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칭찬해 준 믿음! (마 8:5-13)
석가는 '인생은 고해'라고 말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죽음만이 고통을 벗는 최선책'이라고 했습니다. 케에르 케고르는 '인생이 무엇이냐? 죽음에 이르는 병든 자'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지혜자라고 자칭했던 괴테는 '인생아 너는 근심 없이 기쁨으로 지난날을 헤아려 보라'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들의 절규는 한마디로 허무와 무상(절망)입니다. 80년대를 주름잡던 가수 조용필은 오래 전에 동아일보의 그의 자서전에서 '인생 40고개를 얻은 것은 오직 허무함만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소망 중에 기뻐하라, 고통과 시련 중에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복음은 한마디로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과 소망과 사랑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이고 근심과 걱정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들의 모든 무제를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세상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할/ ◀제목 소개!▶
성경에는 믿음이 적음으로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믿음이 좋아서 칭찬을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책망 받는 사람은 놀랍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본문의 26절에 보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두려워할 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또 마14:13절에 보면 베드로가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주시거든 나를 바다에 걷게 하소서' 주께서 오라 허락하시니 베드로가 물 위로 걷다가 바다와 물결을 보고 무서워 빠져 들어갈 때 '믿음이 적은 자'라고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마17장에서도 변화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께서 아홉 제자들이 귀신들린 어린아이 하나를 고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하시며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할/
세상에서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학자가 '칭찬은 사람을 망친다.'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한 사람이 너무나 잘 썼다고 칭찬을 해 주자 그 사람은 너무나 좋아하면서 말하기를 '한 턱 내겠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작가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써서 한 때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칭찬에 인색하면 사람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칭찬에 인색한 부모가 밤낮 자기 자녀를 야단만 쳤습니다. '공부를 못 한다느니, 친구를 못 사귄다는 둥 야단뿐'이었습니다. 그러던 그 아들이 아버지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70점 대에 맴돌던 아들이 80점대로 올랐습니다. 자랑스럽게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였는데 아버지는 'B 학점이 무어냐? A 학점을 받아야지' 쓴 소리만 합니다.
아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90점을 받았습니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여 드렸더니 이번에는 '100점도 못 맞았어?' 그럽니다. 그 아들은 더욱 노력해서 드디어 100점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크게 칭찬을 기대했는데 '이번 시험은 쉬웠나 보다'고 합니다. 아들은 낙심하고 그 다음부터 의욕이 생기지 않아 성적이 자꾸만 떨어졌습니다. 칭찬에 인색하면 사람을 움직이지 못 합니다.
▶'킹슬리'라는 사람이 칭찬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했습니다. ⑴칭찬할 일이 생겼을 때 즉시 칭찬하라. ⑵잘한 점을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⑶가능한 한 공개적으로 하라. ⑷결과보다는 과정을 칭찬하라. ⑸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칭찬하라. ⑹거짓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칭찬하라. ⑺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칭찬할 점이 보인다. 칭찬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칭찬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⑻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더욱 칭찬하라. ⑼잘못된 일이 생기면 꾸짖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 일을 유도하라. ⑽가끔씩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라. /할/
▶인천 상륙 작전으로 우리나라를 공산당으로부터 구한 은인은 맥아더 장군입니다. 그는 어려서 골목대장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두드려 패고 싸움만 하는 말썽꾸러기 아이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꾸중만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맥아더야! 너는 군인기질이 많아. 군인이 되면 큰 군인이 될 기질이야' 이 말 한 마디가 맥아더를 흥분시켰습니다. 그는 자라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드디어 큰 군인이 되었습니다. 칭찬 한 마디가 인생을 바꾸어 줍니다. 정신적으로 죽은 사람을 살려 줍니다. /아멘 입니까?/
▶어느 유명한 화가의 고백입니다. 어머니가 장보러 간 후 혼자 놀다가 잉크병을 깨뜨려서 잉크로 온 벽이 뒤범벅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오면 혼날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와서 얼룩진 벽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미술가가 될 소질이 있구나! 예술적이다' 어머니가 주는 칭찬 한 마디가 그 아들을 미술가로 만들었습니다. 한 마디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에디슨은 말했습니다. '나는 칭찬 한 마디를 들으면 한 달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칭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칭찬은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지그 지글러'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거울 앞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울 속에 자기를 보면서 외칩니다.
'너 지그 지글러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께서 네 지갑 속에 오늘도 24 시간을 넣어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면 오늘도 기적이 가득한 하루가 될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온 세상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로마가 점령하였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백여 년 동안 로마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한국은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대나라는 백년이 넘는 동안 로마의 식민지로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총독이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그 밑에 로마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시하고 착취했습니다. 그때에 로마정부는 이스라엘의 분봉 왕으로 헤롯을 세웠는데 그는 한마디로 정치 청부업자였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 땅에서 3백 억의 세금도 받아야 되겠다고 하면 헤롯왕은 로마의 가이사 황제에게 3백억 원의 세금을 바치기로 계약을 하고 백성들에게는 한 5백 억쯤 거두어 웃돈을 가로채는 정치 하청업자 노릇을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군대가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 잔인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쓰라린 고통을 받았습니까? 당시 로마인이 세계에서 행한 잔악상이 지금 역사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로마의 원형극장은 지금은 위 지붕이 조금 무너진 채 남아 있지만 7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극장이었습니다. 극장 지하실에는 사자, 호랑이, 곰, 독사, 등 맹수를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는다고 몰아 잡아서 이 원형극장 중앙에 내 놓고 맹수들이 나오는 문을 열어 사자들이 달려 나와 죄수들을 묻어 뜯고 찢어 먹는 것을 구경하며 좋다고 박수를 차던 자들이 바로 로마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로마 군인으로써 식민지 나라에 파견된 백부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한마디로 원수였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계급으로 대위 정도 됩니다. 로마군대는 한 군단이 6000명인데 이것을 60단위로 100명씩 한 부대로 하여 그 지휘권을 백부장에게 주었습니다.
백부장은 장기 복역자(직업군인)이며 그 지위가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돈도 많았고, 세도도 놓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유대인들을 핍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취급하고 있는 눅7:5절 이하에 보면 유대사람들이 로마인들에게 다 착취를 당하였으므로 가난하여 작은 고을에 회당 하나를 지울 힘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백부장이 자기의 사재를 털어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교회를 지어주었던 사람입니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훌륭한 사람입니까? 이런 백부장이 유대인들에게 존경받을 것을 당연합니다.
여러분, 그 당시 회당은 오늘 날 교회입니다. 교회 하나 바로 세우는 것이 민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도산 안 창호 선생님은 참 지혜로운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배재학당에 입학할 때였습니다. 평양으로부터 서울로 면접 시험을 보러 왔습니다. 이 때 아펜셀러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평양에서 서울까지는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8 백리입니다.' '그렇게 먼 곳에서 배우러 왔느냐?' 이런 질문을 받고 도산 안 창호가 물었습니다. '미국은 여기서 얼마나 됩니까?' '8만리 정도다' 이 말을 받아 안 창호가 말했습니다. '8만리에서 가르치러 오셨는데 8백리에서 오는 것이 무엇이 멀다고 하십니까?'
아펜셀러 선교사는 안 창호의 지혜에 놀라서 당장 합격시켰습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리면서 늘 말했습니다. '경찰서 10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낫다' 성전 건축은 민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로마 백부장은 사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러 온 침략자입니다. 그런데 와서 회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교회가 바로 서면 민족이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에게 비난거리가 되고 문제인물이 되고 사람들의 속을 썩이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존경받는 것은 최고의 인격적인 대접입니다. 우리 모두 존경받는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오늘 예수께 칭찬 받았던 백부장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기도하는 사람입니다!(5)
①백부장은 중보기도자였습니다. 지금 백부장은 누구의 문제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자기의 종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진정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기도해 주는 것을 중보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중보의 삶은 내가 누군가를 돕고 지팡이가 되어주고 함께 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면, 중보의 기도는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눈물로 나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런 중보의 삶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중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입니다. 예수님도 '두세 사람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면 따뜻하다고 했습니다. 삼 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복입니다. 또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중보의 삶에는 이런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진정 중보의 마음이 있는 곳에는 하늘이 움직이십니다. 하늘도 감동하십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위력이고 힘이고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주의 종들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중보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목적을 다 이루는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아멘!/
②간구하는 신앙인입니다.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며 가로되" 간구하는 기도는 보통 기도와는 다릅니다. 마음이 원이 되고 한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눈물로 애타게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가 간구의 기도입니다. 간구의 기도는 힘이 나가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약5:16절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할/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기도의 참 맛을 모릅니다. 여러분! 지식은 힘입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더 큰 힘입니다. 지식의 힘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힘은 더 무섭습니다. 기도 속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깊은 인생을 살려면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굳센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항상 기도하십시오, 마음에 평화를 원하십니까? 기도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까? 깊은 기도 속에 빠져 보십시오,
▶기도에는 세 가지 힘이 있습니다.
⑴놀라운 위안의 힘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삽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자, 사업에 실패한 자, 이별의 아픔을 겪은 자, 죄악으로 괴로워하는 자, 절망 속에서 신음하는 자, 기타 여러 가지로 저마다 고난과 슬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따스한 위로를 원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기도는 어머니의 따뜻한 음성과 같고 부드러운 손길과 같습니다. /믿/ 우리 주님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귀가 열려 이 말씀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멘!/
⑵놀라운 영감의 힘을 줍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정열을 한데 묶어 어떤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절히 염원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정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한 목표와 한 초점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내부에는 놀라운 영역이 있습니다. 인간 속에는 위대한 천재가 잠자고 있습니다. 무한한 영적 에너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잠재력을 끄집어내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영역을 끄집어내는 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할/
⑶기도는 신앙의 힘입니다. 신앙은 기적도 낳고 훈련은 천재를 만듭니다. 세상의 신앙의 힘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기도에서 옵니다. /믿/ 믿음은 산을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산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고 역사도 움직입니다. 이런 귀한 힘이 있기에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아멘!/
2.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믿음입니다(6).
여러분! 유대인들이나 그 제자들도 예수를 처음부터 '주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부를 때 '랍비여!' 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 그것도 권세가 있는 백부장이 30세 창년 예수를 보고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의 주는 황제 한 사람뿐입니다. 로마의 장교가 식민지 유대 청년을 보고 그렇게 불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향해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기적이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이방인이자 로마의 정규사관학교를 나온 엘리트 청년이 '당신이 바로 온 세상 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주님'이라고 고백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멘!/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할/
여기 '주여!'는 '아도나이'라는 원문으로 '당신은 나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답니다. 그런데 본문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며 찾아왔습니다.
로마인들은 세계의 주인이 그들의 황제 가이사라고 떠들어 됐지만 가이사는 얼마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땅을 사고 부동산을 사들이지만 죽을 때, 그 땅은 못 가지고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한 주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백부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여! 예수를 주로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쓰고 있는 이 세상 만 가지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때는 주인으로 섬기기보다는 종으로 부리려고 덤비는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십시오,' 달라고만 하는 자에게 예수께서 '너 이것 좀 하라'고 하면 '아이고 안 되겠는데요!'하면서 뒤꽁무니를 빼기 일 수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종으로 부려먹고 예수님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 것으로 쓰려고 하면서 내 주머니의 것을 예수님께 드리기는 것은 참으로 인색합니다. 한마디로 주인과 종이 바꿔진 것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의 성도들은 절대로 이런 사람 한 사람도 없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으로 믿으십니까? /아멘!/할/ 이것이 믿음의 근본 자세입니다.
3. 하인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특별대우를 받았고, 식민지 백성들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잡아다가 가죽 채찍으로 때려서 죄를 강요하여 마음대로 처치했습니다.
로마인들은 동족을 절대로 종으로 삼지 않았고, 종의 전부는 포로로 잡아온 식민지입니다. 로마인들은 종을 소나 말을 팔듯이 노예시장에서 인신매매를 합니다. 엄마는 이 사람에게 팔려가고, 아버지는 저 사람에게 팔려가고, 아들과 딸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팔려갑니다. 종을 부려먹다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기도 하고 결투를 시켜 구경하다가 죽이든지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죽입니다.
종이 주인이 아끼는 그릇 하나를 깨뜨렸다고 그 종을 죽여 토막은 내어 물고기 밥을 만드는 주인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로마의 잔악성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시대의 종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의 종이 중풍 병이 들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팔아치우든지 없애버리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백부장은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백부장을 통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백부장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겼고, 종의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병든 종을 위해서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백부장은 세력도 돈도, 자유도 아무 것도 없는 병든 종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 주님은 놓치지 않고 보십니다. 주님이 즉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7)고 하십니다.
▶허준은 의원의 등급을 상의(上醫), 중의(中醫), 하의(下醫)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상의는 신분이나 재물을 보지 않고 병만 보는 의원, 중의는 병도 보고 재물도 보는 의원, 하의는 재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의원으로 나눕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은 상의중 상의(上醫中 上醫)입니다. 아마도 의술이 뛰어난 의원이라도 이 상황에서 기껏 할 수 있는 말은 '데리고 와라 그러면 고쳐주겠다.'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친히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십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 주님의 마음을 우리도 본 받아야 합니다. /아멘!/
▶소와 사자가 서로를 죽도록 사랑하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기로 굳게 맹세를 했습니다.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육식동물인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초식동물인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하지만 참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소와 사자는 크게 다투고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난 최선을 다 했어!'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방의 상태를 헤아리지 못하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상대를 대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최선도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을 헤아리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할/
4. 겸손한 믿음을 가졌습니다(7-8).
예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내가 가서 고쳐주마' 그러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백부장은 손을 내저으며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초월성과 절대 거룩 성을 깨달은 백부장의 겸손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당시 백부장 정도면 공중에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세 높은 지위였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예수 앞에 자신을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만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수가 있습니다. 백부장은 겸손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꺾으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할/ 우리 모두 주님 앞에 겸손히 낮아지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아멘!/
5. 말씀만을 믿는 신앙인이었습니다(8-9).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주인이 낫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만 못해도 업신여깁니다. 또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당시 세계 일등 국가인 로마의 시민이고, 예수님을 식민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사람도 아니고 저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에 사는 한 마디로 중앙무대에서 행세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방무대에서 행사하는 30여세 밖에 안 된 청년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할 때, '고맙습니다. 어서 가십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갔겠지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한마디로 '중풍 병아 떠나가라! 종아 나을지어다.' 이런 명령만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의 권능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면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을 믿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런 귀한 신앙을 소유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시간도, 공간도, 사건도, 환경도 초월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백부장은 자신의 실례를 들어서 말씀을 올립니다. '주님 저도 상관을 모시는 군인이고, 제 수하에도 부하가 있는 장교입니다. 저희 상관이 제게 명령을 하면 저는 좋든지 싫든지 머뭇거리지 않고 복종을 합니다. 또 제 부하들도 내가 명령을 하면 괴롭거나 힘들거나 그래도 복종합니다. 하물며 천지의 대 주재이시며 만 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내 종의 병이 나을찌어다.' 하고 명령만 내리시면 천사를 동원해서 종을 괴롭히던 원수 마귀가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정말 멋있는 신앙을 백부장이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한 마디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는 데도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입니까?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여 당신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고야 믿겠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요20:29)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이 창조적, 치유적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이런 신앙을 보시고, 우리 주님이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성경 66권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는 이유가 없다. 무조건 믿어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믿음에는 믿을 수 있는 이유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에 사로잡혀 금방이라도 기적을 나타낼 것처럼 흥분하다가도 환경이 조금만 달라지면 금방 좌절하고 신앙을 까맣게 버리고 맙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말씀을 믿는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함 행복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렵습니다. 무슨 소리가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계속 읽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성경을 대하다 보면 어느 날 분명히 성령님께서 그 말씀에 조명을 주십니다.
성경의 해답은 성경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스승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선생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시라고 롬4:17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11: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할/
세계적인 부흥 목사 D. L 무디는 참 믿음은 창1:1절에서부터 계22:21절 끝까지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귀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귀한 믿음을 간직하시길 소원합니다. /아멘!/
6.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을 감탄케 했습니다(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여기 '기이히 여겨다'의 헬라어원은 '다우마조'인데 '놀라다, 이상히 여기다. 감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신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급 장교로서 식민지 백성들이 아무리 돈 많고 세력 많은 사람이라도 업신여길 터인데 유대인 중에도 종으로 팔려 다니는 노예, 그 중에서도 병든 종을 불쌍히 여겼으니 '정말 이 사람 인격자구나' 놀라시고 감탄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하면서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찾는 참 성도'가 드문데 백부장은 로마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으니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가롯 유다는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밤낮 예수님의 교훈을 들었고, 예수님의 행하시는 이적을 보았고, 5천명에게 떼어주시는 떡을 먹었지만 그가 은30냥에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은 정반대의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 사람들은 이상합니다. '너 그래서 되겠느냐?'고 책망하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깨닫고 고친 다음에 자기를 책망해 주는 분을 고맙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번, 백 번, 신세를 지고 있다가도 한번 책망 들었다고 원수를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모처럼 예배에 늦었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조용히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김 집사님, 그 따위로 신앙생활 하시려면 당장 나가시오!' 하고 호통을 치십니다.
그 날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집사님 부인이 말합니다. '우리 목사님 어쩌면 그렇게 사랑이 없어! 모처럼 한번 늦은 거 가지고, 여보 우리 다른 교회로 옮깁시다.' 이때 집사님은 퉁명스럽게 말을 합니다. '당신 그걸 말이라고 해! 나는 오늘 비로소 우리 목사님이 나를 얼마나 믿고 사랑하는가를 알았소! 나를 믿었기에 사람들 앞에서 마음놓고 호통을 치신거지!' /할/ 이런 신앙이 귀한 신앙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신앙을 소유하는 자가 되십시다. /아멘!/
7. 예수님이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1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여기 '이만한 믿음'이라는 말은 '위대한 믿음, 엄청난 믿음, 큰 믿음'이라는 뜻이요, '네 믿음대로 되어지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기적은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 '놀라운 믿음'을 가진 사람, '위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할/
이런 사람은 주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자신을 크게 보고 남을 적게 보는 습관입니다. 자기의 생각은 모두 옳고 모두 지혜롭고 남의 생각은 전부 어리석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기가 자기를 인정한다고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저 사람 훌륭해! 암 믿을 만하지' 하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내가 큰 인물이야' 이런다고 큰 인물이 아닙니다. 열 사람, 백 사람이 인정해 주어야 큰 인물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면 더 이상 뭘 말하겠습니까? ▶다같이 11-12절을 읽겠습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아주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뿌리입니다. 앞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들어간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오히려 이방인인 백부장이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백부장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직분에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직분보다는 올바른 믿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릅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처합니다. 한마디로 교회에 다닌다고 하나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왔다갔다하는 신앙을 가지고는 천국은커녕 음부에 들어가 그 고통에 이를 갈며 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최고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부귀영화 다 버리고 천국행 티켓을 따놓은 자들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성도들은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저 천국을 다 소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사45:18-25절에 보면 '이만한 믿음'으로 가는 성장 과정이 나옵니다.
⑴하나님께 나아가는 단계입니다. 사45:20절에 "너희는 모여 오라 한 가지로 가까이 나아 오라" 믿음의 첫 출발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⑵하나님과 상의하는 단계입니다. 21절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하나님께 나온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씩 둘씩 이해가 됩니다. 마치 메마른 대지 위에 단비가 내리듯이 자신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도 믿어집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과거에 생각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⑶하나님을 앙망하는 단계입니다. 22절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여기 '앙망한다'는 말은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세상 바라보던 것을 중단하고, 사람 바라보던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사4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⑷하나님을 자랑하는 단계입니다. 25절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우리가 이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아멘!/
8. 백부장의 믿음은 소원을 이루었습니다(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무슨 말씀인가? '나는 너의 집에 가지 않겠다. 그러니 가라, 네가 믿었으니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믿고 집에 돌아가 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①종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일어나 웃으면서 뛰어 다니며 부지런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②백부장의 마음에 근심이 떠나갔습니다. 종은 병이 낫고 백부장은 마음의 근심의 병이 고쳐졌습니다.
③종과 백부장은 믿음으로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할/
여러분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사람은 울어도 해결하지 못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힘써도, 애써도, 참아도, 참을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흔히들 '아들, 딸의 문제는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고, 제자들의 문제는 선생님이 해결해 주시고 환자의 문제는 의사가 해결해 주고, 백성들의 문제는 위정자들이 해결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래야 옳습니다. 그런데 자식의 문제는 해결해 줄 실력이 모자라서 애통하는 부모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스승들, 제자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함으로 데모가 일어납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고쳐줄 정성은 많지만 환자의 모든 병을 고칠 의술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로우리' 목사님은 그의 찬송 시 343장에서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에 힘입어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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