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시는 하나님! (시 121:1-8)
본문은 성전에 올라 갈 때마다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정치, 문화, 종교 중심지입니다.
성전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으로 가려면 계속 올라가야 했습니다. 올라가는 사람들 눈에는 언덕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건물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산이나 언덕이나 건물이 자신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 본문의 서두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 꼬”
사회학자들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사회생활, 사회관습,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 혼자 사는 것을 쓸쓸하게 보신 하나님께서 배필로 하와를 주셨는데,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2:24).
아담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하와를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여기서 ‘한 몸을 이루라,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말은 한 몸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합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기 때문에 헤어지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함께 사는 사회적 존재, 관계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마이클 거리언’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들의 뇌는 차츰 사랑에 빠져들도록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체취를 맡게 되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강하게 분비되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 년쯤 지나면 호르몬과 뇌의 화학작용이 변하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결점을 알아내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스러워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혼해 애 낳고, 나이 들고, 웃고, 울고, 다투고, 헤어지고, 히히덕 거리고, 소리 지르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싫어 수녀가 된 여인이 수녀원에 들어가면 사람 만나지 않고 고요한 묵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으나 거기도 사람이 있었고 문제가 있었습니다. 절에 가도, 수녀원에 가도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과 주고받는 우정, 교제, 사랑은 허실하고, 허약해서 쉽게 금가고, 쉽게 깨집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본문에 ‘지키신다.’는 것은 ‘우리를 해하고 넘어뜨리려는 원수와 위험과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몇 해 전에 미국의 허리케인 참사로 공포에 떨고 있는 강대국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뉴스를 보던 사람이 혀를 차며 ‘거긴 예보도 없었나요’ 말했지만 예보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연구소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국방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닷물이 밀려오는데 누가 그것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본문은 ‘지키신다.’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어떻게 지키십니까?
1.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3)
실족이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실패가 있고 돌이키기 힘든 실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눅22:31-32절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마귀가 베드로를 뒤흔들어 넘어뜨리고 실족하게 하려하지만 주님께서 친히 기도하시고 붙들어 주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으면 주변에 버팀목을 세워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줍니다. 그래야 나무가 제대로 부리를 박고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버팀목입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내 인생의 뿌리가 흔들려 뽑히지 않도록 붙들어주십니다. /믿/
2. 졸지 않고 지키십니다(3-4)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사람이 졸고 자는 것은 생리현상입니다. 피곤하면 졸고 때가 되면 잠이 오는 것입니다. 물론 습관적으로 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졸 때와 깰 때 잠잘 때와 일할 때를 구별 짓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파수꾼이 졸면 전선이 무너지고, 골키퍼가 졸면 그 팀이 패합니다. 기도의 불침번을 서야 할 사람들이 졸면 사단의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마13:24절 이하에 일꾼들이 어느 날 밭에 나가 씨를 뿌렸는데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나가 보았더니 곡식과 함께 가라지(잡초)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원수가 와서 사람들이 잠자는 틈을 타 가라지 씨를 덧뿌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조는 것은 큰일입니다. ‘성경 멀리 하는 것, 기도 멀리 하는 것, 교회 봉사 멀리 하는 것’ 모두 다 영적으로 잠자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시46:1절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힘, 큰 도움이라” 시91:2절 “나의 피난처, 요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키신다는 신앙이 있습니다. 이 신앙만 있다면 ‘넘지 못할 산이, 건너지 못할 강이, 오르지 못할 언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3.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7-8)
내 육체도, 소유도, 건강도 생명도 영혼도 모든 것을 다 지키십니다. 언제까지 지키십니까?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십니다.
어떻게 지켜주십니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주십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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