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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16)-8복 마음-3 (마음 온유)

by 【고동엽】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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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16)-8복 마음-3 (마음 온유)

마5:5

▶ 팔복 중, 한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에게 제일 필요한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溫柔하면 땅을 차지한다고 하니,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한테 가장 필요한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성급하고 거칠고 난폭한 민족이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운전을 가장 난폭하게 합니다. 가장 빨리 분노합니다. 화를 너무 쉽게 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침착하게 말씀하십니다.

"溫柔한 사람은 幸福하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쉽게 분노하여 불행을 자처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溫柔한 성품을 갖추라고 말씀하십니다.

▶ 온유라는 말은 헬라어 프라우스라는 데서 온 말이며 프라오테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부드러움이라는 뜻입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며, 온화하고 남을 배려하며, 동정하고 긍휼을 베푸는 이런 마음이면 그 삶이 잘 됩니다.

행복의 근본이요, 행복의 뿌리, 복의 뿌리가 온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온유라는 말은 참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네단계로 사람들을 나누어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겸손하라. 젊은 때에는 온유하라. 장년이 되어서는 공정하라. 늙어서는 신중 하라.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온유한 마음이란 어떻게 하는 마음을 말할까요?

1. 온유한 마음이란 이해 잘하는 마음입니다.

溫柔한 사람은 남을 얕잡아 보지 않고,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영어로, Reject 하지 말고 Respect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숙을 점검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있다면 나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와 불일치하는 사람과는 항상 다투려고만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면서도 배타적으로 Reject(거절)하지 말고, 서로를 최대한 Respect(존중)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溫柔한 사람이란 상대방을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었든지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해주셨습니다.

세리, 창기, 죄인들, 여인들, 소외당한 사람들, 모든 종류의 환자들, 이방인들, 바리새인들,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도 이해하고, 존중히 대해주셨습니다.

溫柔란 이해고 수용하는 성품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품이 溫柔하신 만큼 항상 이해적이고, 수용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통하여 매우 강조하시는 말씀 중 하나는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을 쉽게 비판하지 말고, 오히려 덮어주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수용하지 못하고 비판적일수록 성품이 사나와집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 중에 항상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일수록 말이나 글도 언제나 비판 적이며, 심지어 얼굴 모양까지도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판적인 사람일수록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낙심시키고 좌절하게 하는 말을 잘합니다.

비판적일수록 정이 없어지고, 사나와집니다.

溫柔란 팽팽하게 노려보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열린 마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수용할수록 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수용과 은혜는 사촌입니다.

▶ 어떤 현자가 제자들에게 "세상일은 결국 溫柔한 사람이 승리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溫柔한 사람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거친 질문에도 부드럽게 답하는 사람입니다"

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溫柔란 상대방의 거친 질문과 행동을 후회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거인(gentle giant)! 이라는 말이 잇는 것입니다

어떤 공격 앞에서도 반항적(surrender)이지 않고, 여전히 호응적(tender)인 것입니다.

▶ 바리새인은 옳은 사람들이었으나 가르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교훈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변화 받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는 하나도 틀린바가 없고 다 옳기에, 그만 상대방의 의견이나 입장을 일언 제하에 거절하고, 결코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닌지요?

당신은 배우는 일에 개방적인가요, 폐쇄적인가요? 당신은 변화에 개방적인가요, 폐쇄적인가요?

▶ 다윗이 훌륭한 점은 비록 나이 어린 선지자인 나단이 책망해도 그는 달게 받아들였습니다.

▶ 溫柔란 스펀지 마음입니다. 스티노플은 아무것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만 합니다.

그러나 스펀지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수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듣는 태도가 溫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약 1:21).

溫柔한 마음이란 곧 옥토마음입니다.

요즘 세상이 거칠어지다 보니 나의 성품도 거칠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벧전3:3-4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만 하지말고, 썩지 않는 溫柔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엡4:2 모든 겸손과 溫柔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딛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溫柔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늘 이해하고, 수용하고, 용납하는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2. 온유한 마음이란 넓은(원만) 마음입니다.

시119: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고후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마음을 넓고 크게 가지고 사시면 복 받습니다.

▶ 이 온유란 말은 원래 프라우스라든가, 프라이아라는 이 헬라 말은, 헬라 사람들 헬라 철학자들이 말해주는 개념은 이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사람은 이 프라우스라고 하는 말, 온유라는 말은 곧 중용을 말하는 것이다. 극단을 피하는, 극단이 아닌, extreme이 아닌, 그런 중용의 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온유는 결코 약해지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강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온유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요셉의 원만한 마음

▶ 다윗의 원만한 마음

▶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지 극과 극에 서는 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그래서 동양철학에서는 중용의 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중용이 바로 온유의 길입니다.

이 시대는 극과 극이 대결합니다. 갈등과 증오가 난무합니다. 극과 극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고 있습니다. 마음 아픈 일입니다.

선거할 때 여야의 대립을 보면 이것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는 보지도 않고 상종하지도 않을 원수 사이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노사간에도 극과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서로 잘 협력하여 나가도 우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 나가기가 힘든데 여러 가지로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역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이라면 망국적인 지역갈등을 적당히 이용합니다.

온유는 두 극단(extreme)에 서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중용을 지킬 줄 아는 마음입니다.

넓고 원만한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3. 온유한 마음이란 양보하는 마음입니다.

▶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이집트에서 많은 재산을 얻어 가지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세겝 땅으로 올라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일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분가시켜서 서로 편리하게 떨어져 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하기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먼저 선언했습니다. 롯은 요르단 분지를 가리키며 목자와 짐승들을 따로 데리고 분가하여 물이 넉넉하고 하나님의 동산같이 느껴졌던 소알 평지를 향했습니다. 롯이 떠나간 다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고개를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東西南北을 둘러보아라. 네 눈에 비치는 온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리라"(창13:14-17)고 약속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같이 讓與하는 마음이 곧 溫柔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양보하는 마음입니다. 양보하면 평화로워집니다. 행복해 집니다.

4. 온유한 마음이란 친절한 마음입니다.

▶ 양화진에 가면 초대 교회 우리 나라에 온 많은 미국, 카나다, 호주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그중 일본인도 한 명 있는 데 소다 가이치라는 사람입니다. 왜 그 많은 서양 선교사틈에 일본인이 있을까? 역사를 찾아 보았습니다. 소다 가이치는 1867년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교사로 일하다 26세에 되던 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홍콩을 거쳐 타이완으로 갑니다. 그런데 객지에서 외로운 데다 믿음도 없어 하루 하류 무절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술에 취해 거리를 헤매다 쓰러졌는 데 아무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날씨는 추어 숨이 곧 넘어가는 데 사람들은 관심없이 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그 곁을 지나갔습니다. 아직 맥박이 뛰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그를 업고 여관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를 치료한 뒤 여관비까지 내주었습니다. 길바닥에서 술에 취해 객사할 뻔한 소다 가이치는 그 행인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가이치는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 준 사람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다만 사람들을 통해 그가 조선인이라는 것만 알았습니다. 그 뒤에 그가 한국에 왔습니다. 자기 생명을 구해준 이름모를 한국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YMCA에서 일본어 선생으로 일하다가 월남 이상재 선생의 감화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나이 95세까지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일제시대, 버려진 수많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자기 품에서 키웠습니다. 해방될 때까지 그가 직접 키운 고아만 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해방 이후 잠시 일본에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온 소다 가이치는 마지막까지 한국을 위해 일하다 죽었습니다.

정부는 그에게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문화훈장을 추서했고, 교회는 그를 기념하여 양화진에 묻었습니다. 지금도 양화진에 가면 주요한 선생이 쓴 묘비가 남아 있습니다. “언 손 품어주고 쓰린 마음 만져 주니 일생을 길다 말고 거룩한 길 걸었어라 고향이 따로 있든가 마음 둔 곳이어늘”. 그의 모든 일생은 방황의 시절, 그를 죽음에서 건진 한 무명의 한국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지금까지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그 한 사람을 통해 일본인 하나가 구원받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 땅의 고아들이 살았으니 예수님 말이 맞습니다.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예수님의 온유, 우리 평생 예수님의 온유를 배우게 하소서.

우리 모두 친절한 마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5. 온유한 마음이란 대적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 “자기를 미워하는 원수를 사랑해라.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돌려대라.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도 가 주어라. 누가 속옷을 달라고 하거든 겉옷까지 주어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을 물론 그를 위해 기도까지 해주어라”.

▶ 온유한자는 손해보고 빼앗기는 패배자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온유한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고 약속합니다.

▶ 이삭의 우물로 인하여 대적하지 않음.

▶ 우리나라도 온유한 성품을 가진 분이 나라를 통치할 때, 예를 들어 세종대왕처럼 어진 분이, 온유한 분이 다스릴 때 나라가 잘 되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나라가 안정이 됐습니다.

▶미국에는 링컨 대통령이 제일 온유했답니다. 온유한 분이 역사에 큰일을 합니다.

▶ 빅토리아 여왕이 온유할 때 전 세계에 영국이 일어났습니다.

▶ 중국에는 요나라의 왕이 온유할 때 중국 역대에 가장 큰 평화가 왔습니다.

▶ 예수님은 아무 능력이,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온유하신 주님이 온 인류를 다스립니다.

▶ 차갑고 굳은 것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에 생명력이 넘치는 법입니다. 생명 없는 광물질은 차고 딱딱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너무도 껍질이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면 죽어가는 고목이 됩니다. 부드럽고 연한 가지에서 푸른 잎이 움트며,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맺힙니다. - 이중표의《하늘을 품은 마음》중에서 -

▶ 동물원을 운영하는 동물원 원장이 강의를 하는데 동물원에서 제일 병이 없는 동물 장수하는 동물이 무엇이냐 하면 온유한 동물이랍니다. 온유하면 장수한답니다. 거북이는 3백년을 삽니다. 병도 없답니다. 오래 삽니다. 성격이 예민하면 병도 많고 오래 살지 못합니다. 새도, 물고기도 그렇답니다. 어떤 종류도 순하고 온유하면, 번식도 잘 되고 건강하답니다. 성격이 팍팍 그러고 그러면 자기 바람에 자기가 죽는 답니다. 그러니까 다 나쁜 겁니다.

▶ 어떤 분이 모세를 연구했답니다. 모세는 어떻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120세를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 당시라고 다 120세 산 것이 아닙니다. 일찍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모세는 두 가지랍니다. 하나는 성품이 온유하니까 오래 살았답니다. 온유하면 오래 삽니다. 여러분! 장수하시기를 바랍니다. 온유 다음에 모세가 오래 산 이유가 무엇입니까? 광야를 40년 동안 늘 걸어 다녔습니다. 항상 걸어 다닙니다. 80년을 걸어 다닌 겁니다. 건강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걸어 다니는 겁니다. 걷는 것이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 모세와 훈자마을 사람들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네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욕심이 없습니다. 모세는 늘 일용할 양식인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훈자마을 사람들도 늘 산에서 나는 것을 그날그날 먹고 살고 있습니다.

둘째,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좋은 물은 생명입니다.

셋째, 걸어 다녔습니다. 모세도 40년간 광야를 걸었습니다. 훈자마을에도 아스팔트가 없습니다. 자동차도 없습니다.

넷째, 온유하였습니다. 모세는 온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할 정도로 온유하였습니다. 훈자마을 사람들도 자연속에서 살면서 늘 온유합니다. 강한 호랑이는 20년 살지만 온유한 거북이는 30년 살고 있습니다. 부드러워야 오래 삽니다.

▶ 통계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 일만명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성공을 하는 비결이 어디 있느냐 그걸 지식이냐 기술이냐 얘기했는데 기술과 지식은 15%밖에는 안 된다고 그랬어요. 85%는 인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화평과 온유한 마음,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그렇게 통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온유함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온유하다고 할 때 땅을 차지하는 권세를 누린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온유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래야 행복하고, 오래 살고,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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