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무 아름다운 열매! (마 7:15-20)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결과가 좋게 나타날 것은 처음부터 그 기미가 엿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말은 ‘싹수가 노랗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에서 행복이라는 열매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행복하려면 네 가지의 요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⑴일거리가 있어야 사람은 행복합니다.
⑵무언가에 대한 바람(희망/꿈)이 있어야 사람은 행복합니다.
기대감입니다. 내가 오늘 나무를 심는 것은 내일의 열매를 기대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절망합니다. 미래지향적인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의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⑶사람은 사랑하는 것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내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 때에 그것이 곧 행복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랑할 것이 없다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습니다.
⑷마지막까지 믿을 것이 있어야 사람은 행복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믿음의 대상이 없다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만약에 우리 가운데에 내가 주를 위하여 일하고,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믿음 안에 행복이 있노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단언하건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와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자 간단한 이치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는 이 간단한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불한당’이라는 말은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한 마디로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나는 수고하지 않고 남이 땀 흘린 것을 거두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적 심보요, 강도와 같은 마음입니다. 진실을 심고 그 열매를 기다려야 옳은 것입니다. 거짓을 심고 옳은 열매를 얻겠다는 것은 강도요, 도적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가리켜 <슈바이처>는 ‘어리석게도 열매도 맺지 못하는 허무주의라는 나무 가지에서 진리라는 열매를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믿을 만한 것도 없이, 사랑할 만한 것도 없이, 기대할 만한 것도 없이 살면서 열매만을 바라고 있는 어리석음을 꼬집은 말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그것에 걸 맞는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그 생명 됨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은 ‘열매 이전에 나무’입니다. 예수께서는 ‘무작정 좋은 열매를 맺고자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며 먼저 ‘좋은 나무가 되라’는 것입니다.
나무는 가시나무인데 열매는 포도를 따겠다면 말이 안 됩니다. 나무는 엉겅퀴인데 열매는 무화과를 따겠다면 웃기는 이야깁니다. 예수님은 열매부터 말씀하시지 않고 나무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열매’가 그 사람의 ‘행위’라면 ‘나무’는 그 사람의 됨됨이, 즉 ‘인격과 성품과 기질’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행동부터 바꾸라고 하지 않고, 속사람이 변하면 행동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동’을 먼저 고치라고 말씀하지 않고 ‘사람’이 먼저 바뀌라는 것입니다.
즉 ‘인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순간적으로 보여 주는 행동에는 얼마든지 가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속사람은 여전한데 행동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가식입니다. 절대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탐스러운 포도열매’를 그럴싸하게 보이면서 ‘가시나무 됨’을 숨기려 하지말고 열매 이전에 나를 ‘포도나무’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화려하고 예쁜 무화과’를 보이면서 ‘엉겅퀴’인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들지 말고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무화과나무’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열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무됨입니다. 그런데 나무 이전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좋은 씨앗’이 ‘좋은 나무’가 되고, 좋은 나무가 되고야 ‘좋은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심는 것은 선택이요, 자유입니다. 그러나 추수하는 것은 심판이요, 보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은 씨앗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말’은 열매입니다. 보이지 않는 ‘의지’는 나무요, 보여 지는 ‘행위’는 열매입니다. 속에 있는 ‘인격’은 나무요, 다른 사람들의 ‘평판’은 그 열매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쁜 열매를 맺었으면 잘못 된 내 ‘생각’과 내 ‘의지’와 내 ‘인격’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환경이나 분위기를 탓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끔씩 우리는 이런 말을 잘합니다. “내 의지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환경을 탓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원망할 것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좋은 씨앗이 되고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지 그 외에는 탓할 것이 못 됩니다.
과일나무는 심어만 놓는다고 해서 좋은 열매를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이른 봄부터 가지치기를 해야 하고 거름을 주어 가꾸어야합니다. 나무의 모양을 만들고 열매가 충실히 맺힐 수 있게 곁가지는 모두 잘라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불필요한 가지들은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나에게 필요 없는 곁가지들은 어떤 것인지를, 신앙생활의 아름다운 모양을 해치는 빠져나온 가지는 없는가? 그리고 또 좋은 열매를 위해서는 좋지 않은 열매를 솎아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농업에서는 이것을 ‘적과’ 즉 ‘열매솎기’입니다. 적당히 열매를 솎아내지 않으면 수확할 열매의 크기도 작을뿐더러 많은 열매들의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이 ‘가지치기’와 ‘열매솎기’는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입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을 속아내고, 인본주의를 몰아냅시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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