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야 상을 받습니다! (고전 9:24-27)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고린도에서는 올림픽과 같은 이스무스 경기가 매 3년마다 개최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종목은 '경마, 마차 경주, 권투, 레슬링, 음악, 시' 경연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고대 올림픽의 광경을 회상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고대 올림픽 경기의 중요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비교하며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올림픽 경기와 마라톤을 통해서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딤전4:8)고도 했고,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딤후2:5)이라고도 했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히12:1)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육상 경기와 같습니다. 일단 신호가 울리면 결승점까지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하지만 상 얻는 사람은 한 사람 뿐입니다. 물론 이 말은 구원받을 자가 하나뿐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올림픽 경기자가 상을 얻기 위해 전력 질주하듯이 신앙생활도 그와 같이 하라는 권면입니다. ▶몇 가지로 생각해 보자!
1.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라!(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무슨 말인가? ‘모든 사람은 다 달음질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 얻는 사람, 월계관을 쓰는 사람은 한사람이다. 너희도 상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고 운동선수도 누가 최선을 다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됩니다. 전반도, 후반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게임 종료 1분전까지도, 아니 게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무엇이든, 무엇을 하든, 무엇을 맡았던, 최선을 다 하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삶도, 봉사하는 삶도, 기도하는 삶도, 전도하는 삶도 최선을 다 할 때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성경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아멘!/
2. 자기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주는 월계관은 나무 잎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썩게 됩니다. 월드컵을 금으로 만든 것이니까 시들거나 썩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그것도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쳐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를 위해 사는 우리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썩을 면류관을 위해 사는 사람들보다는 생각이나 태도나 사는 것이 달라야 됩니다. /믿/
특히 우리는 25절의 '절제하다'는 말씀과 27절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운동도, 음악도, 미술도, 학문도, 신앙도, 자기와의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승자가 되고, 성공 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복종시키고, 통제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27절에서 '내가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 나를 쳐 복종시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3. 방향 설정을 바로 해야 합니다(26).
"내가 다름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모두가 공을 넣어야 하는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배구나 테니스는 상대편 코트 안에 공을 넣어야 하고, 축구는 골대 안에 공을 차 넣어야 합니다. 탁구 역시 상대편 테이블에 공을 쳐 넣어야 합니다.
만일 축구 선수가 자기네 골대에 공을 차 넣는다든지, 농구 선수가 자기네 바구니에 공을 던져 넣으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목표와 향방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기 '향방 없는 것'은 '목표가 없는', '불분명한'이란 뜻인데 목표가 없이 불안정하게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의 경주는 목표가 없는 경주는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모든 고난을 감수하며 달음질하는데, 하물며 썩지 아니하는 영생의 상급을 얻기 위하여 성도들은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상 주심을 확신하는 성도는 달음질하다가 멈출 수 없습니다. 세상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도 목표가 있기에 자기 인생을 걸고, 모든 정열을 다 쏟아 놓습니다.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고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를 향해, 누구를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히12:2절이 대답해 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지 않으면 개인도 죽고, 가정도 죽고, 역사도 죽고, 나라도 죽고, 민족도 죽고 맙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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