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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
눅 12:18-21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
느냐.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 입니다. 아주 신선한 아침입니다. 여러분의 새해 꿈과 계획과 염원은 무엇입니까. 그 소중한 꿈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시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첫 시간에는 기대와 계획과 꿈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새 시대가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점에 더욱 분명해야 합니다. 계획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자세가 달라집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새해 소중한 생각과 기대들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계획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계획도 계획 나름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런 계획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그런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포부와 꿈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 영혼에게 이르되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쉬고 즐거워하자.” 이것은 꿈도 아닙니다. 비전도 아닙니다. 참으로 허망한 꿈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 말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하고 지적합니다. 계획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꿈이라고 다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전도서 2:3절을 보면 이런 계획도 나옵니다.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였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집을 크게 짓고, 포도원을 일구고, 산에 과목을 심고, 남녀 노비를 많이 두고, 소 떼와 양떼를 많이 두자, 그리고 은과 금을 더 많이 쌓고 처첩을 많이 두자”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계획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계획을 보면 순 인간적인 계획입니다. 순전히 이상적이고 일차원적인 계획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계획이고 꿈이고 포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획이나 꿈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한해 시작하면서 무슨 계획을 세우고 꿈을 세웠습니까. 자칫 우리는 이런 꿈을 꾸기 쉽습니다. 오늘 이런 꿈을 꾸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이 많고 잠 못 자면서 돈 버느라 열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 가서 돈은 벌기는 버는데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2:11절에 가서 보면 “그 후에 내가 생각해본즉 ..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하고 결국 후회를 합니다. 새해는 새로운 기대와 계획과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꿈과 계획은 가장 건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이루시고 그 계획이 이룰 때에는 감사함과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인답게 새해에 이런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매사 주님과 상의하는 삶을 살자”입니다.
한해를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당연히 주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이고 생각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먼저 짜증부터 나고 불평부터 나오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것이 자연인의 본성입니다. 그때 짜증내고 불평하다 보면 그 시험이 더 무거워지고 더 아파옵니다. 그래서 그때는 주님께 나아가 상의하고 호소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신앙인다운 태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 말씀은 그냥 폼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상의하면 내가 도와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새해는 주님과 더 가까이 나아가 상의하고 기도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해를 살아가다 보면 숫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힘에 겨운 일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주님께 상담하고 의논하는 삶으로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이 같은 빽이 있고 배경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동업자로 삼는 계획” 입니다.
주님을 내 삶의 동업자로 삼고 살자는 것입니다. 예수로 내 인생의 동업자를 삼고 내 영혼의 동업자로 삼고 내 삶의 동업자를 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삶의 중심이 나의 삶에, 일터에, 사업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고 우리는 그의 힘으로 한 해 동안 일하며 이끌림 받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18세가 되면 성년의 날을 맞고 청년이 됩니다. 어느 젊은이가 성년이 되자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교훈을 받자하고 동네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물었습니다. “오늘이 제가 18세가 되는 날인데 이제 저는 제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개척해야 하는데 교훈되는 말씀을 주십시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때 노인이 묻습니다. “자네는 무슨 일을 배웠는가.” “예 저는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가서 그 일을 충실하게 하게, 단 주님을 동업자로 모시게“. “동업자라니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건을 팔건 수입에서 반드시 11조를 드리게, 그러면 그분이 자네를 도와 줄 것일세.”
그 후 이 젊은이가 일하면서 그대로 실행합니다. 그 가르침을 아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사업에서 철두철미 예수님과 상의하고 예수 중심으로 일합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큰 회사를 일구어 나갑니다. 그 젊은이가 커서 일군 회사가 여러분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콜 게이트라는 치약을 만드는 회사를 창시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윌리엄 콜게이트”라는 사람입니다.
록펠러하면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수십 년 동안을 세계 최고 부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록펠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세 가지 유산을 충실하게 지킨 것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세 가지 분명한 유산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예배드릴 때는 반드시 맨 앞자리에 앉으라는 것이고 둘째는 ‘반드시 교회에서 봉사하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살면서 반드시 11조를 드리라‘는 이 세 가지가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신앙유산인데 나는 이 유산을 반드시 지켰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록펠러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그에게 이 11조 헌금하는 것을 교육했다고 합니다. 20센트 용돈을 주고 “이중 10분의 1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었고 그러면 록펠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록펠러를 하나님이 그냥 두셨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를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공자로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는 시카고 대학을 포함해서 24개 대학의 지원자가 되었고 54개교회를 지어 봉헌했고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11조 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을 드리는 일을 생명처럼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로 동업자를 삼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한번 해 보세요. 하다보면 시험도 올 것입니다. 아까운 생각도 들 것입니다. 주위에서 반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반대나 시험도 없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큰일하고 은혜를 입는 길에는 반드시 그만한 고뇌, 아픔, 유혹, 시험, 방해도 뒤따른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향해 풍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풍성한 삶은 나누는 삶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거기서 감동이 오고 변화가 옵니다. 이 나누는 삶은 여러 가지입니다. 중보 기도하는 것도 나누는 삶입니다. 우리들이 누군가의 아픔과 소외됨과 어려움의 짐을 함께 져주는 삶, 그것이 나누는 삶입니다. 그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또 내가 누구를 전도하는 것도 나누는 삶입니다. 전도는 참 좋은 나눔의 삶입니다.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하나님께 사용하는 것도 나누는 삶입니다. 재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다. 어쩌면 이 세상사람 몇 명에게만 주어진 재능도 있습니다. 그것을 돈 버는데 만 사용한다면 직무유기일 수 있습니다. 선용하고 아름답게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것을 돈 버는데 는 악착같이 사용하고 하나님께 사용하는데 는 인색하다면 그것이 바로 직무유기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 악기를 연주하는 재능을 왜 돈버는데 만 사용하려고 합니까. 교회에서 그런 재능을 가지고 예배에 사용하면서 왜 돈을 받으려고만 합니까. 그러니까 그 좋은 재능을 받았으면서도 빛이 나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하나님께 인색한 것입니다.
또 물질도 나눌 때 아름답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나누는 삶은 참 위대한 일입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이 물질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물질 때문에 생명을 바치고 살지 않습니까. 이런 물질을 효과 있게 나누는 삶은 위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을 나누는 삶에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도움을 받는 사람은 받아도 받아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어먹는 사람은 항상 마음속에 원망이 서려 있습니다. 교회에 보조를 청원하는 곳이 많습니다.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나누어 줍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쩨쩨하냐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데 주는 사람은 그것이 액수가 적고 많음을 따지기 전에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물질은 주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이 나누는 삶에 복이 있습니다. 이 삶을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님과 함께 동업하는 삶입니다. 그 삶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나누는 삶 중에 가장 유망한 투자는 선교하는 일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사업 중에 가장 근본적인 투자가 선교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요즘은 자꾸만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를 보면 두 가지 두드러진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 갈 데까지다 갔다 할 정도로 악한 말기적 증상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극단적인 사건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는 현상은 아주 헌신적인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만 명이 넘는데 그중에는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불모지 선교지에 가서 고생을 자초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이 시대를 얼마나 절박하게 생각했으면 저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나와 일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난해 사할린에서 만난 어느 선교사는 잘 나가던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도중에 소명을 받고 나서 돈도, 명예도, 안정도 다 포기하고 가장 어려운 지역으로 나가 의료선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무엇인가 본 것이 있고 깊이 생각한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결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유망한 투자가 선교 사업이고 선교하는 일이고 선교헌금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업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엊그제 책을 한권을 읽었습니다. 그 책 이름은 “주님의 은혜로 부자가된 사람들“이라는 요즘 한창 뜨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예수를 믿고 부자 된 사람들의 사례를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말하자면 신앙인으로 살면서 경험한 산 체험들을 기록한 수기입니다. 거기 나와 있는 한 사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교포교회에 어느 주일날 무명으로 60만 달러가 헌금되어 나왔습니다. 조그만 교회인데 어느 무명인이 거액을 헌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날 헌금으로 한때 미국 교포사회에 큰 화제가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헌금한 분이 한국교포입니다. 이 분이 캘리포니아에 건립한 교회만 10개가 됩니다. 그리고 남미에 신학교를 건립했습니다. 이 분의 앞으로 목표는 교회를 100개를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이 분은 한국에서 여러 일을 했습니다. 장사도 하고 사업도 했는데 그때마다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8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막일부터 시작해서 마침내 60만 달러를 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돈을 가지고 다시 미국으로 들어갑니다. 60만 불을 현금으로 007가방에 넣어 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입국하려는데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때 그는 갈등합니다. 입국할 때 신고하고 들어가야 하나, 신고하면 현찰로 거액이라 마약자금으로 오해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신고를 안 하고 입국하다 걸리면 돈을 다 몰수당하고 감옥행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신고하지 않고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그리고 입국하려는데 얼마나 긴장이 되었겠습니까. 그때 너무 겁이 나서 순간적으로 “제발 무사하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냥 통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하다가 아내와 상의합니다. “생각해 보니 이 돈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이 돈은 공항에서 뺏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돈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 아닌가“하고 상의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 무명으로 교회에 헌금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작은 규모의 교회에 어느 주일날 7억 원의 헌금이 무명으로 들어왔으니 뒤집히지 않겠습니까. 그 교회뿐 아니고 그 소식을 듣고 전 교포사회가 또 뒤집어진 것입니다. 이 분이 그 60만 달러를 선교헌금으로 내 놓고 몇 년 뒤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60만 달러를 선교헌금하고 6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이 분이 60만 달러를 선교비로 내놓은 뒤 사업을 하는데 하나님이 꼭 10배로 늘려 주셨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늘 입만 열면 입버릇처럼 “나는 6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그 열배로 불려 주셨습니다. 하고 다녔습니다. 이분이 내세우는 성서적 근거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이 분이 미국 사회에서 신용이 쌓여서 유대인으로부터 당장 6억 달러를 융통할 수 있는 신용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또 영적인 복을 받아야 합니다. 좋은 신앙인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빛과 소금되는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또 성공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으로도 성공해야 합니다. 성공해야 나누고 베풀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하려면 그 비결이 예수님과 동업하는 삶입니다. 성공은 영적 성공이든 세속적인 성공이든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내가 만들어서 세속적으로 성공했다 해도 그 성공은 얼마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서 성공했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가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을 쉽게 보게 됩니다.
내가 만들어서 성공하는 대표적인 성공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이것이 세속적인 성공입니다. 그래서 이 성공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무너지는 이유가 그 다음에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래서 세속적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성공의 동기와 그 성공을 이룬 과정이 건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건실하지 못한 것은 모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생활도, 건물도 건실하게 짓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사업과 산업의 기반이 건실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오래가며 발전하고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바벨탑은 애초부터 무너질 운명을 가지고 쌓아 올라갔습니다. 그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성공하는 방법이 “예수를 동업자로 삼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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