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버림받은 인간의 실존! (롬 1:24-25)
본문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간의 실존을 제시해 줍니다. 여러분! 버림받은 자의 운명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24절의 첫 문장인 '그러므로'는 앞 절과 접속사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이기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만드셨습니다. /아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마음에 허망한 생각으로 가득 찼으며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뽐내는 인생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썩어져 버리는 형상의 우상에 빠져있는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란 이 죄에 빠진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 장에선 버렸다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①버렸다는 말은 '포기해 버렸다, 단념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본문 ⑴24절의 버려 둠은 '종교적인 버림'을 말하고, ⑵26절에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는 '도덕적인 포기'를 의미하며, ⑶28절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는 '인간에 대한 포기'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에는 수많은 이방 신들이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린도에 있는 큰 신전에는 창기와 미동들(남자 창기)이 천 명 이상 있었다고 합니다. 종교라는 미명 하에, 종교의식을 행한다는 구실 하에 저들은 육신의 쾌락을 즐기고 있었고, 음란한 일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기의 육신을 서로 간에 욕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그러한 종교적인 타락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할/
②하나님의 심판은 버림받는 일로 나타납니다. 심판에는 몇 가지 다른 면이 있습니다.
⑴심판의 모양이 다릅니다. 죄를 지었을 경우, 당장 벼락이 내린다든지, 병에 걸린다든지, 사업이 무너진다든지 등등 여러 가지 형태의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심판의 형태는 여러 가지 입니다. 잘 안 되는 장사가 잘되는 것이 심판일 수도 있으며, 병들었던 사람이 건강해 지는 것도 심판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히려 잘 되는 그것으로 인하여 망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죄인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형통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할/
자기 마음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렸습니다. 버림받은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이제는 내 맘 대로다'라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심판입니다.
가령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때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극구 말립니다. 때리기도 하고 달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끝내 말을 듣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 네 맘대로 해라' 포기해 버립니다. 이때 아이는 '이제 내 맘 대로다. 자유다' 하며 뛰쳐나갑니다.
여러분! 이것이 자유입니까? 아닙니다. 그 순간부터 심판 받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그 때부터 방종과 탈선과 죄 속에 묻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믿/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봅시다.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났습니다. 가정을 떠났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극구 만류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모든 것을 싸들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멀리멀리 떠나가 버렸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것에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간섭이 사라지자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허랑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수중에 있는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서 돼지를 쳐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배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돼지가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로 배를 채워야 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돼지가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로 배를 채웠으니까 돼지보다 못한 신세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돼지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
다행스럽게도 이 아들은 뉘우쳤습니다. 회개했습니다.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일 이 아들이 십 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고 50년이 넘도록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끝내 돼지 옆에서 죽었다면 어떻게 되고 말았겠습니까?
버림받은 아들, 내버려진 아들, 포기된 아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늦기 전에 즉시 뒤돌아 서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심판의 형태는 여러 가지 입니다. 실패만이 심판이 아니라 때로는 성공도 심판이 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⑵심판의 시간입니다. 바로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습니다. 심판의 시간이 내가 생각한 시간이 아니라 해서 심판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가는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한 그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복 받지 못했다고 해도 안 되고, 또 심판이 없다고 해도 안 됩니다.
반드시 축복과 심판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것뿐입니다. /할/
⑶'심판이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이웃으로부터 주어지기도 하고, 혹은 원수를 통해서도 올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주어지기도 합니다. 축복도,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환경을 통하여, 조건을 통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아멘!/
③그런데 심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⑴종교적인 심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일생을 다 내어놓는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 뒤에 선악간에 심판을 말합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⑵현재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했듯이 하나님께서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애굽의 바로 왕은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강퍅하고 악합니다. 그러다가 홍해에 빠져 물귀신이 됩니다. 사울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마음이 강퍅해 짐으로 회개할 줄을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를 맞거나 고통을 당하면 착해지는데, 어떤 사람은 매 맞고 환난을 당할수록 점점 더 악해집니다.
▶악해지는 사람,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 이미 끝난 사람입니다. 가롯 유다도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에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하라'고 하자, 가롯 유다는 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나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자기 스승을 팔았습니다. 그 결과 잘 먹고 잘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재판소에 찔림을 받아 목을 매는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④하나님이 내버려두었더니 인간들이 어떻게 삽니까?
⑴정욕대로 삽니다. 정욕이란 히브리어 뜻을 보면. '이성의 욕구는 더럽히면서 육체의 즐거움을 찾는 마음'이랍니다.
성경 적으로 볼 때는 금지된 즐거움을 찾는 것입니다. 우상을 찾아갑니다. 쾌락을 쫓아갑니다. 음란에 빠져 들어갑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속에서 파묻힙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⑵'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합니다.
고전3: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데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신다고 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살전4:3-4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세우신 가정의 원리를 잘 준수할 것을 가르칩니다. 가정원리는 일부일처제입니다. /할/
⑤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버리신 이유가 무엇인가?(25)
인간의 죄로 인하여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져 신령한 하나님의 세계가 완전히 가리어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보다는 보이는 대상인 피조물에 신앙하게끔 타락하였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말은 자신의 신앙이 뒤집혀졌다는 말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대상이 바뀌어 진 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그 대상이 인간의 영광이든지, 자연이든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 일지라도 모두 우상숭배에 속하는 것입니다.
23절에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여기 바뀌었다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다른 것과 바뀌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피조물로 바꿔 치기를 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아멘입니까?/
다니엘서를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삼총사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우상 앞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그들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단3:16-18절에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결사각오로 대항했습니다. 절개 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신앙을 지키라는 메시지입니다.
▶1930년대에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이 강제적으로 천황을 신으로 섬기라고 강조하자 강단에서 피맺힌 절규를 했습니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일본 신사에게 절하지 못합니다.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이 목숨까지도 주님께 드립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정절을 깨뜨릴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합니다. 감옥에 끌려가 6년 동안 고생하며 갖가지 잔인한 고문을 당하던 중에 장렬한 순교를 했습니다.
▶하루는 신앙이 좋은 집사 님과 그의 친구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집사 님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은 언제 보아도 가슴이 떨려요!' 이 말에 친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그저 무미건조한 하늘일 뿐, 그렇게 가슴 떨릴 만큼 감동스러운 하늘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저 친구가 그럴 수가 있을까? 예수 믿으면 무언가 다르다는데 맞구나!'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부터 친구 따라 교회에 가게 되었답니다. /할/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하늘을 보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땅을 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참다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돈에 있습니까? 아니면 명예, 지위, 권력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을 기뻐 해보십시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시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이 행복을 안 사도 바울은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바울의 고백이 곧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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