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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17)-팔복 마음-4(마음 갈급)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요”.
주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의문을 던집니다. 이번에는 주리고 목마른 자 복이 있다 하십니다. 어떻게 굶고 사는 것이 복이겠습니까? 도대체 굶어보고 하신 말입니까? 삼일을 굶으면 담 안 넘어갈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목마른 것이 복입니까? 왜 주님은 우리에게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합니까? 어떤 의미의 주리고 목마른 것입니까?
여기 주린다는 말 역시 굉장히 강한 意味를 띤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굶주린 상태를 말할 때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에게 빵 한 조각만 주세요,' 다른 하나는 "나에게 먹을 것 전부를 주세요"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Peinao는 아사상태에서의 갈급함과 渴望을 뜻합니다.
강한 열망, 깊고 간절한 소망을 말합니다.
여기서 “의”란 말이 중요합니다. “의”란 말을 헬라어로는 “디카이오수네"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의로운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를 소유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왜 이 구별이 중요합니까? 신앙의 목표는 내가 의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우신 분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그 분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분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입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우리가 의인되면 좋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인이 되면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갈급해야 할 그 의는 무엇인가를 대언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기갈하게 찾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사모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다 행복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얼마나 渴望하며 살았던지요! 그것이 곧 행복의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渴望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편 63:1)
그 心靈 속에 하나님을 渴望하는 만큼 행복이 주어집니다. 사모하는 만큼 흡족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론 네 번째 메시지로 이렇게 위로하시며 祝福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를 渴望하며 思慕하는 자가 행복합니다.
우리가 육의 양식을 찾는 것처럼 우리 영도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육이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을 찾는 것처럼 영의 사람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가끔 “나는 무신론자다. 나는 하나님 필요 없다”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누구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엄마없는 아이가 기쁨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 떠난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합니다. 사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맞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 몇 년 전에 한 대학에서 이런 조사를 했습니다. 전국 7개 도시 20세 이상 64세 이하의 남녀 1,503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행복합니까?” 물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력, 외모, 건강, 사회적 지위, 대외관계 등 16개 항목을 차례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인 평균 행복지수가 57.71이 었습니다. 남성이 58.59, 여성이 56.87, 여성이 약간 낮았습니다. 다들 경제적으로는 괜찮은 데 학력도 괜찮고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데 그것이 행복의 모든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한 말과 같습니다. 시16: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 불란서의 위대한 사상가였던 파스칼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공백이 있다.'
오늘도 우리 心靈 깊은 곳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 금세기 英國의 가장 훌륭한 說敎者였던 마틴 로이드 죤즈도, '사람이 조금만 배고프면 돼지우리를 찾지만 정말 배고프면 아버지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蕩子의 교훈을 잘 설명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渴望하므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행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성경끼고 주일날 교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마음입니다.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가난한 자로 하나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눈먼 자로 하나님앞에 가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자로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린 마음, 목마른 마음입니다.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늑하고 웅장한 예배당 분위기입니까? 목회자의 유창한 설교입니까?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입니까? 요즘은 첨단 하이테크와 음향, 영상도 필요합니다. 무엇이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까? 헌금입니까? 특송입니까? 냉온방 장치입니까? 가난한 마음입니다. 목말라야 예배입니다.
예배의 가장 큰 저주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직분자이기 때문에 나오고 봉사하러 나오는 것입니다. 주리고 목말라야 예배입니다. 목마르면 일찍 오라고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목마른 자는 누가 뭐래도 목숨 걸고 물을 구합니다. 앉아서 물을 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암4:8,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목말라 죽게 된 사람은 비틀거리면서도 물을 찾습니다. 물을 찾으면 10분이고 20분이고 정신없이 물을 마십니다.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물을 마십니다. 이것이 예배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예배합니까?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심정으로 주일날 마다 교회로 옵니까? 목마른 사람이 정신없이 물을 마시는 심정으로 하늘의 생수를 마십니까? 목마른 사람은 나도 모르게 앞자리로 옵니다. 목마른 사람은 나도 모르게 아멘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은 다윗이 말한 대로 예배합니다.
시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로렌스 형제는 죽어가면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가 지난 40년 동안 해왔던 것을 하러 갑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상에 왔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상에 살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천국에 갑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고 쉬려고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천국에 갑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왔고 또 예배하기 위해 세상으로 갑니다. 예배는 의식이나 제도가 아니라 주린 마음입니다. 예배는 비우고 채우는 것입니다. 예배는 주린 영혼을 은혜로 채우시는 하늘의 만나입니다. 예배는 갈한 영혼에 부으시는 하늘의 생수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으면 행복을 얻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갈급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을 기갈하게 찾는 것을 말합니다.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는 무엇입니까? 롬3:22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가 있어야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빈 손 들고 나오십시오. 명예든지, 부든지, 권력이든지, 그것이 무엇이든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 비우고 빈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요4:14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주리다'는 마4:2절에 주님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가 이 단어입니다 오직 먹어야겠다는 생각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목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했을 때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여러분 며칠 굶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름에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본 적이 있습니까? 이와 같이 심정으로 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의에 본체이십니다. 예수님을 갈망하십시오! 예수께 주리고 목말라 하십시다. 시42: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3. 聖靈을 기갈하게 찾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의 幸福은 영성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聖靈 充滿을 渴望하며 사모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왜 우리가 聖靈의 充滿함을 받아야 할까요?
聖靈님 만이 우리의 속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결하게 되고, 성화 되는 것은 오직 聖靈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특히 우리의 내면 세계 속에서는 두 영이 갈등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聖靈님의 소원입니다(갈라디아서 5:16-17).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聖靈의 充滿함을 받아야 합니다(에베소서 5:18).
우리가 너무나 자주 옛사람의 본성에 패배하니까 불행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聖靈의 능력으로 나의 죄성을 이기면 이길수록 참된 幸福을 누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聖靈 充滿한 사람들이 불행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 예수님은 聖靈 充滿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이런 놀라운 幸福을 약속해주십니다(요한복음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聖靈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우리가 정말 聖靈 充滿을 사모할수록 우리 心靈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영적 배부름을 누릴 줄 믿습니다.
현대교회 교인들이야말로 聖靈 充滿함을 체험하기 위해 더욱 갈급한 心靈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미국의 기독교 전문 조사 기관인 바너 리서치 그룹(BRG)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교인들 중 30%는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은교회 교우들은 모두 다 聖靈 充滿함을 입어 고급한 幸福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聖靈 充滿은 사모하고 渴望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 다윗의 聖靈 갈구 (시편 107:9).
"우리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4. 稱義를 기갈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인간 자신의 도덕적 수양이나 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디카이오수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여겨지는 행복을 뜻합니다.
나는 원래가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를 의롭다고 선언해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Jus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 "칭의"라고 번역합니다.
▶ 바울은 빌립보 3장7-9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의에 대하여 정의하였습니다.
우리가 의인되는 길이 딱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길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칭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최소한의 조건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3: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義)"는 영적으로 선택적인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입니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칭의 은총이 없으면 영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일차원적 굶주림과 갈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해주시는 칭의에 대한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을 목말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의에 대하여 목말라 하고 갈급해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라"고 하셨지, '복에 주리고 목말라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행복에 주린 자가 복된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된 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은 대체적으로 복을 주시면 의롭게 살겠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해 주셔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보다 근원적인 메시지입니다.
▶ 우리가 잘 알 듯이 다윗 왕은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잃었던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시편 51편 4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는 성결의 은혜를 이렇게 渴望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는 칭의의 은총을 깊이 열망했습니다(deepest desire).
성경은 완전한 자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자가 복되다고 말합니다.
롬 4:5-8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 우리는 정말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해야 합니다. 성결을 渴望하는 만큼 고급한 幸福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흐뭇한 幸福을 누릴 것이라"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幸福론 네 번째 메시지의 결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우리가 칭의의 은총을 渴望하며, 성화의 은혜를 추구하고, 聖靈 充滿함을 사모하기만 하면 그 결과가 얼마나 황홀한지요!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라】
이 말은 헬라어 Chortazo인데, 풀과 곡식으로 가축들이 살찌는 상태를 뜻합니다.
은혜를 너무 사모하고 渴望하다보니 Chortazo, 살이 붙은 것입니다. 充滿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좀 더 현대적으로 번역합니다.
"의를 渴望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가득 채움을 받을 것이다"
우리 편에서는 渴望하는 것이요, 하나님 편에서는 흐뭇한 幸福을 안겨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42: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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