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교회(農村敎會) 목회자 사모로서의 고통
옛날에는 농촌교회도 성도들이 많아서 교회가 인정(人情)이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공간(空間)으로서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향수가 넘치는 고향교회로 기억이 될만한 일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아름다움보다는 쓸쓸함이 감도는 썰렁한 교회가 되어 찾는 이도 적을뿐더러 목회자들이 기피하는 교회로 되어 버린지도 오래인데 그 이유는 농경사회가 지나가고 공업사회로 변신하면서 농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집도 팔고 농토도 팔아 너도나도 도시로 떠나는 바람에 농촌은 텅 빈 장터와 같은 실정이라 교회도 성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초등학교도 급격히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통폐합을 하지 아니하고는 안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누구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농촌교회 실정과 교역자들의 어려운 문제라는 것인데 필자는 도시에서 30년 이상 목회를 하다가 농촌으로 들어왔지만 농촌교회가 너무 어렵다는 것은 어디에 살아도 잘 아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도시에서 대기하는 한이 있어도 농촌으로 쉽게 들어가려고 하지 아니하는데 그들만 잘못이라고 나무랄 수 없는 것은 목회자도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도 있으니 교육문제라든지 환경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도시로 이사가는 형편에 교역자 자녀들이라고 교육문제에 신경을 아니 쓸 수 없으니 자연히 망설이게 되고 사명이 있어서 농촌교회로 부임해서 오지만 자녀들 교육 때문에 두 살림을 해야하는 부득이한 사정이 생길 때도 있다.
그리하여 사모는 애들과 같이 도시에 있으며 아이들 밥을 해주고 돌아보며 그 곳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남편이 목회 하는 농촌에 있으니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그리고 수요일만 되면 교회로 돌아와야 하고 또 목요일에 또 나갔다가 토요일에 다시 들어와야 하는 번거롭고 고달픔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교회 성도들이 이 점을 너그럽게 이해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은 사모가 교회를 그렇게 비워도 되는 것이냐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교회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렇다고해서 당장 아이들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학비문제도 당장 어렵지만 어떻게 마련할 길이 없어 염치 불구하고 친정에다 도움을 호소하지만 어디나 넉넉한 살림이 못되어 만족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면 여기저기서 약간의 도움도 주지만 전체적인 면에서는 모자라는 형편이다 보니 학기 때마다 교육비와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초비상이 걸린다.
교육비도 교육비지만 생활비도 어려워서 허덕일 때가 있어 도시의 큰 교회에 보조를 요청하지만 그것도 쉽지 아니하여 거절을 당하고 어쩌다가 도움을 주면 이것저것 너무 까다롭게 하니까 피곤하고 정신적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주는 교회는 넉넉해서 주는 것이 아니기에 받으면 받았다는 영수증을 보내드리고 감사의 편지라도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차일피일(此日彼日) 미루게 되고 때로는 잊어먹고 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보조를 받는 편에서도 문제는 있겠지만 보조를 하는 편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이 더러 있는데 어느 분은 개인적으로 약간의 보조를 하면서 매월 통장으로 입금 해주셔도 되지만 반드시 자기의 집으로 와서 받아가라 하여 찾아가면 이런 말 저런 말하는데 정말 듣기가 민망하고 거북하여 그 돈 없어도 됩니다하고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니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집 문턱을 넘으려면 정말 죽기보다 싫다는 표현은 지나치지만 정말 들어가기 싫은 것은 사실이라 왜 꼭 이렇게 해야만 주의 일을 하는 것인지 깊은 생각에 잠길 때가 많고 내가 목회자를 돕는 처지라면 정말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하여 주의 종들을 괴롭히지는 아니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일로 인하여 더욱 교역자는 고마움보다도 다른 생각이 드는데 주께서 주시는 물질을 가지고 자기의 것을 주는 것 같이 생색을 나타내려고 하니 농촌교회 보조비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돈주는 것을 자랑하는 것 같이 생각이 들어 받는 편에서는 기분이 상하고 점점 거리감이 생기고 속된 말로 아니꼬운 생각도 들어 연락도 고의적으로 하지 아니할 때가 있는데 교역자 생각에는 돈만 주지 말고 기도하고 와서 보시기도 하고 농촌실정을 살펴서 헛말이라도 수고한다는 위로의 말 한마디하면 너무나도 감사해서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하며 보조해주는 것 고마워서 '감사합니다' 하고 보고도 종종 하고 연락을 할 텐데 교역자의 생각과는 반대로 하고 있으니 자연히 교역자도 상대적으로 그렇게 하다보니 보조해주는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기본자세가 되어 먹지 아니하였다고 말이 많고 그렇다보니 다음해는 보조가 중단되었다는 통보가 날아오면 또 근심이 생기고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아니할 때가 얼마인지 어찌 말로 다하리 때로는 보조비도 중단되고 본 교회는 돈이 없으니 생활비 지급을 못하게된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생활비를 달라거나 빌려달라고도 못하고 식사를 못하고 굶주린 배를 허리띠로 졸라매고 강단 밑에 엎드려 기도를 하기도전에 눈에서는 눈물부터 쏟아지는데 무슨 말로 기도를 드려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기도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저희들이 부족해서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데 주여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울고 나면 그래도 다소나마 위로가 되어 모진 것이 잠이라 한밤을 지새우고 새날을 맞이하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교인들에게는 굶었다는 표시를 해서는 안되기에 밥을 먹은 것 같이 하고 양식이 생길 때까지는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참고 견디는 것이 농촌 가난한 교회에서 목회 하는 자들이 종종 겪는 일들 중에 하나이다.
어떤 때는 아침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일손이 모자라는 성도가정에서는 자기 집에 와서 일을 도와달라는 말을 염치불구 하고 하는데 못 가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가서 도와주면 점심 때가되기 까지 기다리자면 얼마나 배가 고픈지 굶어 보지 아니한 사람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그 가정에서 밥을 넉넉히 주면서 집에 가서 가족들과 같이 먹으라고 하는데 밥을 주시는 분은 목회자 집에 양식이 없어서 밥을 못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날 자기 집에서 늦게까지 일을 했으니 밥할 시간이 없으니 밥을 가지고 가서 먹으라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한 끼라도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예 그렇게 하지요' 인사를 하고 밥을 들고 오는 사모님의 마음은 기쁘기만 하여 부자가 부럽지 아니한 심정으로 발걸음이 빠르게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그 밥을 먹을 때는 너무나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내일 아침을 생각하면 기쁨도 잠시고 걱정이 생기고 근심이 되어 밤에 잠이 오지 아니 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애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쌔근쌔근 잠을 달게 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너희는 부모를 잘못만난것 외에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남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풍족하여 먹고 남음이 있는데 너희는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형편에 있는가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이 양볼 사이로 흘러내려 아이들 볼에 떨어지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데 뜨거운 눈물을 맞은 아이가 일어나더니 어머니 왜 울어 하고 까만 눈동자로 정면으로 쳐다 보는 아이를 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팔에 힘을 주어 그 아이를 끌어안고 소리를 내어 울면서 아무개야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미안하다 먹고 싶은 과자도 못 사주고 가지고 싶은 장난감도 못 사주어서 정말 미안하다' 하면서 아이와 마냥 울고 나니 그나마 속은 후련하였다.
어떤 때는 양식은 없고 제분소(製粉所)에서 밀가루를 빼고 남은 밀기울을 구해 다가 죽을 쑤어 밥그릇에다 담아주니 그 어린것이 아무 것도 모르고 그 것도 먹을 것이라고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는 것을 보는 어미 심정은 무엇이라고 표현을 해야 좋을지 적당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지금의 목회자들은 거의가 이와 같은 일은 당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생활이 어려울 때 목회 하신 분들은 충분히 이해할 줄로 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최봉석 목사님은 먹을 것이 없어 너무 굶주리고 나니 정말 돌이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 먹고 싶은 심정인데 앞에 가는 말이 똥을 싸는데 그 똥에 말이 먹은 밀이 삭지 아니하여 노랗게 보이기에 그 마분(馬糞)을 가져다가 물에 흔들어 밀만 가려먹었다는 말은 오늘의 우리 교역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충격을 주고 있어 불평할 일은 못되지만 그래도 시대가 그때와는 너무나 다르지 아니한가 생각을 하면서 현재 당한 고통을 정당화하려는 못된 기질이 고개를 들고 일어 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 뿐만은 아니다 농사철이 되면 사모는 성도들이나 불신자들이나 할 것 없이 다니면서 일을 도와주고 그들과 접촉하여 전도도 해야지 그냥 앉아서 교회 나오기를 기다려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아니하여 목회자 내외분은 들로 나가야 하는데 가서는 그들과 같이 모도 심어주고 여러 가지 농사일을 도우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하면 그들과 빨리 가까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여하간 농촌에서 목회 하는 목회자들을 위하여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총회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의 생활비문제 아이들 교육비 문제 여러 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지 '농촌교회 돕자'는 구호로만 되는 일이 아니고 획기적인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농촌에서 희생하고 있는 목회자들과 사모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며 농촌지역을 복음(福音)화 하는데 앞장 설 이유는 농촌교회는 도시교회 묘판(苗板)이기 때문인데 묘판을 정성껏 돌보지 아니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당연한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농촌교회가 잘못되면 도시교회도 손해를 보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말인데 농촌교회는 도시교회 묘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촌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농촌교회에서 목회 하는 목사나 사모가 도시교회에서 목회 하는 이들보다는 훨씬 더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고 각별한 보살핌과 위로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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