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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19)-팔복 마음-6 (마음 청결)마5:8

by 【고동엽】 202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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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19)-팔복 마음-6 (마음 청결)

마5:8

▶ Being Happy 라고 하는 책을 써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호주사람, 앤드류 매튜스 (Andrew Matthews)라고 하는 분은, 본래 법학을 전공했지만 25세에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갑니다. 1988년에 Being Happy 라고 하는 유명한 작은 책을 써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4개 대륙에서 오백여 TV,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게 됩니다. 다시 그는 Follow Your Heart 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말로 번역 할 때에 "마음 가는 대로 하라" 번역을 했는데, 역시 50여개국어로 출간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 앤드류 매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나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만이 저 멀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도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켜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참으로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는 겁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썩었다고, 더럽다고,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심지어는 천지개벽이라도 해서 세상이 화끈하게 변해지기를 기대해보고 또 그렇게 소원합니다, 이 분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깨끗해지고, 변화 되어야하고 내가 먼저 달라져야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며 또 우선적이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하고 말씀하십니다.

1. 마음의 청결이란?

마음의 청결이 뭡니까? 여러분 어느 정도 청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음의 청결함의 수준만큼, 마음의 청결의 수준만큼 당신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건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번민이 있고, 고민이 있고, 문제가 많고, 또 나약해지고 병드는 일까지도 알고 보면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청결이 문제입니다.

마음의 청결이라는 것이 뭡니까?

헬라 원어는 ‘카타로스’라고 하는 말입니다. 대체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1) 세탁된, 깨끗한 옷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새것은 아닙니다. 더러워졌습니다. 그런데 깨끗하게 씻어서 깨끗하게 만들었을 때 그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더러워진 마음, 찌들어진 마음, 구부러진 마음, 변질된 마음이 다 씻어져서 회개하고 또, 깊이깊이 회개해서 깨끗한 마음이 될 때, 이것을 청결이라고 합니다.

2) 쭉정이나 벼 같은 것을 다 제해버리고 알곡을 남았을 때를 말합니다.

농가에서 추수할 때 그 쭉정이를 다 날리고 나면은 거기에 알곡이, 반질반질한 알곡만 남습니다. 그 알곡만 모아놓은 그것이 청결입니다.

3) 더 중요한 의미는 섞이지 않은, 혼합되지 아니한 물건을 말합니다.

혼합되지 않은 물질을 말하는 겁니다. 가령 우유에다 물을 탔다면 그건 깨끗지 못합니다 순수한 우유가 청결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순결케 하고 또 순결한 다음에 어느 순결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십니다.

2. 마음을 청결케 하기

1)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깨끗케 하심 받기

하나님은 우리 마음도 아시고 깨끗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렘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만은 나 여호아는 심장을 살피느니라“.

▶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깨끗케 하십니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깨끗케 하십니다. 모든 깨끗한 것의 비밀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질 때 그 몸에서 두 가지를 쏟으셨습니다. 물과 피입니다.

▶ 요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렸던 피와 물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두 가지 방법입니다.

먼저 피 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깨끗케 하기 위해 피를 사용했습니다. 피는 하나님이 인간을 깨끗케 하기 위해 사용하신 성화의 방법이었습니다.

모리아산의 숲에 갈린 양이 피 흘렸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삭이 죽었을 것을 그가 대신 죽어 이삭을 죽음에서 건졌습니다.

출애굽 때 어린 양이 피 흘렸습니다. 그들이 피 흘림으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에서 건져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 피를 사람의 구원하는 제도로 발전시켰습니다. 그것이 성막입니다.

성막에 가면 누구나 양이나 소를 잡아 자기 죄를 씻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건, 광야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은 단 하나의 진리를 나타냅니다.

▶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는 인간의 죄를 씯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소나 양을 잡아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소나 양을 잡아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소나 양을 다 잡아도 충분하겠습니까? 소나 양이 없는 나라에서는 무엇을 잡아야 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후에 누구도 다시 피 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를 흘려 한 번에 우리의 죄를 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한 번에 예수님이 죽어 피 흘렸다면 다시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또 다른 피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가 받은 것은 죄를 씻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죄를 씻은 것입니다.

▶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물입니다. 물은 씻는 것입니다. 한번만 씻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씻는 것입니다. 물은 계속적인 성화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4:14,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이 흘리신 물은 계속해서 솟아나는 성화의 샘입니다. 그 물은 성령의 생수입니다.

성경 의 말씀입니다. 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두 가지 성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하는 성화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들어갑니다. 이를 신학은 초기 성화, 위치적 성화, 혹은 칭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성화가 있습니다. 성령의 생수를 통하여 우리를 날마다 깨끗케 하시는 성화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되고 악을 이기고 선을 행하며 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신학은 점진적 성화, 성결, 온전한 삶이라고 부릅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이 갑니다.

▶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사역과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사역입니다. 우리를 위한 사역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 피 흘린 일입니다. 우리안에서의 사역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우리를 날마다 씻는 일입니다. 첫 번째는 끝났지만 두 번째는 계속 됩니다.

그래서 도널드 블로쉬라는 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되었지만 죄인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분의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러분은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정결케 된 것을 믿습니까?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시작된 것을 믿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성령의 생수로 우리 마음을 씻으시고 깨끗케 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한번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말씀과 기도가 그것을 하게 하는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깨끗하여 졌고 앞으로도 계속 깨끗해져야 함을 믿습니까?

2)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기.

▶ 사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 잠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랬습니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고 하였습니다.

▶ 렘 4:14절에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우리 속에 버려야 할 죄악의 쓴 뿌리가 있는데도 그것을 회개하기를 뒤로 미루겠느냐 그 말입니다.

▶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안타까워서 이사야 선지자가 부르짖었습니다.

▶ 그래서 베드로는 외칩니다.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의와 평강과 희락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 양심의 거리끼는 죄를 회개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죄 때문에 고민하고 우는 자의 모습, 하나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 마음상해서 울지 말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한 내 죄를 바라보고 우는 사람, 하나님이 주의 보혈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3) 세속에 물들지 않기

▶ 구약 시대의 성전은 우리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 성전의 한 복판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한 복판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방이 있습니다. 그 거룩한 방을 성경은 “여호아의 등불”이라고 불렀습니다.

잠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우리 마음의 깊은 곳, 거기에 하나님의 빛을 비치는 지성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늘 마음의 깊은 곳을 살핀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깊은 곳을, 영성 가들은 “마음의 성소”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이 마음의 성소가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것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이 성전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입니다. 이들은 성전 입구에 서서 이방인을 통제하고 비록 이스라엘 사람일지라도 부정한 자들은 철저히 성전 출입을 막았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과거에 이방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던 고고학 발굴 품이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곳에 이방인을 데려오는 자는 반드시 죽음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이방인이 들어오면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막을 뿐 아니라 지켰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내부에는 모두 12문이 있었는데 그 문 하나마다 레위인, 제사장이 열 명씩 모두 20명이 지켰습니다. 문이 12문이었기 때문에 결국 예루살렘 성전 전체를 매일 지킨 사람은 레위인, 제사장 240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밤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조를 나눠 교대로 성전을 지켰습니다. 왜 이렇게 했겠습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의 마음에도 이 지성소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빛이 비춰야 하는 여호와의 등불, 그 거룩한 내면의 성소가 여러분에게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의 성소를 지키고 있습니까? 매일 매일, 그 마음의 성소를 지키기 위해 파숫군을 세웁니까? “이방인이 들어오면 반드시 죽으리라“. 다짐하고 삽니까? 오늘 예수님이 원하는 마음이 이 마음입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청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 예수님을 닮은 마음, 우리는 어떻게 그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청결한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세속화되지 않으려 힘씀 :

나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 보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기를 기도했는데 힘썼는데 하나님은 구하지 않은 명예, 지위, 권세, 재물을 주셨습니다. 우선 순위를 똑바로 해야 합니다.

▶ 솔로몬은 말합니다. 잠언서 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성전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전의 몸이 우리 마음이 주님이 계시는 성전인줄 믿습니다.

고전 3:16절에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한다고 했으니 여러분 마음의 성전 안에 더러운 것들, 악한 것들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물위에 배가 떠있을 때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고,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데 배안에 물이 새어 들어오면 그 배는 침몰되고,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에 세속 문화가 들어와서 세상의 악한 사상들이 들어와서 이 교회가 세상에 가라앉아 버리면 소망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은 사람이라도 마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다시 유혹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깨어라 근신하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세속화되지 않도록 순수성과 깨끗함이 세상의 죄악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마음을 성결케 할 때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은혜 베푸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니 우리도 그의 자녀된 자로써 하나님을 닮아 예수님을 닮아 마음이 청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약 1: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내 자신들이 세상적인 죄악의 유혹을 받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고 성결을 지켜 살아가는 것,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라는 그 말입니다.

4) 하나님 앞에서 서는 날까지,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살기

▶ 벧후 3:8절 이하 말씀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랬습니다.

▶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어떤 일하는 사람 되기 원하기 전에 순수한 마음부터 가지라. 깨끗한 양심을 가지라. 청결한 마음을 가지라. 욕심을 버리라. 탐심은 우상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돌아보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경건이고, 정결한 마음 갖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말세에 성도들의 타락상,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에게서 자기로, 하나님보다 돈, 하나님보다 쾌락,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내가 하나님 앞에 세 번씩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로 작정했으면 사자 굴속에 던져 들어갈지라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리라. 그렇게 살았던 다니엘, 주님이 천사를 보내어 지켜주지 않습니까?

▶ 먼저 구할 것은 정결한 마음을 기도해야 됩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이후,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그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합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의 지혜를 알게 하시옵소서. 주의 얼굴을 내게서 돌이키지 마옵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내 마음이 정하게 하소서. 내 마음이 깨끗하게 하소서. 내 마음이 청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심령이 새로워지기 위한 기도를 먼저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 사도 바울은 딤후 2:20절 이하에서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마음 깨끗하고 순수하고 청결한 마음 가진 사람을 주님은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하여 천국은 예비 되었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은?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믿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요 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본다는 것입니까?

왜 오직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까?

▶ 시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청결은 도덕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보면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청결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얼굴을 나타내기에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까? 청결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외형이 아니라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 요14:8 빌립이 예수께 간청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는데, 예수를 보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었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역시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또한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눅 17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 말씀을 성서학자들은 끊임없이 논쟁을 하며 연구하지만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마음속에 있다"것이 옳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어수선하고 험난한 세상과 격리되어진 세상 다른 어떤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의 3절의 가사처럼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영성 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일사각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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