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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14)-팔복 마음-1(마음 가난)
마5:3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경우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까? 예수님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의 첫 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저해하는 가장 큰 것이 물질입니다.
▶ 어느 날 두 뱃사람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했답니다. 좁은 구명보트에 의지하여 생사를 오고 가는 데 한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만일 저를 구해주신다면 제 재산의 반을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해도 아무런 희망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살려 주세요. 제 재산의 2/3를 바치겠습니다”. 그때 저 쪽에서 배 한 척이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친구가 외쳤습니다. “어이 친구, 거래를 중단해. 배가 보인다”. 배가 다가오자 그 재산 바치겠다고 약속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배가 보입니다. 약속한 것은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농담도 못합니까?”.
물질은 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평생 물질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 때문에 늘 시험 들고 자유를 빼앗기고 가끔 탈선하며 사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질 때문에 사람이 옹졸해지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고 살인도 하게 되고, 물질에 꽁꽁 묶여 일생을 마치기도 합니다.
어떻게 물질로부터 자유하며 살 길은 없을까요?
▶ 연 전에 한 노인이 평생 모은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바쳤습니다. 90세된 김용철 할아버지입니다. 그가 평생 모은 90여억원을 국가 안보를 위해 국방부에 기증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1950년대 대한수리조합에 입사해 20여년을 근무했습니다. 이어 광주에서 중소 섬유공장을 운영하고 그 공장을 정리하면서 받은 토지보상금으로 많은 재산을 일구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재산의 소유자이면서도 그는 양복 한 벌과 다 닳은 와이셔츠, 구두 한 켤레로 생활했으며 만 원 이상의 식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양로원에 삽니다. 평생 땀 흘려 모인 재산을 국가에 기증하고 홀가분한 모습으로 양로원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환한 미소를 통해서 자유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행복하기 원합니까? 행복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가진 성품을 가질 때만 행복합니다. 행복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소유할 때 옵니다.
▶ 1930년대 미국에 경제대공항이 있을 때 텍사스 주에 예인츠라는 농부가 살았습니다. 무슨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경제공황이 몰아치자 도산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석유탐사대가 그 지역을 조사하다가 이 농부의 농장 밑에서 거대한 석유매장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루에 8만 드럼씩 쏟아져 나오는 커다란 석유 매장지였습니다. 예인츠는 도산 직전에 미국 최대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묻습니다. 예인츠가 언제부터 부자였습니까? 석유가 나올 때부터 부자입니까? 석유가 매장될 때부터 부자였습니까? 농장 밑에 엄청난 석유자원이 매장되어 있었고 그때부터 부자였습니다. 다만 그가 몰랐던 것 뿐입니다. 처음부터 그는 부자였습니다. 다만 그가 실제로 부자가 된 것은 농장에서 석유를 발견한 때부터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부터 행복한 존재였습니까? 여러분 안에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이미 행복한 존재였습니다. 여러분 안에 모든 행복과 부와 능력과 성공의 원천인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십니까?
골3:3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런데 언제부터 여러분은 실제로 행복한 존재가 됩니까?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성품이 발견된 때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성품이 들어온 때입니다.
▶ 아그네스 레플리어란 사람이 행복에 대해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부가 있고 능력이 있고 성공이 있습니다. 다른 데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발견하고 확신하고 내 속에 있게 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 안에 있는 마음의 가난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소유한 진정한 부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바랍니다.
▶ 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해야 행복하다고 하셨을까요?
1. 가난하면 갈급하기 때문에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8가지 복의 첫 번째입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은 우리 행복을 위하여 가장 먼저 가난을 말씀합니다. 왜 예수님은 가난을 먼저 말씀하실까요? 왜 가난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까? 우리 생각에 가난은 행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행이요 고통이요 심지어 저주입니다. 성경은 한 번도 가난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한 적이 없습니다. 가난은 거룩하지도 않고 가난 자체가 우리의 신앙 목표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난이 꼭 필요하다면 우리는 가난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겠지요. 그러나 가난은 그 자체로 덕이 아닙니다. 가난이 경멸받아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추앙받아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실 뿐 아니라 풍성하신 분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주의 부자입니다. 세상이 다 그의 것이요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아버지는 세계적인 부자인데 아들은 찌든 가난 속에 산다면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가난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게으름과 불성실에서 온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가난은 사람의 책임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난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은 보통 가난이 아닙니다. 원문에 이 말은 “프토코스”입니다. 이 말은 전적으로 궁핍한 상태입니다.
헬라어에서 “가난”을 말할 때 “프토코스”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페니크로스”란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페니크로스”란 단어를 쓸 때는 가난해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눅18장에서 엽전 두 닢을 가진 과부의 가난을 말할 때 이 말을 썻습니다. 과부는 가난했으나 거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나와 헌금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는 말씀에 나오는 “프토코스”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거지 나사로처럼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사는 상태입니다.
아버지를 떠났다 돌아온 탕자 같은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억지로 가난하게 되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가난하게 사셨지만 수도사는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가난하게 살았다고 남들에게 가난을 강요할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 예수님은 가난 자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가난이 갖는 영적인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좋은 것이 있습니다. “가난하면 갈급 합니다”. 가난의 가장 좋은 특징은 갈급한 것입니다.
가난은 결핍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은 가난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속상합니다. 아타깝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갈급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없으면 안 된다고 절규합니다. 달라고 소리칩니다. 이것이 가난입니다.
▶ 진짜 가난하면 염치도, 체면도, 질서도, 무서운 것도 없는 것입니다. 6.25 전쟁 시 미군들이 주는 물건 받는데 아수라장을 이룬 기억이 있습니다. 하도 소리를 질러 경찰까지 왔는데도 막무가내입니다. 이것이 가난입니다. 가난은 소리칩니다. 절규합니다. 없으면 못산다고 외칩니다. 이것이 가난입니다.
이런 영적 갈급 상태를 예수님은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런 심령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가난하면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그러면 심령이 가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갈급합니다. 없으면 안 된다고 소리칩니다.
물질로 가난하면 물질 달라고 소리치고 심령이 가난하면 하나님 없다고 소리칩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한 가난이 그 가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믿음의 땅인 줄 아십니까? 왜 이스라엘에 모세가 태어나고 엘리야, 엘리사, 다윗, 세례요한, 예수님이 태어난 지 아십니까? 왜 이스라엘 땅이 성경의 땅이 되고 거기서 태어난 인물이 성경적 인물이 되고 오늘날 이스라엘백성이 노벨상의 반절을 휩쓰는지 아십니까?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없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저 푸른 초원도 없고 쉴만한 물가도 없습니다. 김제 같은 넓은 평야, 택사스 같은 넓은 목장도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합니까?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가난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기도를 낳습니다.
▶ 예레미아를 보십시오. 그는 유다광야 아나돗 출신입니다. 척박한 광야에 태어난 예레미아는 어릴 때부터 결핍가운데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렘14:6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예레미아가 살던 광야는 비가 없어 암사슴이 헐떡이며 물이 없이 들나귀의 눈이 아득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레미아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다 끝내 위대한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령의 가난이 영적 축복을 가져온 것입니다.
▶ 아모스를 아십니까? 아모스 역시 유다광야 드고아 출신이었습니다. 드고아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암4:8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얼마나 마실 물이 없었으면 사람들이 비틀거리고 다녔겠습니까?
사람 몸의 70%가 물인 데 물이 없으면 어떻게 삽니까?
아모스는 그런 척박한 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 다윗을 아십니까? 사울 때문에 쫓기고 살았던 다윗, 그가 피하고 다녔던 지역은 주로 광야 지역이었습니다. 광야는 결핍의 땅입니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시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만일 다윗이 아무 걱정 없는 왕궁에 있었다면 하나님을 그렇게 의지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쓴 그 주옥같은 시편도, 그가 고백한 보석 같은 신앙도, 그가 토로한 위대한 기도도 다 척박한 땅 광야에 있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광야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 반면에 왜 애굽에 인물이 없는지 아십니까?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땅이 많습니다. 애굽은 물이 많습니다. 먹을 것이 많습니다. 고센 땅은 풍요의 고향이었습니다. 너무 많으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신11:10 “네가 들어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성경에서 애굽을 묘사할 때는 언제나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물이 얼마나 풍부했든지 밭에 물을 손으로 댄 것이 아니라 발로 댑니다. 심기만 하면 자랍니다. 고센 땅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곡창지역입니다.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3모작하는 곳입니다. 풍요로 애굽 사람들이 만든 것은 놀랍게도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였습니다. 그래서 피라미드가 무엇인가 보았더니 왕의 무덤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먹고 남아 돌아 만든 풍요의 열매가 무덤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래야 합니다.
나일강변에 있는 유명한 도시 베니하산, 엘 아마르나, 왕의 계곡도 다 무덤입니다. 죽은 왕들의 무덤입니다. 거기엔 하나님도 없고 성전도 없고 오직 무덤뿐입니다.
▶ 피라미드 하나가 얼마나 큰지 5 톤짜리 돌을 250만개 쌓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만든 피라미드에 지금은 도굴당하고 없는 죽은 왕이 남아 있습니다. 풍요의 결과가 무덤이라면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심령이 가난한 것입니다.
▶ 테레사 수녀가 한번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기자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미국을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보았습니다”. 미국은 우리가 아는 대로 세계에서 가장 부요한 나라입니다. 아직까지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테레사는 미국에서 가난을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부요하지만 사실은 가난한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많이 가졌는데 사실은 가난한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자인데 영적으로는 가난한 것이 가장 큰 가난입니다.
▶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습니다. 터키 서쪽 해안지역에 있던 7개의 소아시아 교회 중에 하나였던 라어디게아 교회는 굉장히 부자 교회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오래전부터 은행과 고리대금업자가 많았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뉴욕같은 금융도시입니다. 그런데 주후 60년에 지진이 났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부자였는지 로마 정부가 지원해 주려고 해도 라오디게아는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충분히 부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지진의 폐해를 넉넉히 복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이 부자였기에 영적으로도 부자인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착각이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책망했습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 가난하다. 둘째 눈멀었다. 셋째 벌거벗었다. 어떻습니까? 물질적으로 부자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도 영적으로 가난할 수 있나요? 눈은 멀어 안 보이고 옷을 벗어 추할 수 있나요? 이것이 우리가 경계할 사항입니다.
▶ 예수님은 마굿간에 태어나 일생 가난한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살았지만 영적으로 갈급하여 40일을 금식했으며 성령 부어 주심을 받아 하나님을 모신 부요 속에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머리 둘 곳도 없이 살고 죽은 후에도 남의 무덤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적으로도 가난했지만 영적으로 부요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물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해서 물질축복 받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와 같은 노력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항상 갈급하여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삭개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예수님 만나고 심령으로 가난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일생 부요한 자로 살았습니다.
▶ 바나바, 그는 본래 부자였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모든 재산을 사도들의 발 앞에 내놓고 그는 가난한 자가 되었습니다. 심령으로 가난한 자가 되자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가난하기만 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면 부요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물질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부요한 사람입니까? 물질적으로만 부요한 사람입니까? 바리새인같이 물질적으로는 부요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에 대하여는 가난한 사람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다 부요한 자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순서는 영적인 부요가 먼저입니다. 심령으로 가난해야 영적으로 부요해집니다.
3. 심령을 가난하게 비우면 채워지기 때문에
언제나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비우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헤매었던 광야에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 아무 것도 없는 땅에 만나가 내렸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나무도 보이고 집도 보이자 만나가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비어 있는 데 임합니다.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되 행복하려면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축복은 가난한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조금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습니까? 아껴 쓰세요.
▶ 세계적인 부자 워렌 머핏도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건물 한 층만 쓰는 것을 아십니까?
전 세계 76개의 투자회사를 가지고 있고, 매년 132억 달러의 이익과 50조의 재산을 가진 부자도 직원들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매일 점심에서 즐겨먹는 것은 6천원 짜리 햄버거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재산의 85%인 37조를 기부했습니다.
▶ 성도는 없어서 가난하게 살지 말고 있어도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난을 운명으로 받지 말고 기쁨으로 누려야 합니다.
요즘 같은 겨울에도 집이나 사무실의 온도를 약간 낮게 유지하십시오. 웬만하면 자동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십시오. 물건이 오래됐다고 새것을 사지 말고 웬만하면 그냥 쓰세요.
가난에 목매달지 말고 결핍을 즐기세요.
가난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기도를 낳고 기도는 기적을 낳습니다.
적게 쓰고 많이 남기세요. 어차피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놓고 갈 것들입니다.
회갑잔치, 7순, 돌, 생일잔치, 결혼식 화려하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생명 주신 것으로 감사하세요. 그것으로 구제헌금, 장학금, 이 땅의 작은 교회 돕는 헌금 하세요.
한국교회도 더 가난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소모적으로 쓰는 것보다 교회 밖으로 더 많이 내보내야 합니다.
비워야 채웁니다. 비우면 채웁니다. 그래서 작은 부자는 아껴서 되고 큰 부자는 베풀어서 됩니다. 주고 베풀면 그 빈자리에 하나님이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선교 많이 한 교회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교회는 돈 쌓아 놓지 말고 부지런히 나눠 주어야 합니다. 거름을 쌓아놓으면 부패하지만 여기 저기 뿌리면 식물이 자라듯이 거름이 되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비고 깨끗한 심령에 은혜주십니다.
여러분의 심령은 가난합니까? 가난한 심령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노래가 나옵니다.
하나님에게서 물질도 은혜도 능력도 축복도 행복도 나옵니다.
심령으로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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