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그릇입니다! (렘 18:1-6)
본문은 토기장이 비유에 대한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을 방문케 하고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는 제작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본 것은 단지 토기장이가 녹로(물레바퀴)를 돌리며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어버리고 마는 토기장이의 절대주권에 대한 광경을 본 것입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세계 모든 민족과 국가에 대하여 그의 뜻대로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실 수 있는 절대주권자 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을 바로 알고 살아야 겸손해 집니다.
1. 사람은 진흙으로 지음 받은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창2:7절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성경은 사람을 가리켜 진흙으로 만들어지는 질그릇이라고 묘사합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사64:8). "사람과 짐승이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 가니라"(전3:20).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이 그릇은 우리니"(롬9:21,24).
‘이 그릇은 우리니’ 사람은 진흙이요 질그릇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흙을 밟으며 흙과 더불어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길가에 버려진 진흙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진흙입니다(6). 하나님은 진흙인 우리들을 손안에 담으시고 우리들을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들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 하나 하나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가시는 토기장이이십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시139:13).
우리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들로 지어져 가는 진흙 덩이들입니다.
모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으로 지어져 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들로 지어져 갔습니다. 사람은 진흙이요 질그릇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들로 지어져 가는 질그릇들입니다.
2. 사람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요 다시 만들어지는 질그릇입니다(4).
오늘 본분의 강조 점은 질그릇이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져 가다가 그만 깨어지고 마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그릇은 인생의 초기에 깨어지고 어떤 그릇은 인생의 중반기에 깨어지고 어떤 그릇은 인생의 말기에 깨어집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라는 과정에서 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인격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중도에 부서지고 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일성수도 포기하고 예배생활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덕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다윗의 경우는 성적 순결히 깨어졌습니다.
▶건강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에바브로디도의 경우는 불치의 병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깨어질 수밖에 없는 지극히 연약한 질그릇들입니다. 인격도, 신앙도, 도덕도, 건강도 쉽게 깨어지는 질그릇 같은 존재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깨어지고 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한번 실수했다고 해서 아주 넘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한번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해서 아주 쓰러지고 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질그릇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비록 깨어지고 부서질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끝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붙잡아 주십니다.
▶다시 아름답고 쓸모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깨어진 질그릇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하나님께 나와서 회복의 은총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면 마침내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3. 우리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고후4: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성도는 고귀한 보배를 담은 특별한 질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 보배는 사람은 지극히 연약한 질그릇이지만 가장 귀한 보배인 예수님의 생명을 담은 질그릇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체험할 때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넘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할/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속에서 꿈틀거릴 때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자기 안에 잇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세력도 바울을 넘어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죽음의 세력도 바울을 넘어뜨릴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담은 보배입니다. 그 생명이 있는 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버린바 되지 않고 망하지 않는 보배로운 그릇임을 감사하며 담대하게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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