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목회
목 차
Ⅰ. 서 론 ............................................... 1
A.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 1
B.연구방법 및 범위 ....................................... 2
Ⅱ. 목회의 의미 ............................................... 5
A.목회의 정의 ............................................ 5
B.목회의 치유기능 ........................................ 6
Ⅲ. 질병과 치유에 대한 이해 ................................... 8
A. 질병에 대한 이해 ...................................... 8
1. 질병의 개념 ......................................... 8
2. 질병의 원인 ......................................... 10
a. 일반적 원인 ....................................... 10
b. 성서적 기원 ...................................... 12
B.치유에 대한 이해 ...................................... 14
1. 치유에 대한 어원적 고찰 ............................ 14
a. 히브리어 ......................................... 14
b. 헬라어 ........................................... 16
2. 치유의 의미 ........................................ 18
Ⅳ. 치유 공동체로서의 교회 .................................. 22
A. 치유사역의 성서적 고찰 ............................... 22
1. 구약성서에서의 치유 ................................ 22
a. 예방적 측면 ...................................... 22
b. 치유적 측면 ...................................... 23
2. 신약성서에서의 치유 ................................ 25
1) 예수의 인간이해 .................................. 26
2) 예수의 치유동기 .................................. 28
3) 치유방법 ......................................... 30
B. 치유의 방법 .......................................... 37
1. 성서적 치유 ........................................ 39
a. 기도를 통한 치유 ................................. 39
b. 안수를 통한 치유 ................................. 41
c. 믿음을 통한 치유 ................................. 42
d. 예배를 통한 치유 ................................ 44
e. 고백을 통한 치유 ................................. 47
2. 일반적 치유 ........................................
a. 상담을 통한 치유 .................................
b. 팀사역을 통한 치유 ...............................
Ⅴ. 치유목회와 교회성장 .....................................
A. 교회성장의 필연성 ....................................
B. 교회성장의 정의 ......................................
C. 치유사역의 결과 ......................................
1. 치유와 구원과의 관계성 .............................
2. 치유을 통한 교회성장 ...............................
a. 내적성장 .........................................
b. 팽창성장 .........................................
c. 확장성장 .........................................
d. 선교성장 .........................................
Ⅵ. 결론......................................................
참 고 문 헌 ..................................................
Ⅰ. 서 론
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하나님께서는 인생과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심히 좋아다고 했다(창1:31). 이것은 인간의 건강상태를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이는 인간 자신의 구성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었을 뿐만아니라,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나아가 인간과 하나님과의 조화적 상태를 가졌다. 그러나 타락과 함께 창조된 원형으로써의 본래의 형상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인간은 완전한 건강과 조화를 지녔으나, 그것을 상실한 후에 질병과 고통이 찾아오게 되었다. 인간이 지녔던 하나님의 형상은 육체적, 영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의미하였으나, 그것이 파괴되고 왜곡되고 상실된 것이 바로 병든 인간의 모습이다.
이런 병든 인간이 모여 사는 가정이 병들고, 교회도 병들고, 사회도 병들고 있다. 또한 병든 인간이 사는 자연도 병들고 있다. 이 상처투성이의 인간들을 누가 어떻게 돌보아야 되는가? 목회가 “인간의 삶을 돌보는 것”이라고 병든 인간, 병든 가정, 병든 사회, 병든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병든 인간에게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목회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인간 치유에 대한 관심을 소홀이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이 이땅위에서 행하신 사역은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이라고 할 수가 있다. 즉 예수님의 목회는 치유이시며, 관심이며 사랑이었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게 하셨다(마10:1).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주셨던 그 명령은 오늘날 치유자로서의 목사의 일과 불가분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치유목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치유목회란 전인(Total Person)과 환경(Environment)전체에 대한 치유를 의미한다. 또한 치유목회란 질병으로부터의 완치를 목적하지 않는다. 회복을 위한 목회가 치유목회이다. 치유는 복음서의 중심 교리이다. 예수의 목회를 가르치심(teaching)과 전파하심(preaching)과 치유(healing)로 분류하려고 한다. 그러나 설교와 교육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치유가 목적이다. 치유를 위한 설교(Preaching for Healing)가 되어야 하고, 치유를 위한 교육(Teaching for Healing)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병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병을 미워하셨고 병자를 사랑하셨다. 이처럼 예수의 목회는 치유목회였다.
그런데 이러한 치유목회가 현대에 와서 많이 약화된 면을 볼 수가 있다. 성결교회에서는 초기에 4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조하면서 신유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지만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신유의 역사는 점점 약회되어 가고 있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초대교회의 치유사역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치료하여 교회의 성장을 가져온 것 처럼 지금도 살아계셔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다양한 치유방법을 통해 나타나야함을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이런 능력있는 치유사역이 한국교회 뿐만아니라 선교현장에서 이루어질 때 병든 영혼과 몸이 치료받고 소생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온전하게 될 때 교회은 더욱 힘있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필자는 본 논고에 임하고자 한다.
B. 연구방법 및 범위
본 논문은 오늘날의 현대목회가 인간의 영적인 치유만이 아닌 모든 질병으로 부터의 전인적인 치유 목회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그것이 교회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점에서 연구되어질 것이다.
본 논문의 이론적인 배경은 목회학적인 측면과 성경적, 역사적 접근 방식을 통해서 치유목회의 필연성을 찾고 각종 치유방법을 제시하여 실질목회에 도움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문헌 연구방법에 의한 이론적 접근 방법을 시도하고자 한다. 여기엔 치유와 교회성장에 관련된 국내외 서적 및 출판된 간행물을 통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헌연구를 통한 접근 방법이라는 제한점을 가지고 있기에 치유사역의 실질 부분을 자세히 다루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본장은 전부 6장으로 구성된다. 제1장에서는 문제제기를 다루면서 치유목회란 무엇인가를 켈시의 치유와 기독교」교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며 , 문헌적 연구방법을 통한 각 장의 연구 범위와 주요 Text를 통한 연구 방법을 밝히고져 한다.
제2장에서는 목회의 의미에서 김득용의 「현대목회 실천론 신강」과 힐트너의 「목회신학원론」를 통해 목회의 정의와 목회의 치유기능을 알아보고자 한다.
제3장에서는 질병과 치유에 대한 이해를 하고자 질병과 치유에 대한 개념 및 언어적 고찰을 하고, 치유의 어원적 의미를 켈시의 「치유와 기독교」를 통해 알아본다. 또한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치유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스텐저의 「위대한 의사 예수」를 통해 치유의 의미를 살펴본다.
제4장에서는 치유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알아보고자 한다. 여기엔 치유사역의 성서적 내용을 통해 예방적 측면과 치유적 측면을 살펴본다. 예수의 치유사역은 마틴의 「예수님의 치유」와 정소영의 “상담자로서의 교사”를 들 수 있다. 또한 각가지의 치유 방법으로 맥너트의 「치유의 능력」과 「치유를 위한 기도」 및 존 터너의 「치유하는 교회」, 피터 와그너의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이 주요 교재로 사용될 것이다.
제5장에서는 먼저 교회성장의 필연성과 정의를 밝히는데 방지형의 「교회성장학」과 치유목회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교회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피터 와그너의 다양한 교재와 존 윔버의 「제3의 물결을 타고」, 「능력치유」, 「능력전도」가 사용될 것이다.
제6장에서는 본 논문을 요약하고 제언으로 앞으로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목회의 방향과 치유목회의 필연성을 제시하면서 치유목회가 바로 이루어질 때 바른 교회성장이 이루어짐을 밝히고자 한다.
Ⅱ. 목회의 의미
A. 목회의 정의
목회는 교회에 봉사하는 일로서 목회자가 실행하는 모든 행위를 가르킨다. 즉 설교, 성례전, 집행, 교회의 관리 운영, 평신도 지도, 교육의 모든 것을 망라한다. 이러한 목회에 대하여 개인 영혼의 성장과 발달, 치유, 구원을 중요시하고 이에 대하여 특별한 배려를 강조하는 관점이 있다. 이것은 “영혼을 돌보심”이라고 한다. 특히 이러한 목회는 근대에 이르러 두드러졌지만 근원은 이미 예수의 목양자로서 목회자의 이미지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영혼)을 돌보는 일은 각 시대를 통하여 목회의 불가결한 요소로 계승되었다.
목사(pastor)라는 용어는 “보호한다”(to protect)는 의미의 어원에서 연원된 헬라어 poimen의 해석인데 이것은 바로 목자(shepherd)를 의미한다. 또한 목사란 용어는 to protect의 의미를 지닌 라틴어 pastores에서 푸른 풀을 연상시키는 초장(pasture)에서 유래됐다.
목사 칭호는 신약에 한번 기록되었으나(엡4:11) 목자의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목자란 용어는 신약성경 중에는 18회나 사용되었고 구약성경에는 64회나 사용되어 신구약 성경을 통해 볼 때 82회나 목자란 용어가 쓰여졌다.
목회는 인간의 영혼을 돌보아 주는 일이다. 그런데 목회가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영혼은 인간 속에 있는 영적인 것 뿐만 아니라 성서가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마련인 몸과 영혼과 정신이 하나가 된 인격적인 전인으로서의 영혼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있는 존재라는 인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목회는 하나님을 위한 전인의 성화를 과제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는 일방적으로 인간을 돌보아 주는 일로 끝나버릴 수는 없다. 개인을 돌보는 일, 즉 영혼을 돌보아 주는 일 뿐만 아니라 개인을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 들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런 점에서 목회는 개인의 죄를 용서함받게 하고, 병을 고치며, 사회와 가정을 돌보는 삶 전체를 보살피는 일이라 볼 수 있다.
B. 목회의 치유기능
목회의 기능은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각 시대마다 문화적,심리적, 종교적, 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면서 그 기능이 결정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목회의 기능을 네가지로 볼 수 있다.
치유적 기능은 전인적인 회복과 앞으로의 인도상 손상되는 어떤 것도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목회적 치유는 단순히 성취시키고자 하는 것의 손상이 있기전, 지배되어 있었던 환경을 단순히 회복시키는것이 아니라 진전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병이나기 전의 상태나 조건보다 더 낫은 상태로의 회복 이상을 뜻하는 것이다.
힐트너(Seward Hiltner)도 치유를 결함, 왜곡, 침해, 결심등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쳐서 전보다 더 발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본다. 치유는 손상되고 파괴된 인간들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 가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전 상태보다 차원이 높은 영적 통찰력과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라볼 수 있다.
치유한다는 말은 “온전하게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온전은 재 생성과 같은 말이다. 치유는 손상된 어떤 기능이 완전히 작용하도록 원상 회복시켜 주는 것이며, 방향이나 Schedule의 기능적인 손상을 입었던 것의 완전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목회에서의 치유는 정신적인 것 뿐만 아니라 육체적, 영적인 모든 면에서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힐트너는 치유 목회를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1) 치유목회는 환자의 병(Impairment)을 시인하고, 수용하고, 이해함과 동시에 환자의 감정에 동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는 환자 자신이 자신의 병과 그 병으로 인한 제한성을 수용하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2) 치유목회는 전인적인 회복에 초점을 두어 육체의 치유와 더불어서 생의 재발견, 인격의 재체제화,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지향해야 하며 목회자는 전인적인 관심하에서 목회한다. 3) 그러므로 치유목회는 종교적 깊이의 차원에서 시작하여 종교적인 회복으로 종결되는 목회이다.
결국 목회에서의 치유기능은 손상된 기능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요 본래의 모습으로 온전케 하는 목회요 더 낫은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유기능은 단지 질병으로부터의 회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치유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Ⅲ. 질병과 치유에 대한 이해
A. 질병에 대한 이해
1. 질병의 개념
우리는 보통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생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이것을 병으로 보는데, 실은 육체적 이외에 정신적, 영적으로도 정상적이지 못한 기능의 장애가 있으면 역시 병에 걸린 상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건강하다고 하면 영과 육의 생명활동이 아주 정상적인 최고의 상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을 뜻하나, 질병은 이와 반대로 최저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질병의 개념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자세히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첫째로, 신체적 측면에서는 “ 일반적으로는 건강상태로 부터의 이탈이고 구체적으로는 특수한 증후, 증상을 수반하는 비정상적인 생의 과정”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생리적 상태에서 병리적 상태로 타락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즉 타락되어서 몸의 정상기능을 감당할 수 없어서 비생동적이고 비활동적으로 되어진 상태를 뜻한다.
둘째로, 정신적 측면에서는 질병의 개념을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 즉 평온이 깨어진 상태로 본다. 이명수는 “질병이란 평안함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평안함이 결여되었다고 함은 다분히 정신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써 불안, 근심, 공포, 분개, 분노, 증오, 시기, 적개심, 죄책감, 질투, 절망, 불행감, 억압감 등에 휘말리어 적절한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지 못하여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사로 잡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째, 영적인 측면에서는 질병의 개념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의 관계가 단절되고 분리된 상태, 즉 영이 죽은 상태를 말한다(창2:17). 이는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악령의 지배로 인해 정욕대로 살아가는 상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측면에서 질병의 개념을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자연환경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무질서와 불의, 불신이 싹트는 사회의 상태” 라고 하며 이러한 사회의 병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결핍으로 온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여러가지 측면을 볼 때 “질병이란 인간 구성 요소인 영, 정신, 몸의 부조화, 또는 분열을 일으킨 상태이며 자아와 인간, 인간과 환경, 인간과 신 사이에 부조화, 부조리, 분열, 또는 소외를 일으킨 상태” 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육체적으로는 몸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요, 정신적으로는 마음에 평안이 없는 상태요,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말하고 사회적으로는 상호간의 부조화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2. 질병의 원인
a. 일반적 원인
일반적으로 질병이란 여러가지 증후와 증상을 가지고 나타나며 그 발병의 원인 또한 다양하다.
폴 튜니어(Paul Tournier)는 질병의 원인을 삶의 자세, 그릇된 식이요법, 폭주, 과로, 문란한 성생활, 도덕적 가책등이 수년간 쌓여서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활력을 상실할 때 나타나는 것이며 인간의 죄성과 타락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게리 콜린스(Gery R Collins)는 질병원인을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병을 전염시키는 식물이나 동물과의 접촉, 영양이 적은 음식물, 운동이나 체력관리의 부족, 상처, 유전적 결함, 해로운 물질(마취제나 독약 같은 것)의 섭취, 신체기관의 노쇠나 약화, 아주 뜨겁거나 차가운 것과의 접촉등으로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프랜시스 맥너트(Francis MacNutt)는 질병 그 자체는 악이며, 저주라고 보았다. 질병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질병은 구속되지 못한 인간 상황에 내려진 저주의 일부분으로 보았다. 그리고 질병은 병든 관계에서 살기때문에 생긴다고 하였다.
오랄 로버츠(Oral Robert)는 질병의 원인을 인간의 조직체들이 정상상태에서 부조화상태, 무질서상태로 되어 고장이 난 것이라고 보았다. 여러 학자들이 이야기한 이러한 질병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네가지로 분류하여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삶의 잘못으로 오는 원인이다. 대부분의 육체적 질병은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질서의 파괴와 잘못된 삶의 방법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복종하기는 커녕 배반하기 때문에 질병이 걸리게 된다고 본다.
둘째는 평형파괴로 오는 원인을 들수 있다. 물리적 요인은 영적 요소에 원인이 될 수 있고 영적 요소가 물리적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심적요인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유기체내에 각 요소는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요소가 영향을 받으면 그것이 다른 요소에 양향을 미치게 되므로 바로 그러한 순간에 균형이 깨어지고 평형상태가 파괴되어 질병을 가져오게 된다고 본다.
세째로 죄악으로부터 온다고 볼 수 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타락했고 그로인해 영적인 단절과 더불어 정신적이고 육적인 질병이 죄로부터 온다고 본다. 죄로인해 결국 전체적인 질병이 왔다는 것이다.
네째로 공동체 안의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므로 인해 질병이 온다는 환경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b. 성서적 기원
질병은 육체의 건강이 상실된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성서는 정신적, 심리적인 원인과 육체적인 원인 외에도 질병을 죄와 사탄과의 관련성과 하나님의 섭리로 넓은 의미로 보고 있다.
성서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첫째로 죄의 결과로 말하고 있다(신28:20-22,대하26:19,막2:5). 투르나이젠은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배반하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게 된다고 보았다 김?윤은 인간의 병과 고통, 신체의 상처와 악기능, 마음의 불안, 질투, 미움, 무가치함, 걱정, 두려움등의 감정, 영성과 도덕성에 있어서의 무질서와 왜곡 소외, 착취, 분열, 투쟁, 전쟁 등이 있는데 이러한 질병들은 죄의 결과라고 했다. 스테픈 힐(Steppen Hill)도 병의 원인을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병이 생겼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성서에도 보면 알수 있듯이 민수기 12장에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하다 병에 걸렸고 죄를 품었다가 질병에 걸린 자가 성경속에 많이 나타난다(대상16:22, 롬13:1-2,행9:1-8,고전11:29-32). 특히 민수기 12장과 민21:1-9,신28장에는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병이 발생케 됨을 볼 수가 있다.
둘째로 질병의 원인을 하나님의 섭리로 오는 경우다. 그 예로 욥의 병을 들수 있다(욥2:7). 욥의 병은 본인의 죄와 무관하게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 찾아온 질병이다.
세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질병이 오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신유의 기적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요9:1-3,11:15).
네째로 인간의 부주위로 온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라고 하다라도 인간의 부주의로 인하여 질병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건강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딤후2:22).
이상에서 살펴본 결과 질병의 원인은 제일차적 원인은 영적 요인으로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인 죄로부터 비롯된다. 아담이 죄를 짓기전에는 에덴동산에 질병이 없었다. 그러나 사탄으로 인한 죄라는 통로를 통해서 질병이 오게 되었고 오늘날도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 질병이 있는 것이다. 요즘 죽음의 병이라 불리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도 죄를 지으므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질병의 원인에 죄로 말미암아 오지 않는 경우는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약5:11),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고후12:7-8) 찾아오는 경우 등이 있다.
B.치유에 대한 이해
1. 치유에 대한 어원적 고찰
a. 히브리어
구약에서 명사로 치료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두개가 있는데 아룩하(arukhah)와 말페(marpe) 이다. 아룩하는 예레미야 8장 22절, 30장 17절, 33장 6절에 사용되고 있는데 이런단어의 뜻은 ‘건강을 회복하다’는 의미에서 치료, 고침, 회복, 원상복구, 완쾌, 간척, 권리회복, 승소, 병이 차차 나아감, 회복기의 뜻이 있으며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인 의미로 ‘온전함’의 뜻이 있다.
말페는 예례미아 14:19, 역대하21:18에서 ‘치료, 고침’으로 사용되고 있고 원기회복이라는 뜻이 있는데 잠언4:22에는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와 12장 18절의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가 바로 그런 예이다. 말페 (marpe)의 본래 의미는 ‘치료(법), 즉 문자적으로 ‘약’,혹은 (추상명사)‘치료’, 상징적으로 ‘구출, 평온, 치유, 완쾌, 치료, 구제법, 교정법, 건강, 건전, 건강상태, 위생, 평정, 부드러움, 온화함, 냉정, 침착’ 등의 의미가 있다.
또 구약성서에서 동사로서의 치유하는 의미의 단어는 할람(halram), 라파(rapha) 그리고 명사 아룩하(arukhah)와 함께 삼마(samah)가 사용되고 있다. 할람은 ‘회복케 하다’로 이사야 38장16절에 사용되고 있는 데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견고하게 묶다’, 함축적 의미로 ‘뚱뚱하게 되다’. 또 상징적으로 ‘꿈꾸다, 꿈에 생각하다, 몽상하다, 강하게 되다’라는 의미가 있다. 때에 따라서 ‘강하게 만들다, 힘세게 하다, 치료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삼마는 이사야58:8에 ‘치료하다’로 사용되는데 이 단어의 문자적, 상징적 의미는 ‘싹이 트다,(열매를)맺다, 산출하다, 자라다, 나오다, 솟아나다, 솟아나오게 하다, 자식이 생기다’ 등의 의미가 있다.동사 단어중 라파가 가장 많이 성서에서 사용되어지는데 이것을 세분해 보면 ‘상처를 고치다, 치료하다(창22:17, 욥5:18), 하나님이 치료하다,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다(대하7:15, 시30:3), 수선되다(렘19:1), 위로하다(렘8:11, 겔34:4), 치료받다(레13:37, 사54:5), 자신이 고침받게 하다’(왕하8:29) 등이다.
b. 헬라어
신약 성경에서는 병고침이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가르키는 일반적인 단어에 특수한 그리스도교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이 단어들은 ιαομαι(이아오마이), θεραπευω(데라퓨우오), υγιαινω(휘기아이노), σωζω(소조), 복합어인 διασωζω(디아소조)등이 있는데 이 단어들이 기본적인 단어들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서 동사형으로 제시된 네 단어들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ιαομαι(이아오마이) : 병을 고치다를 의미하는 단어로 희랍어 용법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의학적인 용어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언어에서 그러한 단어들 처럼, 그 단어는 도덕적인 상처나 질병의 치료에까지 그 용법이 확장될 수 있었다. 실제로 희랍어만을 생각할 경우에 이 단어는 이고적인 용법에서 특수하게 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죄 그 자체는 질병으로 알려진 또하나의 별개의 독특한 조건(육체적 또는 정신적)을 유발시키는 하나의 분리된 별개의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질병으로 파악된다.
θεραπευω(데라퓨오) : 영어 단어의 Therapy의 어원이 되는 단어로 의료적 처치나 치유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흔한 단어이다. 원래의 의미는 신들을 섬기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종류의 돌봄이나 섬김을 제공하는 것이다. 차용에 의해서 이 단어는 치료하다, 회복시키다, 병을 고치다를 의미 한다.
υγιαινω(휘기아이노) : 좋은 건강상태에 있다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건강의 여러 히게이아의 이름에서 기원하였으며, 영어 단어 hygiene는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는 몸이나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일들의 건강한 또는 건전한 상태를 언급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 단어는 희랍의 의료용어에서 기본적인 단어이다.
σωζω(소조) : 보존하다, 상하지 않게 지키다, 구제하다, 죽음으로부터 구언하다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고전 희랍어에서 의료적인 의미를 비롯하여 다양한 의미들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치료의 의미를, 한 사람을 질병이나 죽음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의미로 전달해 주었다. 희랍의 개념 가운데서는 몸을 구원하는 것이 중도에 전 존재의 구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단어는 의미상으로 완전한 구원의 개념과 연결된다. 이 단어로부터 신학적인 용어인 구원론(Soteriology)이라는 말이 유래한다.
복합어인 διασωζω(디아소조) : 위험을 뚫고 안전하게 가져오다, 또는 위험을 헤치고 보존하다를 의미하며, 그 의미나 용법에 있어서 유사하다. 이러한 단어들은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와 후대의 다른 사람들의 사역에서 치료가 발생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에 사용된다.
2. 치유의 의미
성서에서는 치유는 구속적인 은혜와 그 은혜의 표현이다. 엘륜는 “치유란 언제나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이다.”라고 말했다. 치유는 인간의 본래적 상태로의 원형적 회복이다. 원형적 회복이란, 원초적 상태로의 구조적 회복이 아니라 더욱 발전된 상태로의 성장적 회복이다. 그러므로 치유란 단순하게 어떤 질병의 제거나 질병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 한차원의 높은 단계로 상승한다는 것은 치유를 단순하게 신체적 영역에다가 국한 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치유목회에 오랜 세월 동안 종사해 온 버나드 마틴(Bernard Martin)도 치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치유란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격의 완전한 성숙을 저해하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속막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동안 의료선교에 종사해 온 버스커크(Buskirk)는 “치유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자연적인 치유의 능력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또한 에벨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은 치유란 인간성을 회복시켜 다시금 하나님께 원하시는 모습을 갖추게 함으로써 원래의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 성결교회에서 부르짖는 신유(Divine Healing)도 치유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자가 하나님의 보호로 항상 건강중에 지내는 것과 또는 병들 땡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음을 얻은 것을 가리킴이니 이 은사는 우리 육신을 안전케 하는 복음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모든 신자에게 이적이 따를 것을 언명하였으니(막16:17-18) 병 낫기 위하여 기도한다든지 안수하는 일은 당연한 특권이다. 그러나 신유를 믿는다 하여 의약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호칭은 다르지만 모든 치유의 원천은 하나님이다. 모든 치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며, 투약이나 휴식, 도는 의사나 심리요법이 치유의 원천은 아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유일하고도 독자적인 치유방법은 없으며, 모든 정당한 방법들은 동원될 수 있다고 본다. ?금도 하나님은 무수한 방법들을 통해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전인적인 측면에서 존 윔버(John Wimber)와 케빈스프링거(Kevin Springer)는 치유의 영역을 다섯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영의 치유(healing of the spirit)는 죄로인해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과거에 입은 마음의 상처의 치유(healing of the effects of past hurts)는 흔히 “내적치유”(inner healing)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과거에 손상된 감정이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기억 그 자체는 치유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입은 마음의 상처나 감정의 억압으로부터 오는 후유증들 - 죄책감, 수치감, 좌절감 등 - 은 치유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내적치유는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게 저해하고 있는 정신생활의 영역들에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적용하는 것이다.
세째,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치유(healing of the demonized and mentel illness)이다. 어떤 사람의 존재와 삶 속에서 귀신이 활동하거나 악한 영에 의한 외부적인 영향이든, 혹은 내적인 감정상의 혼란이든 간에, 이들은 모두 질병을 야기할 수 있으며 치유를 필요로 한다.
네째,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healing of the body)는 사고 등으로 인해 손상된 신체 부위, 또는 병균의 감염으로 인한 질병 따위를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또한 신경성 대장염이나 근육수축성 두통과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것 같으나 본인에게는 심각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질병들의 치유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치유는 질병상태를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다섯째,죽어가는 사람, 또는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치유(healing of the dying and the dead)는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굳센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 그리고 드문 경우이기는 하나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을 말한다(요11:44,행9:40). 죽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려고 한다. 그것은 “그 은혜을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엡2:8-9)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나타난 허물 때문에 구원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하고 죽음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하며 받아들일려고 하지 않는다. 그때 목회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줌으로 죽음에 대한 염려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고전15:2) 희망으로서의 부활이 있고, 죽음은 모든 인간에 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목회자는 그가 죽음을 기쁨으로 순응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때 목회자는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위로와 용기라는 선물을 주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사실과 천국의 확신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 죽은후 남아있는 친구나 친척들에 대한 사역으로 이어져야 한다. 죽은 사람의 친지들은 그사람 생전에 자기들이 잘 못한 일이나 소홀이 했던 일들로 인한 가책으로 괴로와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목회자의 치유사역이라 볼 수 있다.
이명수는 하나 더 첨가하여 사회적 측면에서의 치유를 “사랑과 진리와 정의로 자유와 평화가 실현되며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건강한 사람들이 진리안에 자유하고 질서와 조화를 이룬 온전한 사회적 건강을 이루게 되는 것” 으로 보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질병의 개념과 원인을 일반적 요인과 성서적 측면을 통해서 볼 때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 요인등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치유도 역시 질병의 원인에 맞게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볼 수 있었고, 각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 상태에서 치유가 되어야 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치유를 하는데 전제조건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창1:26)라는 사실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치유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치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최상의 정상적인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인간의 전인적인 건강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치유는 인간의 완전하고도 건강한 삶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치유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존재로 성숙해 가는 일을 가능케 해 준다.
IV. 치유 공동체로서의 교회
A. 치유사역의 성서적 고찰
1. 구약성서에서의 치유
구약성서에는 치유사역이 많지는 않으나 그 내용을 살펴 구분하여 보면 하나님이 직접 하신 경우도 있고 선지자나 제사장을 통하여 치유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곧 예방의 가르침과 또 하나는 질병을 낫게하는 방법이다.
a. 예방적 측면
질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가 택하신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셨다. 모세를 통하여 장티프스, 이질, 콜레라 등의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배설물 처리를 그의 백성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다(신23:12-13). 제사장들을 통하여 문둥병, 매독, 흑사병을 살피고 그러한 환자를 격리 수용하여 개인적인 접촉을 금지하게 하는 일을 종사하게 하였는데(레13:4) 이것은 병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된 표시로서 남아가 출산하면 반드시 할례의식을 하였다(창17:10). 이것이 부인병에 효과가 있다고 본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술에 관하여 경고하며 술취함이 많은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잠23:19-21). 오늘날도 술은 정신질환과 내장의 손상은 말할 것 없고, 많은 사고의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대로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나 모세와 같은 지도자나 특정한 사람들을 통하여 건강을 위한 예방법을 가르쳤다. 하나님은 질병을 예방하는 조건에 두가지의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출20:8; 레25장). 즉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면 ......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며”(신7:12-16), “나의 모든 명령과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할찐대 ......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레26:14-16)라고 말씀하시므로 말씀순종의 전체성을 강조하신다. 또 하나는 말씀을 지키면서 자기를 관리(self-care)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생에 관한 법(출29:14), 청결에 관한 법(출15장), 격리에 관한 법(민5:1-14), 식이요법에 관한법(레11장), 절제에 관한 법(민6장)등을 통해 자신을 잘 관리하므로 질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모든 질병을 미리 예방케 하는 말씀순종과 자기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b. 치유적 측면
성서적으로 볼때 최초의 치유라는 낱말이 사용되기는 창세기 20장 17-18절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치유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하시든가 아니면 택하신 지도자들이나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을 통하여 진행되어 졌다.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되어 숲속에 숨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를 배신한 인간을 그 숨은 곳으로 부터 잡아 낸 것이 아니고 그를 찾으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게 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사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여실히 볼 수가 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단절 되었던 관계를 하나님이 다시 찾아옴으로서 해결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치유이며 치유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창2-3장).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들으셔서 질병을 치유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여종이 치유받았고(창20:17-18), 모세의 기도로 미리암의 문둥병이 치료되었고(민12:1-15), 아론의 기도로 이스라엘의 염병이 그쳤다(민16:41-50). 엘리야의 기도로 죽은아이가 살아났으며(왕상17:17-24), 욥의 기도로 악창이 치료되었으며(욥42:10), 히스기야의 기도로 그의 생명이 연장되었다(왕하20:5).
그 외에도 치료된 몇가지 사실이 있다. 제사장인 비느하스가 간음한 자의 배를 꿰뚫어서 죽이니 이스라엘 자손의 염병이 치유되었고(민25:6-9), 사울왕이 악신에 시달리며 괴로워 할 때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연주하였을 때 치유케 된 것이다(삼상16:14-23).
구약성서의 치유사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이다. 치유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구약성서에서의 치유는 하나님의 궁휼과 사랑과 용서하심이 나타나 있는 뚜렷한 징표였던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역사를 통하여 면면이 흐르는 있는 사랑인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치유하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분은 반드시 선지자들이나 제사장들을 통하여 기적과 치유의 사역을 했고 여기에서 치유이적들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표적들이요 부르심에 대한 신임장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과 제사장이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인도하면서 아울러 치유목회에도 깊은 관여를 하였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지금도 목회자들이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병자들을 돌보며 위로해야 하는 근거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2. 신약성서에서의 치유
신약성서에서는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에 의하여 많은 치유의 이적이 나타났으며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a. 예수의 치유사역
켈시(Morton T. Kelsey)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복음서 내용의 5분의 1정도의 분량이 예수의 치유사역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네 복음서의 3,781절중 468절을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기술하는데 사용하였다. 여기에 추가해서 165절이 영원한 생명을 다루고 31개의 일반적인 언급이 치유를 포함한 이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분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비중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서 기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예수의 치유사역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병자를 치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에서 뚜렷하게 두드러진 부분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은 단지 치유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에게 능력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실질적으로 보여주어 그들의 영혼까지 구원하는 복음전파 사역을 하였다(눅11:20).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의 본을 이어받아 당연히 치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1) 예수의 인간이해
예수는 인간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첫째로 예수는 인간을 피조물 중에 가장 소중한 존재로 보았다(창1:26).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에 얼마나 인간을 중요시하셨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의 지상사역의 촛점은 사람이었다. 마가복음 5:1-13의 일화를 보면 거라사 지방에서 고랑과 쇠사슬에 묶인체로 공동묘지에 버려져 스스로 제 몸을 상케하던 한 귀신들린 청년의 야기가 있다. 예수께서는 이 청년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거의 2,000마리의 돼지를 희생시키면서 한 인간의 인격성을 회복시켜 주셨다. 또 안식일이지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고쳐 주심으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종교적 계율보다는 지체의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 훨씬 더 소중하고 값진 일임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는 선한 목자(요10:10)로서 한마리의 양을 찾기위해 해매는 모습과 그 양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귀히 여기시어 개인의 가치를 온 천하와 비교하시면서 생명의 귀중함을 강조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셨던 분이다. 이들 모두를 천하보다 더 값진 생명의 존엄성(막8:36)을 지닌 인격의 주체로 보셨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인간을 ‘전인’으로 보았다. ?체와 영혼을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격체로 인간을 이해하였던 것이다(마9:2, 마9:22, 막8:2). 예수님은 치유사역에서도 육체에 국한시키거나 영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치유하신 사실을 볼 수 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고 말씀하심으로 병의 근원을 죄에 기원하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세째로 예수님은 인간을 고통당하는 존재로 이해하셨다(마11:28-29). 인간이야말로 죄와 질병, 죽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존재이며 이 짐때문에 어쩔수 없이 괴로와 하고 고통당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생각하셨다. 예수의 긍극적인 목표는 바로 인간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를 우리의 고통을 제거하시는 대속자로(사53:5-6, 마8:16-17)예언하였고 주님도 마태복음 11장 28-29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고 하신 것을 볼때 예수님의 선포의 내용속에서 인간을 고통당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증거이다. 박봉랑도 “인간은 죄의 포로속에 있는 인간” 이라는 말로 기독교의 인간관을 소개하면서 “인간은 계속 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적 존재이고 그 죄속에서 질병과 죽움과 공포가 온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같이 예수의 인간이해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귀중히 여기셨고, 전인적인 치유에 관심을 두어 인간들의 죄와 질병과 고통의 짐에서 구원하여 참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치유 사역은 결국 이런 인간 이해가 밑바탕이 된 상황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 예수의 치유동기
예수께서는 인간을 귀한 존재로 뿐만 아니라 전인적이며 고통당하는 존재로 이해하였다. 인간들의 영적,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인 각가지의 질병으로 허덕이고 있는 인간에 대하여 “왜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하셨는가?”에 대하여 몇가지 치유동기를 알아 보자.
첫째, 메시야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야 대망에 대하여 몇 가지 중요한 구절에 따르면, 그가 병자를 치유하실 것이라는 명백한 언급이 있다. 구약성경에서 아마 가장 중요하게 가장 잘 알려진 메시야에 관한 구절은 이사야 53장 4-5절일 것이다. 그 본문은 메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누가에 따르면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친히 인용하셨고(눅4:18-19), 그 날 “이루어졌다고”고 그가 말씀하신 이사야 61장 1-2절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복음서 기자들은 메시야께서 오셨다는 표적으로 치유의 기적을 제시하였다.
둘째, 율법의 올바른 적용을 한 것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줌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심한 반감을 사게 되었다. 예수님 당시에 안식일은 형식주의와 율법주의로 지켜지고 있으므로 올바른 안식의 개념을 실천키 위하여 치유의 사역을 하셨던 것이다.
세째,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서 행하셨다.
나면서 소경된 자에 대한 기사(요9:1-41)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소경을 치유해 주셨다. 예수는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보여주므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길 원하셨다.
네째,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하셨던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에 대한 순전한 사랑이었다. 복음서는 이것을 마태복음9장 36절과 14장 14절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낫게 하셨다”라는 말씀을 알고 있다. 어거스틴(Augusiane)은 능력의 요소를 동정심과 나란히 두었다.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복음서의 전승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치유는 예수께서 단순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육신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서의 산적된 증거의 일부로서 나타난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요5:19, 21) 병자를 치유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섯째,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과 악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그 결박을 풀어서 그의 백성들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시기 원하기에 이런 치유사역을 하셨다. 이런 치유사역이 악에 대한 승리라고 본다면 이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는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였다(마12:28, 눅11:20).
3) 치유방법
예수님의 치유사역의 방법은 언제나 동일하지 않았던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치유방법을 사용하였는가 살펴 보자.
첫째, 손을 내밀어 안수하거나 만지심으로 치유하셨다.
마태복음 8장 1-4절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데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고 하셨고 누가복음 13장 13절에 보면 귀신들려 18년간이나 꼬부라져 펴지 못한 여인에게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고 하였다. 접촉의 방법은 그 반대의 입장도 있었는데 그도 동일한 능력으로 치유가 나타났다. 즉 마태복음 14장 36절에 “무리들이 예수의 옷가에 라도 손을 대개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사람은 다 나음을 얻었다”고 하였다. 또한 열두해의 혈루증 여인(마5:25-34)의 치유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직접 접촉하고나 환자편에서 접촉하는 것을 시도하거나 같은 기적이 일어났고 사도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행3:1-11).
둘째, 말씀과 명령으로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환자와의 전혀 접촉이 없었어도 그의 말씀으로 모든 병이 깨끗하여지기도 하였다. 마태복음 8장 13절에 보면 백부장의 하인이 심한 중풍병으로 고생할 때 환자를 접촉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만 치유케 하신 사실이다. 또한 말씀과 명령은 악령 추방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나사로를 살릴 때(요11:43)와 열명의 문둥병자를 치유해 주셨을 때(눅17:14),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셨을 때(막5:8), 신하의 아들을 멀리서 치유할 때(요4:50) 사용하셨다. 이와같이 예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고 권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세째, 침과 진흙을 사용한 방법이다.
예수의 치유 기사중에서 침을 사용하거나 진흙을 섞어서 사용하였던 것에 관한 세가지 기사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당시에 있어서 침은 치유의 수단으로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을 직접적인 치유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자신의 인격과 권능의 매개체로 사용하셨다. 마가복음에서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에 대한 치유의 기사가 있는데 예수는 그 사람의 양 귀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으시고 에바다 - 열리라 - 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8:23절에 에서 예수는 소경을 치유해 주실 때 이와 동일한 행동을 취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9장 6-7절에 침을 진흙에 섞어서 소경의 눈에 문지르고 소경에게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셨다. 이러한 치료방법이 과연 과학적인 효능이 있는지 논할바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의학적인 치료의 방법을 인정하셨다는 사실이다. 신유는 의학적인 방법을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치유의 원천은 하나님이지만, 그 치유는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
네째, 기도로서 고치셨다.
예수는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시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요11:41-44). 그리고 가나안 여인의 딸에 대한 치유는 그 여인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통한 것이었다(마15:25). 많은 사람들은 예수에게 도움을 청하여 그때마다 자유롭게 치유받았으며 이 여인의 경우에는 그녀 자신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다. 예수께서 귀신 축출에서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9:29)고 하셨다.
다섯째, 당사자의 믿음을 보시고 고치셨다.
예수의 치유에 있어 당사자의 믿음이 유력한 요소로 작용하였던 것들의 여러 실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옷에 손을 댐으로 혈루병을 치유받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다(막5:34). 그리고 그는 두 명의 소경들을 치유해 주실때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9:29). 또한 간질병에 걸린 소년의 아버지에게 질병치유에 있어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어 그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어 치유받았다(막9:23-24).
여섯째, 대화를 통해 고치셨다.
예수는 대화하실 때 그 사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파헤치시고 근접하여 치유하기도 하셨다. 요한복음 4장 3-30절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가장 평범한 대화로 시작하여 그 여자의 심층에 깊은 갈등의 문제에 접하고 결국은 심한 혼돈의 감정을 정돈하여 주면서 자애로운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발견케 하여 주셨고 삶의 새로운 진로를 열어 치유케 하신 사실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살펴 보면 예수의 치유방법은 어떤때는 초월적인 방법과 의학적인 양면성을 곁들여 치유한 사실을 본다. 영적인 병과 현대 의학이 해결할 수 없는 불치의 질환이나 만성적인 병도 말씀, 안수, 기도, 믿음, 침과 흙, 그리고 대화를 통한 다양한 방법으로 치유하셨다.
b. 사도들의 치유사역
예수님은 그에게 오는 병자들을 치유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게 같은 일을 하도록 위임하셨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모든 귀신을 이길 수 있는 권능과 병고치는 특권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를 고치게 하려고 그들을 보내며 ...... 제자들은 나가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가는 곳마다 병을 고쳐 주었다”(눅9:1-2, 6). 치유사역은 열두 제자들이 병을 고치는 권세를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시행하였다.
사도행전에 펼쳐지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치유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기사와 표적이 초대교회의 전형적인 특징이었고 사도들은 병자를 고치는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병의 치유는 처음부터 교회의 특징중 하나였다. 여기서 몇몇 제자들을 통해 행해진 치유사역에 대하알아보자.
1) 베드로
사도행전의 기사에서는 제자들이 주께로부터 부여받은 치유의 기적을 행하신 역사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는 베드로에 의하여 행하여진 치유의 이적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행3:6-7).
사도행전 5장 14-16절에도 보면 베드로에 의하여 위대한 성령의 치유능력이 나타났음을 잘 묘사해 준다. 사도행전 9장 33-35절에 보면 베드로가 룻다에서 애니야를 8년간의 중풍병에서 낫게 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라고 하였고 사도행전 3장 7절에서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강조하고 반신불수 앉은 뱅이를 일으킨 것을 볼 수가 있다. 또 베드로는 죽었던 다비다를 살 릴 때에도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행9:40) 온전히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하는 자세이었다. 이와같이 성령에 의한 치유의 능력으로 베드로는 초대교회 때 치유사역을 하였던 제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 바울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아나니아의 기도에 의해 병 낫는 체험을 하였던 사람이다(행9:15-19). 이런 체험을 가진 바울도 베드로처럼 치유사역을 하였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고 앉은뱅이 된 자를 보고 “큰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행14:10) 그 사람이 뛰어 걷는 역사가 일어났다.
누가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치유목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1-12).
사도행전 마지막 장에서도 바울의 치유목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여졌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며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대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라더라”(행28:8-9).
사도행전 가운데 사도들의 치유사역은 누누히 강조되어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8장 5-8절에서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전할 때 말씀을 듣고 표적을 체험하면서 더러운 귀신이 물러가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많이 일어나는 치유사역을 제하면 거의가 베드로와 사도 바울에 의하여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언제나 사도들은 치유사역을 감당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었으며 자기들은 능력을 전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울에게서 동일한 자세를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행20:9-12,28:7-8). 바울의 경우에서도 손수건이나 앞치마가 큰 효험을 나타내 보이나(행9:12) 능력은 주님께 있으며 이런 매체물은 치유를 나타내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초대교회 치유사역에 관한 사실을 통해 몇가지 결론을 얻을수 있다. 첫째, 치유는 초대교회의 일상적인 사역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에수의 치유사역을 이어받은 것이었으며, 그분의 대전도명령 - 가서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치유하라는 - 을 옮기는 일이었다.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의 권능을 받아 행하였다. 둘째, 초대교회는 치유의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증언했다. 치유는 항상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지곤 했다(행 3:6, 16; 19:11-13). 초대교회의 치유사역에는 언제나 성령이 임하셨으며, 사람들에게 넘치는 기쁨을 가져다 줌은 물론 집단적인 복음전도와 교회성장의 계기가 되곤 했다(행 2:43, 46-47; 3:8; 4:21; 5:14; 8:6-8). 세째, 초대교회의 치유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극적으로 증거하는 일이기도 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가운데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곤 했다. 따라서 그들의 적들조차도 예수를 주님으로 경배하는 새로운 연적인 운동의 거센 물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B. 치유의 방법
출애굽기15장 26절에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그의 자녀들을 치유하신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이므로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치유에는 성경에 나온 치유방법과 일반적인 치유의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스탠리 죤스(E.Stanley Jones)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치유방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① 하나님께서는 외과의사들을 통해 치유하신다. 의학의 역사에는 수술을 통해 치유된 사례가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
② 하나님께서는 내과의사를 통해 치유하신다. 현대 의학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다양한 치료법을 속속 계발해 내고 있다. 그러나 치료법들은 현명하게 사용되어야 하며, 결코 과용되거나 오용되어서는 안된다.
③ 하나님께서는 심리적인 암시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스스로 병들었다고 자기 자신에게 계속해서 암시해 주는 사람은 실제로 병들 수 있다. 한편,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 자신에게 계속해서 암시를 주는 사람은 치료과정이 신속히 진행될 것이다. 병든 사람의 건설적인 정신적.정서적.영적인 자세가 육체적 .심리적인인 치유방법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무수히 많다.
④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진정한 치유의 환경은 병든 사람의 내부에 조성되는 것이므로 외적인 환경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환경에 따라 병든 사람의 건강이 영향을 받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⑤ 하나님은 인간의 내부에서 병을 유발하는 요인들 - 두려움, 고독,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 허무감, 원한, 죄책감 등 - 로부너 자유롭게 하심으로 치유하신다.
⑥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에 직접 성령으로 역사하심으로서 치유하신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고 했다. 인간의 세포나 조직에도 하나님의 영이 치유의 손길로 역사하실 수 있다.
⑦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인 처방-몸의 부활-으로 치유하신다. 어떤 병들은 우리의 몸이 부활할 때까지 그 치유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시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던 사람들의 치유를 연기함으로써 ‘영원한 치유’를 기다리게 하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결국은 치유해 주신다. 한편, 그분께서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참아낼 만큼만의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구원의 때까지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결국 모든 치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며, 치유의 능력은 오직 그분께 속한 것이다. 투약(投藥)이나 휴식, 또는 의사나 심리요법이 치유의 원천은 아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는 분은 한 분 뿐이시다.
그러므로 성서적인 치유든 일반적인 치유든 모든 치유의 원천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1. 성서적 치유
a. 기도를 통한 치유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치어 하나님의권능으로 충만되어 풍요한 생명의 흐름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의 무한한 생명력이 기도자를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 들어 갈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기도는 하나님과 의사 소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구하고, 진심으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열망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하여 언급은 없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깊은 동정심과 권위를 가지고 기도했다.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치유는 대체로 즉석에서 일어나곤 했으나 전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데 마가복음 8장 22-26절에 예수께서 한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두 번씩이나 기도하셔야 했다. 그 사람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고 물으셨다. 이에 그 사람은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이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다시 그 눈에 손을 대시자 그는 “눈이 밝아지고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25절).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치유의 역사가 행하여질 때에는 어떠한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결코 조바심 해서는 안되며, 참을성있게 계속하여야 할것이다.
맥너트(Francis MacNutt)도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 자신의 삶을 통하여 내가 발견한 사실들 가운데 가장 특기할만한 것 가운데 하나는, 짦은 기도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젖어들어가는 기도”, 즉 짧게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드리는 기도가 우리들이 추구하는 치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러번에 걸쳐 나는 짧은 기도를 통해 완전히 치유된 사람들의 수와 상태 및 호전된 사람들의 수를 확인함으로써 기도의 효과에 대하여 검토한바 있다. 나는 짧은 기도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육체적인 효과 “이는 항상 영적인 효과를 수반한다”를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질병이 발생하였을 때, 현대의학으로 정확한 원인과 치료방법을 모르면 기도함으로 치유받는 방법이 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5:15). 응답받을 수 있는 올바른 기도 방법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하셨다(요15:7, 요일5:4, 약4:2-3, 마7:7-8).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병고침을 위하여 치료를 구하는 기도는 항상 허락되어 있으나 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보장은 없다. 주님은 모든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신다. ‘No'의 응답 또한 우리에게 계획된 바를 소상히 잘 알고 계시는 주님의 사랑의 응답인 것이다. 이는 우리 몸의 건강에 우선하는 더 지고한 목적이 존재함을 깨달아야 한다.
치유를 위한 기도의 방법으로는 개인적으로, 즉 일대일로 기도할 수 있으며, 몇사람이 그룹을 만들거나 동료들이 환자를 위해서 서로서로 기도할 수 있으며, 설교와 찬양을 병행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고려될 수 있다. 특히 이중에서 팀을 이루어 모임을 계속 진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방법을 가장 효과적 방법으로 생각한다.
b. 안수를 통한 치유
성경에는 안수(만짐)의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 안수라고 할 때 는 머리에 손을 얹거나 특별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 방식으로 본다. 또한 병든자에게 치료자가 손을 얹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세울 때,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할 때(창48:14), 예수께서 아이들을 축복 할 때(마19:15), 또한 대제사장의 축복기도(마9:22), 예수께서 승천하실때 제자들을 축복하신 것(눅24:50) 등이다. 또한 예수는 병자들을 고치시기 위하여(눅4:40),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기 위하여(막1:41)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아나니아가 바울의 눈을 뜨게 할 때(행9:12-17). 일곱집사를 임명하기 위하여(행6:6) 행해졌다. 바울서신은 주로 임명의 수단으로 언급된다(딤전4:14, 5:22).
맥너트는 “안수 그 자체가 능력을가진 기도” 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말씀의 치유 외에도 접촉만으로도 치유하셨다(마14:35-36). 뉴욕대학에서는 간호원들이 안수할 대 환자들의 회복능력이 증진된다고 하였다.
이상에서 볼 때 성경에서의 안수는 축복과 사명과 치유와 확신과 임명을 위하여 사용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안수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에너지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즉 안수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흐르도록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c. 믿음을 통한 치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라고 성서는 정의 했다. 터너(Turner)는 치유와 관련해서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하고 있다.
첫째,믿음은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은 사고하는 능력이나 사랑하는 능력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다.
둘째, 믿음은 인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는 것을 통하여 살지만 시각을 넘어선 삶의 영역도 있다. 그것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통찰력을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세째,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상의 선물인 은혜를 사람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주기를 꺼려하지 않으시나 사람은 때로 받아들이기를 꺼려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전에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것을 주실 수 있으며, 기꺼이 주시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받고자 손을 내미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받아 들이게 해 준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힐트너(Hiltner)는 “신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믿고, 그것에 주의하면 뚜렷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보다도 더욱 큰 힘으로 그의 곁에서 싸워 주셨고, 현재, 싸우고 계시며, 앞으로 싸워 주실 것을 믿을 때, 영적, 육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 나게 된다.”고 말했다. 마태복음 13장 58절에 “저희가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 하시니라” 곧 믿음이 없이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예수의 목회 사역의 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프란시스 맥넡(Francis MacNutt)은 우리가 치유를 위해 기도해야 할 믿음의 본질을 매우 간결하게 설명하였다. “나의 믿음은 내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라고 말했다.
믿음을 통해 영적인 병과 육적인 병이 동시에 치유 받았고(마8:2, 마8:10, 마9:18, 막5:22, 막7:24-30, 눅7:36-50, 요4:46-54) 또한 영적인 병도 믿음으로 치유받은 사실을 볼 수 있다(행 8:26-39,행16:14). 그러므로 믿음은 전적 신뢰이며, 의사에게 몸을 맡기듯이 확신하는 것이고, 인식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전에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기꺼이 주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 우리의 손을 내밀고 신뢰할 때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치유를 경험하는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d. 예배를 통한 치유
“예배”라는 말에은 “가치를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게 돌린다” 고말하는 뜻이 있다. 터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인들이 모인다는 것은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예배 의식 속에는 누군가에게 어떤 종류의 치유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성도의 교재를 통해 외로움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깨달을 때 과거의 심각한 죄책감이 치유되며,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새로운 희망이 싹터 슬픔이 치유되고, 용서 받았기에 용서할 수 있게 될 때 실망한 영혼이 치유된다. 또한 하나님은 인생의 사소한 일 조차도 처리해 주실만큰 위대함을 깨달을 때 근심이 치유되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가 인식할 때 자기 비하가 치유되고 , 예배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때 돈에 대한 강박관념이 치유된다.
터너는 예배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고 그의 사랑과 지혜와 권능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몰두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에 대하여 더 많이 생각할 수록 더욱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치유를 베푸실 조건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이 말은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함께 모여 어떤 사람이 치유되리라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은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우리는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에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나가는 것이며 모든 조건이 채워지면 치유가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나갈 때 이러한 예배 안에서는 쉽게 하나가 되고 그러한 곳에서는 치유가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터너는 예배를 통한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5단계가 있다고 했다.
1) 육신을 편안히 하고 긴장을 푼다.
2)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기의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기대한다.
3) 두려움,분노,근심, 죄의식에서 자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다.
4) 자신의 원하는 것을 형상화 한다.
5)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한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자세가 준비 될 때 치유는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성찬예식을 통해서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혈관에 수혈되고 그의 살(성찬시에 먹은 떡)이 나의 근육속에 에너지 근원이 되는 확신을 가지고 성찬에 참여할 때 뜨거움을 느끼며,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신비적 연합(Mystical Reconciliation)이 일어난다. 즉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하나님이 나를 향하고 계심을 통해 치유되며, 죄의식에 빠진 사람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선포를 통해 마음 뿐이아니라 영혼과 육체까지 치유되고, 주님이 나를 위해 피 흘리셨다는 것을 확신할 때 자신이 부적합 하다는데서 치유되며, 가장 비참함을 맛보신 주님을 통해 슬픔에 젖은 사람이 치유되고, 주님의 식탁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믿을 때 고독과 외로움에 빠진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배시에 목회자의 일방적이고 단독적인 예배 행위로만 끝나버리고 참여한 회중들과의 감정적 영적 일체감을 가질 수 없다면, 즉 회중의 감동이 없이 다시 말하면 케뮤니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치유의 효과는 그 만큼 축소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예배에 참석한 회중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확인 할 때 그만큼 치유의 효과도 크다고 본다. 사람은 예배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위엄과 그의 사랑과 그의 지혜와 권능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열어 놓고 깨끗함과 치유의 능력을 맛볼수 있는 것이다.
e. 고백을 통한 치유
회개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죄를 발견하고, 나에게서 죄를거두어 가시도록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내어 놓는다는 사실을 본질로 삼는다.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것은 죄의 고백이다. 죄의 고백은 고백자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에 치유의 한 핵심이다. 그?므로 성서 전체는 사죄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는 것이 은혜받을 수 있는 가장 중심적인 행위이며 모든 속박에서 자유하게 되는 첩경인 것을 가르치고 있다(요일1:9, 히8:12, 사44:22, 슥3:4). 또한 “죄를 서로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병나음을 얻으라고 했다(약5:6).
리챠드 메이유(Richard Mayhue)는 “우리의 죄를 서로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가 죄의 무모한 불모의 삶을 살지않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회개하며,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서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질병으로 징게하셔야만 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
뚜나이젠은 “우리가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예배에 참석하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낄 수 있으며 그때에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죄의 속박과 사슬에서 해방된 나의 삶속으로 꿰뚫고 들어오게 된다”고 했다.
시편기자는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으로 내 뼈가 쇠하였나이다”(시32:3-4)고 고백을 하고 있다. 죄를 품고 있을 때는 뼈가 쇠하고 주의 손이 누름을 느끼며 답답한 상태이었으나 “내가 이르기를 허물을 여호와게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를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죄를 사하였나이다”(시32:5-7)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백을 거부하는 한 죄에 갇힌 삶을 살아 갈수 밖에 없다. 죄의 힘으로는 인간을 죄의 결밖에서 건져낼 수 없다. 죄는 본래 숨어 있기를 좋아하며, 폭로되기를 싫어 한다. 만약 죄가 노출되고, 고백되며, 뉘우치게 되면 죄의 운명은 끝난다. 결국 죄를 고백함으로서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고백과 용서는 죄로 인하여 닥치는 심신의 모든 억압에서 풀어줄 뿐만 아니라 깨닫지 못한 행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자신의 질병을 치유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할 때 모든 억압과 무거운 짐에서 용서와 자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f. 은사를 통한 치유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정의하기를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 몸의 모든 지체에게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특별한 속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용하도록 된 것이다.” 치유(신유)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이다(고전12:1-12).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적인 인간의 방법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회복케 하시는 중개자로 봉사하는 역량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신유의 은사는 기적의 은사의 한 특수한 표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두 가지 은사가 따로 따로 언급되어 있으므로 이 은사들을 분리한다. 신유의 은사에는 모든 종류의 인간 질병들이 다 포함되지만 그것은 인간의 특정 질병 하나하나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의 말씀을 보면 “신유(healing)의 은사들(gifts)"이라는 복수형의 말로 되어 있다. 이 복수형의 말은 각종 질병들에 대한 많은 종류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유의 은사를 육체적인 질병들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신유의 은사는 정신적인 병, 정서적인 병, 영적인 병을 고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신유의 은사를 가진 애그니스 샌포드(Agnes Sanford)는 특히 “기억력을 회복시키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루드 카터 스테플린턴(Ruth Carter Stapleton)은 영적인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 신유의 은사에는 많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신유의 은사는 어떤 사람에게 병을 물리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통로에 불과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고치시기를 원하실 때에 그 사람을 통하여 역사를 나타내는 것 이다. 그러기에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조종할 수 없다.
신유은사는 의사나 간호원을 불필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약을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바울은 디모데가 병으로 고생할 때 포도주를 쓰도록 권했다(딤전5:23). 그러므로 의학의 방법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은혜의 사건이다.
그러나 의학의 치유와 신유의 역사로 인한 치유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의술에 의한 치유나 신유에 의한 치유에서도 모두 죽었다. 그러므로 신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늘도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곳이면 신유의 역사는 일어날 수 있다. 신유는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신유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
2. 일반적인 치유
a. 목회상담을 통한 치유
많은 상담이론가들이 자신의 이론을 근거로 상담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했으나 일치되는 한가지 정의는 없다. 예컨대 크룸볼쯔(Krumboltz)는 “상담이란 내담자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여러가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내담자를 도우려고 노력하는 상담자의 모든 윤리적인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패터슨(Patterson)은 상담과 연관이 있으면서도 상담이 “아닌”특성을 구체적으로 열거함으로써 상담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해 주었다. 예를 들어 비록 상담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나 그 자체가 상담이 아니며, 충고나 제언이나 건의를 해 준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상담이 아니며, 설득하거나 알아 듣도록 가르쳐서 태도나 행동 혹은 신념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 상담이 아니며,충고나 제언이나 건의를 해 준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상담이 아니며, 설득하거나 알아 듣도록 가르쳐서 태도나 행동 혹은 신념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 상담이 아니며 상담에 분명 면담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면담 자체가 상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슨(Johnson)은 상담이란 성장하는 책임감과 정서적 이해의 방법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요구에서 생기는 반응적인 관계라고 말한다. 신학사전에서는 상담이란 개인의 내면으로부터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으로서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곧 어떤 개인의 자아가 성장하고 있는 것을 인시한다는 데에 상담의 근거가 있다.
여러 학자들은 여러 형태로 상담에 대한 정의를 말했지만 여기에 대해 정소영교수는 상담에 대해 정의하기를 상담은 훈련받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전문적인 관계(Professional realationship)라는 것, 때로는 두사람 이상이 관여될 수도 있지만 이 관계는 대면관계(face-to-face realationship)라는 것, 그리고 상담은 하나의 과정(process)으로써 이 과정은 내담자가 대안(alternative)을 선택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에 도움을 주도록 고안된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상담을 “도움을 주는 관계”(helping realationship)로 많이 표현한다.
상담은 “도움을 주는 관계”인데 상담을 보는데는 두가지 관점이 있다. 목회적 관점에서 보는 상담과 정신의학적인 면에서 보는 상담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목회상담과 일반상담이 대상으로 하는 인간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목회상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로 하여 인간을 치유하며, 일반상담은 일반 심리학을 전제로 하여 인간의 심리를 치료하는데 목적이 있다. 일반상담인 경우에는 상담자가 도움을 주게 되지만 목회상담에 있어서는 궁극적으로 인간 스스로가 도움을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영적인 불안의 병은 일반상담에서는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단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음이 중요하며,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동시에 완전히 건강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상담과는 달리 목회상담의 목적은 한마디로 성숙한 크리스챤이 되게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목회자는 일반상담이 아닌 목회적관점에서의 상담을 할때 어떤 효과가 있는가 알아보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클라이벨(Clinebell)은 목사가 목회상담자로서 또한 치유자로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정신병자나 정신요법자들에게 대한 두려움에 대해 목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성이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 오래전부터 수립되어온 안정된 기존관계는 상담과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세째, 다른 상담이나 정신요법에 대하여 가정과 가까이 접할 수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를 다를 수 있다.
네째, 죽음,질병,사고등 위기에 가장 약해지기 쉬운 경우 쉽게 치유목회를 할 수 있다.
다섯째, 상담을 약속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 부담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목회적인 잇점을 가진 사람으로 목회자는 상담에 앞서 상담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효율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수용성(accepting),개방성(open), 온정적마음(warm), 참됨(genuine), 융통성(flexible), 진지함(sincere) 등이 있어야 한다. 그?고 상담의 원리에 있어 이상적인 표본이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상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상담은 내담자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어야 가능하다.
둘째, 자신의 견해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내담자에게 설득하거나 주입하거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세째, 너무나 당연하게 상식적인 상담원리 중 비밀보장이 있다.
네째, “상담자여 그대 자신을 알찌어다”. 내담자의 실수나 비판을 받아 들일려는 기꺼움도 있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목회자는 양을 돌보며 병들거나 급격한 일이 일어났을때 특별한 격려를 필요로 하거나 기대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나누며 인간의 영혼을 돌보아주는 일을 하는 돕는 자라 볼 수 있다. 목회자는 구체적인 생활 가운데 목회상담을 통해 목회를 현실화 해야 하고 목회가 대화로 이루어 지듯이 목회자는 상담가로서 자질의 준비와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상담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와 해방 그리고 치유를 선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담에 대한 전이해를 가지고 목사는 목회상담을 통하여 불안, 초조, 죄의식의 속박으로 인한 분열증의 암초에 걸려 파선당한 영혼을 구해내는 구조선의 역활을 해야 하며 교회는 목회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회를 하나의 치유의 장소로 만들어야 하겠다.
b. 팀사역을 통한 치유
목회자는 치유적 사역을 혼자 감당할 수가 없다. 교회 안과 밖의 전문치료팀을 잘 연결하여 치유공동체를 형성하여 전인 치료에 힘써야 한다. 교회안에는 수많은 자원이 있다. 물질, 장소, 인원 등과 후원의 자원이 있다. (기독의료인, 심리 상담자, 경제인, 자원봉사자) 이들을 활용하여 주님이 맡겨주신 복음사역에서 치유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역활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팀의 구성원을 분야별로 나누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영적 치유(Spirit Therapy) - 목회자, 신학자, 영적 상담자
등
2) 신체적 치유(Somatic Thrapy) - 의료인, 간호사 등
3) 정신적 치유(Psycho Thrapy) -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 학자
등 임상심리 학자
4) 사회적 치유(Socio Therapy) - 사회사업가, 법률가, 경제 부
분에 종사 하는 자 등
팀사역의 원리를 볼 때 누가복음 9장 1-2절, 마태복음 10장 5-9절, 마가복음 6장 7절의 말씀은 의료의 팀사역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팀을 형성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으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권세와 권능을 부여하셨다.
예수님은 전인적 치유사역을 혼자서 담당하셨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은사는 각각 다르다.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체인데, 지체로서 각각 다른 은사를 가지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활동을 해야함을 말하고 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 역시 각기 다르므로 전인 치유에 포괄적 접근으로 전문인들이 모여 팀을 조직하여 사역함이 중요하다.
팀으로 치유를 시행할 때는 몇가지 원리에 입각해야 한다.
① 접근 방법의 목표가 같아야 한다(롬15:5)
② 각 부분 팀들이 모두 귀하고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고전
12:4-5)
③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독특
하다.(창1:26) 모든 환자가 평등하며 그들의 인격은 존중되어
야 한다.
④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사람들은 환자를 돌보는
(care) 직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각 분야는 환자를
중심으로 받침대 역 할을 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전 12: 25,26)
⑤ 팀구성 요원이나 환자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팀
들은 각지체들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
에 힘써야 한다(살전3:10).
⑥ 사랑, 겸손, 섬김으로 서로 상부상조해야 한다(엡4:15-16,골
3:14).
⑦ 용납하고 서로 짐을 져주고(갈6:12), 서로 순종하며(엡5:12),
존경해야 하며(롬12:10),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롬8:28).
⑧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요13:12-15).
이국현은 이 팀 사역에 대하여 유익한 점을 이렇게 제시한다.
① 육체적,정신적,영적,사회적 치유를 동시에 함으로서 인간에
대한 전인적 치유가 가능하게 된다.
② 사역이 훨씬 능률적이며 효과적이고 몇 배의 성과와 열매를
거둘 수 있다(전4:19).
③ 많은 업무량을 팀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분담하여 잘해 나갈수
있으며 어떤 일에도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고 동시에 많은 일
을 성취 할 수가 있다.
④ 서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사역을 하다 보면 어려움이나 침
체 가운데 빠질 수 있는데 이럴때 같이 일하는 사역자들이 교
제를 통하여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
다(전4:10)
⑤ 팀 구성원 중 어느 누군가가 떠나게 되거나 다른 곳으로 옳겨
지는 경우에라도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으며 잘 조정하여 지속
적인 결실을 볼 수가 있다.
⑥ 각 사람의 은사를 따라 한 몸을 이루어 나가며 제한된 개인의
은사나 지식, 능력으로 인한 실 수 를 범하지 않고 폭넓고 건
전한 치유 선교상을 심어 줄 수 있다.
이와같은 전인치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이룬 전인치유 의원의 구성은 의사(전담의사 1명, 자원봉사자의 수명), 간호사(담당간호사 1명, 자원봉사간호사 수명), 간호조무사(전담 간호 조무사 1명, 자원봉사 간호조무사 수명), 의료 사회 상담자(시간제 고정 상담자 1명, 자원봉사 상담자 수명), 목회상담 및 예배인도(시간제 고정 목회 상담자 1명) 외 일반 자원 봉사자 수명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팀사역을 위한 경우중 하나로 호스피스 프로그램(Hospice Program)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불치의 병으로 진단받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죽음의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단순히 그 생명을 연장시키는 의학적인 기술에 의한 약물치료보다는 그 증상을 잘파악하여 통증을 조정하여 고통을 덜어주는 데 있다. 그리고 한걸음더 나아가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및 원목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보다 평안하고 의미있는 죽움을 맞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대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팀의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어 환자를 돕는 일로서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치료방향을 알려주고, 간호사가 환자를 도와주고 격려하고, 사회사업가가 환자의 가족 문제에 대하여 안심시켜주고, 정신과 의사가 환자로 하여금 질병의 현실을 받아들일수 있도록 도와주며, 원목이 환자의 관계를 맺고 영적인 도움을 주는 등의 일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팀 사역이야말로 한 개인과 사회를 온전케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치유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치유사역이 신유의 은사를 받은 카리스마(Charisma)만의 일일 수 없다. 한 사람의 환자와 관련해서 치유해야 할 부분들이 육체의 질병, 심리적 불안, 신앙적 죄책과 회의, 가정문제, 사회구조 개혁등 다양 할 뿐 아니라, 그의 질병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치유사역은 어느 한 사람이 수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모든 자원들을 그 전문성 별로 구조화하여 육체의 질병을 담당할 팀, 정신적. 심리적. 불안과 장애를 도울 가정문제 상담팀, 신앙지도 상담팀 등을 구조화 하여 목회자는 지휘자와 같이 치유를 위해 구조화된 모든 팀들을 활용하여 전 교회가 그 한 사람의 치유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팀 치유사역의 모델로서 실시하고 있는 곳이 서대문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 기독교 의료선교협회 “전인치유의원” 이다. 앞으로 교회가 이런 제도를 더 많이 수용해서 온전한 치유를 이루는 치유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Ⅴ. 치유목회와 교회성장
A. 교회성장의 필연성
현대목회에 있어 교회성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큰것이다. 목회자와 교회성장과의 관계는 유리시킬 수 없는 목회의 본질인 것이며 목회자에게 있어서 그림자처럼 항상 따르는 필연적 과제인 것이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목회 목적은 예수님이 친히 부탁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패러다임(Paradigm)에 의해서 교회를 세우며 성장시키는 목회사역을 수행했다. 교회성장의 의미는 불신자를 구원시키며, 그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훈련이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게 하는데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에게 교회를 성장시키는 사역이 곧 하나님 나라를 땅끝까지 확장시키는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기에 교회설립과 성장하게 하는 것은 최우선적인 기본 목회요 구제하는 일은 이차적인 목표로 집사들에게 맡겨졌던 것이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7-28)고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교회(갈4:19)가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명령이다. 또 바울이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고 말한 것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주어진 상황속에서 교회성장에 얼마나 힘썼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 부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기본적인 목적을 위하여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 예수님의 교훈중에도 이같은 뜻을 찾을 수 있다. 어부(마13:47-48,막1:7), 누룩(마13:33), 포도나무가지(요15:1-5), 잔치(눅14:16-24),겨자씨(마13:31-32) 등의 다양한 은유적인 형태로서 교회성장의 필연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며 회심에 인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 잃은 자를 구원하여 주의 몸된 교회의 회중속에 연합시키며 책임적이고 능동적며 생산적인 교인이 되게 하는 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된다. 교회 전체가 이 목표를 위해서 희생을 감내할 때 교회성장은 시작된다.
B. 교회성장의 정의
교회 성장에 대한 이해는 그것을 보는 입장에 따라서 다르며 또 그 용어가 지니는 광범위한 개념 까닭에 지금도 다방면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맥가브란(Donald A, MeGavran)에 의하면 교회성장이란 정의를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제1단계로 하나님께 대한 성실성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즉 잃은자를 찾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할 때 교회는 당연히 성장하게되는 것이다. 제2단계로 교회성장은 잃은자를 발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양들을 우리 안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키는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꼴을 먹이고 돌보는 일에 성실해야 한다고 한다. 제3단계로 건전한 교회성장이란 교인들이 그 사회에서 진실하게 살 뿐만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하고 구별된 생활을 함으로서 교회들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성실한 순종을 의미한다고 한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교회성장을 정의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와 아직 아무런 개인적 관계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더불어 교제를 가지도록 해주며 책임있는 교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데 관련된 모든 사항을 의미한다”고 한다. 티페트(A.R.Tippet)도 교회성장을 외적으로 볼 때에는 외형적이고 수적인 성장으로, 내적으로 볼때에는 영적이고 질적인 성장으로 보여지는 폭 넓은 생동적인 성장을 의미하고 있다. 곽선희는 교회성장이란 곧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을 뜻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주권의 확대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의 계속적인 확장을 뜻하고 그 나라의 의(righteousness)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교회성장은 새 결신자를 얻는 양적성장(마28:19-20)과 교회 내부를 온전케 하는 질적성장(마5:48,딤후3:17,고후3:11)으로 정의되며 또한 사람들로 그의 제자와 교회의 책임적인 교인이 되도록 권면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책임과 성령의 활동을 들수 있는 데 , 성령을 선교의 주관자요, 인도자요, 완성하시는 분으로서 인식하고 크리스챤의 충성과 헌신을 통하여 교회가 성장함을 인식할수 있다.
C. 치유사역의 결과
1. 치유와 구원과의 관계성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 설교, 가르침, 치유는 하나이었고 각각의 구원의 선포에 있어서 뺄 수 없는 요소라고 하겠다. 풍병자를 치료하는 사건에서 친구들의 믿음을 통해서 그의 죄뿐만 아니라 육적인 질병을 동시에 치료한 사건을 볼 수 있다(막2:3-9).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온전한 사람,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키는 일임을 알 수가 있다.
치유와 구원을 동일시하는 견해는 2차대전 이후에 유행되었는데 여기서 구원은 완전성을 의미하였고 육체와 영혼을 포함한 복합적 건강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의 구원력은 육과 영의 온전한 건강상태로의 회복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치유받은 건강을 구원 상태로 말할 때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결코 육신의 질병이나 정신질환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육신의 치유만 받았다고 영적인 치유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눅17:11-19).
성경에서는 질병이 죄의 형벌이라고 한다(고전11:30, 시28:22, 레26:16). 또한 질병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고 하였다. 성경은 질병이 즉각적인 죄나 죄악된 생활의 결과로 만 온 것이라고는 묘사하지 않고 있다. 질병이 우리의 죄를 상기시켜 주고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생각으로 경고하여 줄 때 그것은 회개로 부르는 희망적인 면모를 갖는다. 그래서 질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징게이며(시119:71) 더 강한 믿음을 위한 하나님의 시련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욥23:10). 또한 자고하지 않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고후12:7). 구원받은 의인으로 살면서도 우리는 육신의 고난과 정신적 갈등 및 지나친 긴장 과 과로를 경험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상태는 종말때에 온전한 구속, 즉 모든 괴로움과 질병이 사라지는(계21:3-4) 완전한 구원의 완성을 대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임시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본다.
2. 치유을 통한 교회성장
교회성장의 유형에는 크게 네가지로 구분 될 수 있다.
(1) 내적성장 - 그리스도인이 은혜가운데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상장
(2) 팽창성장 - 그 교회가 사역하는 지역내에 비그리스도인들을 복음화 함으로써 지역교회가 성장하는 것
(3) 확장성장 - 일반적으로 같은 동질적인 그룹내에서 교회를 개척함으로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
(4) 선교성장 - 다른 문화권에 교회를 설립함으로써 교회가 성장하는 것.
이러한 4가지의 성장유형에서 치유사역이 교회성장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a. 내적성장
내적성장이란 이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그리스도인의 영적성장을 말한다. 이것은 회중들의 신앙적인 면에서의 깊이와 질적인 발전을 뜻한다.
김관수도 내적성장을 질적성장으로 말한다. 즉 교회내부를 “온전케 하는 일”(딤후3:17)로서 질적성장은 내적인 충실을 기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엡4:13,갈4:19)을 이루기 위하여 곧 속사람을 강건케 하기위한 그리스도의 지식(벧후3:18), 사랑(살후1:3), 교제(엡2:21), 희망(히3:6), 열심(히6:11), 인내(고전1:17)를 가르쳐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롬6:22,마13:13) 이렇게 될 때 교회는 구조적인 성장으로(행6:1-7) 우수한 교회가 된다.
복음전도의 목적은 제자를 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내의 복음전파를 통한 영적인 치유를 함으로서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다. 사도 바울은 고전3장에 교회를 부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오직 하나님 만이 교회를 성장케 하신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장하지 않으면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성도간에 서로 용서해주고 사랑하며 냉담한 영혼들을 치유해야 한다. 이런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신앙은 성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속에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먼저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에 앞서 영적인 질병의 치료에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질병의 원인이 여러 면에서 오겠으나 많은 비중이 영적, 정신적 해결을 보지 못한데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맥너트도 우리의 육체와 정신, 영적 건강 사이에는 깊은 상호 관련성이 있으며 어떤 질병은 근심과 고뇌의 뿌리가 제거될 때 깨끗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이처럼 많은 질병은 상호 연관성을 갖고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되며 육체가 병들면 영적인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들면 육체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되어 피차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열매 맺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정신적 치유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전인적인 치유를 목표로 비활동적이고 명색뿐인 교인들에게 새로운 신앙을 경험하고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도록 회심성장이 이루어지게 해야한다. 그럴때 진정한 내적 성장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뿐만아니라 다른 모든 교회성장의 기반이 될 것이다.
b. 팽창성장
팽창성장이란 비그리스도인을 복음화 함으로 지역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팽창성장에 있어서 치유사역이 영향을 미칠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예를들면 교회가 치유목회 차원에서 교회내에 전문상담기구를 두어 외부의 주민들에게 개방하여 각종 고민과 어려운 문제를 상담할 때 교회에 대한 호응을 새롭게 하고 그리스도를 더욱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런 상담기구를 통해 전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팀사역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므로 이웃 주민들에게 전인적인 치유의 효과를 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팀사역은 주민들의 호응을 쉽게 얻을수 있을 뿐 아니라 목회자가 혼자 할 수 없는 여러 영역들을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에 감당 할 수가 있다. 요즘에 행해지고 있는 의료선교팀이나 찬양선교팀도 여기에 해당하는 팀사역의 한 모습일 것이다.
교회적으로는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교인이 이 사회에 힘있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맡은바 임무를 잘 감당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다면 이웃에게 밝은 빛을 비출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전도도를 할 뿐만 아니라 착한 행실을 통해 이웃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이웃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을 때 교회는 부흥된 것 처럼(행2:47) 우리가 먼저 온전할 때 교회는 부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가 가장 두드러지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능력치유,능력전도를 들수 있다. 왜냐하면 능력치유는 즉각적으로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표증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보고 들음으로 믿는 사람이 많았다(요11:41, 눅5:26, 막1:45).
요즘 “제3의 물결”이란 용어가 선교학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데 이것은 피터 와그너가 만들었다. 이것은 성령의 세번째 물결을 언급한 것으로서 “제3의 물결은 1980년도 어간에 비록 그들은 오순절주의 자나 은사주의자가 아니었고, 또한 되기를 원치 않으면서도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해 문을 연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교회들과 단체들의 숫적 증가와 함께 시작되었다. 제3의 물결의 특징 중 하나는 분열이 없다는 것이다. 오순절주의나 은사주의의 배경이 없었던 많은 교회들이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과거 열광적으로 간주되었던 것을 피해서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능력을 증거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도 “나는 하나님의 신유역사를 보다 더 중요시 하는 것이 교회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하면서 “나는 교회가 회심이나 신생을 기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육체적, 정서적,영혼의 치료를 기대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영적인 은사들은 사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가지 수단이며, 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목회사역에서 구체적으로 사용하시는 수단이기도 하다. 윔버(John Wimber)는 효과적인 전도로서 능력전도(Power Evanzelism)를 말한다. “ 내가 말하는 능력 전도는 가장 이성적이면서도 또한 그 이성을 초월하는 복음의 표현이다. 복음에 대한 설명은 이적과 기사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 시위와 함께 해야 한다. 왜냐하면 능력전도에 있어서 복음의 거부감은 초자연적인 사건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제거되며 따라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수용성이 매우 높게 되기 때문이다.
치유사역을 통해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이룬 몇가지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의 클라렌턴 교회의 담임목사인 테리 버고(Terry Virgo)는 그의 교회가 8년간 50명에서 1,000명을 넘도록 성장한 이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어떤요인들 보다 개인전도를 위한 성령의 신선한 기름부음과 능력의 부어주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들 중 다수가 치유를 위한 사역 팀이 있어서 병자를 위해 정규적으로 기도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는 것을 보고 있다.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능력의 말씀은 실재이며, 사람들은 그것에 이끌려 오고 있는 것이다.”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 있는 성 스테바 감독파 교회는 1942년 병 고치는 정기적인 교회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 일은 교회를 성장케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웨슬리 감리교회(Wewley Methodist Church)의 이 교회 목사 로스 베일리(Ross Bailey)는 매월 세째 주일 밤에 병고치는 집회를 가졌다. 그 집회는 전혀 감정적인 집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쇄된 기도문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병고치는 집회에서 병 고치는 일을 행하셨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병 고침을 받았다.
캘리포니아의 신유 치유자인 로베르토 에스피노자는 구아야킬에서 집회를 했는데 첫날밤 모인 청중의 숫자는 실망스러웠다. 약 1,000명이 채 안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로베르토 에스피노자는 병자를 위해 기도했고, 4명의 귀머거리와 12명의 탈장된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다. 이 모든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 구아야킬에 보도되었고 급속히 전파되었다. 둘째날밤 모인 청중은 10,000명에 이르렀고, 첫주의 마지막에는 20,000명에 육박했으며 집회가 끝날 때까지 모인 사람은 모두 35,000명에서 40,000명으로 추산되었다. 극적인 치유는 수없이 일어났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한 것은 구원받아야 될 영혼들을 매일 그 집회에 더해주신 것이다. 6주간 1,500명의 영혼들이 교회로 왔던 것이다.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성장신학에서는 3가지가 있다. 그중에 3박자 구원(3중0축복)이 있는데 요한삼서 1장 2절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첫째, 영혼이 죄사함을 받아 영혼이 잘된다.
둘째, 환경의 구원을 받아 범사가 잘된다.
세째, 치료의 은혜가 넘쳐 건강해진다.
이러한 성장신학을 바탕으로 여의도순복음 교회는 1961년에 300명에서 92년 현재 70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교회 성장을 이룬 교회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장의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치유사역이 교회성장에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
성결교회에서도 초기에 신유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교회가 성장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경성부 현저동 72번지에 살던 김만수(23세)는 정신 이상으로 미신적 치료를 아무리 하여도 낫지 않았는데 교회로 나와 강시영의 기도로 완쾌되어 온 가족이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 포리교회 정달성은 이향원이라는 사람의 부인이 사귀병에 고생하였는데 교회에서 교역자와 신도가 합심하여 기도중에 완케시켜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이 날로 증가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최인보는 사귀병에서 고생중에 집안이 폐가가 되어가던중 김충언이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이 찾아와서 기도를 청하여 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하니 사귀가 나가고 온전케 되었다. 그리하여 1926년을 중심하여 장년만 200여명이 운집하는 대교회로 부흥되었다고 하였다.
김영균은 1939년에 도문교회 집회시 반신불수 최정자부인을 안수기도로 즉시 일어나게 하였고 4시간내에 죽는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어린아이가 즉석에서 나아 결심자만 250여명에 이르게 하였다. 성결교회에서 일어난 신유의 방법은 대체로 환자를 데리고 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목회자가 함께 기도하는 방법이 많았고 또한 목회자가 개개인에게 안수하여 치유를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신유의 사역이 일어날 때마다 교회는 급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3. 확장성장
하나님 나라를 가장 신속히 확장시키는 방법은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말하자면 새롭고도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다. ?장성장은 “같은 동질 그룹내에서 교회를 개척함으로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다”. 새로 교회를 개척함으로 교회가 성장한다고 했는 데 치유사역은 또한 많은 교회를 개척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존 윔버는 주로 능력전도를 통하여 포도원 교회를 6,000명의 교회로 성장시켰다. 존 윔버는 2,000년까지 북아메리카 전체에 1만 개 이상의 포도원교회를 설립할 꿈을 가지고 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작은 교단 포도원교회 협의회에서는 250개의 교회가 등록되어 있다고 했다.
에쿠아도르의 구아야킬에서 신유의 실재가 많은 크리스챤들에 의해 놀랍게 경험되었다. 그당시 신유의 역사로 1,500명의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세례받도록 했고, 6주간 동안에 7개의 새 교회를 세우게 한 열쇠가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교회들은 토니 힉스의 부흥운동을 뒤따라 그 성장에 박차를 가해왔으나 최근에는 ‘싼타 훼’(Santa Fe) 지방을 중심으로 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전도운동이 일고 있다. 이 운동으로 5년만에 35개 지역에 설교 센터를 갖고 있는 135,000명의 대집단으로 성장했다. 하나님께서는 ‘오마 카브레라’(Omar Cabrera)와 그의 아내인 ‘마르파’(Marfa)에게 강력한 치유와 전도의 은사를 주셨으며 그들이 거두어들인 영혼의 수확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에 힘든 것이었다.
d. 선교성장
선교란 무엇이가의 정의를 놓고 에큐메니칼 쪽에서 말하는 것과 복음주의 자들의 말하는 내용이 분분하다. 복음주의 측면에서 바르넥(G. Warneck)은 “선교란 비기독교 세계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복음전파이다”라고 했다. 한 교회성장학의 창시자인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도 선교를 정의하길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복음을 들고 문화의 경계를 넘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을 권하여 예수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게 하여 그의 교회의 책임적인 회원이 되게 하여,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전도와 사회 정의를 위한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러므로 선교성장은 다른 문화권에 교회를 설립함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타 문화권에 이러한 치유사역이 어떻게 선교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남아프리카는 약 8십만명에 달하는 원주민 공동체들이 있는데, 그들은 굳게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고 있었다. 아주 적은 수의 원주민 만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약20-25년이 지나고 일련의 치유집회를 통하여 두 오순절 교단이 원주민들 사이에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오순절 교회들중 하나는 이제 2만 5천 여명의 교세를 갖게 되었고, 다른 교회는 1만 5천 여명의 교세를 가지고 있다.
본케(Reinhard Bonnke)는 남아프리카 흑인들을위한 “ Christ for all Nation”라 불리는 독립된 단체를 통해 일하고 있었다. 그의 첫 집회는 Botswana의 Gaberones에서 「Apostolic Faith Mission」(A. F. M)과 연합하여 이루어졌다. 설교가 끝나고 밤늦게 본케는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Richard Ngidi와 만나기로 하였다. 6일 후에 그들은 겨우 8백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 2천명이나 되는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초대되어 갔다. 생동적인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자 그 모임은 운동장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그들은 밤늦게까지 1만명의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다음 집회는 북부 Transvaal의 Sibassa에서 열렸다. 특별한 기적이 일어난 뒤 7일이 못되어, 심한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3만명의 사람들이 밤늦도록 있었다. 1979년 본케는 남아프리카의 Bloemfontein에서 A. M. F.을 위한 집회를 가졌다. 수백명이 구원받고 치유받고 물속에서 세례를 받았다. 20일 동안의 집회가 끝난뒤, 그들은 6백명이 넘는 세례 교인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Christ for All Nation」은 이제 3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세워서 그것을 정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테겐(Erlo Stegen)은 남아프리카 Kwasizabantu에서 줄루족에게 복음을 전했던 독일 선교사이다. 이들 지역에서 첫 12년간 그의 사역은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완전한 절망의 순간에 스테겐은 사도행전을 흑인 친구들과 함께 상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초대교회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열쇠는 표적과 기사들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얼마후 그들은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였다. 그 경험의 상세한 것은 사도행전 2장에 나와있는 설명과 유사하다. 그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방을 나온직후에 스테겐과 그 친구들은 어떤 귀신들린 부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어떤 알지 못하는 힘이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그 부인은 자유롭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자기 마을로 돌아가 작은 부흥을 일으켰다. 그녀는 복음을 선포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바쳤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Kwasizabantu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치료받고 구원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가서 거기서 복음을 선포했다. 이것은 대부흥의 출발점이 되었다.
성결교회에서도 파라과이에 파송한 이종길 선교사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그는 파라과이의 ‘빌리 에리샤’에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몇 달이 지나도 신자라고는 동역하는 원주민 전도사 로베르또 가족밖에 없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너무 카톨릭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에 선교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역을 통해 몇가지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그 중의 대표적인 일은 어린 벙어리 소녀가 입이 열리는 사건이 주일 에배에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게서는 이런 여러가지의 역사를 통해 전도의 결실을 얻을수 있게 되었고 성도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예배 장소는 예배드리는 사람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치유사역을 통해 교회가 4가지 유형으로 성장했음을 볼 수 있었다. 그 방법은 교회가 상담기구를 설치하고 외부에 개방하여 이웃사람들에게 치유와 전도의 기회로 사용하는 것과 팀 사역을 통한 전인적 치유를 통해 온전한 치유공동체가 되어 영혼구혼에 박차를 이르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서 이 사회에 영향력을 갖고 힘있는 복음전도자가 될 때 교회는 부흥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능력치유를 통해서 밖으로 보여주는 치유사역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고 말씀한 것 처럼 즉각적인 치유사역이 일어날 때 많은 영혼이 교회에 몰려와 구원받는 일이 일어났고 더불어 교회가 지어지고 개척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선교사역이 힘이없고 무력했을 때 치유사역을 통해 초대교회와 같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남을 볼 수 있었다.
Ⅵ. 결 론
A.요 약
지금까지 여러 측면에서 치유목회에 대한 총괄적인 이해와 더불어 치유목회가 교회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인류의 조상 아담부터 지금까지 인간들은 영적,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인 복합적 요인들로 인해 각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목회는 “인간을 돌보는 일”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돌봄의 대상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과 몸으로 구성된 전인적 인격체로서 인간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인간들을 위해 치유목회란 손상되고 상처난 영혼들을 전인적인 온전한 모습, 즉 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고 치료하는 목회이다. 인간들이 질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원인은 대부분 자연질서의 파괴와 삶의 그릇된 방법을 들 수 있고, 전인(Whole Man)의 평형파괴, 즉 영, 혼, 육의 부조화와 인간상호간의 부조화등 환경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 질병이 발생된다고 볼 수 있다. 성서적으로는 질병이 죄로인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질병이 온다고 했다. 그러므로 치유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질병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를 이해해야 바른 치료가 됨을 알 수 있다.
치유를 위한 성서적인 방법으로는 예방적 측면과 치유적 측면을 다루었다. 치유는 병이 들었을 때만 치유가 아닌 다시말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목회가 아닌 미리 예방하는 측면의 치유가 현실 목회에 더욱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부각된다. 예수님의 치유는 인간에 대한 우선적 이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귀중한 존재라는 것과 고통당하는자들에 대해 동정심과 그들의 아품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가 그들을 치유하신 사실을 통해서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자 무엇인지를 알수 있었다. 또한 예수님이 다양한 치유와 사도들의 치유는 성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계승 발전시켜야 할 목회사역임을 보여주었다.
비록 치유가 한계가 있어 질병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치유되지 아니한다 할 지라도 죽음후에는 완전한 치유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치유목회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목회자는 치유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을 터득하고 계속 연구를 통해서 바른 치유목회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중에서 목회자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능력치유, 능력전도를 과감히 수행해야 할 것이며, 또한 목회상담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팀사역을 통한 치유를 통해 인간들을 전인으로 치료해야 할 것이다.
치유목회는 지금은 미약하지만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교회에서도 계속 시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국내외 교회들 중에 급성장한 교회들을 보면 대부분 이러한 치유사역이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옅볼 수 있다. 치유목회는 결국 교회성장으로 연결되어지면서 내적인 성장과 양적인 숫적 성장 및 교회개척을 가져오는 활력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 교회가 수행해야 할 지상과제요 주님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를 삼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신속히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치유목회가 확산 보급되어야 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 건강하고 크게 성장하기를 원한다. 목회자는 온전한 교회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인 치유방법을 도입하여 교회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것이다.
B. 제 언
교회는 예수께서 위임하신 대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마28:19-20). 이 명령은 복음선포의 사명이요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이다. 이러한 사역을 이루는 데 치유목회는 복음선포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복음 선포와 함께 치유사역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치유사역이 있을 때 교회는 자연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치유사역을 통한 교회성장을 이루기 위한 몇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목회자가 치유목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목회의 치유기능에서 치유는 단지 질병으로의 회복 뿐만 아니라 영적 성장까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목회는 치유하는 목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유목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목회자 자신이 먼저 온전한 후에 모든 성도들에게 치유목회를 할 때 그 효과는 더 크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치유사역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겠는가 ?
둘째, 목회자는 인간을 전인적인 모습으로 이해해야 한다. 목회자는 인간을 이해할 때 한 부분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전인적인 인격체의 모습으로 이해하며 전인적 치유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병자를 대할 때 예수님이 병자를 대하듯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한 영혼에 대해 소중함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바른 치료가 된다.
세째, 목회자는 치유방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상담적인 방법과 각종 성서적 치유방법을 바로 알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을 때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울 수 있다.치료하고져 하는 마음만 있지 사용방법을 모르고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을 묻어두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치유가 일어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네째, 팀사역을 통한 치유목회를 해야 한다. 치유목회는 목회자 혼자만이 하는 사역이 아니다. 효율적인 치유목회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내에 있는 물적, 인적, 장소, 기동력 등의 재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일할 수 있는 팀사역을 하여야 한다. 교회안에 이런 기관을 둔다든가 외부와 상호 연결을 갖고 치유사역을 한다면 전인적인 치유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본다.
다섯째, 치유는 질병시의 치유만이 아닌 예방적 측면의 치유에 힘써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보여주듯이 병들기 전에 미리 예방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낭비하지 않고 늘 건강하게 잘 성장할 것이다.
여섯째, 목회자는 죽음과 임종에 대한 교육까지도 교인들에게 시켜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치유과정에서의 죽음은 죽음 이후가 완전한 치유로 필자는 보기 때문이다. 퀴블러 로스(Kubler Ross)는 죽음과 임종의 다섯단계를 부정과 고립,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순응으로 본다. 그러므로 치유자는 죽음과 임종까지 순응케 해야 한다고 했다.
위의 여섯가지 방법을 토대로 교회가 나아갈 때 내적성장과 양적인 팽창성장, 교회를 개척하는 확장성장, 선교를 효과적으로 이루는 선교성장을 가져올 수가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성결교회 뿐만아니라 한국교회는 치유목회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목회현장에서 치유사역이 바르게 이루어질 때 교회는 온전한 공동체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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