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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제 36년의 치하를 벗어난 광복 65주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제 침략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여전히 남북으로 갈라서 있는 아픈 현실을 갖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이름만 그냥 기념예배로 한 것이지,
그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해봐야만 하는 믿음의 일들을 통해서,
좀 더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정도입니다.
물론 그것만 잘 하더라도 엄청난 겁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믿음의 일들을 찾는 것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사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이 땅 가운데서 실천하고 살아야만 할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을 우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전혀 위배되거나 거침돌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라와 민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더 근본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을 한 번 생각해보고,
그 안에서 나라 사랑과 하나님 사랑, 그리고 사람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서 산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본문의 말씀이 주장하고 있는 핵심의 내용은 우리가 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하게 리모델링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전의 모든 존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지고, 완전히 새 몸과 새 영혼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런데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결코 지금의 내 존재 안에 내 실력이라고는 조금도 들어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율법을 지켜서 된 일이 아니고, 나는 아무 한 일이 없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완성으로 인해서 은혜로 받은 것뿐입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죽을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율법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이유는 뭡니까?
자꾸만 과거의 삶과 가치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전 일제 식민시대가 오늘보다도 더 좋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유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던 3공화국이나 5공화국시대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합니까?
자기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근본적이고, 귀한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물질적이고,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것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지배하든지 관계없이 그저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 누려야만 하는 자유 소중한 가치는 다 내던져 버리고,
개돼지처럼 살더라도 먹을 것, 입을 것, 가질 것에 걱정만 없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내가 나서서 뭘 하면 될 것 같은 생각과 착각이 있습니다.
내 열심만 가지면 다 될 것 같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내가 다짐하고 내가 작정하면 다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짐을 제대로 지켜갈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습성은 여전히 옛것을 따르고,
거기에 만족하고자 하는 경향이 너무 다분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착각을 하는 겁니다.
다짐만 하고,
결의만 하고,
각오만 하면 다 되는 줄 압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포스터 붙이면 되는 줄 압니다.
사람들을 많이 불러다가
구호 몇 번 외치고,
함성 몇 번 지르고,
하늘 높이 풍선이나 더 많이 띄우면 되는 줄 압니다.
신앙생활은 전혀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때문에 제가 오늘 8.15 광복 기념 연합예배에 안 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성숙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건 성숙할 수 없는 겁니다.
북한을 물리치자고 결의대회하고,
김정일 모형 만들어서 화형 시키면 우리가 북한을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니거든요.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더 열심히 땀 흘려 돈을 벌어서,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그것으로 전쟁대비 물자도 사고,
더 좋은 인력들을 군인으로 뽑아서
그 돈으로 훈련도 제대로 시키는 것이 전쟁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다들 어떻게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런 곳에 나와서 외치자고 하는 인간들치고 세금 잘 내는 것들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보세요.
총리하네, 장관하네, 대법관하네 하는 인간들이 더 많은 불법들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법치주의니, 준법이니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지켜지는 법이 아닌 것입니다.
일단 만들었으면 내 개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다짐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접대용으로만 그러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뭔가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는 이미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로 이 점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가고,
만들어가고,
완성시켜 가는 것에 있어서 전혀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어야만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하나님의 완성된 자녀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가심에 있어서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좌절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실망하고 나를 포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어려운 세상 가운데서 이끌어 가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작품으로 만들어 가시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시는 겁니다.
내가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든지, 불신하든지 여부에 관계없이
나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온전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을 소망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 혼자서만 기다리면 지치기 쉬우니까,
우리가 다 함께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18;18-20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라고 교회 공동체를 세우신 것입니다.
교회를 지켜 나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지켜 나가면 결국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열매를 맺을 것이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맺어야만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맺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실 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어떤 태도가 나타나야만 정상이겠습니까?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겁니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뭘 해서
나를 드러내고,
나타내고,
자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시니까
나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자리에 서기만 하면 됩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방향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성도들과 함께,
나무목교회와 함께 같이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이 세상 가운데서 드러내고, 나타내어서
좀 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 은혜로 가득한 나무목교회의 성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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