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강) 무죄를 판결 받은 바울! (행 25:13-27)
한 평생을 절에 다니다가 예수를 믿게 된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분은 유별나게 불심이 깊던 분이셨습니다. 매일 새벽 불공을 드리셨는데 새벽 불공 전에 매일 같이 목욕 재개하셨답니다.
그런 할머니가 예수 믿고 나서 새벽 기도를 드리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매일 새벽에 목욕재개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벽에 교회 나오기 전에 남보다 1시간 전에 일어나 목욕을 하려니 잠도 부족하고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할머니 꼭 그렇게 안 해도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막무가내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돌로 만든 부처 앞에 헛된 불공드릴 때도 목욕 재개했는데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습니까?' /할/
지금은 권사님이 되셨는데 교인들이 '이 권사님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받으시는 것 같아요? 이분하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가 달라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시고 공들이는 거룩한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아멘!/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할/
▶진시황은 38세에 중국 천하를 통일한 인물입니다. 그는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지었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불로 장수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그였지만 흐르는 세월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영원토록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서 불로초까지 먹었습니다. 그랬던 그도 결국 50을 넘기지 못하고 49살에 죽습니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입니다.
절세 미인 양귀비도 그렇습니다. 임금의 총애를 받고 부귀영화가 한 몸에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녀도 난리가 나서 도망가다가 37살 한창 나이에 목매어 자살하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 7-80년 살다가 결국 한두 평 무덤으로 끝나는 게 인생 아닙니까? 그래서 세상에서도 인생을 '생로병사'라 합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게 인생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어야 하고 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절대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예수만 전하다가 가이사랴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제목소개!▶
지금까지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의 배경을 한번 짚어보고 가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와 유럽에서 전도하던 중 예루살렘 교회에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선교한 교회들로부터 받은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로마 군인들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암살을 계획하여 40명의 암살단을 편성하였는데 그들이 정식재판으로 사도 바울을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암살단들은 바울을 데리고 내려오게 하면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겠다는 계획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동기를 제공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23:15).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울은 그의 생질을 통하여 이 소식을 알게 되었고 로마 군인들의 호송을 받으면서 가이사랴로 가게 되었습니다(23:15-35).
그리고 이년이 지나 베스도가 총독이 되어 부임한 지 삼일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때까지도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버리지 못하고 부임인사차 온 새로운 총독에게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합니다(1-2).
그러나 총독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다시 가이사랴로 내려가는데 가이사랴에 도착한 베스도 총독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을 불러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겠느냐고 물어봅니다(4-9절).
이 말을 들은 바울은 자신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재빨리 알아채고 총독의 제의를 거절하는데 그가 모색한 방법은 자신은 로마 사람이므로 황제의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것입니다(10-12).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황제의 판결을 청구할 때 거절할 수 없는 것이 당시 로마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의 분봉왕 아그립바가 베스도 총독을 예방하러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여러 날 유하는 동안 베스도 총독이 아그립바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유대의 지도자들로부터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 받았던 일부터 시작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한 그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것까지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13-21).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 행25장의 내용입니다.
본문 1-12절까지는 바울이 베스도 총독에게 재판 받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 자리에서 바울은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에게 직접 호소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0, 11, 12, 21, 25절에서 계속 바울이 가이사 앞에 가서 호소하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게 가이사 앞에 가기를 원했는가? 한마디로 바울의 온 소원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복음의 열정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베스도 총독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베스도는 온유하고 지혜롭기로 평판이 높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로마에 대한 반감을 가라앉힐 수 있는 적임자라고 해서 상당히 명망 있는 사람이 이제 총독으로 부임을 해서 그는 나름대로 유대 지도자들을 만나서 화해의 제스처를 썼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은 바울 문제를 들고나옵니다. '그를 예루살렘에서 재판 받게 하십시오.' 이 말 뒤에는 바울을 암살시킬 계획을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안 된다.'고 거절을 합니다.
'죄인이 재판을 받기 전에 구류된 자리에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법적으로 그를 예루살렘으로 후송시킬 수 없다'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다만 내가 가이사랴에 가서 재판할 테니까 고발하고 싶은 사람은 너희들이 와라'고 해서 이제 가이사랴 총독부에서 재판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베스도의 마음속에는 굉장히 큰 죄를 바울이 지었을 것이라고 상각했습니다마는 사실 유대인들이 그를 향하여 고소한 내용은 로마 총독이 볼 때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율법문제요 종교문제를 가지고 그럽니다. 이러한 시시한 문제를 놓고 유대인들이 들고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베스도는 생각합니다. '이거 법적으로는 무죄이니까 석방해 주면 좋겠는데 유대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인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너 예루살렘 가서 제판을 받을래?' 이것은 바울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마는 이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대단히 간교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인기와 명예에는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이 사건을 자기로부터 떼어 내려는 총독의 간교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이 문제를 가이사께 호소하겠노라'고 한 것입니다.
▶13절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기 '수일 후에'는 '며칠이 지난 뒤'란 말로 10절 이하에서 바울이 '내가 가이사의 재판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고 12절에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고 다짐한 지 며칠이 지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이 가이사에게 갈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까?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복음의 열정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확신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에 대한 바울의 비전입니다. 19;21절 "내가 거기(예루살렘)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가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에베소에서 외친 말씀입니다. 이것이 로마에 대한 비전의 태동입니다. 그는 이 비전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둘째, 안토니아 부대에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23:11)
그는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에 의하여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예수 부활을 증거할 때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대립과 갈등으로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피신시켰습니다. 그 날 밤에 주님이 곁에 서서 바울에게 주신 확신의 메시지입니다.
셋째, 산헤드린 회원들의 고소로 베스도 법정에 선 때입니다. "...내가 가이사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10) 그는 이미 로마에 가서 가이사 황제 앞에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심문을 받을 것이지 지금 유대 산헤드린에 갈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 '아그립바' 왕은 유대 왕입니다. 지금 유다는 로마가 다스리고 있는데 무슨 유다의 왕이 있겠는가? 하지만 로마가 다스리고 있습니다마는 로마는 유다 나라에 왕을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접 삼아 왕을 세워둔 것입니다.
주권 없는 왕이 온전한 왕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백성의 원성을 피하고 또한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 정부와의 관계를 잘 중재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허수아비 정권을 하나 세워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헤롯 아그립바 정권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외교권과 군사권 세금 징수권과 경찰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왕이 제한된 왕입니다마는 왕은 왕입니다. 이 왕이 이제 '어떻게 해야 나라를 자기 권력을 잘 유지 할 수 있는가?'하면 한마디로 로마에 아부를 잘 해야 합니다.
여기 아그립바 왕은 한마디로 로마에 아부를 잘 해서 22년 간이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듣고 불안을 느낀 나머지 베들레헴의 어린이들을 살해한 장본인입니다.
그 아들 헤롯 안디바는 불의한 결혼을 지적하는 세례 요한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아그립바 1세는 헤롯대왕의 손자로 12제자 중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베드로를 옥에 가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었다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급사했습니다.
본문의 아그립바 2세는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자 헤롯 대왕의 증손인 '마르쿠스 율리우스 아그립바 2세'(Marcus Julius Agrippa II, A.D. 27-100)입니다.
그는 어려서 로마의 글라우디우스 황실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의 부친처럼 친 로마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A.D. 44년 그의 아버지가 별세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토를 이어받아 다스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틴은 로마 행정관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A.D. 50년경에 글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아그립바 2세는 갈기스(Chalcis)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팔레스틴의 통치자로 부상되었습니다.
그 후 글라우디우스는 그에게 더 많은 영토를 맡겼습니다. 빌립의 관할 지역, 아빌라(Abila), 트라코니티스(Trachonitis), 아크라(Acra)등입니다. 아그립바의 통치지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네로에 의해 갈릴리, 다리게아(Tarichea), 디베랴(Tiberias)등에 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아그립바는 매우 친 로마 적이어서 유대인들이 반로마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공작을 하였습니다. 66-70년에 걸쳐 있었던 전쟁기간에는 더욱 철저히 로마에 충성했던 관계로 전쟁 후 더 많은 영토를 부여받았습니다.
이처럼 아그립바 왕은 로마와의 밀착된 관계 속에서 특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로마 총독이 부임할 때마다 예방(禮訪)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직접 유대를 통치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글라우디우스 황제가 '성전의 후견인'의 자격과 대제사장의 임명 및 파면 권, 그리고 성전 창고와 제사장의 예복을 관리하는 권한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에 유대 사회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버니게는 아그립바 2세의 한 살 아래 누이이자 벨릭스 전(前) 총독의 처인 드루실라(24:24)의 언니입니다. 그녀는 일찍이 철학자 필로(Philo)의 조카인 마르쿠스와 약혼한 적이 있었으나 결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후에 그녀는 삼촌인 헤롯과 첫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48년에 남편이 죽자 오빠인 아그립바 2세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길리기아 왕 폴레몬(Polemon)과 두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곧 이혼하고 다시 오빠에게 돌아왔습니다.
이때 이들 사이에는 근친상간(近親相姦)의 불륜이 저질러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었습니다. 70년 이후에는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의 아들인 티투스(Titus)와도 애정 행각을 벌였으나 여론의 악화로 끝내는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빠와 함께 베스도의 취임을 축하하러 온 지금은 아마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후 오빠 집에서 함께 거할 때였을 것입니다. 버니게의 사치와 화려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유대 전쟁의 긴장이 감돌던 시기에 그의 오빠 아그립바가 유대인들에게 전쟁을 피하도록 권유하는 순간에도 사치스럽게 치장하고 오빠 옆에 앉아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 여기 가이사랴는 어떤 곳인가? 그곳에 로마의 총독부가 있었습니다. 가이사랴란 '가이사의 도시'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헤롯 대왕이 로마 가이사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서 세운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104(혹은 96)㎞ 떨어진 지중해 해변도시입니다.
▶14절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여러 날을 있더니' 누구를 말합니까? 아그립바와 베니게를 말합니다. 그들이 가이사랴에서 여러 날을 머물게 되어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바울 사건을 논의하였습니다. 베스도가 말했습니다. '이 곳에 벨릭스가 옥에 가두어 둔 사람이 한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누구인가? 바울입니다.
여기 벨릭스가 누구입니까? 바울은 지금 가이사랴 총독부 안에 갇혀 있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죄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마는 그는 유대인의 눈치를 보면서 바로 석방을 시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돈을 좀 가져올까 해서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앞에 가서 돈 대신에 더 귀중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말씀을 선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불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선을 위하여 사람은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주제의 설교를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하게 될 때에 이 벨릭스 총독의 마음속에 감동이 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감동을 뒤로 미루고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2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2 년 만에 로마 황제가 벨릭스를 로마로 소환하게 됩니다.
소환한 이유는 유대인과 시리아인과의 집단 충돌이 있었는데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매우 거칠게 했으므로 로마 황제한테 이 벨릭스 총독에 대한 상소, 비난상소가 빗발치게 됩니다.
그럴 때 가이사는 그를 소환해서 파면을 시키게 됩니다. 이 벨릭스는 하나님께서 주신 바 회개의 기회 2 년 동안에 주어진 기회를 그는 살리지 못하고 결국 놓쳐 버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불쌍한 영혼입니다.
▶15절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여기 '내가'는 베스도 총독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 사람을 고소하면서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16절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이 고소를 당했을 때 그 사람을 고소한 사람과 마주하게 해서 고소한 것에 대해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주는 것은 로마의 관습에 어긋난다'고 말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17절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그래서 유대인들이 나를 따라 이 곳 가이사랴로 왔습니다. 나는 시간을 끌지 않고 그 이튿날, 재판을 소집하고 재판 석에 앉아서 그 사람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18절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새로 부임한 로마 총독 베스도도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이 떠들어 대고 있는 것처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들리는 소리마다 바울을 죽여야한다고 했기에 베스도는 그 소문들이 맞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이 말은 원고들이 상소를 하기 전에도 이미 사도 바울은 죽을죄를 지은 사람으로 짐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다시 보면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무슨 말인가? 베스도가 평소에 가졌던 바울에 대한 짐작은 전적으로 빗나가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평소에 짐작했던 것 한 가지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베스도가 오늘처럼 사도 바울을 대면하지 못하고 대화하지 못하고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언제든지 베스도는 그의 짐작으로만 살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쟁이들은 죽일 놈들,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로 짐작만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에도 베스도와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교회라면 덮어놓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 교인이라면 상대조차 하지 안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저들은 교회와 성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주 만나야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많은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짐작 이상의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짐작으로만 알고 있던 그런 예수쟁이가 아님을 생활로 부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19절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 뿐이라"
그들이 바울과 논쟁을 한 것은 간단히 말해서, 그들의 종교에 관한 것과 예수라는 어떤 죽은 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자가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20절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나는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 문제에 대해 재판 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21절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그러나 바울이 황제에게 판결을 받을 때까지 그대로 갇혀 있겠다고 해서 나는 바울을 로마에 계신 황제에게 보낼 때까지 그를 가두어 두라고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22절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여기서 보면 아그립바왕이 바울의 말을 듣고싶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웬지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꾸 자꾸 만나보고 싶은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오늘 헤롯 아그립바왕은 바울을 만나서 그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일국의 왕이 죄인을 만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수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왕은 아무나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온 백성들이 죽여야한다고 외쳐되는 죄인을 말입니다.
반대로 바울이 왕을 대면하고자 탄원을 했다하더라도 오히려 귀찮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아그립바왕이 죄수인 바울을 만나서 그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23절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는 화려한 행렬을 갖추고 군대 지휘관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과 함께 재판정에 나타났습니다. 베스도가 명령하자 바울이 끌려나왔습니다.
베스도가 마지막으로 바울을 법정에 불러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유대의 모든 사람들이 다 참석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총독부의 최후 공판입니다.
여기 유대 왕 아그립바 왕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로마군대의 지휘관 천부장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성중에 있는 각계각층에 높은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한마디로 아그립바왕은 죄인 한 사람을 만나는데 마치 국가의 최고 내빈을 영접하는 것처럼 극진한 준비를 했습니다.
▶24절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바울이 들어오니 베스도가 말하기를 '아그립바 왕이여,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 이 사람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이 곳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면서 나에게 고소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모든 무리 앞에 비춰진 바울의 모습은 '살려 두지 못할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유대인들의 중요 인물들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 같이 바울과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바울을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외쳐된 것은 저들이 싫어하는 것을 바울이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로 오실 구세주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오신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예수를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외치고 또 전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하 그 오신 메시야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함께 증거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사게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길 박에는 없다'고 전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동족들에게 미움 그 이상인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저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갈6;14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 같은 복음의 열정이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아멘!/
▶25절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베스도 총독이 말하기를 이 사람에게 나는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바울에게 있어서 유대의 마지막 공판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의 궤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바울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는 결국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법정에서 왕과 총독에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왜 바울을 죽일 수 없는가? ⑴그는 바리새인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매사에 빈틈이 없습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책잡을 흠이 없습니다.
⑵그는 가말리엘 문하생입니다. 그는 당대 가장 훌륭한 선생 밑에서 율법을 공부하여 교리적으로 능한 자이므로 율법과 규례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⑶그보다 더 한 것은 지배국가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민지 국가인 유대인들이 함부로 손을 될 수 없습니다.
⑷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총 속에 있으므로 아무도 그를 해할 자가 없습니다. 이 땅 위에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하나님의 장중입니다.
롬8장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자! 31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33-34절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또 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할/
또 38-39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멘!/
▶26절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로마인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로마법이 아무리 훌륭하고, 로마 관원이 아무리 유능해도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인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13-15절에서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27절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황제께 죄수를 보내면서 그 죄목이 무엇인지 알리지 않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몇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25절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베스도 자신이 말한 대로 부활을 믿는다고 해서 유대인 지도자들처럼 바울을 범죄자로 정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로마 법정에서 이러한 문제로 유죄에 처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법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베스도는 그의 로마법 정신을 따라 바울의 무죄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천부장도 그러했고(23:29), 벨릭스도 마찬가지였으며(24:22, 23), 지금은 베스도까지도 바울의 무죄 됨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잘 못이 무엇인가? 바울을 석방시키자니 여론이 두려웠습니다. 이것이 관료들의 한계입니다. 무죄면 석방해야지요. 그게 로마법을 따르는 바른 관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석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법과 양심을 따라서 석방시키자니 여론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민심을 바로 추슬러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로마 정부에 충성을 하도록 해야겠는데 여론과는 정반대로 바울을 석방해 버리면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날 것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스도 총독도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난감이었습니다. 여론을 따라 유대인들에게 바울을 내어주려 했더니 로마 시민인 바울이 상소를 했습니다. 21절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어렵게 생각한 것이 그들의 종교문제이니까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게 해볼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도 여의치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즉각 로마 황제에게 항소를 했기에(11) 로마 시민인 바울이 상소를 했으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바울을 최고 법정인 로마에 보낼 때 함께 보내야 할 혐의 사실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었습니다. 황제가 보아서 재판의 필요성을 인정할 만한 상소(上訴) 재료도 없이 바울을 올려 보낸다면 그들에게는 무능력 가라는 낙인과 문책이 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베스도에게는 또 하나의 난관이 생긴 것입니다.
분명한 죄목도 없이 사람을 로마 황제 앞에 세우는 것은 그가 충성하는 로마인의 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황제에게도 그의 무능을 고백하는 이성이 없는 일입니다.
여론과 법, 양심과 체면, 이런 것들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로마인 베스도 총독의 한계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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