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주일설교 _ 요한복음 15장 24-27절 “예수를 증언하는 진리의 성령”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말은 대중적인 인상으로 보면 안 맞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찬양하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말하거든요. 세상의 만민, 22억 정도의 인구가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13억 정도의 이슬람이 예수님을 존경합니다. 인류의 65억 중에서 약 40억 정도의 인구가 예수님을 찬양하거나 존경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가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미워하는지 미워하지 않는지 아는 길은 아버지 하나님 뜻을 통하여 세계 만민 가운데 형제자매들 우애를 창조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미워하는가입니다. 세계 만민에게 형제자매들 우애공동체를 만들고 언약적 결속감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사랑을 외쳤던 그 예수님을 사람들은 미워합니다. 역설입니다. 세상이 사랑을 외쳤고 사랑의 불멸성과 궁극적 가치를 역설한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말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사랑이 아니라 다툼과 경쟁이라는 겁니다. 이 설교를 보기 전에 코스타리카 축구하는 데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코스타리카가 이기기를 기도했습니다. 군대 없는 나라, 425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남한의 반 정도 되는 나라가 이기기를 원했는데 졌더라고요. 코스타리카 나라가 군대를 없앴습니다. 중남미 이웃에게 우리가 군대를 없애는 과정을 설명해줄 테니까 우리를 절대로 침략하면 안 됩니다, 동쪽에 있는 나라가 우리를 침략하면 서쪽에 있는 여러분이 우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라고 설득하면서 군대를 헌법으로 없앴습니다. 그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가 헌법재판소에게 고소를 당한 나라입니다. 코스타는 해변이라는 뜻이고, 리카는 풍요롭다, 풍요로운 해변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평화를 사람들은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적개심과 미움과 경쟁과 상호갈등이 세상을 훨씬 더 통제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만민을 설득하여 친절한 공동체를 이루는 이상보다는 사람을 경쟁시켜서 상호적대적인 알력을 조장함으로써 세상을 분할통치하고 구역을 나누어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보편적 원칙이 우리 모두를 고상한 사람인 것처럼, 내가 매우 고상한 사람이고 존귀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면 세계는 사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존귀한 형상을 가진 나에게 총을 들고 사람을 쏘라고 하면 안 쏩니다. 내가 존귀한 사람이라는 형상을 못 가지도록 내 자존심을 감가시키고 파괴하고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줄 만큼 잔혹하게 대우하는 세상은 나에게 인간이 아닌 사람의 일을 맡깁니다. 미국은 모병제를 합니다. 군인이 되는 사람은 그 사회의 potential criminal입니다. 잠재적 범죄자군이 군인으로 다 가게 돼 있습니다. 군대가 하는 일 자체가 살상행위입니다. 이 살상행위는 모병제를 통해서만 선발됐던 거죠. 최악의 살상행위를 양심의 가책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미 파괴된 인간을 군대로 모집합니다. 그래서 존귀한 대접을 받은 상원의원과 국회의장 아들과 왕세자가 군대에 가면 군대통솔이 통제가 안 됩니다. 왜? 상원의원 아들이 1분대에 소속돼 있으면 총 쏘지 않습니다. 살상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존귀한 아들로 대우 받았던 사람들은 함부로 부당한 명령에 절대로 총질하지 않습니다. 존귀한 대접을 받은 사람이 세상 요소요소에 사랑의 불멸성과 궁극적 가치를 믿는 사람이 요소요소에, 엄마 아빠에게 매우 존엄한 대접을 받고 존귀한 내 자녀라는 대접을 받은 사람이 회사나 악의 조직 요소요소에 배치돼 있으면 악은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악한 명령이 작동이 안 됩니다. 전달이 더 이상 안 되기 때문에요. 악을 일사분란하게 집행하려면 악의 상층부부터 밑바닥까지 악에 적극 찬동하는 agent 대리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관료적 중간질서에 악에 대해서 저항하는 몇 사람만 요소요소에 있어도 악은 전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지금 우리나라의 관료조직 군대조직이나 정당조직을 볼 때 악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모든 위계질서에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존엄함을 인정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악한 일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거거든요. 자기가 거짓말 하도록 강요당하느니 그만 두겠다, 이런 한 두 명의 개인이 법을 바꾸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악의 작동을 못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거거든요. 세상이 예수님 미워한다는 말,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천 만 명이 넘고, 이슬람도 예수님을 존경하고 심지어 조계종 스님도 예수님을 존경하다고 합니다. 인류의 대다수가 예수님을 존경하거나 적어도 숭배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악한가? 여기서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말 자체가 38장 찬송처럼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이런 찬양을 부를 정도의 허위의식과 허위적 감정으로 충만한 그런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기의 혈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다른 사람을 소생시키는 그런 삶의 방식을 선호한다, 그런 삶의 방식을 옳다고 믿는다, 이것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믿는 사람이 많다는 말은 예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 거죠. 옛날에 목회하다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교인이 항상 교회를 분열시키고 항상 항존직을 하던 사람이, 누가 보더라도 그 사람이 교회에 있음으로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이 눈에 다 보이는 바로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그 교회는 목사가 세 명이나 적응하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제가 갔을 때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말 예수님 같은 목사님이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예수님 같은 목사님이 오시면 당신은 교회 못 다닙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까칠하신 분입니다. 가까이 살기에 굉장히 까칠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아이스크림적인 감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죄와 불법을 사정없이 들추어내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한 교회를 다닌다는 것 자체는 굉장한 단계의 영적 수련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한국에 돈을 왕창 주고 노회바깥에서 안수를 집에서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 장로가 되기 위해서, 제가 나오자마자 그런 일을 자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목사를 찾던 사람이 예수님을 몰라도 한참 모릅니다. 예수님을 장동건의 얼굴이나 송혜교의 얼굴처럼 연예인적인 감정, 내가 손대면 끝없는 친절을 베풀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예수님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 안의 죄와 불법을 제거해주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못 느끼는 원리가 내 안에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방해한다고 느끼는 악한 죄성이 나에게 완전히 무장돼 있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그룹에 우리가 속했다는 말, 나는 아니겠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그룹은 세상 전부입니다. 예수님의 가치, 예수의 삶의 방식을 미워하는 이 그룹에서 내가 일탈되고 초월하려면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아야 합니다. 제가 이번 주 내내 읽었던 글은 1917-2013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역사에서 순교자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이 암살을 당합니다. 라빈 수상이 팔레스타인에게 우호적인 제안을 했기 때문에 암살당합니다. 이슬람 사람 중에서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국가로 인정합니다. 가자에 와서, 아라파트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해서 하마스라는 집단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 내 원수에 대해서 조금만 친절하게 해도 죽여 버립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광신 힌두교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원수에게 친절을 베풀고 적대세력에게 인간다운 친절과 자비를 베풀면 그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이익을 구하는 마음보다 내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1%라도 더 많으면 예수를 미워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말은, 나의 가치관과 돈 씀씀이와 나의 판단과 행위가 예수님을 좋아하는 것의 기준이지, 내 감정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을 내가 사랑한다는 감정을 가지고도 내 행위가 예수를 미워할 수가 있다는 거죠. 두형목사가 말한 한국교회가 바로 예수님을 감정적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행위적으로는 예수님을 엄청 미워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disfigure, 돈을 엄청 좋아하는 예수님, 섹슈얼한 성적으로 문란한 예수님인 것처럼 소문을 냈기 때문에 진짜 예수님을 미워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예수님이 돈을 너무 좋아하거나 불법과 탈법을 마음대로 참아주는 정의감도 없는 분처럼 20대 청년 30대 청년들에게 소문을 냈습니다. 실제로 한국교회 교권을 잡고 있는 자는 예수님을 증오하는 자고, 미워하는 자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죠. 그런 교회 나가서 헌금하고 그런 교회 박수치고 집회에 가서 손 흔들고 하면 미워하는 그룹에 들어가는 겁니다.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말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오랫동안 누적되게 불순종하고 배척하는 자만이 예수님을 보자마자 미워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누적된 순종과 신뢰를 바쳐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처참한 죽음을 당하기 직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진노하여 내친 분리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자기를 일부러 바치는, 언약적 결속감이 해체된 사건이 아니라 언약적 결속감이 완벽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진리의 성령이 오면 가르쳐준다는 겁니다. 진리의 성령은 실패처럼 보이는 그 사건이 참 성공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말이죠. 진리의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건처럼 보이는 그 쓰라린 십자가의 고독의 길이 사실은 아버지와 연합되는 사건이라는 거죠. 일상생활에서 보면 내가 신앙적 진리 때문에 경제적 희생을 당하고 모종의 고난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결속감이 나를 지탱시키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언약적 유대가 강하기 때문에 이런 손해가 나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진리의 성령이 내게 오면 가르쳐준다는 말이거든요. 마무리 하겠습니다. 진리의 성령은 하나님과 나를 인격적 유대관계로 묶어주는 성령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내가 경험하는 십자가의 고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신적 유기감이 사실은 아버지께 순종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내가 치러야 할 십자가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줌으로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면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든 제자들을 강한 확신으로 묶어줌으로 신앙공동체가 발생합니다. 진리의 성령만이 교회를 창조하고 교회를 유지하고 교회 안에 각종 은사와 재능이 꽃피게 만듭니다. 진리의 성령에 오래 노출되고 많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언약적 결속감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언약적 결속감이 강한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완력이 툭 쳐도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언약적 결속감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입증한 사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언약적 결속감이 없는 사람들은 내 힘으로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난이 탁 치면 허둥지둥하면서 우주적인 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처럼 구렁에 빠지고 시험에 드는 거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형제자매 사랑하기를 힘쓰고, 내 모든 자원과 재산을 가지고 사람에게 바친 사람, 우주적 연합상태에 하나님과 있는 사람은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신실한 언약적 유대가 있는가를 확인할 뿐 절대로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습니다. 진리의 성령의 영은 대반전을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요청하여 보내주신 진리의 성령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초라한 내 일상생활도 사실은 아버지 하나님과 경결하게 결합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건이 된다는 거죠. 진리의 성령이 일주일 내내 하나님과 언약적 유대관계를 창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리 할 때는 언약적 결속감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원래 성경용어로 진리입니다. 진리는 결속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에게 결속감을 창조하신 진리의 성령이 일주일 내내 여러분을 충만하게 신령하게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내 감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내 입술은 찬양한다고 찬양에 동참했지만 나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행위가 예수님을 미워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두려워 떱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 세상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실패로 규정하는 이 세상이 놀라 자빠질 만큼 대 반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내 생애도 가끔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결속이 붕괴된 것처럼 보이는 고독감에 시달릴 때가 있지만 진리의 성령께서 오셔서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다가 신적위기감과 고독감이 초래된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일주일 내내 우리 형제자매들 남 보지 않는 곳에서 제자의 길을 따라갈 때 신적고독감과 위기감이 엄습할 때도 진리의 성령이 꼭 붙들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진리의 성령만이 우리 형제자매들 사랑과 우애로 묶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서울가향을 진리의 성령으로 강권하게 묶어주소서. 주를 위해서 단결하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해서 하나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봉헌기도) 아버지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들이 고단한 일터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감격과 감사로 바쳤습니다. 이 귀한 헌물은 하나님 백성을 위해서 아낌없이 쓰임 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물질이 교회 창고에 쌓이지 않게 하시고 교회 구좌에 쌓이지 않게 하시고, 교회 돈놀이 재테크에 쌓이지 않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 당장 주님이 먹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 돈이 양식이 되게 하시고, 가브리엘과 미가엘 천사의 위로의 양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돕지 못하는 것 있으면 깨우쳐주시고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서로 상호 돕게 하시고 사랑하게 도와주소서. 직장을 위해서 문 두드리는 아들딸들 문을 열어주시고 한 데나리온 벌 수 있는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일터를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일터에서 곤경가운데 빠진 지체들 있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을 공연히 이유 없이 박해하고 괴롭히는 자들 있습니까? 그 직장상사 또는 동료를 주님께서 재판하여 주시고 우리 형제자매들에 대한 도발을 멈추게 하시고 공격을 멈추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위기에 빠진 직장에서도 바람이 불때마다 뿌리가 깊어지는 나무가 되게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다함없는 사랑과 성령님의 교제 교통 충만하심의 역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가향 교우님들의 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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