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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목회자(가나다순)

목사가 경계해야할 사람들

by 【고동엽】 2022. 2. 16.

이 글을 보신 목사님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경계하면서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가 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성도라고 하는 사람 가운데 여기 경계해야 할 사람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목사에게 있어서 모든 사람들은 성도이건 아니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만일 목사가 이런 사람에 대한 조심성이 없으면 목회를 결코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조심성은 목사를 겸손하게 하고 신중하게 하며 성도들을 존경하고 무례하지 않는 사랑을 하게 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 목사의 목사답지 못한 흐트러진 마음과 몸가짐은 성도들에게나 여타의 사람들에게 조심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 우리들의 경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들을 긴장시키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목회를 가르치는 교사가 될 것이다.

나는 지난 과거의 내 행적에서 성도들을 조심하지 않고 무례하게 대하다가 낭패를 당한 일들이 많이 있고 성도들에게 대하여 너무 친근한 감정을 가졌기 때문에 큰 실망을 한 일이 많이 있었다. 성도들은 성도들이며 신자는 신자들일 뿐이다. 목사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오로지 바울 사도께서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결단코 그들이 나의 아내나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며 하지도 않는다.

1). 가정이 원만치 못한 사람.
가정이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교회에서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심한 여 성도의 경우가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이해를 교회나 목사에게 요구한다. 만일 그들의 요구를 교회에서나 목사에게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것이 불평과 불만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 목사는 아주 지혜롭게 처신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부의 애정을 회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며 가정에 충실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남편이 외국에 나가 장기간 동안 집을 비우는 경우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우리 교회는 모 대 기업의 부장으로 외국에 나가 오랫동안 근무하는 사람의 부인이 집사였다. 그 집사는 언제나 남들과 다른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성전의 가장 가운데 앞자리에 앉아 내 시선을 끌려고 했고 그런 그 집사의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내 눈길을 잡았다. 나는 그 여 집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경계에 경계를 하며 조심스럽게 대했는데도 다른 성도들에게 좋지 않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편이 집에 돌아 왔을 때 생겼다. 그 남편은 신앙 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이 였지만 아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아내와 함께 교회를 나왔다. 그리고 금요일의 산 기도도 따라 왔다. 그러나 나는 그 남편이 나와 자기 아내의 관계를 심상치 않는 눈길로 보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입장이 곤란한 일이 였다. 그런 일이 있는 얼마 후 그 여집사는 그 남편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다.

2). 성장 배경이 불행한 사람.
①. 우리 교회에 한 집사라는 여 집사가 있었다. 그 집사의 남편은 육류를 파는 사업을 했는데 주로 공무원을 상대로 한 연금 매장에 육류 매장을 여러 곳에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였고 성격이 아주 원만한 분이 였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잘 사는 축에 들었으며 집도 큰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한 집사의 성격이 아주 독특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독점욕이 강한 것이다. 교회에 등록하여 6개월 동안은 그런 데로 평안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후에는 교회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장악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들어내기 시작을 했다. 그런 짓을 하기 위해 여러 성도들에게 선심 공세를 펴고 나에게도 그런 선심을 베풀었다. 다른 성도들이 과히 꿈도 꿀 수 없는 많은 재물을 나와 여러 성도들에게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이다. 내게는 피아노와 다른 고가 품의 선물을, 전도사에게는 등록금과 양복을, 여전도 회장에게는 용돈과 김장 김치 전부를---- 이런 식으로 선심을 베풀고 성도들을 집에 초청해서 온갖 산해 진미로 배불리 먹였다. 우리는 그런 그의 봉사에 감격했고 고마워했다. 그는 다음 해에 성도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아 여전도 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 교회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교회의 세력을 장악한 그 여자는 나를 무시하기 시작을 했다.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업과 계획에 대하여 엄청난 힘을 가지고 발언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교회는 교회 성전을 건축해야 했는데 그 여집사는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나를 견제하기 시작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계속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별도의 모임을 가지고 그 모임을 잘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서 선심 공세를 폈다. 그로 인해 우리 교회가 당한 어려움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내 목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나는 그와 여러 가지 갈등을 겪으면서 그 여집사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그 한 집사의 성장 배경에 문제가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여 집사는 부모를 일찍 잃고 이모 집에서 자랐는데 성장하는 도중에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극도로 억눌린 감정 상태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며 기를 펴지 못하고 살다가 육류 가게에서 일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이런 그의 성장 배경이 그의 독점욕을 만들어 냈으며 자기 보다 더 힘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②. 목사를 상습적으로 비방하는 집사가 있었다. 그 여집사는 내 친구 교회를 다니다가 우리 교회를 왔는데 교회를 옮긴 이유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나는 그 여집사가 우리 교회로 온 것 때문에 친구와 상당히 입장이 곤란해지기도 했다. 그 여집사는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친구 목사와 친구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들어 내 놓고 혹독하게 친구 목사를 비방했다. 친구뿐만 아니라 친구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비방했다. 내가 친구를 잘 알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그 여집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을 것이고 그를 나쁜 사람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또 우리들을 그런 식으로 비방하겠구나 라고 극히 경계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집사는 우리 교회를 3년만에 떠났고 옮긴 그 교회에서 우리들을 비방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집사 역시 자란 환경과 배경이 극히 불량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는데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으며 어려서부터 어느 미용 실의 견습 미용사로 시작을 해서 상당히 큰 미용 실을 여기 저기 가지고 있었던 스스로 성공한 경우에 속한 미용 실 원장이 였고 그 남편은 아내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였는데 그런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것과 스스로 사업체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에 당한 여러 일들이 그런 비판과 적대적인 성격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그 여집사는 가련하게도 어느 날 무슨 병인지 갑자기 미용 실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나 버렸다.
우리 부부는 그 집사의 장례식에 찾아 가 그를 조문하고 그 유족들을 위문했는데 그가 얼마나 우리 험담을 했는지 그 남편과 유족들의 우리를 대하는 싸늘한 태도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물질이 없어 궁핍하여 풍부하지 못해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의 성격은 부드럽고 적극적이며 시기 질투심이 적다. 그러나 부자로 살아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의 성격은 소극적이고 비판적이며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부모의 사랑을 말한다.

4). 시기 질투심이 많은 사람.
시기와 질투는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들어내는 적대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기와 질투는 자기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던지 아니면 약하게 나타나지만 자기와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터부니 없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문제다. 야곱의 아들들은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하지 않고 자기 동생을 시기하였으며 더 올라가면 가인은 자기 동생을 시기 질투해서 파멸을 초래한 것이다.
형제와 형제가 시기하고, 친구와 친구가 질투를 한다. 아무런 소득도 없고 실리도 없지만 무조건 시기하고 질투하여 미워하고 증오의 칼을 갈아대는 경우가 많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이 목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목사를 이해하면서도 그들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목사의 모든 것을 비방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이런 시기와 질투는 사랑의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목사에게 무엇인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흔히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사에게 각별한 사랑을 바라고 있었는데 목사가 모든 성도들과 똑같이 자기를 대했다고 생각할 때나 아니면 다른 성도들을 자기 보다 더 사랑했다고 느낄 때 나타난다. 심지어 시기와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목사의 부인이나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까지도 시기 질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은 목사를 비방할 때 자기를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는 경향이 아주 뚜렷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시기 질투심을 정당한 것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로 인해 사리 판단이 흐려지기 일쑤여서 자기들의 감정의 잘 잘못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목사가 절대 자기 집안의 자랑거리를 말해서는 안된다. 그들 보다 좀 못한 조건 속에서 산다 던지 여러 가지 면에서 좀 뒤떨어진다는 것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들은 목사의 나이와 세상에서의 경험과 하나님의 일에서의 경륜들을 무시한다. 자기들이 15평 집에서 살면 목사도 무조건 15평이나 그 이하의 작은 집에서 살기를 바라고 자기 자식들이 대학에 다니지 못하면 목사의 자식들도 대학을 가서는 안된다는 사고 방식을 가졌다. 그들은 자기들이 동정하고 도와 줄 수 있는 정도의 목사를 좋아한다. 그런 목사를 사랑하고 동정하는 것을 하나님의 큰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목사에 대한 이런 종류의 시기와 질투심을 모든 성도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도들에게 어떤 비밀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면에서 강조했듯이 가정 일 중에 좋은 일들을 말하지 말며(예화로도 사용 말라) 자랑해서는 안된다.
어리석은 목사는 성도들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목사의 기쁨을 축하해 주고 목사의 가정과 개인에게 있어진 행복한 일들을 함께 행복해 하며 좋아할 줄로 착각한다. 물른 곁으로는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 축하하는 손잡기와 기쁨의 웃음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부러움과 시기 질투가 감추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목사는 언제나 좀 모자란 듯하고 같은 표정과 같은 웃음과 같은 조용함으로 성도들을 대하는 것이 좋다. 기쁨의 지나친 반응은 성도들의 반감을 유발시키고 슬픔의 적나라한 검정 표현은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누가 옷을 사 주어도 자랑하지 말라. 옷을 사 준 사람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자랑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자랑을 듣는 다른 성도들은 목사와 그 옷을 마련해 준 성도들 함께 시기한다.
좋은 일이 있어도 좋은 체 말며,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체 말라. 목사의 희로애락은 극도로 절제되어야 하며 성도들에게는 감추어져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만 웃고 감사하고 슬퍼하라.

5).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 (내 생각에는 -----)
교회 안에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기 의견 이외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대체적으로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실패한 일들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인정받지 못한 감정을 교회에서 인정받으려는 보상 심리가 있다.
이런 사람은 아주 쉽게 분별할 수 있다. 그들은 모임에서 언제나 '내 생각에는----'식의 말을 잘한다. 그리고 자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지나치게 기분이 상하고 자존심이 상해한다.
우리 교회에 장로 한 분이 등록을 했다. 그 분은 내가 잘 아는 목사의 교회 장로였는데 거기까지 다니기가 너무 어려워 이명 증서를 떼 오고 그 목사님도 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야말로 정식 절차를 밟아 우리 교회로 왔고 우리 교회에서는 그를 협동 장로로 2년 동안 섬기게 하다가 투표를 해서 시무 장로로 받았다. 그 장로는 언제나 기도에 모범적이고 신앙 생활에 모범적이 여서 다른 성도들에게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형편이 너무 가난해서 성도들에게 경제적으로 덕이 못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장로는 우리 교회가 성전을 건축하는데 대단히 소극적이 였다. 그는 다른 성도들을 만나면 성전 건축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성전 건축을 위한 제정 확보를 운운할 때는 묵묵 무답이던지 아니면 은근히 반대하기 일수여서 나를 무척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차츰 차츰 그 '내 생각에는----'하는 운을 떼기 시작을 하더니 결국 목사와 생각이 같지 않아 교회를 떠난다고 교회를 떠났다.
나는 누차에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 성전 건축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장로가 되어 성전 건축 헌금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제일 합당하고 좋은 것으로 받아 들여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역 자들은 하나님의 생각을 확실하고 분명히 파악하는 지혜와 명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제일 앞잡이는 목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수 가결이나 자기들의 의견, 그것도 다분히 세상에 지배된 자기들의 형편과 사정에 따른 의견들을 네 세워 하나님의 뜻을 대치하려 하는 것이다.
목회에 있어서 이 양편의 의견을 잘 조절하던지 아니면 세상적인 것을 물리치고 하나나 님의 뜻을 확실히 관철시킬 책임이 목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목사가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기도에서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존경하는 성도들의 존경심에서 우러 나온다고 생각한다.

6).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
내 친구 목사 가운데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교회 일을 시키지 아니하는 철저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가 새로운 재직들을 임명하고 그 가운데 재정부 직원을 임명하는 일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절대 일 시키지 말라]는 충고를 내게 해 주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교회는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지 않아도 능히 제적부를 잘 감당할 만한 여 집사가 있어서 그 집사에게 재정부 회계를 맡길 생각이 였다. 이런 형편에 그의 충고는 당연한 말이지만 받아들이기가 난처했다.
나는 회계를 맡고 나서 열심히 기도하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회계 맡게 하고 친구 목사를 불러 제직회 세미나를 하게 해서 직분을 가진 사람의 기도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우게 했다.
회계 집사는 열심히 세미나에 나와 공부를 하고 그 다음부터 새벽 기도회에 잘 나왔다. 나는 나의 생각이 적중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4-5개월 동안을 성심 성의를 다해 기도하고 맡긴 일을 잘하던 회계 집사가 시험에 들기 시작을 했다.
그는 목사인 나에게 매우 치명적인 말을 하고 다녔다.
[아- 글쎄 내가 회계를 하다 보니 이상한 일이 다 있지 뭐야]
[무엇인데요?]
[우리 교회 재정을 목사님이 다 써 버리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은 무슨 말. 목사님이 사모님과 교회 돈을 다 써버린다니까]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 였다. 당시 우리 교회에서는 35 가정의 선교 비를 매월 온 라인으로 보냈고 10여 군대의 시골 교회들을 보조하고 있었으며 목사의 사례비와 목회비등등 목사의 생활비 및 활동 비가 상당했다. 그리고 부 목사와 전도사들의 사례비와 생활비도 만만한 것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런 경비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종들에게 공급하는 모든 경비들은 목사인 내가 직접 맡아 관리하면서 보내 주었다. 내가 시간이 없을 때는 내 아내가 은행에 가서 그 보조금들을 송금하기도 했다. 그 액수는 결코 적지 아니했다.
지난해부터 내가 그런 조치를 해서 특별 관리를 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해외에 있는 선교사들과 어려운 시골의 목회자들이 한 달에 얼마씩 보조하는 보조금을 받아 가고, 교회의 부 교역자들이 생활비를 가져가는데 그것을 보내고 지급하는 회계가 마치 자기가 보조금을 주는 사람인 것으로 착각해서 하나님의 종들을 무례하게 대하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선교사들은 회계 집사에게 따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시골의 목회자들은 선물을 보내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으며, 교회 안에 부 교역자들도 회계 집사에게 기가 죽어지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보조하는 일이 그런 식으로 곡해되고 보조를 받는 분들이 집사의 눈치를 보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일을 내가 직접 하던지 아니면 아내를 시켜 하게 했던 것인데. 기도하지 않고 교회 회계를 맡은 여 집사가 이 일을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집사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 였지만 듣기에 매우 이상한 말이 되기도 했다. 한 번 두번 들으면서 우리 성도들 가운데 목사에 대하여 좀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을 했다. 그래서 다른 때는 전혀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아니했었는데 이런 기미가 있자 나는 매월 보고되는 제정 보고에서 보조금들에 대한 보고를 신경을 써서 해야 하는 번거러움과 부끄럽지 않아도 될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생겨 버렸다.
목사가 마음대로 돈을 써 버린다는 이 말은 결국 성전 건축에 대한 문제도 문제가 되고 목사에게 어떤 종류의 의구심을 가진 사람도 생기게 되었으며 목사에 대한 신뢰심을 잃게 되는 결과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회계 집사는 2년만에 한 번씩 돌아가면 감당하게 되어 있는 교회 내규 때문에 그를 교체할 수도 없는 형편에서 나는 기도하지 않고 제정을 맡아 있었던 그 여집사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모른다. 나뿐 아니라 목사에 대한 신뢰심을 잃은 성도들의 신앙 생활은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결국 그 집사는 회계직을 그만 두면서 교회를 떠났지만 한 교회의 회계요 구역장인 그 집사가 교회를 떠날 때 나와 교회는 큰 상처를 입어야 했다.
아무리 세상적인 조건이 만족스럽다고 해도 기도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교회의 중요 직분을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목사가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ㅇㅇㅇ 목사님의 글>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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