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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순종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창 22:1-19)

by 【고동엽】 2022. 2. 9.

순종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창 22:1-19)

 

성자 어거스틴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서 '자기를 제자로 삼아 달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배울 것이 많고 유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제자가 되고 싶다고 몰려 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배추 한 포기씩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배추를 거꾸로 땅에 심으시오' 그리고 나가 보니 모두 바로 심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한 명만 배추를 거꾸로 심어 놓았습니다. 모두가 그를 보고 비웃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다 돌려보내고 그 사람 한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제자가 되겠다면 스승의 말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 제일의 덕목'이라고 말했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자의 기본인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성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면 직장에서 상사에게도 순종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명을 다하는 것도 다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멘'은 순종하겠다는 고백이요 다짐입니다. 고후1:19-20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할/
여기서 아멘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멘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아멘'이십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할!/아멘!/입니다. 아멘은 크리스천만이 사용하는 고유의 용어입니다. '아멘'은 기독교에만 있지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아멘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도와 찬송을 할 때 '아멘' 소리가 너무 커서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와 우렛소리와 같았었다'고 신학자 '제롬'이 말했습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아멘이 많아집니다. 지금도 기도소리와 찬송소리가 우렁차고 아멘 소리가 큰 교회가 부흥하고, 또 아멘 하는 사람들이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아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입술로 하는 아멘, 마음으로 하는 아멘, 행동으로 옮기는 아멘'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아멘' 하고, 축복 속에서도 '아멘'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아멘'이요, 아플 때도 '아멘'입니다.
'아멘'은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삼상15:22절에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낳다'고 했습니다. 순종한 다윗은 복을 받았지만, 불순종한 사울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순종은 축복 받는 비결이요, 하늘 문이 열리는 통로요,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덕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문을 열어 드리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믿/
존 칼빈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 복종을 요구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본 회퍼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과 순종, 바로 그것이다.' 즉 신앙이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맥도날드는 '순종이야말로 모든 문을 여는 열쇠'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앤드류 마레이'는 '예수 믿는 성도는 '순종학교'에 입학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할/ 오늘은 주제는 순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 소개!▶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우리 신앙 인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은 찾아오는 복도 쫓아 버립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화합이 깨지고 조화가 무너지고 불화가 조성됩니다. 참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런가 하면 복을 받으려고 별 짓을 다해도 복이 멀리 달아나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복이 쫓아와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은 이렇게 따라와 주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가는 곳마다 복이 쫓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이 주어졌습니다. 형통함이 주어졌습니다. 앞길이 순탄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사람입니다.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복이 함께 했습니다. 형통함이 따라다녔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가 복 받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면 그 비결이 몇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①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 쌓는 생활'을 했습니다. 복 받는 첫째비결입니다.
아브라함은 옮겨가는 곳마다 가서는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생활의 특징입니다. 창13:3-4절에 보면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 말은 아브라함이 항상 예배 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이 예배 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만복의 근원입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의 사람이 된 것은 바로 이 예배 생활 때문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원천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비결입니다. /할/
②그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평화주의자입니다. 아브라함은 평화를 위해서 투자를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희생도 감수했던 사람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조카 롯과의 분쟁 해결 사례입니다. 조카 롯이 재산 문제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재산이 적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아브라함이 재산이 많아지니까 조카와 갈등이 생겼습니다. 재산은 좋은 것인데 또 한편으로는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도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재산 때문에 가정이 불화한 것을 알고는 재물에 관심이 많은 조카 롯에게 자심이 가지고 있는 재산 중에서 좋은 것을 모두 다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불모지의 땅을 갖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결단입니다. 그리고 조카 롯을 내보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의 소지를 없앱니다.
얼마나 용단 있는 행동입니까? 이것은 그가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화는 누군가가 이렇게 희생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손해를 감수해야 비로소 평화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 순간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얼마 후에 보면 반드시 하늘이 주는 보상을 받게 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집에서 내보내고 배신감과 허무감에서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을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보상해 주시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창13:14절을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평화를 위해서 손해를 많이 보게 된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면서 장차 그에게 이와 같은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후를 보십시오. 롯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빈 몸으로 탈출해 나옵니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서 나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롯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허허벌판, 언뜻 보면 쓸모 없는 황무지인 것 같았던 그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땅이 나중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복지가 됩니다. 이것이 억지로 되는 일입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하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이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 보십시오. 화합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그것을 위해서라면 손해도 회생도 감수해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늘의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할/
③그는 '손 대접을 잘 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인가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강권해서 집으로 데려다가 정성을 다해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나그네가 천사였습니다. 이 정도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뭔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복 없는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을 위험을 무릅쓰고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달라고 한다는데, 복 있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 한 번 대접한 것이 그만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유대인의 격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부지중에 손 대접하면 그것이 천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여러분, 많이 베풀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나누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만나는 사람 한 사람에게도 좋은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인연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좋은 일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는 복이 쫓아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복을 받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성공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대접했는데 결국은 천사를 대접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복이 저절로 들어왔습니까? 아닙니다. 거기에는 아브라함의 남다른 생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④오늘 주제인 그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표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이 되면 절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예'만 있었고 '아니오'는 없었습니다. 떠나라 하면 그는 말 없이 떠났습니다. 아들을 바치라 하면 말 없이 바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라는 물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오직 '예'만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축복이 따라다니게 된 이유입니다. /아멘!/ 믿음과 순종은 하나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순종하게 되고,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불순종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할 때 떠나는 순종을 했습니다.

창12:1절 이하의 사건입니다. 그 당시 갈대아 우르는 문명의 도시, 살기 좋은 땅 이였습니다. 그 땅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정으로 생각해 보면, 좋은 직장에 좋은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그 직장 직위 다 버리고 오지 땅으로 나가 선교사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명령에 /아멘!/하고 순종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 부모형제 친구도 재산도 다 버리고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니까 떠났습니다. 히11:8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하나님이 가라고 한 땅이 어떤 땅인지도 모르고 순종하고 떠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떠나라'고 하십니다. 어디에서 떠나야 합니까? 죄의 자리에서, 불 신앙과 불순종의 자리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신앙은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곳이 어디인가? 성별 된 새 이스라엘을 건립할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가야할 땅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야 합니다. /할/
②'하갈과 이스마엘을 버려라!'고 할 때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창21장의 사건입니다. 남녀관계가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놈의 정 때문에 어떻게 쉽게 끊을 수 있습니까? 또 첩에서 난 자식이지만 혈육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갈도, 이스마엘도 버렸습니다.
왜? 하나님이 버리라고 하시니까 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버릴 것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교만과 거만과 오만을 버려야 합니다. 신앙은 버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도 탐욕도 정욕도 버려야 합니다. /아멘!/

③100세에 얻은 이삭을 모리아 산상에 번제로 드려라!
오늘 본문의 사건입니다. 이런 순종은 정말 어려운 순종이요 결단입니다.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결단! 그리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자기의 생명처럼 아끼는 외아들 독자 이삭을 드렸듯이 우리도 가장 귀중한 것들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나의 생명까지도 주님이 요구하시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의 전인격을 요구하십니다.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할/


▶오늘 본문을 잘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시험을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하는 시험과 사단이 인간의 욕심을 충동시켜 치르는 시험이 있습니다.
먼저 사단은 사람을 잔뜩 잘났다고 추켜세워서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 놓은 다음에 욕심을 일으킵니다. 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치다가 결국 영육 간에 멸망을 초래하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치르시는 시험을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연단 시켜서 자격자로 만든 다음에 그 자격에 합당한 복을 주시려고 시험을 주십니다. /믿/
세상에도 실력이 좋은 사람은 인류회사에 합격해서 좋은 대우를 받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믿음의 시험을 꼭 치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치르는 시험을 성령 님을 통하여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할/ '나는 그 시험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라고 걱정했는데 지나놓고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성령 님이 이길 힘을 주시고 복은 우리가 받습니다. /할/

이렇게 하나님도 우리를 시험하실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뜻대로 순종만 하면 결과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십니다. /아멘!/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주신 시험문제는 인간적으로 깜짝 놀랄 시험입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백 살에 낳은 아들, 이삭이 있지?' '네! 하나님의 은혜로 잘 큽니다.' '그 아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가면 모리아 산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제단을 쌓고 네 아들이삭을 목을 베어 불로 태워 내게 번제로 드려라' 이런 시험입니다. '번제'는 흠이 없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단 위에 있는 나무 위에 벌여놓고 내장과 정강이도 물로 씻어서 단 위에 불살라 향기로운 냄새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니까 이삭을 잡되 각을 떠서 불에 태워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이런 시험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시험입니다. 백 살이 다 되어 얻은 그 아들이 감기만 들어도 심장이 뛰겠는데 그 아들을 아비 손으로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리라니 너무나도 기가 막히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전 그런 것을 순종 못하겠습니다. 주실 때는 언제고 또 바치라는 것은 뭡니까?' 이렇게 조건과 핑계를 대자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핑계 조건을 댄 것이 아니라 '네, 아멘 순종하겠나이다.'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을 봅니다. 이 순종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복을 받는 비결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순종을 했는가?
①청지기 적인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야 한다는 순종입니다. 여러분! 네 몸도 네 재산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요, 네 아들딸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믿/
아브라함은 이런 청지기 적인 순종을 갖았습니다. 그 순종이 여호와 이레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런 귀한 순종하는 믿음을 배워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②부지런한 순종입니다. 아들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이틀이나 사흘쯤 있다가 느지막하게 떠난 것이 아니라 명령을 받은 이튿날 이른 새벽에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부지런한 순종을 해야 합니다. 명령이 떨어지자 마다 망설이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보이는 사람은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신앙으로 권면을 해도 '아! 그래요 내 생각은 그것이 아닌데' 하고 자신이 판단하고 무시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큰복을 못 받습니다. 항상 그 타령입니다.
여러분, 믿음 안에서 복 받을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계적인 부자 '빌 게이츠'도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믿/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할/
③말씀대로 순종한 믿음입니다. '너는 사흘 길을 가서 모리아 산에 내가 지시하는 산에서 제사를 드려라' 하나님의 말씀에는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는데 요사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중보 자로 믿지 않고 자기가 직접 통한다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나에게 계시가 왔어!' 하면서 자기는 '직통계시자'라고 우겨댑니다.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잘못 넘어가면 완전히 이단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가 이 말세에 바른 신앙을 가졌다는 것 하나만도 큰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④분별력 있는 순종입니다. 사람은 종종 어떤 커다란 일을 당하게 되면 당황한 나머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설치다가 그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큰 문제 앞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놀라우리 만치 침착하게 행동한 모습을 봅니다. 자신의 아내 사라에게도 이 일을 비밀로 했습니다. 만약 사라가 이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커다란 충격을 받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신의 마음속에도 인간적인 욕망이 생겨 자칫하다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분별력은 하나님께 구하면 은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할/
⑤방해물을 제거하는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갈 때에 두 사환도 데리고 갔습니다. 사흘 길을 간 다음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밑에 왔을 때에 아브라함은 두 사환에게 '너희 둘은 여기 머물러 있어라! 내가 아들하고 저 산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라!'고 해 놓고 올라갔습니다.
사실 사환을 데리고 가면 제단을 쌓기도 쉽고 장작을 가져가는 것도 다 쉽겠지만 이삭을 제물로 잡을 때, 그들이 그냥 보고 있겠는가? 우리 주인이 미쳤나보다고 말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미리 알고 방해물을 미리 제거하는 순종을 보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방해가 되는 것은 미리 다 제거를 해야 됩니다. 심방 받을 때 전화기를 잠시 빼 놓는 것도 좋고 예배드릴 때 핸드폰은 꺼놓은 것은 기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경건하게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할/
⑦아브라함은 변동이 없는 꾸준한 순종을 보였습니다.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제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하여 묶었습니다.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다가도 중간에 변동이 많습니다.
기도하다가도 조금 피곤하면 쉽니다. 십일조는 잘 하다가도 액수가 많아지면 쉽니다. 처음 직분 받을 때는 열심히 있는데 어찌 점점 식어 가는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 열심히 식고 신앙이 내려가면 얼른 깨닫고 다시 한 번 열심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늦게 깨달으면 맞을 매를 더 맞습니다. 하나님께 코가 뀐 사람들은 신앙이 내려가면 내려 갈수록 손해만 봅니다. 하나님은 깨닫기까지 어려운 시험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아멘!/
아브라함은 중간에 변동이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이삭을 칼로 찌르려고 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나님! 알아서 하십시오.' 맡기는 심정이었습니다.
칼을 번쩍 들어 이삭을 치려할 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난데없는 천사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네 독자 이삭을 내게 바치는 일에 털끝만치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네가 나를 경외하는 것을 이제 알았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음매!' 하는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보았더니 수양 한 마리가 나무에 뿔이 걸려서 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 벌써 아들 대신에 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아브라함은 아들 대신에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할/
▶우리는 여기서 3일 길에 모리아 산을 향하여 올라올 때 이삭을 이미 죽은 자였으나 이제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것을 예수님께서 장사지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니 하나님은 준비하신 복을 아브라함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그 복이 여호와 이레의 복입니다. /할/ '여호와 이레'란 말은 일반적으로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뜻은 '여호와께서 보신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을 다 보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건강도, 재물도, 명에도, 축복도' 다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받을 복은 어떤 복입니까?
①'여호와 이레' 준비된 복을 받았습니다.
②자손의 복입니다.
17절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한 아들을 바쳤더니 하늘의 별처럼 신령한 자손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육신의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형통에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습니다. /할/ 오늘날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는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③승리한 자가 누리는 명예의 복입니다. 17절하반절에서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얻어지는 명예를 윗사람들에게 아첨해서 얻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모택동이가 죽자 그의 아내 송미령 여사가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박대통령이 김재규의 손에 죽고 나자 그가 집권할 때 비리들이 신문에 보도되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안개처럼 살아져 버렸고, 백담사에 가신 분도 그의 모든 명예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서 세력이 좋을 때에 높아지는 명예를 아첨에서 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얻은 명예는 아첨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오늘도 하나님 앞에 빛나고 천추 만대까지 빛날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눅16장은 부자와 나사로 죽었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으니 천사가 그의 영혼을 아브라함의 품안에 부자는 지옥에 들어가 목이 타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하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도 빛나는 이름이요, 천국에서도 빛난 이름입니다. /할/
④축복 권을 받았습니다. 창12: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무슨 말씀인가? '네가 복을 빌면 그 사람이 복을 받고 네가 저주하면 그 사람에게 저주를 받겠다, 그뿐 아니라 너는 존경해서 복을 비는 그 사람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미워해서 저주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게 되는 축복 권을 너에게 주마' 그런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빌면 복이 내리고 저주하면 저주가 내리는 축복 권을 가진 권위자입니다.
우리 모두 이 축복 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집안에 있으면 집안이 화목하고 그 사람이 직장에 나가면 직장이 잘되고 그 사람이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되고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일이 잘되어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가 있습니다.
①자신의 경험과 하나님의 능력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1분에 100미터를 달리면 하나님도 1분에 100미터밖에는 달릴 수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실패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②사탄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은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마음을 사로잡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됩니다.
③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과소 평가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을 거역했거나 불순종한 사람들은 모두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불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라는 대로합시다! '하겠습니다. 힘쓰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시다. 그리하면 문제를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순종의 사람이 됩시다. 순종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아멘!/
①이치에 맞지 않아도 믿고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천지창조 사건이나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 십자가나, 부활사건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은 이해하는 책이 압니다. 믿으라고 주신 책입니다. 믿고 보니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계시의 비밀입니다.
②힘이 들어도 순종합시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지키기 어려운 힘든 사명을 주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로 가는 삼일 길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그가 평생에 걸어온 길보다 더 길었을 것이며, 평생에 졌던 짐보다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힘이 들어도 끝까지 지시한 말씀을 좇아 나아가서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③자존심이 상해도 순종합시다. 요2장에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에서 마리아가 말합니다. 예수가 당신들을 불러서 '무엇을 시키면 그대로 순종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연회장과 주인이 있는데 예수의 말을 듣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닙니다. 두 세 통 드는 여섯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갔다 드리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종의 심정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요나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합니다(욘1:2). 요나의 감정은 도무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 우리 민족들에게도 전할 자가 많은데 니느웨까지 가야 하는가? 또 하필이면 이방 중에서도 선량한 민족들이 많은데 유대 민족을 괴롭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복을 전해야 하는가?
만약 내가 니느웨에 가면 나는 민족의 반역자요 매국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편치를 못한 것입니다.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처럼 요나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다시스로 향하여 가기로 작정하고 배를 탔습니다. 얼마를 가지 못하여 대풍을 만났습니다. 요나는 상한 감정을 풀고 하나님께 항복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로 달려갔습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고침 받기 위하여 자신을 개같이 취급하는 주님 앞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자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했습니다.
④억지로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요2장에 잔칫날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날입니다. 아무리 하인이지만 이날에 두 세 통 드는 항아리 여섯에 물을 '아구까지' 가득 채우는 것은 하기 싫은 것입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실 때 구루네 사람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갔다가 예수 만났습니다. /할/

 

▶어떤 마음으로 우리가 순종해야 할까요? 순종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①온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라! 신26:16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②즉시 순종하라! 아브라함이 이런 순종을 보였습니다.
③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라! 시100:2절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④철저하게 온전히 순종하라! 민14:24절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⑤끝까지 순종하라! 시119:33절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아멘!/

 

▶누구에게 순종할 것인가? 중요합니다.
①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행5:29절에서 베드로가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신앙의 기본입니다. /할/
②주의 종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히13: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가? 밥 사달라고 하면 사주는 그런 순종입니까? 아닙니다. 이런 순종은 안 해도 됩니다. 신앙의 유익을 위한 가르침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믿/
③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엡6:1-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까?
①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행5:32절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②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됩니다. 벧전1: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③마음에 즐거움을 얻습니다. 사55:2절 '나를 청종(순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④재앙이 물러갑니다. 렘26:13절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순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⑤만선의 축복을 받습니다. 눅5:1-11절에 보면,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목적이 넘치게 이루어졌습니다. ㈁즐거운 비명소리가 났습니다. '도와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지금 너 나 할 것 없이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지금도 즐거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일감이 많아서, 공사가 많아서, 고객이 많아서 /할/

㈂베드로의 고기 잡은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축복의 깊은 의미는 나누어주는데 있습니다.
⑥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축복도 있습니다. 요2장의 물이 포도주 된 기적의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순종의 결과입니다. 마리아가 그 하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하라'가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니 하인들이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또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역시 그대로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순종한 것입니다. 여기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
⑦불치의 문둥병도 치유됐습니다. 왕하5장에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완전한 순종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나아만이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그 부하들은 큰 소리로 '한 번입니다'하고 크게 외쳤을 것입니다.
그때 자기의 몸을 보아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두 번, 세 번, - 여섯 번째'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 몸을 완전히 잠그고 일어났을 때, 온 피부가 곱고 윤기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4절에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할/
⑧순종도 습관입니다. 무엇이든지 해본 사람은 잘합니다. 기도도 해본 사람이 잘하고, 충성도, 전도도, 사랑도 해본 사람이 잘합니다. 맛을 봐야 맛을 안다고 했습니다. 순종하는 좋은 습관을 쫓아 살다가 하늘 문이 열려지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스엔젤스에 안경집 하나가 잘 되는 집이 있습니다.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그 집 앞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나는 안경밖에 모릅니다.' 사람들은 이 말에 신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잘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순종밖에 모릅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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