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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의 위력! (행 12:1-5)

by 【고동엽】 2022. 3. 15.

중보기도의 위력! (행 12:1-5)

  

  사람이 무엇인가 누구를 돕고 힘이 되어주고 지팡이가 되어주는 삶을 살면 힘이 솟습니다. 용기가 나옵니다. 보람의 샘이 흐릅니다. 삶이 재미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진정 행복함과 기쁨과 즐거움의 삶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데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이 배를 타고 놀러 갔습니다. 가다가 파도가 거세지면서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할머니 한분이 그만 물에 빠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그 때 한 할아버지가 뛰어내려 그 할머니를 구해냈습니다. 그때 모두 용기 있는 할아버지 모습에 감동받아 박수를 쳤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행동은 박수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배에 오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내 등을 떼밀었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에는 비록 누군가 떼밀어서 타의에 의해서 물에 빠진 한사람의 생명을 구해냈어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법입니다. 그것이 함께 하는 삶이고 즐거운 삶이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건강한 삶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삶은 이렇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기에 신앙이 성숙해서 영적으로 기도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면 그 삶이 가장 성숙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삶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을 중보의 삶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를 위해서 진정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기도해 주는 것을 중보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중보의 삶은 내가 누군가를 돕고 지팡이가 되어주고 함께 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면 중보의 기도는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눈물로 나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1. 중보의 삶은 ‘가장 성숙한 삶, 성숙한 신앙, 성숙한 성도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줌으로 그가 힘이 되고 용기가 주어지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삶이 얼마나 품위 있고 폼 나는 삶입니까? 그래서 신앙 중에서도 가장 성숙한 신앙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중보의 신앙입니다. 그 삶이 중보의 삶입니다. 세상에는 뭔가 도움이 요청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도움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힘이 되어주고 안내해주고 함께 하여 소망을 주는 삶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중보자를 찾으십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백성들이 너무 많이 타락해서 하나님이 염려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탄식하십니다. “누가 이 백성에게 나아가 저들을 깨닫게 할 것인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가 자신 있게 나서서 응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결국 이사야는 목숨을 내놓고 세상에 나아가 회개를 외칩니다.

  요나서를 보면 니느웨성의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성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요나를 불러 “니느웨성에 가서 회개를 촉구해 보라, 가서 한 번 더 외쳐 회개를 촉구해 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회피했습니다. 도망갔습니다. 멀리 바닷가로 도망가서 큰 배 밑창으로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요나의 행동이 괘씸했습니다.

  지금 니느웨성에 사는 20만 명의 생명이 심판받아 멸망당할 위기에 처해있는데 가기 싫다고 도망가 숨어버렸습니다. 그 행위가 아주 괘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끝까지 그를 추적해서 배 밑창에 숨어 잠자는 요나를 끄집어내 바다에 던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생 끝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느니라.”

  그랬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의외로 순순히 회개했습니다.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20만 니느웨 백성들이 멸망 직전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중보의 기도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 중보자를 찾고 계십니다. 이것이 협동의 삶이고 중보의 삶이고 함께 하는 삶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매일 모이고 기도하고 돕고 나누고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모여서 믿음을 성장시키고 교제를 넓히고 예수의 사랑을 나누고 신앙을 굳게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모두 즐거웠고 행복해했고 감사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중보의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하려면 초대교회의 모습을 예로 들게 됩니다.

 

3. 중보기도는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중보의 삶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중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이고 복입니다. 예수님도 두세 사람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면 이루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면 따뜻하다고 했습니다. 삼 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복입니다. 또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이 중보의 삶에는 이런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행12장을 보면 헤롯이 야고보를 죽입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내친김에 베드로도 죽이려고 구속해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날 예루살렘 교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도 야고보가 순교를 했는데 베드로까지 순교하면 복음전파에 차질이 빚어집니다. 그것은 너무나 큰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성도들이 그 밤에 다락방에 모여 아주 뜨겁게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 그날 그 다락방의 기도가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모두 생사를 걸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밤에 옥중에서 기적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그 밤에 천사를 동원해서 감옥 문을 열어 베드로를 무사히 탈출시키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와 다락방에 와 보니까 모두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밤에 기도하던 제자들이나 베드로나 얼마나 뜨겁게 그 감격을 서로 나누었겠습니까. 그것이 중보의 기도에 나타나는 기적이고 은혜이고 복입니다. 중보의 삶, 중보의 기도에는 이런 힘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보의 기도에는 이런 기적을 동반합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기적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할 때에는 응답이 주어지는 것 뿐 아니고 반드시 이런 기적이 수반됩니다.   

  마8장을 보면 한 백부장이 예수께 와서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내 종이 중풍 병으로 누워있으니 고쳐주십시오. 당신이 직접 가실 것도 없이 말씀만 하셔도 내 종이 고침 받을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이런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 종이 병들었으면 내 버리면 그만인데 그 종이 고침받기 위해서 주인 백부장이, 백부장이면 부하가 백 명이나 되는 군 지휘관을 말하는데 그 주인이 예수께 직접 찾아와 종의 건강을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내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나이다, 고쳐주십시오. 고생하면서 가실 것도 없습니다, 그냥 말씀만 하셔도 고쳐질 줄 믿습니다.”

  그 말에 예수님이 감동하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일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되라, 그랬더니 그 시로 하인이 나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중보의 삶에는 이런 기적 일어납니다.

  초대교회가 이런 중보의 삶과 기도로 교회가 부흥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진정 중보의 마음이 있는 곳에는 하늘이 움직이십니다. 하늘도 감동하십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위력이고 힘이고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 난국을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목적을 다 이루는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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