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가정에서 배웁시다! (수 24:14-15)
신구약 성경에서 모범적인 두 가정이 소개 되는데 구약의 여호수아의 가정과 신약의 고넬료의 가정입니다. 두 가정 모두 군인의 가정이면서 여호수아의 가정은 가나안 정복에 지대한 공헌과 영향력을 주었던 가정이었고, 고넬료의 가정은 로마 제국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었는가?
①온 가족이 아버지의 가부장적 신앙 지도를 잘 따른 가정이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가정의 실패 원인은 아담의 가부장적 영적 지도를 하와가 무시하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롯의 가정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딸들과 결혼한 사위들과 롯의 아내가 그 가장의 영적 지도를 받지 않고 세상 재리와 향락에 탐닉하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구약 시대에 살았던 노아의 가정은 신약의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온 가족이 아버지의 신앙적 지도를 잘 받고 그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군대 장관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고도 14년간을 수십 차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때야말로 매일 전쟁이요, 그것도 주야가 없는 무서운 살육전이었습니다. 이 때 만일 여호수아 가정의 단 한사람이라도 가정의 권위와 지도력을 받지 않고 ‘지겹고 못 살겠다’고 했더라면 가나안 정복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가정은 가장의 영적 권위와 그 신앙적 지도에 말없이 잘 순종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점령은 끝이 났고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곳에 선민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의 아버지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가장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아멘!/
②그의 가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확실한 믿음과 꿈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물론 한 가족의 믿음이 같으면 그 가족의 꿈도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족들도 여호수아와 같은 꿈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힘써 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곳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선민의 왕국을 건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꿈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11:1). 그들은 그 믿음대로 꿈을 이루었습니다. /할/
우리 교회도, 우리들의 가정도 똑 같은 믿음과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참 행복한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다가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확실한 소망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입니다. /믿/ 우리 같은 믿음과 같은 꿈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③그 가정은 한 사람의 불평도 없는 순종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범 가정은 불평 없이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불평하고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자녀들이 불평한다면 어찌 가풍이 확립될 수 있겠습니까? 여호수아의 가족들은 불평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나안 전쟁에 참전하여 땀과 피를 흘려 싸웠습니다. 가정의 어떤 일도 온 집안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④그의 가정은 탐심이 없는 그런 가정입니다.
여호수아의 기정은 노아의 가정이나 갈렙의 가정이나 고넬료의 가정처럼 전혀 물질의 탐심이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권력을 잡으면 제일 먼저 생기는 것이 물질에 대한 탐심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만일 여호수아의 가문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아간처럼 재산과 물질에 눈을 떴더라면 가나안의 모든 땅이나 재산을 마음껏 자기소유로 만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나안 전 영토를 전 국민에게 분배하고 자신은 에브라임 산지인 딤낫 세라라고 하는 박토를 분배받고 마침내 죽어서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수19:49-50).
물질에 탐심이 없는 청렴한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재판하고 싸우는 가정을 보십시오. 부정 축제 때문에 망신을 당하는 한국의 정치 고관들을 보십시오!
요즘 우리 한국에서도 자식에게 재산 안 주기 운동을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참된 인간의 행복은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권력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안에 있느냐?’입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⑤그의 가정은 오로지 일편단심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한 가정입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기독교의 가장 큰 요구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의 초점은 한마디로 '네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섬김은 이론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섬김은 삶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실'은 '온전함, 순수함'을 의미하며 '진정'은 '견고함, 확실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축복 받는 원천이요 비결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하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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