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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으로 새해를 (엡 4:23-24)

by 【고동엽】 2022.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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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으로 새해를 (엡 4:23-24)

 

 인생은 그 자체로 끝없는 변화의 몸부림입니다. 인간은 계속되는 안팎의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요구에 응하기 위해 변화하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우선 안으로부터의 변화의 요구가 끝이 없습니다. 사람은 계속 변화해 갑니다. 태어나 영아기로부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그리고 노년기를 거쳐 사망해 갈 때까지 끝없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인생이 성공적이려면 이런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변화의 요구에 계속해서 잘 부응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어린 시절 변화의 요구에 잘 부응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는데, 나이 들어 장년기와 노년기에는 변화의 요구에 잘 부응하지 못해서 성공적이지 못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은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밖으로부터의 변화의 요구도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특별히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없던 건물이 들어서고, 다리가 새로 놓이고, 새로운 길이 뚫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풍조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삶의 태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성공적이려면 이런 밖으로부터 일어나는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합니다.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IBM” 이라는 회사는 지금 빠른 변화에 밀려나 “애플”이라는 회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TV나 가전제품의 황제 자리를 유지해 오던 일본의 “SONY”라는 회사는 지금 빠른 변화에 밀려나 우리나라 “삼성”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계속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려면 변화에 잘 적응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잘 하려면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변화해야 하는데, 그 변화는 두 가지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먼저 우리가 변화하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심령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외모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외모의 변화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몸짱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피부 관리는 기본이고 성형수술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여자 분들은 화장을 통해 변신을 시도합니다. 나이에 따라 화장으로 변신하는 효과가 차이가 난답니다. 우선 10대는 치장 수준이고, 20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화장이 시작됩니다. 30대에 들어서면 화장 효과가 떨어져 화장이 아니라 분장을 해야 한답니다. 40대에는 더 상황이 좋지 않아서 아예 변장을 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50대에는 화장이 아니라 위장을 하게 되고, 60대에는 화장 대신 아예 포장을 하게 된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외모를 중심으로 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외모가 아니라 심령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심령이 변화한다고 할 때 심령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심령이란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의 속사람을 뜻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존재의 중심을 말합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심령은 마음과 영을 말합니다. 마음이란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를 조정하는 속사람의 한 요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영이란 마음을 다스리며 영이신 하나님과 소통하는 속사람의 또 다른 한 요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속사람은 가장 깊은 자리에 영이 있어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이 영의 통제를 받아 마음이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를 통해서 겉사람을 움직여 갑니다.

 


   그러면 심령이 변화한다는 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그 영이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 2-3장을 보면 인간의 영적 상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 2:14) 이 사람은 그 영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지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지도 못합니다. 마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식물인간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 영이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 3:3) 이 사람은 그 영이 작동을 하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이 되다 말다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지는 알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마치 뇌출혈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된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 영이 살아있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 3:1) 이 사람은 그 영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으로 진리로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영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영이 변화한다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이 육신의 속한 사람으로 변하고, 육신에 속한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계속해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신년 새해에 여러분의 영이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더 깊이 소통하고, 하나님께 영으로 진리로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그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8을 보면 마음이 굳어졌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마치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이 식어 단단히 굳어 철골이 된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철골은 일단 굳으면 변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 마음이 굳으면 요지부동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굳으면 우선 지성이 경직됩니다. 사람의 생각이 굳어져버린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아니라고 우깁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념 논쟁을 보면 그렇습니다. 서로를 향해 마음이 굳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굳으면 다음으로 그 감정의 문이 닫혀버립니다. 서로 화해가 어렵습니다. 용서가 안 됩니다. 미움이 깊어지고 그 감정이 원과 한으로 발전되어버립니다.

 


   사람의 마음이 굳으면 또 하나 의지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쓸 데 없는 곳에 고집을 부립니다. 그럴 필요가 없고 그러다 자기에게 좋지 않은데도 그 잘난 자존심을 세우며 고집을 부립니다. 때로는 결단해야 할 데 결단하지 못합니다. 잘못된 것 끊고 돌아서야 하는데 돌아서지를 못합니다. 자기도 돌아서야 한다는 것도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합니다.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굳은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느낄 것을 느끼고, 또 결단할 것을 결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신년 새해에 여러분의 마음이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보다 그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바랍니다.

 

 

 

 


새사람을 입으라

 


   다음으로 우리가 변화하되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속사람이 변했으니까 이제 겉사람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벌써30년이 넘었습니다만 군에 입대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는데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대기하는 동안 “장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왔다고 “서울 장정”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장정생활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훈련 받기 전에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옷을 바꿔 입는 것입니다. 그동안 입고 있던 사제 옷은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다 걷어서는 소포로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 옷을 나눠주었습니다. 바로 군복입니다. 군복을 입고 나니까 호칭도 바뀌었습니다. “훈련병”입니다.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속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겉사람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동안 예수 믿기 전에 속사람이 입고 살아왔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이제 예수 믿고 변화된 속사람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옛사람과 새사람은 무엇을 뜻할까요? 한 마디로 삶의 양식(life style)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과 인생을 보는 시각,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태도, 저마다 몸에 배어온 습관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옛사람이란 예수 믿기 전에 인생을 살아오던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 새사람이란 예수 믿은 후 인생을 새롭게 대하는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 믿고 난 후 우리가 입어야 할 새사람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 믿은 후 발전시켜가야 할 삶의 양식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로움입니다. 의로움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옳은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난 뒤 새사람으로 살고자 할 때 제일 먼저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옳게 살려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6:31-33을 보면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예수 믿기 전 옛사람 시절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사람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 5:6에 보면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구하되 마치 굶주린 자가 먹을 양식을 찾듯이 목마른 사람이 마실 물을 찾듯이 의를 찾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옳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호주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두 사람이 학창 시절에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습니다. 둘 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출세를 해서 한 사람은 판사가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은행가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은행가가 금융사고를 쳤습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간에 아주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재판까지 가게 됐는데 우연하게도 이 재판을 친구가 맡게 됐습니다. 워낙 대형사고인데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잘 알려진 터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어떻게 판결을 냈을까요?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형으로 판결했습니다. 국가에 손해를 끼친 일이기 때문에 엄중하게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 후 재판을 한 친구는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로서 판결 받은 친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어제 우리 집을 팔았네 내가 자네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으니 이것으로 벌금 내는데 보태게...”

 

 

 

 


   이것이 의를 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고자 하는 몸부림을 말합니다. 우리가 새해에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깨끗함이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깨끗함을 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구약 레위기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고 난 뒤 새사람이 되고자 할 때 추구해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은 거룩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출 30:17을 보면 성막을 세울 때 성막과 제단 사이에 놋으로 만든 물두멍을 두게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가 제사장 직무를 보기 전에 물두멍의 물로 손과 발을 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손과 발을 물두멍의 물로 씻지 않은 채 제사장 직무를 보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되어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된 사람들은 거룩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 유럽에 사는 흰 담비는 털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이 흰 담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사냥꾼들은 흰 담비의 이런 속성을 이용해서 흰 담비를 잡는다고 합니다. 즉, 흰 담비가 사는 굴 입구에 숯검정을 칠해 놓고 숲속에서 놀고 있는 흰 담비를 굴속으로 모는 것입니다. 굴 입구에 다다른 흰 담비는 자신의 흰털을 더럽힐 수가 없어서 굴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굴 앞에서 주저하다가 결국 사냥꾼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죄악이 가득한 세상, 하나님 보시기에 더럽고 추한 것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가고자 몸부림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문 진리의 거룩함이라고 했습니다. 거룩함을 지켜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요 17:17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드린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간절한 바람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살아갈 때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유혹이 거세게 내게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더욱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11년이 밝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한 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금년을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변하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영이 더욱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더욱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새사람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더욱 의로운 삶 즉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거룩한 삶 즉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한 삶을 살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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