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사람, 느헤미야! (느 1:1-11)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포로 2세로서 당시 대재국인 메대 파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라는 높은 관직에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동생 하나니가 몇 사람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돌아왔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이 어떻더냐?”고 묻자 하나니의 보고는 참담합니다. 백성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성벽은 무너졌고 문들은 화재로 다 타버렸다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을 통해서 1차 포로귀환이 있었고, 2차는 에스라를 통해서 포로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루셀렘의 형편은 그와 같이 참담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는구나!” 자기 할 일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며 금식 기도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서 그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을 도우리라.”
느헤미야의 기도는 응답되어져서 수산에서 예루살렘까지 1,200km, 부산에서 서울까지 세배가 넘는 그 먼 거리, 당시 교통으로는 너무나 먼 그 길을 가서 마침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어깨에 힘이 빠지고 낙심해 있을 때 그 좋은 지도자 느헤미야를 만남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한 손에는 칼을 잡고 한 손에는 도구를 잡고 일을 하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그 난공사를 52일 만에 완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안정과 소망과 기쁨을 주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성숙한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①느헤미야의 성숙함은 불신자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불신자인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②성숙한 자의 관심은 무엇인가? 성숙한 믿음의 사람은 관심이 다릅니다. 그의 관심은 온통 “지금 예루살렘의 형편이 어떤가?”였습니다. 관심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내 조국의 형편이 어떤가가 그의 관심이었습니다. 고통 당하는 내 공포들이 그의 관심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숙되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집니다. 자기이익에만 집착합니다. 자기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라야 어떻게 되던, 이웃이야 어떻게 되던 관심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성숙함이 무엇입니까? 남에게 대한 배려요 관심입니다.
③성숙한 자의 눈물은 다릅니다. 예루살렘성의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그 자리에 앉아서 수일을 울었습니다. 눈물이 다릅니다. 성숙한 사람의 눈물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눈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성도들 중 10만 명만이라도 느헤미야와 같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 나라는 지금과는 다릅니다.
④느헤미야는 슬픔과 한숨을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눈물로 끝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슬픔과 아픔을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사람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 만날 때 사람을 붙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4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⑤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파손을 자신의 죄로 고백하며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소화된 것은 느헤미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조상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같은 성숙한 믿음의 사람은 모든 역사의 현장에 어려움이 생길 때 내 책임부터 찾습니다. 내 잘못부터 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조그마한 일이 생겨도 다른 사람의 잘못부터 따지고 비판부터 합니다. 내 잘못, 내 책임은 전혀 보지 못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내 책임, 내 잘못부터 찾습니다. 이게 느헤미야입니다. 6절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 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이게 성숙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 잘못이 무엇인가를 먼저 보는 사람입니다.
⑥느헤미야는 자신이 높은 직책이 어려운 이때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성숙한 사람과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많은 물질을 벌었습니다. 좋은 재능을 주셔서 인기를 얻게 하셨습니다. 또 좋은 지위를 주셔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자신의 영광만을 취하고 자기 안일만을 위하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미숙한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 보고를 듣자 “하나님께서 나를 술 맡은 관원의 자리에 올려주신 것은 이 때를 위함이구나”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성숙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것이 이 때를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⑦느헤미야는 내가 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1절 “이 사람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게 해주십시오.” 내가 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감동시켜 주셔서 내가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숙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려운 문제가 부딪쳤을 때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헌신하겠습니다. 내 이 일을 책임지겠습니다.” 느헤미야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게 성숙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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