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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8-9)

by 【고동엽】 2022. 3. 20.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8-9)

 

  룻소는 말하기를 '인간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의 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마음에서 나오는 양심의 소리요, 다른 하나는 육체에서 나오는 정욕의 소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①먼저 에덴동산에서 어떤 소리들이 있었습니까?
  ⑴사탄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타락한 천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나서 맨 먼저 무슨 소리를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했습니다.
  창3:1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사단의 소리는 하나님에 대한 권위와 능력을 의심케 하는 질문입니다.
  아담은 사단의 말을 들고서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저와 여러분 곁에 바싹 다가와 의심의 소리를 질러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의심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시는데, 사단의 말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것이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거짓말입니다.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밝아진 것은 신령한 눈이 아니라 범죄의 눈입니다. 오히려 심령의 눈은 더 어두워졌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단의 소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해서 죄를 짓게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허영심에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접근합니다. 우리는 지금 온 세상에 휩쓸고 있는 온갖 많은 소리를 듣고 삽니다. 그런데 이 소리 속에는 사단의 소리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귀는 항상 천국 안테나에 주파수를 맞춰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양육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⑵사람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와는 자신의 욕심에 의하여 사단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인격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사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그를 완전히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먹게 만들었습니다. 6절에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남자는 여자에게 약했나 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와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단은 부부의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리를 막고 하나님의 대화를 단절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죄를 짓고 발견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되었나요?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들의 마음은 죄로 인해 고통이 끝없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10절을 보니까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사단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처럼 당당했어야 될 텐데 풀이 죽어서 겨우 하는 소리가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는 대답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승리자의 소리가 아닙니다. 패배자의 소리입니다. 불안과 절망과 공포에 떠는 소리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소리는 한 마디로 두렵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진실을 보는 것이 두렵고 무섭고 떨리기 때문입니다. /할/
  ⑶하나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범죄한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소리는 '아담아! 어디 있느냐?'고 찾는 음성입니다. 지금 죄를 지은 아담은 고통 중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통 중에 방황하는 인생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어집니다. 벌거벗은 고통 속에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믿/

 

  ②죄를 범한 인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하나님이 인류에게 최초로 하신 질문이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십니다. 창4장에서 범죄한 가인에게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숨어 있는지 몰라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장소를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네가 지금 어떻게 되었느냐? 어느 형편에 있느냐? 믿음 안에 있느냐? 죄악 중에 있느냐?' 이것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똑같은 음성으로 묻고 계십니다. '너희 형편이 어떤가? 건강은 어떤가? 사업은 어떤가? 신앙은 어떤가? 또 지금 너희의 서 있는 곳이 믿음의 자린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가? 아니면 죄악 중에 서 있는가?'를 물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은 직분 자들에게 묻습니다. 목사에게 '너는 맡겨준 그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느냐? 아니면 게으르고 나태함에 빠졌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장로에게 권사에게 집사에게 구역 장에게 교사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리한 눈으로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잘한 자에게는 아낌없이 상급을 주십니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너희 상급이 크니라. 나의 즐거운 잔치 상에 참여함을 받으리라!' 그러나 게으른 자에게는 엄하게 벌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밖에 나가 이를 갈며 슬피 움이 있으리라!' 이 책망은 정말 두려운 책망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 번 저와 우리들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가끔씩 자기의 자리를 확인해 봅니다. 등산가는 정상을 향하여 가는 길이 옳은 길인가를 확인합니다. 사업가는 기업의 장래가 확실한 가를 몇 번이고 확인합니다. 항해사는 배의 정확한 위치를 지키며 바닷물을 힘차게 가르며 달려갑니다. 공부하는 학생들, 자기의 실력과 수준을 늘 확인해 봐야 합니다. /믿/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 것은 그가 낫고 싶어하는 간절한 그의 소원을 예수님이 다 아시면서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내가 너를 낫게 할 수 있는 줄을 믿느냐?'고 믿음을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십니다.
  요6:28이하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주님께 무리들이 묻기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묻자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의 기초입니다. 왜 아담이 실패했습니까? 믿음이 확신이 없고 말씀을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믿지 않으려는 불신 병에 빠졌습니다. 국민이 정부를 못 믿습니다. 국민이 정치인들을 못 믿습니다. 국회의원들 검은 돈 안 먹었다고 양심선언까지 해도 가짜가 많습니다. 진짜 참기름이라고, 순 참기름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도 가짜가 판치니까 복음도 순 복음이라고 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스스로 알길 바라고 스스로 고백하길 바라고 스스로 정직해 주시기를 바라는 물음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했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먹지 말라는 것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거역했습니다.'라고 고백해 주기를 바라서 그런 대답을 기다리며 묻고 계십니다. /믿/아멘!/

 

  ③'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주님의 음성은 어떤 음성인가?
  ⑴범죄한 인간들 깨우치는 음성입니다. 죄는 양심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마비된 양심은 죄가 죄인 줄도 깨닫지 못합니다. 죄는 사람의 영혼을 파멸로 인도합니다.
  맨 먼저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죄 중에 있는 아담의 실체를 깨닫게 해 주시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 앞으로 나오라'는 음성입니다.
  저주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책망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발견하라고 오신 것입니다. 죄를 뉘우치라고, 죄를 고백하라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업이 망하고 자식이 학과 성적이 떨어지면 발을 동동 구르며 통곡합니다만 영혼이 파멸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장 귀한 것은 우리의 영혼임을 알아야합니다. 죄는 우리 영혼을 파멸로 떨어뜨립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는 영혼이 삽니다. /아멘!/
  ⑵고통 속에 있는 인생을 찾으시는 음성입니다. 벌거벗은 수치와 고통 속에 있는 아담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특징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믿/ 인간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아 주시지 않으시면 어찌 감히 인간들이 찾아 나설 수 없습니다. 눅19:10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⑶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음성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하나님의 음성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음성입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은 항상 앞산을 바라보시며 '내 아들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애처롭게 기다리시는 자비의 아버지입니다. /할/
  ▶지금도 히딩크 리더십은 유명합니다. 히딩크는 선수들을 인도하는데 그의 철학이 있습니다. '실수와 실력은 별개다'라는 철학입니다. 실수했다고 해서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와 실력은 별개입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실수 한 사람을 믿어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실력은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번 실수했다고 하면 다 끝난 줄로 압니다.
  여러분, 오늘 이 아담이 실수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회개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시고 다시 시작하라고 반드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변명하고 숨어버렸습니다. 그런고로 실낙원이 된 것입니다.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 폭력화되고 정치화되면서 계속 숨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총은 자비의 발길,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믿/ 하나님은 지금도 죄로 죽어 가는 영혼들을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되 은으로 금으로 하지 않으시고 오직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십니다. /믿/ 사1: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만난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도 그 길을 불의한 자도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서 나아오라'고 청하십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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