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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시대에 부름 받은 요나입니다! (욘 1:1-3)

by 【고동엽】 2022. 3. 12.

우리는 이 시대에 부름 받은 요나입니다! (욘 1:1-3)

 

요나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사명을 받지만 그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하는 장면이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한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갔다가 큰 실패를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길을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니느웨입니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다시스입니까?
▶니느웨는 순종의 길이요, 다시스는 불순종의 길입니다. 니느웨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있지만, 다시스는 하나님은 없고 풍랑과 물고기 뱃속이 기다리는 넓은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가는 길인지, 나 때문에 가는 길인지 잘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 시대를 위하여 부름 받은 요나입니다. ▶요나가 부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는 불순종했는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였습니다(1).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큰복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어도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들을 귀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습니다(막4:23). 요나는 말씀을 들은 것 같지만, 실은 들을 귀가 없어 못들은 사람입니다. 나중에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혼난 후에 들을 귀가 열려 제대로 듣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니느웨로 갔습니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입니다(왕하14:25). 요나가 아밋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실제적인 인물이었다는 말입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소명입니다. 소명의식이 확고할수록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그 말씀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2. 왜 부르십니까? 니느웨로 보내기 위함입니다(2).

 

쉽게 말하면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전도하라고 하십니다. 막16: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니느웨는 앗수르의 큰 성입니다. 우리들도 요나처럼 큰 성인 서울로 파송 받았습니다.
"너는 일어나" 말씀을 들었으면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주신 것은 듣고 일어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행10: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주님의 말씀은 바로 일어나 전도지로 향하라고 명하십니다. 이렇게 사명을 주어 전도자로 보내시는 이유는 타락한 니느웨성을 회개시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이 시대에 불러주신 것은 구원받아야 할 서울시민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3. 불순종한 요나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3).

 

'요나'의 모습이 '요,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니느웨와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여기서부터 요나의 인생은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라는 말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순종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만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인 성전을 멀리했다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멀어지면, 교회와 멀어지면 자신에게 지워지는 짐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착각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코가 꿰인 사람들입니다.
시139:7-10절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렇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3절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목사님, 말씀은 구구절절이 다 옳습니다. 그러나 난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할까요? '요나(요, 나)'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요놈의 나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일축한 것입니다.
니느웨는 이방인의 도성이요 요나가 싫어하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특히 니느웨는 그 당시 최강국인 앗수로의 수도입니다. 앗수로는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입니다. 순전히 요나는 자신이 싫다고 안 간 것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가라고 하면 원수의 나라라도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명을 피하려고 하지말고, '요나(요, 나) 때문에 '그러나'라고 이유를 달지 말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 때는 요나를 니느웨로 보냈지만, 지금은 '요, 나'를 이곳(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왜? 영혼을 살리라고 보낸 것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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