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족보! (마 1:2-15)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보겠다고 생각하고 구약성경을 폈더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씌어져 있더랍니다. 그래서 이것은 엄청난 거짓말이다, 구약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신약을 폈더니 거기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낳고, 낳고' 하기에 덮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 마1장의 족보를 읽으니까 얼마나 귀한 족보인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읽으려고 폈다가 낳고, 낳고 때문에 덮어 버렸다는 족보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족보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상한 여자들이 몇 명 끼어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의 여성의 파워가 날로 높아갑니다만 그 당시 문화나 사회 여건으로 볼 때, 여자란 하나의 물건으로 간주했고, 인구의 숫자로도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법률상으로 그 어떤 보호 장치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아닌 마리아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나 등장한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규례와 상식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현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보다도 이 여자들이 어떤 여자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더 더욱 놀라게 됩니다.
▶3절에 다말은 창38장을 보면 유다의 며느리요 엘의 아내이었는데 남편이 죽고 시동생인 셀라와의 계대결혼을 허락하지 아니하자 과부가 된 후 자식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겨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를 속여서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 쌍둥이를 낳은 불륜의 여인입니다.
▶5절의 라합은 여리고 성의 기생입니다. 기생이지만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보호해준 여인입니다. 또한 ▶5절에 나오는 '룻'은 이방인이요, 모압 여인입니다. 모합 족속의 유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이 불탈 때, 탈출하여 굴속에서 거처하게 되었을 때, 그의 두 딸이 자기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취한 틈에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큰딸이 낳은 자식이 모압이고, 둘째 딸이 낳은 자식이 암몬이라고 창19:30-38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족속은 유대인이 가장 증오하는 이방족속입니다. 저들은 음란하고 또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족속입니다. 베들레험에 흉년이 들어 나오미가 모압 땅에 가서 살면서 얻은 둘째 며느리 룻이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에 와서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창19/룻4).
▶6절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과 간음한 여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가문을 귀하게 봅니다. 유대인들도 자기 혈통을 귀하게 여깁니다. 당시 제사장이 되려면 그 족보가 아론의 후손임을 분명해야 했습니다. 유대인의 족보는 산헤드린 공회에 보존됩니다. 유대인들은 아침 기도 시간에 이방인으로 나지 않고 유대인으로 난 것을 감사하리만큼 혈통을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여인들이 끼어있습니다. 그러면 마태는 구약을 상세하게 공부한 능통한 자인데 이 사실을 모르고 기술했을까요? 구약 성경에 훌륭한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왜 이런 여인들을 족보에 옮겼을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족속, 모든 사람, 모든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히 이 족보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열심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당신의 자녀로 얻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당시 여인들은 아무런 법률적인 권리가 없었습니다. 인격이라기보다 남자에게 속한 부속품으로 간주되어졌습니다. 더더구나 여기 등장하는 여인들은 마리아를 제외하고 나면 순결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상한 경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습니다.
마태가 이 사실을 모르고 이런 여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했을까요? 구약에 빛나는 신앙과 아름다운 성품과 인격을 가졌던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무지해서 무식해서 이 흠이 많은 여인들, 이상한 경력을 가진 여인들을 족보에 끼어 넣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흠 많은 여인들이 없었으면 구원 족보는 단절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 가문이 예수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을 읽을 때에 아브라함의 가문이 얼마나 훌륭한가? 여기에 시선을 집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문도 우리의 가문과 똑같은 가문이라는 것입니다. 약점 많고 흠 많은 가문이었지만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하나님이 선택하시면 복의 근원 가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선포하는 것이요 세계 모든 열방에게 복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 족보를 통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수 안에서는 선민과 죄인의 장벽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의 죄와 허물 약점과 실수가 예수 안에선 모두 허물어지고 용서받는다는 복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아니하십니다. 과거를 모두 십자가 밑에 묻어버리세요.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 나라 족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마태는 지금 이 사실을 확실히 해 놓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네 명의 여인들은 신분적으로 출생 적으로 약점이 많은 여인들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했습니다.
▶다말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구원의 씨가 유다 지파를 통해 흘러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아버지 유다가 이 약속을 잊어버리고 있을 때 다말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자기 몸을 더럽히면서까지 이 약속의 대를 잇기를 원했습니다.
▶라합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영접한 것은 하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타락한 시대에서 하나님의 구원공동체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편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 줄 아래 들어가 구원받았습니다.
▶룻은 그의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입니다. 이것 포기하라면 죽을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그토록 처절한 회개를 통해 약속의 아들 솔로몬을 얻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네 여자의 과거에 허물과 실수가 많았던 여자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 변화 받고 새로워진 여인들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죄악과 허물과 실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고 새로워진다는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⑴족보의 진실성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서전을 쓸 때, 오점을 감추고 자랑만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쓸데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참 모습은 역시 허물과 죄로 가득 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 용서와 씻음을 받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⑵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졌습니다.
⑶남녀의 차별이 무너졌으며,
⑷선인과 죄인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기생, 창녀, 이방인할 것 없이 어떠한 죄인이라도 메시아를 통해 구원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⑸인류의 죄가 아무리 깊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유대인도, 이방인도, 죄인도 다 구원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에 '낳고, 낳고' 낳았다는 말이 40번쯤 나옵니다. 구약의 족보는 언제나 '죽고, 죽고' 또 죽었다는 족보입니다. 예수 이전엔 인간 모두는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낳고, 낳고' 생명으로 끝이 납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입니까? 낳고 낳는 일입니다. 생명을 낳는 일입니다. 영적인 자녀를 낳는 일입니다.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이요, 이것이 복음이 우리 가운데 전해지는 목적이요, 온 세상에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인생들의 마지막 비전이요 마지막 인생의 꿈이요 마지막 삶의 비전이라는 것을 마태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멘!/
낳고 낳다가 마지막에 누구를 낳는 것으로 끝이 납니까?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할/
이 한 말씀 속에 마태복음 족보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모순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낳고 낳는 얘기를 써 내려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결론도 이 흐름대로 '요셉이 예수를 나으니라' 이렇게 기록되어야 정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결론은 참으로 이상하게 끝이 납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엄밀하게 얘기하면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 남자들의 족보와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들 족보가 예수그리스도를 낳은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마지막에 와서 주어 동사 토씨 하나를 놓쳐버리고 나면 마태복음의 모든 보물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지금까지는 주어가 전부 남자들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낳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16절에서 주어가 달라집니다. 태어나는 예수가 주어로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낳았다고도 아닙니다. 동사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모두 '낳고, 낳고, 낳고' 나다가 마지막으로 '나시니라'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가 나시니라' 주어가 달라지고 동사가 달라집니다. 여기에 기가 막힌 복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은 그 누구도 예수의 조상이 아닙니다. 이 족보는 예수의 출생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을 했기 때문에 이 가문으로 입양이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정확한 기록입니까?
예수님은 유대 땅에 태어나셨지만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온 인류의 메시아가 되십니다. /아멘!/ 예수는 아버지가 있어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계시다면 하나님 한 분 아버지가 계실 뿐입니다. 남자의 이름 없이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믿/
▶이 족보는 14대씩 셋으로 구분됩니다. 14는 신성수인 7의 배수로 신성 수이고 3은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①'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했던 시대입니다.
②'다윗부터 바벨론에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울 때입니다. 외세침략, 패배, 포로, 멸망의 시대입니다.
③'바벨론에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에 개입한 출현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인류의 메시아로써 참된 왕으로서 전 인류의 구원과 참된 소망을 우리에게 보여 준 사건입니다. /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기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제 이스라엘로서의 하나님의 왕국대신에 새로운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옛 왕국은 지나갔고 새 왕국이 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다윗이라는 왕 대신에 새로운 왕이 통치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사라졌고 예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왔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는 2천년이라는 시간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갑자기 졸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위한 역사 뒤에는 하나님의 오랜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하나님의 오랜 계획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계획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중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한 아들을 낳아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고(창13:15/17:7/갈3:16), 다윗에게는 한 아들을 세워 나라를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7:12). 하나님께서는 이런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오랜 역사동안 차근차근 이루어 주신 아주 세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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