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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5:16-18/22-23)

by 【고동엽】 2022. 3. 18.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5:16-18/22-23)

 

  이 땅에 모든 자연은 자연법칙에 매여 있습니다. 식물의 씨앗은 물이 있고 공기가 있고 빛이 있으면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무생물이라고 하는 돌도 인력의 법칙에 매여 있습니다. 생존 본능, 생식 본능이라고 하는 본능에 매여 있습니다.
  하늘 높이 치솟는 독수리가 있습니다. 그 눈은 먹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암컷은 수컷을 찾고 수컷 또한 암컷을 찾는 것이 생식의 본능입니다. 사람은 이성에 매여 있습니다. 사람이기에 먹을 것 안 먹을 것, 할 일과 안 할 일,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곳을 판단해야 합니다. 판단에 따라 긍지를 느끼기도 하고 가책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듯 인간은 이성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 주도적, 이성 주도적, 성령 주도적 이렇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에 매인 사람들입니다. 성령과 말씀과 사랑과 사명에 매인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롬8:9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사도 바울은 고후3:17절에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령을 따라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삶이 성령을 따르는 삶입니까?

 

  ①성령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사람의 삶에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양심에 기준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 사람은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양심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도덕에 기준을 두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정의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불의를 행치 않습니다 불의를 보면 고발을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가만히 있어도 그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생간의 기준을 정의에 두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런 것에만 기준을 두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②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신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기준을 두고, 인도를 받고, 순종해 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후에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때 성령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곳은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을 인도했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그들은 따라가면 됩니다. 구름 기둥이 서면 서고, 가면 가고, 멈추면 움직일 때까지 멈추어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일입니다.
  성령은 앞으로 가라 하시는데 뒤로 가는 사람들은 내 뜻대로 내 소욕대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공존하며 이 두 소욕으로 인해 언제나 갈등이 상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두 소욕은 언제나 서로 거스릅니다. 우리의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③성령의 힘을 받아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오늘은 풍요의 시대입니다. 그 어느 시대에 비해서도 오늘은 풍요롭습니다. 발전도 눈부십니다. 집도 소유했고, 승용차도 소유했고, 문화 혜택도 받을 만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흡족하지가 않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왠지 가슴이 텅 빈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게 우리의 실력입니다. 그 이상은 안 되니까 사람들은 고민도 하고, 술도 마시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힘을 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 힘이 내게 임하면 나의 능력을 초월합니다. 나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나의 무능이 보완됩니다. 성령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일을 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할/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힘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힘을 입어 그 힘으로 살고, 그 힘으로 일하고, 그 힘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그리스도인이고, 그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믿/

 

  ④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무당은 귀신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귀신이 시키는 대로, 그가 주는 힘으로 일을 하고, 점을 치고 합니다. 주정뱅이는 술의 지배를 받습니다. 술이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힘을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에게 이끌려 살고, 조종을 받으며 살고, 그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그리스도인이요, 이런 사람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아멘!/

 

  ⑤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좇아 행하면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됩니다. 여기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패배, 속박과 저주, 영적 무기력을 의미합니다. 율법에는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성령은 율법 아래서 자유케 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천로역정에서 유명한 '기독도'가 '해석자'의 집에 도착, 아주 큰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때 하녀가 큰 빗자루를 가지고 들어와 방을 쓸기 시작합니다. 계속 쓰니까 먼지가 자욱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계속 씁니다. 이 때 한 사람이 물을 뿌리니까 먼지가 가라앉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빗자루는 율법, 윤리를 의미합니다. 먼지는 죄악이고요. 빗자루는 먼지를 일으킬 뿐 깨끗케 하지 못합니다. 물은 복음, 은혜를 의미합니다.
  '올바르게 살라! 착한 일 해라' 이런 윤리는 우리의 마음에 먼지를 일으킬 뿐 우리를 변화시킬 능력은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케 할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했습니다. /할/

 

  ⑥성령의 열매는 세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⑴하나님 앞에 '사랑, 희락, 화평'이요, ⑵이웃에게는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이며, ⑶자신에게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19-21절에 나오는 육체의 열매도 세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⑴감각적인 죄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이며, ⑵미신적인 죄는 '우상숭배, 술수'이며, ⑶대인관계 적인 죄는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리,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그리고 어떤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까? 복되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을 좇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정과 욕심과 함께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할/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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