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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익 목사 준비중

동참의 삶 (4)

by 【고동엽】 2022. 2. 27.

동참의 삶  (4)

 

 

 

 

            1:26-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

 

           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

 

           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

 

           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네 번째로 제자의 삶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사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창세기1장을 보면 참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온통 신선함과 충만함과 약동함이 가득합니다. 아주 흐뭇함이 묻어나는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마음껏 복을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창세기122절을 보면 “모든 생물들을 지으시고 복을 주시며 말씀하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바다에 충만 하라 땅에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8절을 보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또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이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들이 이 세상에 충만하고 땅에 번성할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이 충만은 우리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사명이고 창조의 대 명제이자 분부이십니다. 그래서 자연이나 생물이나 인간은 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이웃들입니다. 모두가 나와 연관된 관계들입니다. 같은 공동의 운명체들입니다. 그들이 건강해야 곧 내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창조물들 가운데 인간이 대장입니다. 운영의 중심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개인의 신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 공동체 생활을 책임 있게 해 나가야 합니다.

 

 먼저는 나의 삶을 건전하게 주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나의 삶을 충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다음은 이웃을 돌보는 일입니다. 이웃은 좋은 이웃도 있지만 나쁜 이웃도 있습니다. 모두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이웃들입니다. 나쁜 이웃을 빨리 이사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사 가면 더 나쁜 이웃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할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신실한 삶입니다. 그리고 내가 좋은 이웃이 되어주는 일도 소중한 제자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 그것도 제자의 할 일 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관심을 갖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좁은 의미에서의 사명은 내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고 조금 넓게는 이웃을 보살피는 일이고 더 넓게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창조의 세계에 대해서 연대책임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당부하신 말씀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고 보존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좋은 유산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려받은 유산을 잘 관리하면 복이 되고 은혜가 되지만 잘못 관리하면 대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려했던 것처럼 인간은 이 세상을 잘못 관리하고 잘못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우선 그 좋던 관계들이 악화되어 서로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범인을 잡으면 다 이웃사람들입니다. 성폭행 자들을 잡고 보면 다 이웃 사람들입니다. 원수가 집안에 있습니다. 거기 어디에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기상이 남아 있습니까. 또 지금 지구가 심각하게 열을 받고 있습니다. 지구는 연간 표면온도를 14도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야 인류가 농사를 짓고 동식물들이 자라고 물고기가 생존할 수 있는데 그동안 사람들이 이 지구를 혹사시켜 열을 받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각종 폐기물들을 아무데나 버리고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내뿜고 가는 곳 마다 석유를 뿌리고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100년 전부터 비행기를 만들어 자동차 보다 몇 백 배나 더 되는 화석연료를 하늘에 뿌리고 다니니까 21세기 말에는 온도가 5.2도가 높아져 여름은 더 덥고 겨울은 더 춥게 되어 이상기온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3년 유럽에서는 폭염이 와서 35,00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지난겨울 몽골에서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으로 가축 820만 마리가 동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없었던 이런 이상기온이 왜 요즘 자주 발생하는가 하면 모두 이 세상을 잘못 관리하여 지구가 열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구뿐 아니고 땅속도 열을 받았습니다. 자식이 이사를 가면 부모님이 빈 냉장고를 가득 채워 주시듯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주 충만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공중에는 맑은 공기로 충만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공기 속에는 각종 에너지들과 영양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땅속에는 물을 충만하게 채워 놓으시고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충분하게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무엇을 심든지 충만하게 자라게 해 주셨습니다. 또 이 세상에 사람들로 충만하게 하시고 계속해서 낳고 또 낳아서 이 세상은 사람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이 충만함을 다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으로 하여금 열 받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선한 뜻을 다 거스르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맑고 신선하던 공기를 오염시켜서 공기를 마시면 온갖 질병이 유발되어 120년을 살아가던 생명들이 단축되는 결과를 가져 왔고 그 맑고 시원하든 물을 오염시켜서 이제는 물이 독을 품고 있어 마실 수가 없게 되어 기름보다 더 비싼 값으로 물도 사서 먹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땅도 오염되어 각종 먹을거리들이 오염되어 8~90세를 살아가는 것도 각종 암과 질병에 노출되어 평안하게 살아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 오늘 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요한계시록에서 이미 벌써 예고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을 보면 하나님이 자연을 파괴해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연을 파괴해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이 아니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서 인간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석인 우박과 불이 내려와 세상 1/3을 태워 버리고 수목 1/3도 태워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태웠다(7)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장차 이 세상이 다 오염되어 죽는다는 메시지 일 것입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은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서 바다의 1/3이 피가 되고 바다의 생명들도 1/3이 죽었다(8)고 하였습니다. 이 말도 장차 바다가 오염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여러 샘에 떨어지니 물의 1/3이 쓴 물이 되어 사람들이 죽었다(10)고 하였습니다. 물이 오염되어 장차 먹을 물이 없어진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천체에 변화가 발생하여 달과 별들이 타격을 받아 빛이 사라졌다(12)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오존층이 깨지고 기상에 무섭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일어나는 이 같은 현상들은 이미 계시록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는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 곧 물 전쟁이 일어나 오늘 기름보다 더 비싼 값에 물을 사 마시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이제 사서 마실 물도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관리를 잘못해서 만나는 재앙입니다. 또 맑던 공기도 오염되어 이제는 더 이상 시내에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무작위로 개발하고 까발리더니 오늘 이런 재앙이 오는 것입니다. 산은 공기와 사태를 막아주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그런데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까발린 결과 산에 산사태가 발생하고 바다에 기름이 유출되어 오염시키고 매연으로 공기가 오염되고 땅은 이제 오염으로 마실 물도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자동차 홍수를 이루어 매탄가스를 내 뿜고 다니며 그 자동차 보다 몇 백배 더 큰 비행기들이 하루에도 수백만 번씩 뜨고 내려 공중에도 온갖 매연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존층이 파괴되고 강한 햇빛으로 자외선이 강해져서 각종 암이 발생하고 바닷물이 넘치고 북극의 얼음이 녹아지고 바다물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해일이 발생하고 중국의 고비사막은 비가 오지 않아 점점 더 사막화되어 황사가 날아오고 온갖 질병이 난무해지고 결국 엄청난 재난으로 금세기 말에는 인구의 1/3이 죽는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을 잘못 관리해서 심판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 무분별한 인간의 행위를 하나님이 막아주시면 좋을 것인데 그냥 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무서운 심판입니다. 자유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막대기를 들고 호령하시고 막아주시면 좋은데 그런데 그냥 놔두십니다. 그 결과 이 세상이 언젠가 자멸하고 큰 재앙을 만나 결국 이 세상은 심판받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창조의 원리에 동참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환경이 파괴되면 그리스도인들도 고통을 면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충만하라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를 새로 지으면 빈자리 없이 충만해야 합니다. 집안도 충만해야 합니다. 집은 크고 좋은데 적막하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에 충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축복하시고자 주신 명령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처음에는 충만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낳고 많이 낳는 기록이 나옵니다. 역대상 1장에서 15장까지를 보면 낳고 낳고 번식해 가는 인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세상에 충만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60년대에는 충만하였습니다. 너무 많이 낳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초등학교 한반에 6-70명씩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캠페인을 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많이 줄고 있습니다. 매년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지방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청빙하는데 초등학생 3명의 자녀를 둔 목회자를 환영한다는 조건도 있었습니다. 동네 초등학교가 한명의 어린이가 부족해서 폐교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것이 자연현상입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그쳤습니다. 이제는 3명인 자녀를 둔 부모를 야만인처럼 바라봅니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의 인구는 삼분의 일이 줄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이 현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눈을 크고 넓게 뜨고 깊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이 현실이 하나님의 원대한 세상을 향하신 뜻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행위라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교들도 이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은 잘 지켜왔습니다. 세계 어디에서 살든 유대인으로서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의 자녀들도 그렇게 전통을 유지시키며 살아가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투자도 많이 하여 정치에, 학문에, 문화에 돈을 쏟아 붙습니다. 그 결과 오늘 노벨상은 유대계가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유대인들도 확장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약속으로 그를 고향땅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유대인들은 이 충만 하라는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구가 500만 명인데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존재마저 어려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아랍의 포위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축소로 국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도 처음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땅속에 숨어서 400년씩이나 눈물겹게 인내하면서 살았습니다. 투자도 많이 했습니다. 세계에 선교사를 보내 전도를 많이 하고 있고 자선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 아이티 나라 지진 때 한국 기독교는 150억 원의 헌금을 해서 구호금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2대종교에서는 겨우 10억 원 정도의 구호금을 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도 확장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 그리고 땅에 충만한 것인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이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수고도 투자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세상에서 유대교나 기독교가 자꾸만 축소되고 있는 것입니다. 좀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 하나님의 이 창조의 원리들을 무시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세상에는 이 원리에 가장 충실한 종교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이슬람입니다. 우선 이슬람은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는 국가, , 학교가 이슬람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낳자마자 회교도가 됩니다. 거기서 이탈하면 죽습니다. 여인들은 이슬람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머리에 차도르를 두르고 남자들은 머리에 터번을 쓰고 다닙니다. 또 오일머니로 무작위로 세상에 투자를 합니다. 그리고 확장하기 위해서 아이를 계속해서 낳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일입니다. 카다피라는 리비아 대통령이 장차 이슬람이 유럽을 정복할 날이 올 것이라고 장담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총도 아니고 테러도 아니고 무슬림의 인구증가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장담하였습니다. 현재 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아랍인은 5,200만 명인데 앞으로 20년 후가 되면 1 4천만 명으로 증가하여 자연스럽게 유럽을 점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때 터키 군이 참전하므로서 이슬람이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70년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노동자를 보내주는 대신 한남동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게 해 달라는 조건을 받아 줌으로서 이 땅에 이슬람이 들어왔는데 오늘 우리나라에 와 있는 아랍 노동자들 중 10명중 1명은 이슬람이 파송한 선교사들입니다. 시대를 멀리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렇게 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 세상은 이교도들로 가득 차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결과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시야를 넓게 해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시야를 작게 보면 나와 우리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눈을 크게 더 멀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눈으로 나를 보고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고 더 멀리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뜻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는 오늘 주일만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이나 판단이나 뜻이나 안목에도 제자다움이 이어야 합니다. 그 시대를 더 넓게 보며 내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때 나를 극복하게 되고 더 높은 차원의 하나님의 뜻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책임감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책임감을 알아야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세우신 세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존중하고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제자들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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