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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과 복 있는 새해! (시 1:1-6)

by 【고동엽】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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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과 복 있는 새해! (시 1:1-6)

 

  그리스 신화에 보면 야누스라는 신이 있습니다. 이 야누스 신은 '시작의 신'이라고 합니다. 1월을 영어로 'January'라고 하는데 'January'는 야누스 신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야누스 신은 얼굴이 앞뒤로 두 개랍니다. 뒤의 얼굴은 과거를 보고, 앞의 얼굴은 미래를 봅니다.
  오늘 이 시간은 일년 365일 가운데 특별히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라고 합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예배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기가지 우리를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라는 말은 아직도 가야할 곳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과거와 오늘까지의 삶, 여기까지의 삶으로 모든 것들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나 지나면 오늘이 오는 것이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있고, 여기가 지나면 그 다음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라는 말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의 모든 것들을 가리킵니다. 과거 우리가 살아온 모든 시간과 장소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온 생애가 다 포함됩니다. 2009년 한 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전까지도 다 포함되어집니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지금까지 도와주셨듯이 앞으로도 그 다음까지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할/
  사무엘이 커다란 돌을 취하여 에벤에셀이라고 부르면서 백성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항상 어디서든지 함께 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할 때 더 이상 블레셋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길을 가로막아 주었습니다. 아울러 이미 빼앗겼던 성읍들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랬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참 행복한 교회와 우리 성도 님들의 가정에 2009년 마지막 이 시간까지도 도와주셨듯이 앞으로도, 2010년에도 역시 동일하게 도우시고 지켜주실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제목 소개!▶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누리고 싶어하는 있습니다. 바로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 첫인사부터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를 하고, 또 언제라도 '당신은 참 복도 많습니다.'라는 찬사를 듣게 될 때마다 그 뿌듯한 기분에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복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재물이나 명예나 아름다운 여인이나 혹은 출세한 자식들을 그 만족의 조건으로 삼고 행복의 이유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일반적인 복의 개념과는 전혀 동떨어지게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어떤 재미있는 것에 푹 빠져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한 해를 여는 것이 복 있는 새해입니다. /믿/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복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크'와 그 다음에 '아쉬레'의 복입니다. '바라크'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직접 받는 복'을 '바라크'라고 하고, 그 다음 '내가 받은 복이 차고 넘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런 복을 '아쉬레'라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제목의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우리는 복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 복이 어떤 복인가? 한마디로 '바라크'의 복, 즉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받아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아쉬레'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
  오늘 시편 1편에는 '아쉬레'라는 외침말로 시작합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서 시작되는 '아쉬레'는 구약에서 45번 나타나는데 세 가지 경우에 썼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거나 자식을 많이 두었을 때 '아쉬레' 하고 축하했습니다(8번).
  ▶둘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물질적 축복을 받았을 때,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 내리는 건강함과 범사가 잘 될 때 '아쉬레' 하고 축하했습니다(31번). 
  ▶셋째는 자식이나 물질의 소유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바르게 살아갈 때 '아쉬레' 하면서 축하했습니다(6번). 가난하게 살아도, 건강을 누리지 못해도, 자식을 두지 못했어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아쉬레'의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악인의  꾀를 쫓지 말라!(1).
  세상 적으로도 악인을 따르다가 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수사관들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간 사람들은 대상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자발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아주 적었고,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죄를 지은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죄에는 공법이 있습니다. 마치 고구마를 캘 때 순을 잡아 올리면 줄줄이 매달려 나오듯이 죄인 하나를 잡으면 여러 공범들이 줄줄이 잡혀 나온답니다. 모두 악한 사람의 꾀를 좇다가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하고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악인이 꾀를 쫓다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그가 일생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 '좇지 아니하며'에서 '좇는다'는 것은 '걸어간다.'는 뜻으로 결국 이 말은 악인과 의논을 같이 하거나, 그의 말을 듣거나, 그와 같이 걸어감을 말하는데 우리는 절대로 좇지 말아야 합니다.
  넘어가지 않으려면, ▶인정에 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번번이 잘못인줄 알면서도 안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친하다고) 그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냥 끌려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롯은 삼촌의 은혜도 망각하고, 하나님의 동산처럼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하고 말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꾀란 정당한 행동에서 어긋난 것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악인의 꾀를 쫓아간 사람입니다. 악인의 꾀에 빠지는 사람은 잠20:17절에서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꾀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창39: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악인의 꾀를 쫓지 않기 위해서는 단호히 끊을 것을 끊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신앙의 가치관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하와는 가치관 정립에 실패한 자요, 요셉은 성공한 자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악인의 꾀를 쫓지 마십시다.

 

  ②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복 있는 자의 자세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 즉 '죄를 이기는 것'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여러분, 죄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합니다. 옛날 희랍에서는 교만을 가장 큰 죄로 보았습니다. 불교에서는 탐욕을 가장 큰 죄로 봅니다. 유교에서는 불효를 가장 큰 죄로 여깁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살인을 가장 큰 죄로 취급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 하나님을 떠난 것'을 큰 죄로 취급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죄인의 길에 설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떠나면 세상과 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길'이란 말은 '방향'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취향'입니다. 그러니까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의 취향에 어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취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속에 사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이란 하나님의 뜻을 어긋난 사람들, 그리고 창조목적에 빗나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안 한 것이 죄요,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한 자도 죄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라'와 '하지 말라'입니다. 진정한 신앙 인이 되려면 세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진실, 성실, 신실'해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그 다음 다른 사람 즉 이웃 앞에 성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하나님 안에서는 신실해야 합니다. /믿/할/
  ▶오늘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서느냐는 정말 너무도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의 편에 선 사람들이 있고, 또 다윗 편에 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울의 편에 선 사람들은 거의가 죽었으며, 점점 약해져만 갔고, 다윗 편에 선 사람들은 모두 살고 점점 강하여 갔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모세 편에 선 사람이 있고, 고라 편에 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라 편에 선 사람들은 몽땅 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겠습니까? 하나님 편에 아니면 마귀 편에, 의인의 편에 아니면 죄인의 편에, 주님 편에 아니면, 세상 편에 서겠습니까? 줄을 잘 서야 합니다.

 

  ③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청년으로서 날마다 다가오는 정욕의 시험을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며 '아니요'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있고, 거만한 사람이 있고, 오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⑴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자를 말합니다. 힘을 자랑하고, 지식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⑵거만은 한 마디로 웃기는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무 힘도 없으면서 거들먹거리며 뽐내는 자입니다. 이것이 거만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가 짠다.'고 했습니다.
  ⑶본문의 오만은 종교적인 말로 하나님을 보고 주먹질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오만입니다. 오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실존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자기 또는 인간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사람이 누구인가? 공부를 못해서 자식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우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실존을 믿지 않기 때문에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역사를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무자비합니다. 히틀러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무실론 자에다 신에 대해 증오심까지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통치하는 동안 가장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유태인들과 교회입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유태인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구덩이에 몰아 놓고 생매장을 했고, 창고에 가두어 놓고 불을 질렀고, 가스실에 집어 놓고 죽여서는 그 죽은 사람으로 기름을 짜서 그 기름으로 전쟁터에서 불을 피우게 했고, 빨래 비누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오만한 사람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부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합시다.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여기 '좇다, 서다, 앉다.'의 세 개의 동사는 죄의 연속성입니다(1).
  우선 '좇다'라는 말은 그저 '따라서 걸어가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죄악의 길로 빠져 들어가는 첫 단계가 바로 악인의 꾀를 그처럼 '좇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인들의 유혹하는 일들을 호기심에서 흉내내듯이 슬슬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연히 도달하게 되는 단계가 '서는 단계'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 삼아서 가끔 흉내내어 보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으면 꽤 익숙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죄인의 길에 함께 '서게'됩니다. 다시 말해서 범죄의 생활에 아주 '상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의 길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 단계는 자동적입니다. 바로 오만한 자리에 아예 '앉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이제는 죄악의 현장에 완전히 주저앉아서 다시는 헤어날 길이 없도록 동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처음에는 그저 '꾀' 즉 악인들의 생각하는 바를 좇아가다가 조금만 지나면 그들의 '길' 즉 그 행위에 동참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들과 '자리'를 같이함으로써 아예 삶 전체가 완전히 같아져 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악인, 죄인, 오만 한 자' 역시 점점 더 타락해 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점층법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악인' 즉 도덕적인 의미에서 나쁜 사람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다음에는 '죄인' 곧 하나님 앞에서 정죄 받은 인간이 되고, 결국에는 '오만 한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 '오만 한 자'의 원문은 '비난 자'라는 단어인데 바로 자신이 악인이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 여기거나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과 의인들을 욕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처음에는 그저 친구 따라 배운 술 한 잔이 나중에는 말술이 모자라는 주정뱅이 인생이 되고,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한 내기가 나중에는 엉덩이를 뗄 줄 모르는 도박꾼으로 아예 상주하게 됩니다.

 

2.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2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십시오. '즐거워한다.'는 말은 '즐긴다.'는 말입니다. 내가 즐겨야 신바람이 납니다. 또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아침에 성경보고 저녁에 성경보고 이렇게 하루에 두 번 보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일의 시작부터 일의 마지막까지, 인생이 시작부터 인생이 마무리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늘 즐거워하며 묵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 '묵상'은 '조용히 깊게 생각하는 것이고, 짐승이 배고파서 부르짖듯이 애타게 부르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야'는 습관적으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을 뜻하며,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말씀을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 안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심슨이라는 사람은 유명한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술 받는 환자들이 크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이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고 수술 받는 방법은 없을까? 기도 중에 있던 중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손뼉을 탁 치며 경탄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수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으로 수술을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에게서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심슨은 그 말씀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취제를 처음 사용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 마취 수술을 행하셨다면 이 세상 어디엔가 분명히 이 마취제 성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곧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노력하고 연구해서 발견해낸 것이 바로 '클로로포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놀라운 영감이 우리에게 솟아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사업가가 되시기를 원합니까? 사업가의 경영 원리를 배우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여기에 여러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모든 사업가의 경영원리가 다 담겨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이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놀라운 영감을 예술적인 영감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과학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위대한 업적을 남기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이 말씀의 은혜에 사로잡히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서 복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공부도 예습, 복습을 하면 그 만큼 더 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묵상을 되새김질이라고 해석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할/

 

3. 복 있는 사람에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3)?

 

  ⑴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습니다.
  여기 '시냇가'란 곧 생명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뿌리를 내린 성도는 복된 자입니다. '심은 나무'는 '옮겨진 나무', '이식된 나무'를 말합니다.
  성도는 죄와 사망의 황무지에서 생명의 시냇가로 이식되어진 나무입니다. 이러한 성도에게는 결코 목마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고 하였고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말씀하셨습니다.

 

  ⑵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습니다.
  렘17:8절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

 

  ⑶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가뭄이 와도 청청한 빛을 내는 잎사귀, 환난과 핍박과 그 어떤 어려움에 부딪혀도 신앙의 색깔이 변함 없는 성도, 이것은 복 있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주는 화려한 축복입니다.
  ▶성도가 '마르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가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기름먹인 가죽이 부드럽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아니요 하던 사람도 은혜 받으면 아니요 하는 사람 없습니다. 평상시에 없어요 하는 사람도 은혜 받으면 있어요 합니다. 평상시에 미워요 하던 사람도 은혜 받으면 사랑해요 합니다. 평상시에 못 하겠어요 하던 사람도 은혜 받으면 하겠어요 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마르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은혜가 마르면 심령이 강퍅하게 됩니다.
  ㉡사랑이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이 마르면 미워집니다. 여러분, 불행한 사람은 미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도 미움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였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 된 사람들은 미움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미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곧 살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마르지 않도록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머리는 차고 가슴은 뜨거워하는 것처럼 성도는 성령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가슴으로 해야 합니다. 머리로 하는 신앙생활은 따지기를 좋아하고,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⑷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은 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일이 잘 된다는 말입니다.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형통의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고, 사람들과도 형통하고, 물질로도 형통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하나님과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을 신(영)통이라 하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인통이며, 대소사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물통'이라고 합니다.

 

4. 악인에 어떻게 되는가? (4-6)

 

  ①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4).

  ②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5). 여기 '심판'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공의로우신 판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거나 거절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항거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③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5). 한마디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바로 지옥행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결론은 6절에서 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기서 '대저'라는 말은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왜 의인이 복을 받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길을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길을 인정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가다가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서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사나운 사자들의 입을 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다니엘을 모함하다가 그들이 대신 사자 굴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나운 사자들이 뛰어올라서 그들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뼈까지도 부수뜨렸습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축복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
  우리 모두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한해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09년 송구영신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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