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적 돌봄에 있어서의 장례의식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며 생각하기조차 꺼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때에 죽음의 문제를 대화속에 화제로 올리는 것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비기독자라도 엄숙한 장례식중에 전파되는 메시지를 잘 경청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장례식에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영혼의 불멸과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구속적 사랑과 장차 있을 상벌의 확실성에 관한 기독교 교리들이 효과적으로 증거될 수 있다.1) ▿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죽음에 관계된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비강제적으로 참예하는 사람들이고 대부분 마음을 가다듬고 참예하게 마련이다. 즉 이 순간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예식과 접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죽음과 관련한 말씀을 통하여 가다듬어진 마음 속에 부활과 내세에 대한 소망을 소개하는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선교기회로 삼을 수 있다. 임종에서 장사를 다 마칠때까지는 평소에 자주 접촉하지 못하고 서먹하던 상가의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만나서 죽음이라는 사건을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전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기독교 장례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봉사정신, 그리고 어려운 때 협력하는 모습을 믿지 않은 이웃에게 보여줌으로써 교회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다. 1차적으로 지역사회가 교회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한다는 것은 전도전략상 아주 중요하다.
장례식의 여러가지 의식등 애도의 제도화는 회복하는 과정을 시작하는데 도움을 준다. 먼저 장례식은 여러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정도는 다르더라도 그들의 슬픔을 서로 나눈다. 동시에 좀더 슬퍼하는 사람을 지지해 주어야 할 필요성과 그들의 퇴행(regress)을 받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때에는 공격적인 표현이 최초로 감소된다. 그러면서도 부활신앙이 강조되어야 한다. 대부분 장례의식에 행해지는 설교는 가족에 대한 위로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여기에 부활신앙과 확고한 죽음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써 엄숙한 순간 열려진 마음들 속에 기독교의 중심 복음인 부활 신앙으로 위로와 소망의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장례식의 여러 의식 절차는 죽음의 현실을 명확히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며 부정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체를 보는 것, 관에 흙을 덮는 것, 여러가지 종교의식 등은 더이상 모호한 상태에 있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 또한 장례식은 슬퍼하는 자와 죽은자 사이의 명확한 차이점을 말해주는 상징이 된다.2)
장례식이 끝난후 서서히 슬픔은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며 죽음의 현실이 받아들여진다. 이때에는 처음으로 슬픔으로 인해 몸에 일시적 마비증상이 일어난 것과 대조적으로 몸에 여러가지 통증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때때로 이러한 통증은 죽은 사람이 임종때 경험했던 똑같은 증세를 보인다.3)
이것은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행동 유형이다. 이러한 증상은 이상화(idealization)등을 통하여 실제 사별의 사건으로 받아 들이고 사별을 당한 사람이 천천히 자기의 내적 세계를 구축함으로 말미암아 줄어들게 된다.
다음 몇가지 장례의식의 절차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 있어서 죽음 그자체는 구속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장례의식에서의 기도이다. 기도는 생명의 근원이자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며 만물이 그로부터 나왔다가 그에게 다시 돌아갈 하나님께 우리가 그를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하시고 언제나 그의 은총을 힘입어 우리의 시선이 사망의 세계를 넘어서서 영원한 빛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4)
둘째,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신다.”(시 23편)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입관예배이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집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5) ▿ 집은 우리의 손으로 지은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다. (고후 5:1)
입관예배에 해당되는 주요한 성서구절은 위로의 말씀이 담겨 있는 시편 23편, 27편, 39편, 90편, 96편, 121편, 130편과 롬 6장, 고전15장, 요14장과 같은 성서의 구절들을 알맞게 풀어 해석해 위로해 주는 일은 목회자의 의무라고 본다.
세째,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하관 예배이다.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 위탁하는 기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임재가 회상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둘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눅 23:46)라고 말씀하신 것을 회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허락 (요 14:1-3)으로 용기를 주어야 할 것이다.
네째로, 죽은자의 일생을 되돌아 보고 그 공로를 기리는 송덕문 낭독이다. 장례식에 있어서 당사자에 대한 사적 언급은 간결하고 신중하게 취사 선택해서 상황에 맞게해야 할 것이다.
장례식은 아첨하거나 감상주의에 빠지는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인간의 공로를 자랑해 주기 위해서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무시하게 되는 시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죽은자를 기리는 송덕문은 겸허하며 영적인 것이어야 하며, 모든 인간의 죽음을 초월한 부활의 소망과 함께 죽은자를 잃은 슬픔이 잘 조화되도록 해야한다.6) ▿러한 모든 절차를 통하여 죽음이나 헤어짐 같이 연약한 인간적인 동반 관계에 촛점이 맞추어질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하나님과의 동반 관계에 장례 의식의 촛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장례의식의 순서대로 좀더 구체적으로 목회적 돌봄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1) 임 종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고 하고, 그 운명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한다.7) ▿러므로 임종은 일생 중 가장 심각한 시간이며 영혼과 육체가 분리하는 시간이요, 낙원과 음부가 결정되는 시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임종시에 예수를 영접하고 낙원을 약속받았다. 임종시에는 흩어져 있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둘러앉게 하고 유언을 들으며 구원을 확신시켜 드리고 (특히 불신자 가정에서는 전도의 사역에도 힘쓰며) 계속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소망중에 운명하시도록 해야한다. 이 순간에는 많은 말이 필요없고 한마디의 상징적인 말이나 몸의 언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수 있다. 이 때는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통하여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8)
(2) 유 언
고령으로 임종이 예기될때 병세중 의식이 있을 때 자손들에게 재산관계, 가훈,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장례에 대하여 훈계를 말로 또는 글로 남기는 것을 유언이라고 하는데 이를 잘 녹음을 해 두거나, 기록해 두었다가 지켜야 한다.9)
1 유언의 방식 : 자필 증서, 녹음, 공정증서(公正證書), 비밀증서, 구수증서(口授證書)등의 5종류만 법적으로 인정된다.
2 유언의 효력 : 재산이나 상속관계에만 법적효력이 있지 윤리적 구속력은 없다.
3 기타 유언에 관한 사항은 민법 1060조 -1111조 참조
목회자는 좋은 유언을 하도록 환자를 도와 주어야 한다. 건전한 유언이 아닌 것을 부모의 유언이기 때문에 평생을 고심하는 경우도 있다.10)
(3) 입 관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 전염병이 아닌 경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후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상례이다.11) ▿입관의 절차에는 씻김과 수의입히기 그리고 입관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이 순서를 목회자가 직접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정성스러운 집례를 통하여 유족들은 위안을 얻게되고 목회자를 신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입관 전에 목회자가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상주와 장례일정을 의논하는 일과 기독교 신앙에 합당하지 않은 일체를 미리 부탁하여 금하게 하는 일이다.
(4) 장 례
장례식을 발인식(發靷式)이라고도 한다. 인생의 마지막 엄숙한 예식은 장례식이다. 그러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또한 지루하지 않고 간결하게 해야 하며, 몇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 예배이다. 장례식에서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다. 둘째는 유가족과 그외 애도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장례식은 하나님과 인간이 가까와지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므로 장례식은 고인을 위한 예식이기 보다 유가족과 조객을 위한 예식이다. 기독교 장례의 초점은 죽은 사람의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부활을 믿는 신앙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과 기도와 설교, 그리고 용어에 있어서도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12) ▿죽음’이라는 것을 평소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의 의미와 사후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반성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 기회는 인생의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장례이다. 따라서 이 장례식은 개인의 죽음을 넘어서서 전 교회의 종말론적인 의식인 것이다.13)
(5) 하 관
하관식은 흙으로 된 몸을 흙으로 돌려 보내고 산 사람들끼리만 돌아가는 예식이기에 슬픔은 더 한층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하관식은 엄숙하면서도 새로운 용기와 결심과 격려를 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슬픔을 한 몫 묻어 버리고 새로운 신앙으로 산을 내려 가도록 강조되어야 한다.14)
(6) 장 례 뒤
장례가 끝난 뒤에도 상을 당한 가정은 계속해서 돌보아 주어야 할 일등이 있다. 죽은 자를 안장하고 돌아온 그날 밤은 가장 슬픈 밤이다. 장례식은 모두 끝나고 조객들은 다 가버리고 텅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 때 목회자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때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당일에 못가면 수일 내에 방문하여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꼭 필요한 성경 말씀으로 힘을 얻게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위안을 충분히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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