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전 6:19-20)

by 【고동엽】 2022. 2. 6.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전 6:19-20)

 

우리는 지금 사순절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눅22장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떡을 떼어 주시고 포도주 잔을 돌리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 몸이라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피니라 받아 마시라 그리고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찬식의 목적은 '예수님을 기념'하는데 있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살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성찬식과 더불어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어 삶과 고난을 음미하면서 보내는 경건의 기간을 말합니다.
▶기독교에는 여러 절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절기들을 교회력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교회력의 초점은 예수님의 생애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교회력 가운데 가장 먼저 오는 절기는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는 대강절'이라고 하는 대림절이 있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어 복음전파를 기다리는 주현절이 있고, 십자가의 수난의 길을 걸어가시는 그 주님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사순절,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신 부활절, 초대교회의 태동을 안겨준 성령강림절 등이 있습니다.
이 절기는 세계 교회가 공통으로 지키는 교회의 절기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순절은 모든 절기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절기에 속합니다.
올해 사순절은 지난 2월 21일부터 4월 6일 성금요일까지 계속됩니다. 사순절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가장 소중한 절기의 시작이며 계속해서 '고난주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는 이를테면 예수의 계절에 속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40일간의 절기를 말하는데 부활절 전 주일을 뺀 40일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받으시는 고난과 수난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면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정숙한 마음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신앙의 계절을 말합니다.
▶처음 사순절이 시작된 것은 3세기 초부터였다고 전해집니다. 처음에는 40일간이 아니고 2-3일간씩 지켜오던 것이 기원 325년에 '니케아'종교회의에서 40일로 정식 채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40일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인과 싸워 이긴 후 이세벨을 피하여 광야로 나아가 고난의 날을 보냈던 날들이 모두 40일이었습니다(왕상19:8). 그리고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돌비를 받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아갈 생활의 강령을 받기 위해서 두 차례 시내 산에 올라가 금식한 날들이 모두 40일씩이었습니다(출4:18, 신9:9). 그리고 예수님이 광야에 나가서 금식하신 날들이 모두 40일간의 기간이었고 또 노아의 홍수 때 이 땅에 전무후무한 비가 내렸는데 비가 내린 기간이 모두 40일간이었습니다(창7:17).
성경에 나오는 이런 40일간의 전례들이 사순절의 기간을 40일간으로 정하게 된 근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절기를 통해서 자기를 확인하고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물고기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도 일절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8세기 이후에 규정이 많이 완화되었고 14세기에 이르러서는 금식기도 대신 절식을 허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순절은 예수를 위한 나의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경건 되게 이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
오늘 본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신 몸이기 때문에 그 몸을 하나님을 위하여 쓰라고 하십니다. /할/ ◀제목소개!▶

 

인간의 생명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를 아는 사람은 가장 현명한 사람이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생명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성경은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1: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또 2: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또 욥33:4절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생명은 '창조적인 능력, 무한한 가능성, 고귀한 양심, 하나님이 부어주신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아메바'에서 진화된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메바'는 썩은 물웅덩이에서 생기는 '단세포'동물이랍니다. 이 벌레 같지도 않은 것이 진화되어 인간이 되었다는 학설입니다. 그들은 결국 인간을 벌레로 취급하여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을 모릅니다.
▶3월 15일자 신문에 보면 젊은 남녀 5명이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동반자살을 시도하려다가 경찰의 설득으로 자살을 포기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요즘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요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믿/ 오늘 본문을 보세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사실을 깨달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은 무엇인가?
롬14: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할/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한 가지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올 때 빈손으로 왔고, 빈 몸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로부터 가정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이웃이 있고 재산이 있고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재능을 주셨고 지혜를 주셨고 삶의 터전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삶은 태어날 때 모두 각자가 다르게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배당 받아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20년의 시간을 배당 받아 태어나고, 어떤 이는 50년의 시간을 배당 받아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는 70년, 90년, 또 어떤 이는 100년의 시간을 배당 받아 세상에 태어납니다. 사람이 그 받아온 시간만큼 세상에서 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받아 가지고 온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도 알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남께로부터 받아 가지고 나온 시간만큼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잘 관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관리해서 뜻 있게 살아가는 생활을 뭐라고 합니까? 청지기 생활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원래 관청에 문을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관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책임 있게 잘 관리하는 생활을 청지기 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하나를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삶의 내용에 굉장한 뜻이 있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의 삶은 심오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또 기적 같기도 합니다. /믿/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그냥 대충 살아 갈 수가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아멘!/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잘 관리하며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우리들의 몸이요 육체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몸에 대하여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
여러분,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 삼라만상을 한번 자세하게 살펴보십시오! 참 신기하고도 정교합니다. 저 높은 천체의 별들을 보십시오! 단 하나라도 엉키는 일이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 사계절의 변화 속에 자연의 신비를 보십시오! 얼마나 감탄할 만합니까? 그런데 그 중에서도 더 신비하고 하나님 자신도 '참 좋았다'고 감탄하신 창조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몸입니다. 피조물의 꽃이 바로 우리의 육체입니다. 여기서 몸은 사람의 육체를 가리키지만 '육체와 생명과 존재' 모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몸을 한번 찬찬히 감찰해 보면 참으로 오묘하고도 신비롭습니다.
▶먼저 머리를 보자! 머리는 육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수천 개의 뇌 세포 조직이 들어 있습니다. 수많은 조직들 중에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뇌 세포 속에는 수많은 경험을 기억할 수 있는 장치가 있고, 모든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오묘한 장치들이 우리들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중요한 머리를 두꺼운 두개골로 덮어서 튼튼하게 보호하시고 그 위에 또 잔디를 입혀서 완전하게 보호해 놓으셨습니다. 잔디는 세월이 가면 백발로 바뀝니다. /할/
▶그리고 눈을 보십시오! 얼마나 맑고 정밀하고 사물을 식별하고 또 색깔을 음미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오묘 신비한 기구입니다. 거기다 눈은 전자동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저절로 조리개를 크게 열어주고, 밝은 곳에서는 조금만 열어 줍니다. 그리고 위험이 올 때는 순식간으로 닫아 버리고, 먼지가 들어 올 때는 전자동으로 눈물샘에서 물을 내어서 맑게 씻어줍니다.
▶또 손을 보십시오!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물들을 만드실 때 인간에게만 손을 주셔서 그 손으로 발명하고 창조해서 문화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역사가 있고 창조가 있고 문화가 있습니다. 원숭이는 2천 년 전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2천년이 지나도 원숭이는 여전히 원숭이 일뿐 원숭이가 고급 식당에 앉아서 식사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손을 가만히 한번 살펴보면 손가락 다섯 개가 다 다릅니다. 굵기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릅니다. 우선 엄지손가락은 굵고 힘이 셉니다. 그래서 악수 할 때도 힘이 있게 하고, 무엇을 잡을 때에도 가장 힘있게 작용합니다.
둘째손가락도 참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서 사격을 할 때 이 손가락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손가락이 없으면 군대도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은 귀한 일을 합니다. 언뜻 보면 짧고 가늘어서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귓구멍이 가려울 때 이 손가락이 얼마나 요긴한지 모릅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에게 이 새끼손가락의 쓰임새는 가히 절대적입니다.
또 우리의 몸에 코, 귀, 가슴, 다리의 역할은 또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정교하게 우리의 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몸으로 자신의 삶을 살되 몸을 망가뜨리지 말고 건강하게 잘 관리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할 책임이 있는 청지기들입니다. /믿/ ▶그러면 우리의 몸은 어떤 몸이며 또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내 몸은 하나님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착각 속에 살 때가 많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지 누구의 것이냐?'고 반문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 몸이 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은 '우리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값을 주고 산몸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 몸은 내 것이지만 사실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개념부터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내 몸의 실질 소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그래서 우리는 내 몸이 병들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멘!/ 그리고 내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도 있습니다. 내 몸이 병들면 우선 하나님이 손해를 보십니다. 그리고 국가가 손해를 보고, 가정이 손해를 보고, 사회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유교의 정신에서 보면, 육체는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몸을 상하거나 병들거나 추하게 굴리면 부모에게 불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한 차원 더 높여서 '내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잘못 관리해서 병들거나 추하게 만들면 그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이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그때는 내 몸을 함부로 사용하게 됩니다. 범죄에 사용하기도 하고, 악의 구렁덩이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내 몸을 방탕으로 병들게 하기도 하고 술로 망가뜨리고, 담배와 마약으로 병들게 하고 음행으로 추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살해서 죽기도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정신으로 살아야 내 몸을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아멘!/

 

2. 내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너희 몸이 성령의 전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 몸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주해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청평 쪽으로 가면 아주 아름다운 별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처다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의 모양이 아니고 그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집은 아주 예쁘고 좋은데 그 집 주인이 강도나 살인자나 아주 부패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 집은 값어치가 없는 집입니다. 그러나 아주 초라한 집이라도 그 집에 성자가 살고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 집은 오히려 귀한 집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겉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인격적인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셔들이고 환영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성령님이 나를 지켜주십니다. 그 성령이 나를 만들어 주고 그 성령이 나를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지켜줍니다. /아멘!/
갈5:16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성령을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⑴성령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라는 말씀이요, ⑵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라는 말씀이요, ⑶성령의 힘을 받아 살아가라는 말씀이요, ⑷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무당은 귀신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귀신이 시키는 대로 그가 주는 힘으로 일을 하고 점을 치곤 합니다. 술주정뱅이는 술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뒹굴고 소리치고 난리를 피웁니다.
▶지난 14일에 울산에 두 부부가 '화이트데이'라고 기분 좋게 저녁과 술을 마시고 돌아가다가 부인이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고 제안하자 남편이 그냥 집으로 가자며 거절하고 귀가하자 술이 만취한 부인이 화분을 집어던지고 난리를 치자 남편이 따귀를 때리게 되어 부인이 주방에 들어가 식칼을 가지고 와서 남편의 복부를 찔러 그 자리에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술이 부른 참극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가르칩니다. /할/
여러분, 신앙생활의 참 위력이, 참 기쁨이 어디서 나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지배를 받을 때 얻어집니다. 하나님께 꽉 붙잡혀 살아갈 때 얻어집니다. 내가 완전히 성령의 지배 하에 있을 때 신앙의 위력이 나타납니다. 이 상태를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믿/
▶초대교회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시장을 나갔는데 기생이 쫓아 나오면서 오랜만이라고 서방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면서 반깁니다. '나 옛날의 김익두가 아닌데'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방안에 끌려 들어간 김익두 목사님이 큰일이 났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변보고 오겠다.'고 나가려는데 '여기서 보라고 제가 그럴 줄 알고 요강을 갖다 놓았다.'고 합니다. 꼼짝없이 걸렸습니다. 새롭게 살려고 한 것이 한순간 다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원통하고 분해서 못 살겠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을 치면서 '김익두 죽네, 김익두가 여기서 죽네' 하고 통곡을 하니까?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기생이 놀래서 뒤로 벌렁 자빠졌다고 합니다. 이때다 하고 그 틈을 타서 도망을 쳤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전을 이렇게 아름답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할/

 

3. 우리 몸을 하나님이 '값을 주고 산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이미 팔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벌써 죄와 사망과 율법과 정욕과 방종의 노예로 버려진 진노의 자녀(엡2:3)였는데, 이제 값을 지불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롬8: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누가 값을 지불했는가? 하나님이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갈보리 십자가위에 못 박아 죽임으로 죄 값을 청산하신 것입니다. /믿/ 예수님이 내 죄 값으로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아멘!/
이제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내 죄 값을 지불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①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세요!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 내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 값을 다 청산하시고,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의 소유권을 친히 행사하십니다. '너는 내가 이미 십자가에서 샀노라!'고 하십니다. 그 '값을 알라'는 말입니다. '네 값이 얼마인줄 아느냐?' 그것은 '예수 값'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생명과 맞바꾼 존재입니다. /믿/

②베드로는 우리의 값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⑴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입니다. 엡1:4절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천국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고 싶어서 자의로 내 의지와 생각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창세전에 택해서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롬5: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⑵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라는 말은 본래 라틴어로 '다리를 놓는 사람' 즉, '중보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하늘과 땅에 중보자가 되셨기에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이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들이 된 것입니다.
신약적 의미에서 제사장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잡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만인 제사장'설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인 것입니다.
▶제사장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특권입니다. 제사란 '드린다.'는 의미인데, '찬양의 제사를 드리고, 내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살 드리고, 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구제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 중에서도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왕은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만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물려받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의 권세가 능력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죄를 이기고, 미움과 다툼과 시기와 질투를 이기고, 마귀와 귀신들을 물리치게 됩니다.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 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권세로 표적을 일으킵니다. 귀신도 쫓아냅니다. 이 왕의 권세로 질병도 물리치게 됩니다. 심지어 사망도 이기게 됩니다.
⑶거룩한 나라의 백성입니다. 거룩한 나라란 '성별된 나라'란 뜻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지만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비록 죄와 허물로 얼룩져 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백성답게 말과 뜻과 행동이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⑷하나님께 소유된 백성입니다. 사43:1절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여기서 우리는 신분의 존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시16:3절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의 집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출19:5-6). 여기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하나님이 아껴주십니다. 말3:17절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네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전10:31절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③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여러 가지가 변해야 합니다.
⑴우리의 삶의 목적이 내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전에는 세상을 위하여 살았고, 자신을 위하여 살았지만 이제는 주를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뜻에 내 자신을 복종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위하여 신앙입니다.
▶다시 김익두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은 한 때 이름난 깡패였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시장에 오고 갈 때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을 정도로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은 후 증거하기를 '나를 보라 만일 예수님이 얼마만큼 능력이 있는가 궁금하면 나를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만큼 철저하게 변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어느 날 전도하러 가는 중에 산길을 가다가 더워서 언덕에 앉아 쉬고 있는데 왠 술주정뱅이가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때리더랍니다. 이유는 왜 건방지게 나보다 먼저 올라와서 앉았느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마구 때리더랍니다. 아무 소리 안하고 그 매를 다 맞은 뒤에 김익두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은혜는 당신이 받았소! 이봐 내가 김익두야!' 그랬더니 그 술주정뱅이가 정신이 번쩍 나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더랍니다. 그래서 점잖게 타일렀답니다.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오늘 당신 초상 치르는 날인데 예수는 내가 믿고 은혜는 당신이 받은 줄 아시오' 하면서 그에게 가방을 들고 다니라고 했는데 그가 나중에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목적이 바꿔지니 예수를 위하여 참고, 예수 때문에 인내하고 주님을 생각해서 고난도 받습니다. 이것이 위하여 신앙입니다. 변화된 삶, 목적이 바뀐 삶입니다. 전에는 내 체면 때문에 참았고, 내 인격 때문에 참았지만 예수를 만난 후로는 나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참고, 지고, 손해보고, 얻어맞고, 배신을 당해도 참는 것입니다.
목적의 전환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친정을 위하여 살던 관심은 시집을 위하여 바꿔야 하듯 우리가 예수 믿은 후에는 모든 관심과 목적과 뜻은 예수를 위하여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⑵나 중심에서 이웃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내가 주인이 되고 목적이 됩니다. 매사에 자기가 주인이 되고 내가 있음으로 네가 있다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살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이 강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목적이 바뀌면 나를 초월하는 의지가 생기고 이웃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보다는 이웃에 대한 넓은 마음, 성숙한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니고 주님이 그런 힘을 내게 주시는 것입니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은 전쟁이 나자 전선으로 달려가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나라 병사만 치료해 준 것이 아니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적군까지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첩자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그때 한 말은 '애국심만으론 부족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애국심만 가지고 내나라 군인만 치료해주고 다른 나라 병사라 해서 죽어 가는 사람을 버릴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 애국심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내나라 군인이건, 적군이건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사랑할 수 있는 인도주의에 도달한 자의 고백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네 이웃을 형제로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이 안목이 생기면 이웃을 손해 보이지 않습니다.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멘!/ 그래서 유명한 신학자 '하르나크'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나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고 이웃을 내 형제로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의 이웃 관'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위하여' 신앙입니다.
⑶세상을 향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무조건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다 썩었고, 부패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 졌다면서 덮어놓고 이 세상을 헐뜯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이 세상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명입니다.
이 세상 속에 들어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기를 위해서 살도록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일하고 수고하고 땀 흘리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어떤 주부는 우리 여자들은 평생 가족들의 뒷바라지만 하다 죽느냐고 불평합니다. 그것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신 이유는 허무주의로부터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이 있으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날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으니까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고 악착같이 땀 흘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여러분 가정이 없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 생활! 그 마음속에 무엇이 찾아오겠습니까? 허무주의 밖에 찾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주부님들! 가정을 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할/
⑷이제 우리는 우리의 죽음까지도 내 것이 아닙니다. '살든지 죽든지' 이 말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냥 왔다가 그냥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윤회 적인 죽음 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이 말은 우리의 살고 죽는 문제는 나에게서 떠나 주의 손에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오늘부터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결단을 하면 그 순간부터 이미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의 운명은 주님의 손으로 넘어가 위탁되는 것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겠다는 각오로 뛰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⑸이제 우리는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살전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 기뻐해야 합니까? 구원에 감격 때문입니다. 이 기쁨이 없다면 무늬만 가진 신앙인입니다. 그리고 삶에 기쁨이 없으면 즉시 원망이 자리 잡고 불평이 찾아오게 됩니다. 또한 감사의 눈도 뜨이지 않습니다. 기쁨의 삶에서 원망도 불평도 사라지게 됩니다.
'항상'이란 말은 기뻐하되 '언제나, 어느 경우에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기뻐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을 떠나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종교적인 언어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사람은 순간마다 숨을 쉬면서 목숨을 이어가듯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지금 이 시각 삶을 이어가는 소중한 호흡입니다. 기도는 어떤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항상 영적으로 긴장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기 범사도 종교적인 언어입니다. 신앙 안에서만, 예수 안에서만 진정한 감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할/

 

4.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과연 어떻게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①눈으로는 잘 봐야 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눈에는 육안이 있고, 지안이 있고, 심안과 영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면 새로운 영적 안목이 열리게 됩니다. "네 눈을 바로 보며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②귀로는 잘 들어야 합니다. 청종하라는 말입니다. 듣는 것을 잘 이해하고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살전2:13절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또 사55:2절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할/
③입(혀)으로는 잘 말해야 합니다. 말대로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정의 말이 아닌 긍정에 말로, 원망과 불평보다는 감사의 말이 우리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④손으로는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 손이 수고한대로 먹으리라고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⑤발로는 의인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합니다. 롬1:1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⑥몸(생명)으로는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쁘시게 받으실 영광은 우리들의 산 예배입니다. 롬12: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 제사는 양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고, 재물을 태워서 향기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들은 생명이 없는 제물들입니다. 이미 죽은 제물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죽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습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란 말은 살아 있는 나의 삶을 모두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몸을 드리고, 영혼을 드리고, 나의 생각도 뜻도 나의 지식도, 그리고 감정도 드리고 의지도 드리는 것입니다.
⑦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야 합니다. 롬14: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제 우리는 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 여기서 말하는 '위하여'라는 말은 '의식의 변화'를 말해주는 움직임의 동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의 목적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요, 소유주요, 섭리자'이십니다. /믿/
인간의 기본자세가 무엇인가? 주인을 바로 알고 살아야 하며 그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이 청지기의 삶이요, 성도의 삶이요,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삶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받쳐진 존재요 예수님의 피로 산 존재요 성령의 소유가 된 존재요 하나님께 헌납된 존재요 위탁된 존재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께 받은 몸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채우시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바라보는 성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