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후 5:14-17)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은 변화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 '변하다'는 말의 히브리어적인 뜻은 '빙그르 돌다, 뒤집어 엎다, 돌아온다' 라는 뜻입니다.
변한다는 것을 180도 빙그르 돌아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썩고 병들고 타락한 내 삶을 완전히 뒤집어엎어 버리는 영적 혁명이 '하파크'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예수를 아는 것만으로는 변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변하지 못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변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을 내 심령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내가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합니다. /할/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02장 찬송을 작곡한 복음성가 가수 세어(cleverly Shea)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진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나의 삶을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구원받고 변화되고 새롭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런 신앙을 부활신앙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이 신앙을 붙들자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 제자들은 다시 후퇴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전도하는데 얼마나 확신 있게 전하는지 엊그제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너무나 당당해졌습니다. 엊그제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나가서 전도하는데 3천명이나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제자들의 모습에 너무나 자신감에 차 있었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전도의 삶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 제자들은 비로소 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이 부활신앙이 신앙의 분기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본문이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이 부활신앙의 삶을 살라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①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14).
무슨 사랑인가 하면 예수님의 끔찍한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희생을 감수하시고 가진 것 다 내어 놓으시기 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입은 것입니다.
이 사랑을 '칼 바르트'는 '극난한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넘치는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값을 알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이런 사랑은 아무나 입습니까? 더구나 십자가에서 죽으면서까지 대속하고 구속하는 사랑은 아무나 입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살되 책임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이 사랑을 비로소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부활 후 제자들의 모습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할/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②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러니까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했고 롬 6:8절에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고 또 예수와 함께 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서 죽으실 때 예수님만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도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옛날 나, 옛사람인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나도 예수로 다시 태어났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가 내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인 것입니다. /할/
그래서 주님은 '내가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신분, 처지, 가치관이 모두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책임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믿/
③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17).
본문은 그리스도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5절에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오직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믿/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땅에서 우리들의 직업이 변한다거나, 지위가 변한다거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삶의 목적이 변하는데 그 목적이 세상 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육의 것에서 영의 것으로, 인간의 것에서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삶을 고전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멘!/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후6: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⑴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이 '의'이며, 그것을 어기는 것이 '불법'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통해서 의롭게 여김을 받은 자들이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래서 마7:13절에 예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⑵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빛 된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의 인도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악한 영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사람들과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⑶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벨리알은 사탄이나 적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⑷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어찌 우상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가증스러움과 하나님의 노여움만 더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네가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변해야 가족도, 친척도. 세상도 변합니다.
④이제 우리는 화목의 사신으로 살아야 합니다(18).
나비는 꽃을 찾아다닙니다. 꽃을 찾아 꿀만 따러 다니는 것이 아니고 화목을 이루며 돌아다닙니다. 나비가 꽃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며 서로 교정을 시켜줍니다. 그래서 꽃들이 마지막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열매는 화목을 이룰 때 열리는 결실입니다. 모든 꽃들이 열매를 맺는 것은 나비와 벌들이 돌아다니며 화목을 이루는 역할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식물들은 사람들이 일일이 이 역할을 해 주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냥 놔두면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이 열매를 맺는 일에 나비나 벌이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그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이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일이고 화목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세상을 살면서 이 화목하게 하는 삶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웃과 이웃을 화목하게 하고 이웃과 그리스도인을 화목하게 하고 불화와 갈등이 있는 곳에 조화와 화평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화평이 이루어지고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매 맺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화평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평화의 사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나비와 벌을 만드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을 두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이 평화와 화목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평화와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질책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평화를 이루고 화평을 이루는 사명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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