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고후 2:15-17)
고린도교회의 설립자인 바울에게 근심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본질이 고린도교회에서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거짓선지자들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바울은 너무도 달라진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팠습니다. 복음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 흘리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갑니다. 그 편지를 디도를 통해서 전달합니다.
바울은 디도를 통해 전달한 눈물의 편지가 고린도교회에 어떠한 반응 변화를 보여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디도를 드로아에서 서로 만날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디도와 약속한 시간보다 수일 먼저 드로아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디도를 만날 수 가 없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는데도 그는 복음을 전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12절과 13절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가진 교회에 대한 열정과 복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12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사람 위에 세워진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어떤 조직위에 세워진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예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변화가 되어야 그 분의 향기를 발할 수가 있습니다.
①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변해야 할 것은 의식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생각하는 것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깨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깨어있는가를 알려면 불 신앙 자들과 대화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불 신앙 자들과 대화해 보면 생각하는 것, 생의 목적 그리고 추구하는 지향점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보면 우리의 생각이 아주 월등하게 성숙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불 신앙 자들의 관심은 지극히 이생적인 것뿐입니다. 현재적입니다. 경제와 잘사는 것과 즐기는 것 그 이상은 없습니다. 돈은 있는데 사용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속에 철학이 없습니다. 뜻이 없습니다. 모두 즐기는 이야기뿐입니다. 마시고 취하고 즐기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참 유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영적 안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세계관이 다릅니다. 인생관도 다릅니다. 삶의 목적이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종말관이 있습니다.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천국이 있고 장래가 있고 하늘의 뜻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성숙한 인생입니까? /할/ 이것이 모두 우리가 예수를 알고 난 후에 주어진 은혜들입니다. /아멘!/
▶이 땅에 와 있던 선교사 언더우드 부인과 민비가 참 가까이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자주 만나 대화를 했습니다. 하루는 대화도중 민비가 언더우드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언더우드는 '미국은 땅이 넓어서 4계절이 언제나 공존하는 나라'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민비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때 언더우드는 민비에게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개한 것입니다.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추운 겨울도 더운 여름도 없고 죽거나 아프거나 병들거나 침략을 받는 일이 없고 눈물과 탄식이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 말을 듣고 민비는 '그런 나라가 다 있느냐, 그렇다면 나도 그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민비가 일주일 후에 시해 당해서 죽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20년만 더 일찍 들어왔더라면 일본침략도 없었을 것이고 억눌려 살아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는 더 발전된 문명국가가 되었을 것이고 더 세련된 민족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예수를 알고 난 후에 받은 은혜입니다. /할/
②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명의식'이 필요합니다.
배운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듯이, 가진 사람에게도 사명이 있듯이, 예수를 알고 눈을 뜨고 보니까 한 가지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내가 눈을 뜨고 보니까 아직도 그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을 눈뜨게 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즉 사명의식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를 알게 해 주어서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에게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아멘!/
⑴바울은 그 삶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에 예수에 대한 향기를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향기는 본체를 알리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서 향수냄새를 나타내게 되면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는 시간에 향수를 만든 회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그 회사제품은 향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향의 역할입니다. /할/ 나무 중에 라일락의 향이 가장 좋습니다. 지나가다가 냄새가 풍기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여기 어디에 라일락 나무가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라일락의 향이 그 나무를 선전하고 알리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향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생각, 모습에서 예수의 향기가 풍겨지고 묻어날 때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예수를 생각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선전하고 보여주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의 향기가 나를 통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향기가 마침내 세상을 정화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⑵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살면서 이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사명은 아주 소박한 사명입니다. 이런 사명을 이루며 살려면 더 이상 현실과 야합하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시대를 예언자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조용히 앉아서 도나 닦고 수양이나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나만 죄짓지 않고 살면 된다,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입니다. 기독교인의 사명은 먼저 나 자신을 구원시켜야 합니다. 구원도 분명하고 확신 있는 구원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예언자적인 삶을 살게 되는 동기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⑶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현실과 야합하는데 이골 나 있습니다.
매사 구하는 내용이 평안이고 복입니다. 꿈이 너무 이생 적입니다. 성공위주고 형통위주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고 화려해지면 기도응답 받았다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신앙 인들이나 오늘의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⑷그리스도인은 정신, 철학, 삶 중심,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기독교는 영적인 삶인데,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겨우 목적이 이생, 현실, 잘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이 무슨 신앙 인입니까?
이제부터 우리는 사명자적인 의식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시대에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너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멘입니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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