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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의 은혜 (행1:26-2:4)

by 【고동엽】 2022. 3. 13.

오순절의 은혜   (행1:26-2:4)

예수 님의 제자 중 가롯 유다는 예수 님을 배반하고 예수 님을 은 30량을 받고 팔아 넘긴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자리를 채우는 보결 선거를 했습니다. 그 보결 선거에서 '요셉'과 '맛디아'가 추천되었습니다. 제비를 뽑은 결과 맛디아가 최종적으로 사도의 반열에 끼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오순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 중 하나로서 구약에서는 칠칠절 이라고도
하고 또는 맥추절 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강림이 이 오순절에 임했습니다. 이 오순절은 예수 님이 승천하신 열흘 후였습니다. 이때 성령 강림을 대망 하던 120 문도와 사도들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성령이 임 하였습다. 이것이 곧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인데 이것은 교회 탄생을 의미합니다. 교회 설립과 오순절은 불가 분리의 관계가 있는데 그것은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지상의 첫 교회를 세우시고 계속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면서 주님의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 강림절을 맞아서 오순절의 은혜는 어떤 것이었나를 살피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⑴, 선택의 은혜(1:26-)
예수 님의 분부하심을 따라 열심히 기도하던 120문도 들은 가롯 유다 대신에 한 사람의 사도를 뽑게 되었습니다. 사도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 로서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전도자를 뜻하며 예수 님이 친히 택하신 자를 말합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 님을 배반하고 죄책감에 못 이겨서 자살한 후 남은 제자들은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충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보다 사도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물건을 살 때에는 필요에 따라 구입하고, 학교를 선택할 때는 자신의 적성과 희망에 따라 택하면 되지만 사도의 선택은 분명한 목적에 대한 이해와 사명감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사도로 충원될 사람은 현재 예수의 사도 된 자들과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가운데서 뽑기로 했습니다.

사도로서 적합한 인물은 무엇보다도 세례요한을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요한과  예수 님의 사역을 구분하지 못하면 사도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선지자라면 예수 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모든 일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일과 원하시는 일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고로 말씀의 능력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사도의 자격이 있습니다. 사도는 심령을 구원하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사도와 함께 다니던 사람은 곧 주님을 따르던 사람을 말합니다. 즉 진리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기 위해 사모하던 사람들입니다. 고생과 핍박이 와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던 사람들입니다.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도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신앙이 없이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먼저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믿지 않고서는 부활 신앙을 증거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도 보선에  있어서 두 사람이 추천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하는 요셉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맛디아 옅습니다. 바사바와 요셉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안식일의 아들이란 뜻이며 유스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정의를 뜻합니다. 반면에 맛디아는 여호와의 선물이란 이름의 뜻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 님의  공생애 기간에 다같이 예수 님의 제자들과 더불어 줄곧 그리스도를 좇으면서 신앙의 터를 쌓아 온 믿음이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동고동락하며 신임 받던 가롯 유다가 예수 님을 배반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사람의 판단과 선택보다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주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보여 주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의심치 않고 구하며, 주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기도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훌륭하다 해도 기도의 사람이 아니면 사도의 직분을 버리고 유다처럼 쉽게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시험과 유혹과 핍박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보선에서 바사바는 맛디아보다 모든 면에 유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먼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이름이 기록되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그는 별명이 두 개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맛디아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한 후에 항아리 속에 이름이 적힌 돌멩이 둘을 넣어 먼저 뽑힌 사람을 사도로 선택하는데 맛디아가 선택되었습니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것입니다. 맛디아는 평범하고 조용할 뿐 아니라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택의 은혜입니다. 세상 적인 조건 때문에 낙심치 마십시오. 하나님께 은혜만 입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⑵, 감사의 은혜(2;1-)
위에서 말씀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큰 명절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인데 그 유래가 따로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방랑 끝에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유목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생활이 대폭으로 바뀌었습니다. 오순절은 그 해 농사를 지어 제일 먼저 수확하는 밀을 다 거두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들은 그때가 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 예루살렘에 성전에 모여 한 주간 동안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 중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즉 그들은 감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모여서 물질적인 축복에 대해 감사했더니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즉 작은 것을 감사하고 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은혜입니다. 성도들의 삶은 감사로 넘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감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인천 어느 교회 목사님은 매주일 설교 전 기도 시간에 꼭 날씨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린답니다. "화창한 날씨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적당한  비를 주셔서 대지를 적시어 주시듯 오늘은 성령에  단비를 내려 주실 줄 믿으오니 감사합니다" 교인들은 매주일이면 듣는 "날씨에 대한 감사 기도"이기 때문에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마철 어느 주일날 11시에 예배가 시작된지 1시간 전부터 장대 같은비가 쏟아졌습니다. 계속 쏟아진 비 때문에 11시 10분이 지나도 3백 명쯤 모이는 교우들이50명밖에 모이지 아니했습니다. 교인들은 "오늘도 우리 목사님 날씨에 대한 감사를 드릴까?" 제각기 입을 모아 한마디씩 했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었습니다. "날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일년 52주 동안 오늘 한 주일만 장대비를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매주일 이런 비를 주신다면 저희들은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 수 있겠습니까?" 하고 기도하였답니다. 토마스는 "항상 네 감사하는 일을 먼저 하늘에 하고 다음엔 땅에 향하라."고 했습니다. 쎅스피어는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독사에게 물리는 것이 훨씬 낫도다"고 했습니다. 성령 님은 오순절에 함께 모여 감사하는 자들에게 임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⑶, 성령의 은혜(2:2-4)
예수 님의 제자들은 예수 님께 3년 동안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정확하게 배웠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성경 공부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증거 하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영적 인격 성숙 또는 영적 실력 충만 혹은 성령의 지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승천은 제자들에게 영원한 삶에 대한 깨달음과 더불어 불안과 근심도 안겨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님이 안 계신 세상에서 어떻게 살며 어떻게 사역을 감당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양식을 가지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인도해 주실 보혜사 입니다. 예수 님은 당신이 승천하시면 곧 보혜사 성령을 내려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과 사도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 남아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예수 님은 당신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 예루살렘에 남아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끝까지 남은 성도들과 함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이들은 마냥 앉아서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지만 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성령이 오실 것을확실히 믿고 열심을 다해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이들의 믿음과 기도는 성령의 강림을 예비하는 과정으로 성령 충만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지 열흘째 되는 날 사도들과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날은 예수 님이 부활하신 지 오십일 째 되는 날로서 오순절이 날이었습니다. 이 날 성령은 강림의 증거를 실제적으로 나타내시면서 임하셨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던 사람들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성령의 강림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타난 신비한 변화를 통해 성령의 임재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일어난 이 성령 강림의 사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새로운 전기가 된 동시에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10일 동안 기도에 힘쓰던 중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불길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불같은 성령의 충만함은 가슴을 뜨겁게 했으며, 불같은 열심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또 바람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능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하게 하심을 따라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두가 성령 충만의 은혜였습니다.

오순절 날에 일어난 성령 강림의 사건은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들을 동반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비한 현상들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하늘에서부터 임한 현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는 성령 강림과 더불어 나타난 신비한 현상들이 하늘로부터 임했음을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실존이십니다. 따라서 성령 강림의 현상들이 하늘로부터 임했다는 것은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에 따라 임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임을 확증합니다. 성령 강림의 역사는 인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에 따라 하늘로부터 임한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본문에서는 성령이 인할 때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 찼다고 증거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바람에 의해 소리가 발생했다기 보다는 강력한 존재의 이동에 의해 공기가 휘몰아침이 생기면서 난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 땅으로 성령이 인하므로 당시에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성령 임재시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의 이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의 실존을 증거 하는 현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당시에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이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거 합니다. 본디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출19:16-20) 따라서 성령 강림 시에 불꽃같은 것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하나님은 자연물을 통해 신비한 현상을 보여주셨지만 성령의 임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내주이기에 이를 확증할 증거가 더 많이 나타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은 초대 교회를 형성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북 교회도 새 예배당을 짓고 새 모습으로 등장하기 위해 꿈틀거리는데 우리 모두 오순절 다락방에 있으면서 기도했던 초대 교인들과 사도들처럼 합심하여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합시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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