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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신앙고백! (삼하 22:1-7)

by 【고동엽】 2022. 2. 6.

다윗의 신앙고백! (삼하 22:1-7)

 

'커밍 워크'라는 교수는 성공의 요인을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그 첫째가 '지능'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하는 능력, 아이큐(IQ) 즉 지능지수가 따라가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지식'입니다. 아무리 좋은 두뇌를 가졌다 해도 그 두뇌에다 많은 지식을 입력시켜야 써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0이니 190이니 하면서 제 아무리 아이큐가 높다고 떠들어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멍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기술'입니다. 이것이 능력이자 실력입니다. 제 아무리 지식이 많다 하더라도 그 지식에 따라 행할 수 있는 실천 능력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리고 넷째로는, '태도'(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지식이 있고 기술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삶의 자세가 잘못되어 있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세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자세가 좋아야 되고, 직장인은 일하는 자세가 좋아야 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실하게 임하는 바른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커밍 워크'교수는 성공의 요인 마지막으로 '믿음'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믿음이 성공의 큰 요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능력주시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살아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가 기자들 앞에서 인도 '캘커타에 큰 고아원을 짓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준비된 자금은 얼마나 됩니까?" 테레사는 주머니에서 동전 3닢(3실링)을 보이며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천 원 정도를 보이면서 "이것 밖에 없습니다." 회견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농담인줄 알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테레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이 3실링과 테레사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3실링이 함께 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믿고 감사하는 사람은 분명코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드디어 그는 거대한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믿음은 곧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 있으면 되는 곳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많은 돈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도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는 기적을 만드는 곳입니다. /믿/
믿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믿음은 생명입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오늘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오늘도 홍해는 갈라지고 여리고는 무너집니다. /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음은 고백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그 사람이 고백한대로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영웅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도 다윗의 고백을 잘 배워서 우리의 고백으로 삼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제목소개!▶

 

오늘 본문은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을 때 다윗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그의 '찬양 시'로 일명 '다윗의 노래'입니다. 시편18:1-6절과 배경이 같습니다.

 

1. 다윗의 일생을 한번 조명해 보아야 본문에서 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별같이 빛나는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의 위대한 신앙을 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의 이새의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출생하신 곳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얼굴이 준수하고, 수금을 잘 타는 음악적 재능과 함께 시를 잘 쓰는 문학적 소년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용기를 가진 장군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 어릴 적부터 부모를 도와 베들레헴 언덕에서 양을 치는 효자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징표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 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됩니다(삼상16:7). 이것이 다윗 생애에 제1의 전기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에 제2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불레셋의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사건입니다. 그 당시 불레셋 나라는 철기 문화를 도입해서 최신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당시 세계적인 장군인 골리앗이란 명장이 엘라 골짜기에서 싸움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많은 장수가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사울 왕으로서는 더 이상 나라를 지탱할 수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방을 붙였습니다. <누구든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주겠다. 그리고 나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겠다.>
한편 불레셋 진영에서는 그 날도 의기양양한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나와서 싸워 볼 자가 있으면 어서 나와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군대는 모두 사시나무 떨 듯이 벌벌 떨기만 했지 아무도 나가 싸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지면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전부 불레셋 나라의 종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풍전등화 위기입니다. 이런 나라의 위기 앞에 하나님께서는 이 때를 위하여 한 사람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께 합한 자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촌놈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새가 세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었는데 소식이 궁금해서 말 째 아들 다윗을 전선으로 보낸 것입니다. 아버지 이새는 아들들을 위하여 옥수수 빵을 준비하였고, 천부 장을 위해서도 치즈를 준비하여 보냈습니다. 이새는 다윗에게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반드시 증표를 가져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쟁터에 온 다윗의 귀에 골리앗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입니다.
그것도 큰 소리로 하나님을 욕하며 소리 지르는 골리앗을 보는 순간 어린 다윗의 마음속에 의분이 생겼습니다. "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 이방 민족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욕하고 하나님까지 모욕하다니" 견딜 수가 없어서 형들의 만류에도 마다하고 사울 왕에게 찾아가 자신이 싸우겠다고 자청을 합니다.
사울 왕이 보니 너무 어린 소년이기에 무시해 버렸는데 자꾸만 졸라대니 사울 왕이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큰 용사"였다면서 다윗을 이해시켰지만, 오히려 이 소리를 들은 다윗이 왕에게 "제가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사자의 입에서 새끼를 건져냈고, 사자나 곰이 나를 해하고자 할 때,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들을 다 쳐 죽었습니다. 내가 사자나 곰도 쳐 죽었는데 하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저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을 그냥 둘 수 있겠습니까? 그도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될 것입니다. 왕이시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던 것처럼 나를 블레셋 사람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 확실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이 고백을 들은 사울이 너무 기특해서 그럼 나가 싸워 보라고 하면서 자신이 입던 군복을 입혀주고 투구를 씌어주고 칼을 주었습니다.
다윗이 군복과 투구를 다 쓰고 칼을 들고 보니까 군복도 크고 투구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내게 익숙지 않으니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군복과 투구와 칼을 다 벗어버리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냇가에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우리말로 고무줄 새총)를 가지고 골리앗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골리앗이 이 꼴을 보고 깔깔 웃으면서 "내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 내가 너의 몸을 찢어 공중의 새들과 짐승들에게 주리라"고 하자 이때 다윗은 믿음으로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려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가리라!" 하고 달려갔습니다. 골리앗도 화가 나서 달려 왔습니다.
그때 다윗은 돌을 취하여 물매를 던졌습니다. 물매 돌은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이마에 돌이 박혔습니다. 제 아무리 힘이 센 골리앗 장수도 꼼짝 못하고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이때 다윗이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빼내어 그를 죽이고 그 목을 베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블레셋 군대는 혼비백산 다 도망가 버리고 이스라엘 군대는 만세를 부르며 승전가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를 당한 것처럼 이런 위기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누구에게나 블레셋이 있고, 심지어 골리앗 같은 적도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산 넘어 산'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오늘 다윗이 승리한 비결을 배워서 우리 모두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그 일로 인하여 다윗은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고, 그 나라 국군 총수가 되어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갑작스런 그 출세도 사울 왕의 시기 때문에 큰 고난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지방을 순시하던 사울은 동네 처녀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노래를 듣고 자신의 인기가 다윗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울은 분노와 시기심이 겹쳐 그때부터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틈만 나면 다윗의 목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해 쫓기는 신세가 되었는데, 여름에는 비바람에 온 몸이 젖고, 겨울에는 찬바람에 손발이 얼고, 어떤 때는 산골짜기에서 또는 동굴 속에서, 어떤 때는 거친 들판에서 잠을 잤으며 심지어는 정신병자로 위장하여 원수의 나라 블레셋 땅에까지 도망 다녔습니다. 그 세월이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꿋꿋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낙심하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이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의를 따라 행했습니다.
그는 쫓김을 당하면서도 한 가지 분명한 신앙의 좌표가 서있었습니다. 아무리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지만 사울은 자기 장인이기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절대 믿고 하나님의 종을 자기가 절대로 손대지 않기로 다짐하고 하나님께 판단을 맡겼습니다. 정말 귀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요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산 다윗은 드디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침내 시기심과 질투로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 왕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여, 길보아산의 전투에서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유다 사람들에게 왕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7년 반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나이 30세였습니다. 이것이 다윗 생애에 그 세 번째 전기가 된 것입니다.
나중에 다윗은 전 이스라엘(12지파)로부터 추대를 받아 명실 공히 이스라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3년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합 40년을 치리하고,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통치기간의 업적은 실로 눈부실만합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오므로 전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외적의 침략을 물리침으로 잃어버린 국토를 회복하고 통일왕국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통치 말년에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빛날 일을 하나 더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 아들 솔로몬에 의하여 건축될 성전공사 준비를 완료하여, 이스라엘이 신정국가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여 놓은 사실입니다. /할/

 

2.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모든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블레셋을 위시하여 '아람, 모압, 암몬, 아말렉, 에돔' 등을 물리치고, 국토를 회복하고,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여호와께서' 구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47절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 지로다." /할/
우리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살전5: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철학자 키케로는 '감사는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은 역시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사울의 칼날에서 지켜 주신 것에 감사했고, 왕으로 세워 주신 것에 감사했고, 모든 대적의 손에서 지켜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성 프란시스' 성자는 그의 유명한 '태양의 노래'에서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그는 빛나고 아름다운 햇빛을 바라보며, '주여, 이 햇빛을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는 밤하늘에 아름다운 달과 별을 보며 '주여, 저 달빛을 나를 위해 비취신 것에 감사합니다.' 들에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산천초목을 바라보면서, 바다 속에 뛰노는 고기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사랑할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형제자매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의 결정적인 감사는 심지어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오늘 본문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2-3절은 다윗의 신앙고백이며, 4-7절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신앙은 고백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배 전에 사도신경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우리가 짧게 드리는 사도신경에는 성경 66권의 복음이 농축해서 들어가 있습니다.
다윗은 신앙의 고백과 기도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신앙과 기도에는 반듯이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힘있는 기도가 될 수가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듣고 받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신앙이 없다면 한 낮 우리가 드려지는 기도는 독백으로 끝나고 맙니다.
다윗의 경우,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너무나도 확실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윗은 왕이기 때문에 신하나 백성들의 호소와 간청을 수없이 들은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 말고는 그 무엇이라도 다 들어주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을 보면 자신을 믿거나 자신을 왕이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신앙 때문에 다윗의 기도는 힘있는 기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3.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2-3).

 

①피난처의 신앙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반석, 나의 요새, 피할 바위, 나의 방패, 피난처'라고 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윗은 젊은 시절에 사울 왕이 그를 죽이기 위해 추격할 때 이곳, 저곳을 도망 다니면서 피난 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 그는 반석 뒤에 숨어보기도 했었고, 요새에 은신하기도 했었으며 바위 굴속에 들어가 숨어보기도 했고, 방패로 자신의 몸을 막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저곳 피난처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도 그가 자신을 감추고 피난할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또 노년기에 한 번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다름 아닌 자기 셋째아들인 압살롬이 왕의 자리를 노리다가 드디어 헤브론에서 잘 훈련된 특수군대를 이끌고 질풍같이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쳐들어 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혼비백산하여 한밤중에 궁을 버리고 피난길에 나셨습니다. 그 때 다윗의 믿음은 '내가 피할 곳은 오직 하나님 품안'이라고 신앙을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을 자기의 영원한 피난처로 삼았던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로 믿어야 합니다. /믿/
⑴반석: 가파르고 접근하기 매우 까다로운 바위를 의미합니다. 위기에 처한 병사들이 곧잘 이곳에 피하여 몸을 숨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석은 딛고 서서 나아갈 수 있는 요동함이 없는 견고함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은 반석과 같이 요동함이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⑵요새: 가파른 바위로 둘러싸인 높은 고지로써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팔레스틴 지방에는 이러한 요새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⑶방패: 보호용 무기입니다. 옛날이 무사들이 전쟁터에서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방패를 들고 칼을 막기도 했고 날아오는 화살도 막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⑷피난처는 안식처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참다운 안식처가 되십니다. /믿/ 한마디로 나의 하나님은 반석보다 더 든든하고 요지부동하신 하나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은 난공불락의 요새 같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나의 하나님은 바위보다 더 크고 강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어떤 화살이나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 같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 피하면 원수 마귀도 접근 못하는 절대 영원한 피난처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아멘!/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시18: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길을 가는 나그네입니다. 십리, 백이, 천리, 말리, 계속해서 길가는 나그네이기에 건강이 필요합니다. 힘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일터입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힘이 필요합니다.
또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전쟁터에서 이기고 승리하려면 절대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 없으면 쓰러지고 패배하고 맙니다. 다윗은 무엇으로 힘을 삼았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하나님을 힘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강자입니다. 골리앗도 넘어졌습니다. /믿/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고 나는 그 힘을 의지하며 사는 존재임을 믿는 자는 강한 자요, 인생을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믿/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힘으로 삼지 않고 ⑴건강을 힘으로 삼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건강해야 모든 분야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건강 놓치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건강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⑵지식을 힘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면장 질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식하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해도 무식하면 낙오됩니다. 주먹으로 장작을 패는 것보다 도끼로 패는 것이 낫고, 도끼로 패는 것보단 기계(전기톱)로 패는 것이 낫습니다. 지식의 힘은 육체의 힘 못지 않습니다.
⑶기술도 힘입니다! 지식도 좋지만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자들은 곤조(고집)가 있습니다. 욉니까? 그들만이 힘이고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사람이 한 가지씩 의무적으로 기술을 배우게 한답니다. '탈무드'에 보면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기술로 밥 벌어먹으면 그 기술의 힘이 대단합니다. 지금은 컴퓨터 하나 잘해도 떼돈을 법니다.
⑷돈이 힘입니다! 돈이 있어야 큰소리치고 삽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자연히 맥 빠지고 힘 빠집니다. 특히 현대는 돈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물질의 축복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물질의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재물 얻을 권능을 너희에게 주노니" 물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도 합니다. 여러분! 물질의 축복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⑸권력이 힘입니다! 왜 사람들이 저렇게 국회에 들어가려고 아우성칩니까? 금배지 안에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힘은 재벌도 무너뜨립니다. 교통순경의 권세는 힘이 센 몇 십 톤 짜리 화물차를 세우고, 몇 억이 넘는 고급 승용차도 세웁니다. 권세 무섭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힘과 권세는 세상 그 어떤 힘보다 강하고 셉니다. 몰론 세상 적인 힘도 강합니다. 그러나 그 힘은 상대적인 힘이요 찰나적인 힘이요 변하고 시들어 버리는 그런 힘입니다.
▶믿음이 힘이고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믿음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
다윗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이 고백 속에는 '내가 환난을 당하나, 역경을 당하나, 가난하고 힘들어도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힘이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사랑했습니다. 그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생애를 움직이는 무서운 힘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 되는 사람, 이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힘으로 사는 사람은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능력이 그 속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고후4;8-9).
▶하나님의 힘은 위대합니다. 그 누가 하나님의 힘을 과소평가 할 수 있습니까?
서울 시민 가운데 남산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본 사람은 없습니다. 이 지구가 과연 몇 근이나 되는지 태양이 몇 근이나 되는지 그 무게를 누가 달아볼 수 있습니까? 이 거대하고 무거운 지구와 태양을 끈도 메지 않고 공중에 띄어 놓고 매일 매일 수억 만리를 달리게 만드는 그 힘, 우주의 삼라만상을 움직이시는 그 놀라운 힘, 지극히 적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까지 섭리하시는 그 세미 하신 힘,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힘은 3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힘을 '게브라'(GEBRA)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영양제로 한국에서도 즐겨 복용했던 '게브랄티'라는 종합 비타민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만든 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게브랄티'라는 비타민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힘'이라는 '게브라'에서 나왔습니다.
⑴게브라! '하나님의 힘'의 첫 번째 특성은 '영원한 힘'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재물의 힘도, 권력의 힘도, 명예의 힘도, 과학의 힘도, 의학의 힘도 유한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만이 영원합니다. 우리가 가진 유한한 힘으로서는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힘으로만 영생의 꿈을 이루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믿/
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어 땅에 묻힐 때 한 유명인이 나와서 조사를 하면서 "각하! 각하가 한번 호령하면 온 산하가 울렸는데, 이렇게 아무말씀 없이 묻히시니 이 초라한 모습이 웬일입니까!" 통곡하면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건강, 명예, 권력, 사랑, 평생 쌓아온 우리의 자랑들이 죽음 앞에서는 한꺼번에 다 무너져 내립니다.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이렇게 무너지는 것들을 끌어안고, 톨스토이가 이미 갈파한 대로 땅 두 평에 묻히고 말 인생이라면,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초라합니다. 이러한 인생의 유한한 한계를 깨달은 사람들은 그래서, 영원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⑵게브라! '하나님의 힘'의 두 번째 특성은 '불가능이 없는 힘'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서점에 가서 보시면, 기적이란 말이 붙었거나, 그 책의 내용이 기적적이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 나의 능력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네." 그렇게 말하며, 감격해 합니다. 나의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어떤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을 때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 앞에는 '기적'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불가능이 없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기적을 경험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이란 말 대신에 '은혜'라는 말을 씁니다. "내가 은혜를 입어서 (나는 할 수 없지만)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⑶'하나님의 힘'의 세 번째 특성은 '변덕부리지 않는 힘, 신실한 힘'입니다.
인생들은 변해도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히13;8).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힘을 믿기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식에게 주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기에 변덕 부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에 우리가 간구할 때, 필요한 것들을 그때마다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
▶어떤 교회에 여전도회 회장님이 이것저것 일을 하다보니까 너무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참다못해 "목사님, 저 더러워서 여전도회 회장 못하겠다."고 사표를 냈습니다. 속이 상한 목사님이 "회장직분을 목사가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주셨지요." 목사님이 "그렇다면 그 사표 나한테 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가서 "나 더러워서 여전도회 회장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사표를 내라고 하자, "목사님 죄송해요"하고 돌이켰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물론 교회에서 직분을 감당하기가 벅찰 때가 많이 있고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고 사명이기에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충성해야 합니다. /믿/
②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자로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2-4절 사이에 하나님을 향하여 '나를 건지는 자, 나의 구원의 뿔,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구원자'라는 고백입니다. 고백은 대상도 명확해야 하고 내용도 선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명확하고 선명한 고백을 했고, 도마 역시 주님을 향하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확신이 넘치는 고백을 했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났던 어느 여인은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확실한 고백을 했습니다. 다윗 역시 본문에서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는 자,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구원자'등으로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내가, 나를'이라는 일인칭 호칭을 무려 19차례나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고백이 얼마나 체험적이며 확신에 넘치는 고백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고백이 중요합니다.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믿으면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고, 나의 방패로 확실히 믿고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 모든 주변을 막아주십니다. /믿/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믿고 섬기는 사람은 그 능력에 힘을 입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시오, 전능자시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며, 병든 자를 일으켜 세우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할/
믿음은 분량대로 역사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큰 믿음으로, 굳세고 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한 손길에 붙잡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4.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7).

 

①다윗의 문제가 무엇인가?
다윗은 3절의 '흉악'과 4절의 '원수'의 정체를 설명하기를 5절에 '사망의 물결', '불의의 창수', 6절에 '음부의 줄'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다윗에게 죽음을 재촉하는 거센 파도처럼 엄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다 다윗이 만난 '외적, 내적, 영적, 육적' 원수들에게 둘러 싸여버린 처절했던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다윗은 이런 자신의 문제를 몽땅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입니다.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서 들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기도의 대상임을 분명히 했고, 기도의 때와 장소와 방법에 대하여 본문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②언제 기도했습니까?(5-7)
그때는 '사망의 물결이 에워쌀 때, 불의의 창수가 두렵게 밀려올 때, 음부의 줄과 사망의 올무가 다가올 때, 그리고 환난이 닥쳐왔을 때' 기도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윗이 밝힌 기도의 때는 문제가 있고, 고통이 있고, 시련이 있고, 환난이 다가올 때입니다.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 기도는 크게 두 가지의 성격으로 나타납니다. '감사의 기도, 탄원의 기도 혹은 간구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어떤 경우라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함께 드리면서 자신의 고통과 환난을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의 경우는 감사해서 드리는 기도소리 보다는 환난 중에서 부르짖는 기도소리가 더 크고 길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주여 감사합니다.'라는 기도 소리보다는 '주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 소리가 언제나 더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므로 응답해 주시지만,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 더 귀한 신앙입니다. /믿/ 하나님은 환난 때에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것도 믿고 부르짖으면 오늘도 구원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81:7절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여러분, 고난 중에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어렵게 만듭니까? 맡기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③다윗의 기도의 장소는 어디인가?
7절'하' '그 전에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전'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성전, 바로 여기 이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주십니다. /믿/
▶왕상8:29-30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 함을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성전은 기도의 중심지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달라는 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바로 이 전통을 따라 유대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 기도하기를 힘쓴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기도할 수 있고, 또 아무 곳에서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다른 신앙의 선배들은 기도의 장소로 성전을 꼽았습니다.
주님도 막11:17절에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신다.'고 고백합니다. 성전에 나와 기도하기를 힘씁시다. 사랑하는 성림의 귀한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성전에서 기도의 부르짖는 소리로 가득하게 하십시다. /할/
④다윗의 기도의 방법은 무엇인가?
4절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또 7절 '내가 환란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여기 기도의 방법이 두 가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뢴다.'는 것과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아뢴다.'는 것은 '자상하게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는 것이고, '부르짖는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온 몸과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상한 기도를 했습니다. 출33:11절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의 기도는 늘 친구끼리 이야기하듯 자상하고도 구체적으로 다정하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르짖는 기도도 많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 빠졌을 때 '주여! 죽게 되었나이다.'외쳤습니다. 소경 바디메오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가나안 여인도 '주여!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고쳐주소서!' 여러분, 주님을 향해 부르짖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응답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죄 사함 받고, 병 고침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얼마나 부르짖어야 합니까? 얼마 동안 부르짖어야 합니까? 본문 7절'하'반절에 '그 귀에 들릴 때까지'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들으실 때까지입니다. 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때까지, 내 문제가 풀릴 때까지, 내 소원이 성취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을 합니다. 억지 부리고 생떼 쓰는 사람을 비꼬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진짜 기도소리 큰 사람, 찬송소리 큰 사람, 아멘 소리 큰 사람, 일하는 소리 큰 사람이 승리하고 복을 받습니다. /믿/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구실도 핑계도 없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고, 기도하지 않으면 응답도 없습니다. /할/
결론은 ▶기도하면 응답을 만납니다.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네가 응답하리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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