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편(男便)의 아내로서의 고통인 사모
사모이전에 한 남편의 아내로서 내조할 책임이 있는데 아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도 어려운데 사모역할까지 감당한다는 것은 더욱 벅찬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일이라 옛말과 같이 "들 토끼 잡으려고 하다가 집토끼를 놓인다"는 말이 있는데 아내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사모의 역할은 제대로 하겠느냐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기록하기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하였다(고전7:3-4).
아내나 남편은 피차에 그들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을 의무를 다하고 하는데 '의무'의 헬라어 '오페일렌'은 '빚', '채무'를 뜻하며 본 절에서는 부부가 서로에게 져야 할 '의무', 특히 성생활에서의 의무를 뜻한다.
그리고 '다하고'의 헬라어 '아포디도토'('다하라')는 '아포디도미'의 명령형으로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강제적인 명령으로서 충실한 책임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이 올바른 부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비도덕적인 음행을 자행함으로 결혼의 고귀한 가치를 망각한 자들이 많았음을 시사한다.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한 말은 의무의 이행은 남편과 아내 각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제시하는데 부부는 상호 책임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자기 몸에 대한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배우자와의 합당한 관계 속에서 정상적인 성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자신의 몸을 전적으로 자기 의사에 따라 사용할 수 없고 순결(純潔)한 결혼 생활은 부부의 평등한 의무가 항상 행해질 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며 부부의 권리도 그 의무 속에서 동등하고 상호적으로 요구될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모든 면에서 돕는 것이 의무인데 남편을 제대로 돕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는데 몸이 중한 병이 걸려서 아내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사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목회자이면서 남편이 때로는 빨래도 하고 밥도 짓고 아이들 수발도 들어 줄 때가 있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는 아내의 심적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도 목사이기 전에 건장한 남자라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때로는 성적욕구도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가 있을 것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메어지도록 아프고 미안한 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목사의 아내였다는 책을 저술한 분은 말하기를 "자기는 건강하여 남편의 성적요구를 다 받아주는데도 남편이 성적기능이 강해서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하여 항상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자기가 먼저 남편을 요구하는 형편이라"고 하였는데 그와 같은 분을 생각한다면 남편에게 죄를 짓는 죄책감이 들어 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남편이 부부 동반하여 참석할 자리가 있을 때면 더욱 미안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어 전전긍긍(戰戰兢兢)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목사님은 결혼하여 8년간 아내 병간호하느라고 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그래도 싫은 기색 보이지 아니하고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였는데 수고한 보람도 없이 끝내는 남편을 남겨놓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먼저 천국으로 보낸 서운한 감도 금할 수 없지만 병든 아내가 죽을 때까지 남편과 자식들에게 의무를 다하지 못한 심적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더욱 가슴 아파하면서 여보 왜 나만 남겨놓고 먼저 가느냐고 눈물 흘리며 임종을 지켜보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미안해요 여보 하면서 고요히 눈을 감는 아내를 잊을 수 없다.
그뿐 만은 아니고 남편의 아내라는 것 때문에 목사인 남편이 혈기를 내고 때로는 주먹질을 해도 사모의 위치에서 함께 싸울 수도 없고 참고 견디자니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때는 성도들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까하여 마음 조아리며 우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수양되지 못하고 옛 성질이 살아 있으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믿음이 좋은 사모님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까지도 참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이다.
필자가 본 목사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데 다름 아니고 그가 어느 교회 집회 강사로 와서 강론시간에 간증 삼아 하는 말인데 "나는 목사이지만 아내와 종종 싸우는데 때로는 주일 오전 예배시간 다되도록 싸우다가 예배시간 5분 정도 남겨놓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희들은 이만 싸움을 그치고 예배 마치고 다시 싸우겠습니다"하고 강단에 말씀 전하러 올라간다는 말인데 필자는 그 당시 왜 저분께서 저런 말씀을 하시나 하고 궁금해하면서도 덕이 아니 되는 저런 말은 하지 아니하였으면 좋겠구나 그 이유는 목사의 인격이 저하되기 때문이고 성도들이 배워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수양되지 못한 비인격적인 남편과 함께 산다는 자체가 장래성이 없고 살아갈수록 더욱 고통스럽지 아니하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아내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듯이 아픔을 느끼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믿고 안 믿는 것을 떠나서 교양 있는 아내들은 남편이 하는 일을 심하게 무례할 정도로 대항하지 아니하고 할 수만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하여 가정을 조용하게 만들고 싶어하고 자식들에게 그와 같은 것을 보이지 아니하려고 속을 태우는데 사람이 바싹바싹 말라간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성질이 나쁜 사람은 큰 은혜를 체험하기 전에는 본색이 들어 날 때가 많은데 그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고 이웃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렇다고 당장 그만 둘 처지도 아니라 그래도 아내노릇을 해야하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한 남편의 아내노릇을 제대로 하기란 너무나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은 포기하고 싶어도 쉽게 포기할 성질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기도 싫증나니 죽을 맛이라 더욱 괴롭다는 것이다.
남편 된 목회자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아내를 사랑하여 목회 하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남편이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은 남편으로서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이제라도 사모님에게 최선을 다하여 위로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통 여인들은 아내 노릇하기도 힘이 든다고 약간만 고통을 당해도 이혼한다고 야단법석을 떠는데 목회자 사모는 아내 노릇도 해야지 대중을 상대하는 사모노릇도 해야지 이중역 할을 하자니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자기들의 사명을 다하기도 벅차지만 가정의 주부요 남편의 아내이며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하는 사모님을 위하여 시간을 내가지고 위로하고 쌓인 스트레스(stress)를 확 풀어주는 가정목회도 목회계획에 반드시 넣고 실천해야 목회다운 목회를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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