성된 증인들의 전함을 통해 크고 위대한 일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가십니다.
증인의 헬라말은 '마르투스' 입니다. '순교자' 란 뜻입니다. 진리를 말할 때는 순교의 각오로 말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의 각오로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총독 벨리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전했습니다. 죽을 자세가 아니면 바르게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훌륭한 증거자인 스데반, 바울, 베드로, 야고보 역시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한 증인들이었습니다.
증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사실 인간적인 지식과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부끄럽고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도와주시면 됩니다. 성령이 오셔서 증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을 전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인 복음을 전하며 증인될 때 주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가정과 직장, 사업, 자녀, 앞으로 남은 생애, 아니 영원까지 책임져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일꾼되어 섬김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부대의 막사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대들보를 지붕에 올리기 위해 병사들이 끙끙대며 애를 씁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고함만 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병사들을 돕지 않고 서 있기만 합니까?" 그러자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저는 하사관입니다" 라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지나가던 그 사람은 "그렇습니까? 당신이 하사관인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하사관님, 한 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제가 저들을 돕겠습니다" 라고 말을 한 뒤 병사들에게 다가가 함께 무거운 대들보를 들어올렸습니다. 일이 끝난 후에 그는 돌아서서 "하사관님, 이와 같은 일이 또 생겨 사람이 모자라면 사령관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라며 현장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사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그는 초대 대통령이 된 죠지 워싱톤(George Washington) 사령관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했지만 자랑하는 외형만큼이나 내적으로 충실하지 못하다고 지적받습니다. 그 이유는 섬기는 자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섬기는 일군들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군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 라는 말입니다. 이는 '먼지 속을 통과하는 사람' 이란 의미로 더러운 곳을 치우는 사람입니다. 알바이트 슈바이쩌(A. Schweitzer) 박사를 모두가 존경하며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그 이유는 섬기는 자세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억압받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섬기며 일생을 바쳤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빛나는 사람은 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지위는 누릴 때 당당하다가 지위에서 내려오면 비참하게 됩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의 지위는 빼앗기지 않습니다. 늙어질 수록 귀하게 되는 비결은 섬기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섬기면 섬길수록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꾼들은 땅에서나 하늘에서 귀합니다. 구색은 갖추었으나 존경받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는 자가 되지 마시고 섬기는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제자되어 충성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를 담임하는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Juan Carlos Ortiz) 목사의 저서 가운데 'Disciple(제자입니까)' 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서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그분의 첫 말씀은 이것이었다. '너는 코카콜라(Coca cola)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사(Reader's Digest)가 잡지책을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을 찾아보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주님은 두 번째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자라나고 있지 않다. 네 생각에, 네가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 가는 것이다."
제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 분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노예로서 충성한다는 뜻입니다. 고대 전함에서 노를 젓는 가장 하급 노예를 '휘페레테스' 라고 불렀습니다. 사도바울은 제자와 동일한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제자란 신분적인 지위를 말함이 아니라 누구에게 충성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 충성은 '피스토스' 입니다. '신실성이 발견되는 것' 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충성되다는 인정은 인간의 판단에 있지 아니하고 주인의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며 자신의 일을 처리함에 신실해야 합니다. 내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야 합니다.
중세 베네딕트(Benedict) 수도회의 어느 수녀가 매일 아침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어느 날 이런 기도를 반복하여 드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 오른손에는 건강을 쥐고 왼손에는 질병을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딸아, 네가 원하는 것을 택하라" 그때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 주여!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한 해 동안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에는 전하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섬기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충성된 제자가 필요합니다. 부디 바른 신앙을 회복하여 내 뜻을 이루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를 세워 가는 복된 지체인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1-06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기대 /마25:21~30 (0) | 2022.04.03 |
---|---|
마지막까지 /마20:6-10 (0) | 2022.04.03 |
네 연세가 얼마뇨? (0) | 2022.04.03 |
(교회창립기념일)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행1:8 (0) | 2022.04.03 |
내 평생에 살아온 길(송년)신32:7-14 (0) | 2022.04.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