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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엡 2:4-5)

by 【고동엽】 2022. 2. 7.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엡 2:4-5)

 

인도의 성자 선다싱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가고 있을 때 산 중턱에서 타오르는 산불을 끄고 있는 나무꾼들을 발견했습니다. 선다싱이 가까이 갔을 때 몇 사람이 불을 끄지 않고 불붙은 나무를 우두커니 서서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상이 여긴 선다싱이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새 둥지 위에 어미 새가 어쩔 줄 모르며 둥지 위를 슬피 울며 빙빙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저 새들을 구해줘야 될 텐데 불길이 너무 맹렬해서 안타깝게 보고만 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보금자리에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미 새가 날아가 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날아가 버린 줄 알았던 어미 새는 불타는 새끼들을 날개로 감싸고서 불에 함께 타 죽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누가 훈련시킨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미 새가 지닌 새끼 보호 본능에 의한 것입니다. 지켜보던 나무꾼들이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때 선다싱이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짐승의 경우도, 사람의 경우도 새끼를 보호하는 본능이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짐승이건 사람이건 새끼를 보호하고 지키고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제한적이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무제한 적이며, 끝도 다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 날 나무꾼들이 선다싱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선교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할/

 

오늘 저는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이런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큰사랑을 받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멘!/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이처럼 사랑하사'는 독생자 외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의 근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요일4:10-11절을 보세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여기 진짜 사랑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곳에는 참 사랑이 없습니다. 상대적이고 제한적이고 변질될 사랑입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진짜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죄 많은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 죄 많은 인간을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은총이고 축복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은 죄 짖고 반역하고 떠난 인간을 미워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를 화목 제물로 삼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아들을 화목제로 바친 곳입니다. 그러니까 최대의 희생을 치른 곳입니다.
여러분, 성 춘향이 이 몽롱의 사랑도 아름답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아름답습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도 거룩합니다. 애국자가 나라를 사랑한 것도 거룩합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답고 가장 거룩한 사랑의 이야기는 바로 오늘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화목제로 죽으신 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사랑하신 이 사랑, 더러운 사람들을 사랑한 이 사랑, 한번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해준 이 사랑!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죄인을 무조건 사랑하셨고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이태리에 아주 오래된 작은 도시에 '피도'라는 개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그 개는 물에 빠졌다가 죽음 직전에 어떤 신사에게 구출이 되었습니다. 신사는 개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깨끗이 씻기고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미물인 개, 말도 못하는 짐승인 개는 주인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매일 주인이 직장에 갈 때는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와서 전송을 하고, 주인이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할 때쯤 되면 버스 정류장에 가서 주인을 기다렸다가 집으로 함께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터졌습니다. 개의 주인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그만 포탄을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 개는 주인이 죽던 그 날에도 정류장에 나와서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오지 않았습니다. 개는 낮이고 밤이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개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개는 장장 5년 간 버스 정류장을 떠나지 않고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 개는 정류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 자리에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은 개의 동상을 세워주었다고 합니다.
말 못하는 미물의 개지만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준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고 평생 주인을 기다리다가 죽었기 때문에 동상을 세워준 것입니다. /할/

 

1.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①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긍휼히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엽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시는 마음'이 긍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에 오늘도 우리가 주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믿/
②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주셨습니까? 본문은 '그 큰사랑'이라고 했는데 이 사랑은 아가페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소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사랑이요 이 땅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할/
⑵하나님은 희생을 통하여 사랑의 깊이를 나타내셨습니다. 한마디로 음부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저 높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음부의 자리까지 낮아진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⑶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는 무한한 용서를 나타냅니다. 주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자들에게 하루에 7번씩 70번의 용서를 가르친 사랑입니다.
⑷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은 처음에는 사랑으로 시작하였으나 미움으로 끝나고 원수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13:1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믿/
⑸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사랑이십니다. 1절에서 말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존재를 예수 안에서 다시 살리신 사랑'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그 큰사랑의 증거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나 하나만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 사람들 중에 나만 사랑하는 것처럼 최고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③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호14:4절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이 말씀을 요약한다면 '고치고, 사랑하고'입니다. 이 말씀의 깊은 의미는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⑴무엇을 고쳐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세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혼을 고쳐서 구원하신다'는 것이요, 또 '육체를 고쳐서 건강하게 해주신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우리의 삶을 고쳐서 인격적이며 신앙적인 존재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할/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패역을 고친다'는 것입니다. 패역이란 '배신과 불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병들고 육체적으로 병들고 인격적으로 병들게 된 원인이 '배신과 불신'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패역마저도 고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패역도 고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가 있습니다. 영혼을 고치고, 육체를 고치고, 삶을 고치는 것은 전 인격적인 구원, 즉 전인적 구원과 치유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부분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부를 새롭게 고친다는 것입니다. /아멘!/
⑵또 호14:4절 '하'반절에 보면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여기에는 조건 없이 기쁘게 사랑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슬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근심되게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기쁘게 즐겁게 사랑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았는데 우리는 보답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장 위대한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사랑은 그 어떤 힘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롬8:35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고 39절에서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막는다고 막히고, 끊는다고 끊기고, 감정이 변했다고 걷어차 버리는 사랑은 통속적인 사랑이요, 세속적인 사랑이지 거룩한 사랑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즐거이 기쁘게 자발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큰사랑입니다.
'즐거이 사랑하리니' 이 말의 원어 적인 뜻은 '사랑을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며 준비해 두신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사랑까지도 준비해 두셨다가 우리에게 기꺼이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크게 깨달은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고후5:14절에서 그가 고백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심을 깨닫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단계까지 우리가 올라가야 합니다. /아멘!/

 

2. 하나님을 사랑하기까지는 신앙의 몇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①예수를 따르는 단계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이는 순종의 단계입니다. 세관에 앉은 마태도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즉시 따랐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일단 순종해 보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교회 가는 날이니 교회에 나옵니다. 남들이 바치니 주일 헌금도 하는 것입니다. 구역예배로 모입니다. 담배도 끊으라 하니 끊어봅니다. 성경을 읽으면 좋다하니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라 하니 식사기도하고 때로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하나님께 감사기도도 해 봅니다. 신앙은 이런 식으로 순종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것입니다. /아멘!/ 처음부터 믿음이 있어서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르다 보면, 순종하다 보면 뭐가 돼도 됩니다. /할/
②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믿음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릴리 바다에서 가버나움에서 그리고 벳세다 언덕에서 베다니로 주님을 따라 다니다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로 믿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의 단계입니다. 이때부터 믿음으로 성경을 읽고, 믿음으로 교회에 나오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봉사와 전도, 헌신을 하게 됩니다. 이 단계만 가도 대단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가야 합니다.
③사랑의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순종하다가 믿음을 얻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그 은혜를 깨달은 자는 주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고 따르다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까지 가게 됩니다.
이 사랑을 깨달은 사도바울이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할 때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혹 미치지 않았나, 정신이 좀 돌지는 않았나 걱정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은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토록 위대하고 화산처럼 지칠 줄 모르고 타오르는 사명감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심령에서 솟아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3.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자기의 사명을 알고 그 사명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먹고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은 '어떻게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가?'에 조언하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①섬김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본문 10절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사역을 선한 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이란 '나를 위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한 것이 어떻게 선한 일입니까? 이것은 '타인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선한 일이란 '섬김'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을 섬기고 우리 모두를 섬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는가? 주님은 마25:40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②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전6;20절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비결이 롬12:1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예배를 바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준비된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③전도가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벧전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 /할/ 전도는 성도의 기본 사명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믿/
④사명자의 기본 조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요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보고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이 오셔서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내렸더니 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습니다.
그 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실 때 베드로에게 확인한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면, 베드로가 지난날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게 된 그 원인도 바로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한 연고라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고, 베드로가 실패한 원인도 그의 능력 부족도, 용기 부족도 아니요 오직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물고기를 잡으러 다시 돌아온 것도 그 사랑이 없기 때문임을 암시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동참하게 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신비요 능력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아픈 사람을 사랑하면 나도 아프고, 기쁜 사람을 사랑하면 나도 기쁘고, 우는 자를 사랑하면 나도 웁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는 마당에 그를 사랑한다면 어찌 도망갈 수가 있습니까? 같이 죽을 수는 없어도 그 자리를 지켜야 수제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를 떠났습니다. 결국 예수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은 베드로에게 목자의 사명을 주시면서 물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진실로 사랑해야 그 일을 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지혜도 생기고, 능력도 생기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이 모든 사명 수행의 기본이고 가장 유일한 조건입니다. /할/

 

4.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그 분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약4: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했고 시73: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①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그리고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깊이 알아야 힘이 생깁니다. 친구 사이를 가깝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깊이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알고, 상대방의 개성과 취미와 장점이 무엇인가를 알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면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끼리 서로 가까워지고, 연인이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모르고서는 친구도 될 수 없고 연인도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르면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불신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오해가 왜 생깁니까? 상대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오해'입니다. 잘못 이해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때로 하나님을 원망할 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을 원망하려는 마음이 들거든 하나님의 섭리를 좀더 기다려 보라'고 했습니다.
▶배 한 척이 망망 대해에서 표류하다가 파선을 당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다 썼습니다. 저마다 배 조각을 붙잡고 버텨 보았지만 결국 다 죽고 그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며칠 동안 바다에 떠다니다가 어느 무인도에 닿았습니다. 이 사람이 육지에 닿자마자 땅바닥에 엎드려 입을 맞추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나만 살려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섬에는 사람이라고는 자기 혼자뿐입니다. 멀리 항로를 따라 지나가는 배가 있을 때에는 흰옷을 장대에 걸고 흔들어 보았지만 누구 하나 구조하려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움막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루는 밥을 짓기 위해서 불을 피우다 불똥이 움막에 튀어 간신히 지어놓은 움막을 홀딱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은 울고 싶었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땅을 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그때 나도 죽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살려 놓고서 이렇게 고생을 하게 하십니까?'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제풀에 지쳐서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뱃고동 소리가 들려 옵니다. 놀라서 잠에서 깨 보니 커다란 배 한 척이 섬 가까이로 오고 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서 쫓아가서 선장에게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장이 대답하기를 '내가 당신이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소 무인도에서 연기가 나기에 찾아왔지.'
그렇습니다. 이런 것을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내 생각과 이성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 사람들이 당황하게 될 때, 전혀 예기치도 않던 방향에서 방법이 나오고,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이 사람도 그랬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은 할 줄 알았는데 내 집이 불타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모르니까 불평하고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방법인데 모르니까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②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자주 찾아가야 합니다.
먼 친척보다 이웃이 더 가깝다는 것은 자주 왕래를 하기 때문입니다. 친한 친구는 달리 친한 것이 아닙니다. 자주 만나고 자주 오고 가니까 친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자주 찾아가 만나야 합니다. 자주 예배에 참례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쯤 찾아가서는 절대로 가까워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웃 사람을 만날 때는 특별 면담이라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특별 회담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서 만나면 됩니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만나려면 특별 면담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체면과 격식이 따라 붙습니다. 왜냐하면 자주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데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짐을 들고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며칠씩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이것이 특별 면담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자주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못 만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평소 하나님께 자주 왕래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특별 기도라는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특별 기도는 평소에 하나님께 소홀했던 사람이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주 왕래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총을 입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가 있습니다.
③대화를 많이 해야 가까워집니다.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려면 자주 만나서 깊은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더욱 가깝게 만드는 대화입니다.
④가까운 사람은 생사 고락을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즉 생사 고락을 같이한다는 말은 '동고 동락'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주안에 살고, 주님이 내 안에 와 계시는 동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친구 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는 동창생입니다. 왜냐하면 3-6년씩 함께 생활하면서 같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친한 친구는 전우입니다. 전우는 정말 생사 고락을 같이한 사람입니다. 몇 년씩 함께 먹고, 함께 훈련을 받고, 함께 죽을 고비를 넘김으로써 전우애가 형성되어서 그렇습니다. 전우는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부입니다. 부부처럼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동거 동락하면서 생사 고락을 같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고 서로가 있음으로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이입니다.

 

5.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고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며, 상대적인 것이 아니고 절대적이며 이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 전부를 바쳐 사랑하는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고, 마10:37절에서 예수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인간의 지적, 감정적, 의지적 기능을 포괄하는 총체적 표현입니다.
②생명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생명 걸고 싸우는 사람입니다. 생명 걸고 달려드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습니다. 생명 걸고 신앙생활 한 번 해보십시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홍해는 갈라지고 여리고는 무너집니다. 지금도 하늘보고는 열려집니다. 시간, 물질, 재능, 아낌없이 드리면 하나님은 30, 60, 100배로 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할/
▶지금 세상은 온통 불경기로 아우성입니다. 왜 기업들이 흔들립니까? 그런 와중에서 지금도 호경기를 누리는 업체가 있습니다. 바로 E랜드의 박성수 회장입니다. 한 때 노사문제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지금도 막강합니다. 그분의 사업을 하게된 동기가 있습니다.
박 회장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와 결혼을 시키려고 합니다. 박성수 집사는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 결혼은 결사적으로 감행하게 됩니다. 그는 결혼식장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화가 나고 괘씸해서 500만원을 주어서 내쫓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돈으로 신촌 로터리 앞에 2평 짜리 가게를 얻어 옷 장사를 시작합니다. 개업예배를 드릴 때 그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겠다고 서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셔서 이 사업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많은 것으로 선교에 사용하겠습니다. 500만원으로 시작된 이 사업이 10년 후에 1,000억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그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사업을 했습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을 냈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대리점을 끊었습니다. 주일 성수하지 않은 대리점도 물건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대형 사업장마다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안산 역에 있는 2001 아울렛, 7층에는 아름다운 교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업하는 그를 하나님은 축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개업 예배 때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정확히 10년 후에 89년에 1,000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90년대에는 3,800억, 91년에는 7천억이 되었고 지금은 엄청나게 사업의 규모가 커져 현금유통이 제일 잘되는 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신앙 인입니다. /믿/
③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일5: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부모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런 이치입니다. /이해가 됩니까?/할/

 

6.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①사랑의 대상을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여 왔으며 지금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인간의 운명은 사랑 속에서 얻어지고 사랑 안에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며, 누구이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운명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딤전6: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결국은 믿음을 떠나게 되며 많은 근심으로 불안하게 됩니다.
▶한 여인에게 사랑을 쏟아버렸던 삼손의 말년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두 눈이 뽑히고 대머리가 된 채 이방나라 블레셋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는 사랑해서는 안 될 대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자기의 안일과 행복에만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순간 견딜 수 없으리만큼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 순간 인생은 황홀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삶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는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둔 사람이 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삶의 목적이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의 소망이 끊긴 자들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늘나라에 소망을 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바울의 권면처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그 말씀을 심비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전10:33절에서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빛이 되고 소금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세상에 빛을 드러내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할/
②그 다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신앙의 삼박자 속에 살아야 합니다. 살전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꼭 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⑴항상 기뻐하라! 구원의 확신 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특권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무시로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장차 얻게 될 천국의 영광 때문입니다. /할/
그런데 우리는 항상 기뻐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세상 적인 동기를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실 천국의 기업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⑵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 주변에는 순간 순간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얻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⑶꼭 해야 할 세 번째의 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즉 잘 안될 때도 심지어 실패할 때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잘 되어지는 과정인 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믿/
③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너무도 많은 복이 나옵니다. 몇 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⑴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을 만나는 복입니다. 잠8: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⑵건짐 받고 놓임을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시91:1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⑶재물의 복도 그 분 안에 있습니다. 잠8:21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⑷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약1:12절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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