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네 가지의 덕! (삼상 30:1-25)
▶어느 목사님이 시골길을 가는데 큰 고목 나무가 있어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데 어떤 여인이 그 나무에 와서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고 빌더랍니다. 그래서 '무엇을 비느냐'고 물으니 '복을 달라고 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가 왜 속이 이렇게 썩은 줄 아느냐? 이것은 자기가 복을 줄 수도 없는데 당신 같은 사람들이 자꾸만 와서 복을 달라고 하니 답답해서 이렇게 속이 썩었다'고 말하고 예수를 소개하여 영접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 분이 우리 인생의 창조자이시고, 그 분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 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삶의 문제 해결의 열쇠이시며,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인생의 치료자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고 만나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예수님 만나는 자리인줄 믿습니다. /할/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과거제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광종 9년에 과거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그 목적은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큰 효력을 보게 되자, 조선시대에는 매 3년마다 치려졌던 과거제도를 수시로 시행하므로 숨어있던 많은 인재들을 등용시켰습니다. 특히 조선의 22대 왕이었던 정조대왕은 '탕평책'을 계승하여 인재들 골고루 등용시켰습니다.
'탕평책'이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당시의 '노론과 소론'을 막론하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제도입니다. 지금 배경으로 설명하면 여, 야를 막론하고 인재를 등용한 제도입니다. 저 사람이 유능하다면 야당이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대쪽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자들을 모아 철저한 교육을 시킨 후에 국가의 요직에 임명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정치를 했던 정조대왕은 세종 이후 300년 만에 국태민안<태평성대>를 이루어 놓은 왕이 되었습니다.
시대마다 나라가 평안하고 잘 살게 된 때를 보면 훌륭한 군왕과 지도자와 훌륭한 인물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희생하며 땀을 흘릴 수 있는 지도자와 일꾼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이 때,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말이 아니고 꼴이 아닙니다. 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정치가들이 때묻은 성품을 버리고, 백성의 손발이 되어 희생정신을 발휘해 준다면 그리고 백성이 함께 힘을 모아 준다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꾼이 필요한 것은 국가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일꾼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참다운 일꾼이 없는 나라는 번영할 수 없듯이 참 일꾼이 없는 교회도 부흥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시간에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당신의 일을 할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국가, 사회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훌륭한 일꾼들이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아멘!/
그러면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인물이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저는 본문에서 그 표준을 찾아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바로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일꾼이요,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덕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다윗의 네 가지의 덕!▶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인생여정은 천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영적 투사의 길입니다. 천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인생의 여정 길에는 수없이 많은 역경이 오고 실패도 옵니다. 한마디로 인생살이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안습니다.
다윗의 일생도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뜻밖에 당한 패배와 좌절 가운데서 다시 승리를 쟁취하는 다윗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윗이 승리하기까지 밟아 나간 과정,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절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고 했습니다.
1. 본문의 배경을 먼저 알아보아야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구국공신입니다. 이스라엘은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블레셋이 침략해 왔습니다.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란 거인이 있었는데 그를 앞 세워 이스라엘 진영을 괴롭혔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거인 골리앗 앞에 감히 어느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때 어린 소년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할례 받지 못한 이방 적장인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죽여 버렸습니다.
망할 뻔했던 나라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낸 구국공신 다윗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일약 국가의 요직에 앉게 되고, 사울 왕의 둘째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울이 민정 시찰 중에 우물가에 여인들의 노래를 들었는데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인기 순위에 놀라 그 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민심의 인기가 그 권좌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의 세 대권주자들이 인기 순위에 신경을 쓰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인기 순위에 큰 충격을 받은 사울 왕이 생각하기를 '아! 저놈을 키우는 것이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구나! 저놈 때문에 내 인기가 땅 바닥에 떨어졌고, 내 왕의 자리가 위태하니 일찌감치 죽여 없애는 것이 상책이다'고 마음을 먹은 사울은 그 날부터 다윗을 죽이려고 갖은 핍박과 모함을 자행했습니다.
다윗이 열 번이나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숨어 다닌 세월이 장장 10년이 넘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이스라엘에서는 숨어 있을 곳이 없어 외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는데 그 나라가 바로 블레셋입니다.
사실 다윗이 블레셋을 택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 당시 다윗은 사울 왕이 죽기 전까지는 그의 신분은 여전히 도망자요, 아무도 그를 반겨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생각의 내용이 삼상27:1절에 나와 있는데,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하고 블레셋으로 간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대안 같지만 사실은 그가 갈 길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살려고 간 길에서 그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최소한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는 들어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고난과 핍박이 와도 말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요? 블레셋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였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블레셋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너무너무 심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그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버리고 블레셋으로 간 것입니다.
당시 블레셋 왕은 아기스인데 아기스 왕은 사울과 다윗 사이가 문제가 있는 것을 눈치 채고 다윗을 자기편으로 끌어드리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그를 환영하고 다윗과 그의 일행을 시글락 땅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당시 다윗은 혼자 망명한 것이 아니고, 자기를 추종하는 600여명의 부하들을 거느렸습니다. 원래는 아기스 왕은 왕궁이 있는 가드에 머물 것을 권했지만 다윗이 '어찌 왕이 계신 곳에 같이 있을 수 있느냐?'며 시글락을 요구해서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시글락은 당시 블레셋 땅에 소속되었지만 사실 아브라함 때로부터 이스라엘 땅으로 지계표를 정한 곳입니다. 수15:31절에 보면 시글락은 유다 지파의 기업으로 나와 있습니다.
시글락은 이스라엘과 불레셋과 아말렉과 접경을 이루는 땅으로 다윗이 왕이 될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는데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혁명 시에는 집결지로 삼았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계속 연락할 수 있는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에서 600여명의 부하들과 그의 식구들까지 먹여 살리는데 아기스 왕이 절대적으로 후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곳에 머무른 지 1년 4개월이 되는 어느 날, 아기스 왕이 다윗을 부릅니다.
그 배경이 삼상28:1-2절입니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한 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로 영영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자 다윗은 야단이 났습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너는 내 나라에 와서 그것도 1년 4개월이나 피신하면서 내 보호를 받고 은혜를 입어 죽음을 면하였으니 이제는 은혜를 갚는 양으로 나를 위하여 너희 나라 이스라엘과 싸우는 전쟁터에 너와 너의 부하들이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아기스 왕의 말을 거절할 수도 없는 그런 입장입니다. 다윗은 몸은 비록 블레셋에 도망을 왔지만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는 아닙니다. 자기는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하여 할 수없이 원수의 나라 블레셋에 왔지만 자기 백성들에게 칼을 뽑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난처했습니다. 삼상29:1절 이하에 보면, 다윗은 아기스 왕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기스 왕의 호위대장이 되어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만 쳤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중심을 아신 하나님은 시험을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삼상29:4-5절 사이를 보면, 블레셋 장군들이 모여서 자기 왕에게 진언을 합니다.
"아기스 대왕이여! 저 다윗을 망명지 시글락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만약에 다윗 장군이 거느린 600명의 군대가 전쟁터에 나가서 자기 나라 이스라엘과 합세를 하여 우리를 대적하면 그 때 우리는 속수무책입니다. 다윗은 우리의 전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위험이 너무 큽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윗이 그 나라에서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사울이 죽이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고 추앙하던 존재가 아닙니까?"
이 말을 들은 아기스가 자기 장군들의 말이 옳다고 판단하여 다윗을 불러 말합니다. 그 내용이 삼상29:6절 이하에 나오는데 "나는 자네를 믿지만 우리 장군들이 자네를 의심한다네, 그러니 자네는 내일 새벽 일찍이 시글락으로 돌아가서 전쟁에는 나가지 않도록 하게!" 그래서 다윗이 어려움을 면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삼상29:11절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 가니라."
2. 여기서부터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1-3).
블레셋이 진을 치고 있던 아벡에서 시글락까지는 약 80㎞ 거리입니다. 다윗 일행이 그 난처한 자리에서 떠나 기쁨을 안고 마음에 안심을 하면서 보금자리인 시글락에 돌아와서 사랑하는 처자들을 만나 위로를 받기 위해서 사흘 동안이나 걸어서 돌아와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시글락은 불타버렸고, 재만 남았습니다. 1-3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재산도 없어졌고, 사랑하는 처자식도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다윗이 시험을 당한 것처럼 끊임없이 문제가 다가옵니다. 이제 겨우 한 시련을 넘기고 돌아와 보니 더 큰 환난이 다윗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다윗은 정신을 차리고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러 나가 비어 있는 동안에 아말렉 군대가 다윗 일행이 머물고 있는 시글락 성에 쳐들어와서 불을 놓고 부녀자들을 잡아가고 재산을 다 빼앗아 간 것입니다.
원래 아말렉은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입니다. 아말렉 족속은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길을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15:3)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울 왕은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신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길을 가는데 아말렉 군대가 뒤로 와서 노인, 여자, 어린이 등 약자를 쳐서 이스라엘의 행렬 뒷 꽁무니를 말아서 못가도록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영히 아말렉과는 원수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을 막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는 자를 막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말렉은 영적으로 마귀의 세력입니다. 삼상27:8-9절에 보면, 다윗이 마귀의 세력인 아말렉 진영을 습격하여 진멸한 사건이 나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 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이 사건 때문에 다윗에 대한 원한을 품고 다윗이 없는 틈을 노려 아말렉이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다윗 일행은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이런 난리가 어디 있으며,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의 부하들이 더 난리가 났습니다. 모두가 피해자인데 백성들이 다윗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그를 돌로 치려 한 사실 때문입니다(6).
물론 그와 같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분노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도자를 비난하고 돌로 치려고 했다는 것은 큰 실수요 잘못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서로 마음을 합하고 힘을 모아서 대적과 싸워야 합니다.
▶6절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누가 지금 다윗에게 돌을 들었습니까? 부하들이 돌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10년 간이나 고락을 같이 해온 부하들마저도 마음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고, 또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시102:6-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줍니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 이다."
부하들은 부하들대로 '우리가 다윗 장군 때문에 본국에서도 못살고, 타국에 와서 거지처럼 천대받다가 다윗 때문에 처자식을 다 잃어버렸어, 이제부터는 다윗을 따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다윗을 죽여 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치면서 다윗에게 돌을 들어 덤벼들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다윗이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너무도 어려운 일을 만난 것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이놈들아 너희 처자식만 잃었냐? 나도 잃었다'고 혈기를 내고 신경질을 부릴 만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싹싹 빌며 비겁해 질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인내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만약 다윗이 여기서 감정대로 했으면 칼을 빼어 주동자를 죽였을 것입니다. 또 기분대로 했으면 자기도 돌을 들어 던졌을 것입니다. 돌을 가지고 싸우는 일이라면 다윗이 그들보다 더 전문가가 아닙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훌륭한 신앙의 인격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네 가지 지도자의 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다윗이 보인 네 가지의 덕이 어떤 덕입니까?
①믿음의 덕을 보였습니다(6).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처한 경우를 보면 감옥도 이런 감옥이 없습니다. 둘러싸이고, 둘러싸여 갈 길이 없습니다. 사면초가, 한 걸음 뚫고 나갈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건강 때문에, 물질 때문에, 사업의 실패로, 또는 자녀들 때문에, 이웃 간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생의 문제들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면 안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사방을 보고 울고 낙심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주님 바라보고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시37:5-6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할/
여러분,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사건입니까? 질병입니까? 물질입니까? 자녀들입니까? 인간적으로 열 겹, 백 겹으로 문이 잠겨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문만 열려 있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아름다운 선으로 이뤄질 줄 믿습니다. /믿/
다윗은 때려죽이려고 덤벼드는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우리가 블레셋 아기스 왕을 따라 조국 이스라엘과 전쟁을 열흘, 스무날 아니 백날을 했다면 우리도 죽고 우리 식구들도 찾아 볼 수 없이 자주 잃어 버렸겠지만 하나님이 사흘만에 돌아오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덤비지 말고 우리 찾아보십시다."
600명의 부하들은 다윗의 말을 듣고 들었던 돌을 버리며 생각들을 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 전쟁터에서 왜 우리를 돌아오게 하셨을까? 우리를 돌아오게 하신 주님이 우리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들어갔습니다.
부하들은 순간적인 잘못을 깨닫고 다시 다윗의 말에 순종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얻어 담대히 말할 때, 부하들의 마음이 깨끗해 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그렇습니다. 다윗은 첫번 째 믿음의 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②예배의 덕을 세웠습니다(7).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정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여기 아히멜렉은 놉 땅의 제사장이었는데 다윗을 돕다가 사울 왕에게 잘못 뵈어 놋땅의 제사장들을 집단으로 학살했을 때 죽은 제사장입니다(22:18-20). 아비아달은 그때 단신으로 다윗에게 피신해 온 제사장인데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우림과 둠밈'이 부착되어 있는 제사장 예복은 에봇을 가지고 왔습니다(23:6).
제사장의 에봇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판결 흉패'가 달려 있습니다(출28:30). '우림은 부정을, 둠밈은 긍정'을 뜻하고, 각각 다른 쪽이 보이면 결론이 나지 않음을 뜻하는 판결 흉배입니다.
에봇을 가져오라는 것은 정장을 하고 정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고 나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원수를 따라가야 합니까?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는 너무 지쳐있습니다." 다윗은 600명의 부하들을 안심시킨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정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나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 두 번째 덕입니다.
그때 상황으로 봐서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라 한시가 바삐 그들의 뒤를 쫓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모회의를 열어 사람끼리 의논하고 덤비기가 일수인데 다윗은 사람과 의논하는 것을 집어치우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다윗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무리 큰 일이 터져도,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께 묻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여러분,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이 올수록 더더욱 예배 중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더욱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홍해는 갈라지고 지금도 여리고는 무너집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여왕은 십만의 대군보다 '존 낙스'의 기도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나무의 뿌리의 진 액을 가지가 받지 않으면 잎이 피지 못하고 꽃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더더욱 열매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신앙의 진 액인 기도가 끊어지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까? 주님은 <기도이외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원하신 대로 사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들은 이것을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든지 내 생각이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앙적 자세를 가지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바쁘면 더 많이 기도하고 어려움이 오면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온다하여도 믿음이 있으면 됩니다.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믿음은 굉장합니다.
히11:33절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또 요일 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주보 윗면을 보세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아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잃은 것도 찾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8절 '하' "여호아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할/ 잃은 것도 찾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에게 말씀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녕 도로 찾으리라" /믿습니까?/ 건강을 잃어 버렸습니까? 재산을 잃어 버렸습니까? 명예를 잃어 버렸습니까? 신앙만은 잃지 마십시오. 정령 찾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건강을 도로 찾게 만들어 주실 것이고 재산을 도로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③영혼을 사랑하는 덕을 보여주었습니다(11-15).
다윗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니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8절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할/
믿음의 기도는 응답이 옵니다. 다윗은 힘이 생겼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힘과 용기와 기쁨입니다. '가자 하나님의 응답이 왔다' 그리하여 다윗은 9절 이하에 6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아말렉의 뒤를 쫓아 한참 진군하는데 200명의 군대들은 '보솔'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습니다. 너무 지쳐버린 것입니다. 그들을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고 피곤한 400명을 거느리고 아말렉의 뒤를 따라 가는데 빈들에서 쓰러져 죽어 가는 사람 하나를 만났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우리의 처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일초가 급한 시간에 빈들에 쓰러져 있는 사람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어 가는 생명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갈 수 없어서 그를 데려다가 물을 먹이고 떡 한 조각을 입어 넣어주고 무화과 뭉치에서 한 뭉치를 떼어주고 건포도 두 송이를 먹였더니 젊은이가 눈을 떴습니다.
▶바로 이 젊은이가 아말렉 장군의 부하였습니다. 13절의 이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면 아멜럭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무슨 말인가? 그 소년을 종으로 데리고 다니다가 병이 드니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버려 두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때로는 짐승보다도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다윗이 애굽 소년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 죽어 가는 사람 어디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를 지극 정성 보살폈더니 다윗의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할/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매우 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아말렉 사람은 종이 병들자 몰인정하게도 그를 들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 죽어 가는 그를 데려다가 먹이고 보살펴서 살려 주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어야 합니다. 모른 척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말렉 사람은 쓸모 없다고 판단하여 그를 몰인정하게 버렸는데 이 일로 자기들의 행적과 위치가 쉽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므로 원수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들이 있는 곳까지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믿/ 이웃을 돕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이제 다윗이 소년을 향하여 말을 합니다. '너는 길을 인도하라, 너를 죽이지도 않겠고, 원수의 손에 넘기지도 않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자 이 젊은이는 아말렉 원수가 간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자신이 가는 길이 바쁘다고 그까짓 생명 나와 상관없으니 내어버리려 했다면 이 넓은 광야에서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찾겠습니까? 한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쓸모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사랑으로 대합시다. 병들고 굶주려서 다 죽어가던 쓸모 없어 보이던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습니까?
사람을 무시하지 맙시다. 소홀히 하지 맙시다. 그 사람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지 모릅니다. 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을 사랑합시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주어야 합니다. /할/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는 자에게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믿/
▶이제 16절 이하를 보면 다윗은 400명을 거느리고 그 청년을 따라 아말렉 진영을 찾았는데 그들은 너무도 얻은 것이 많다고 좋아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춤을 추다가 곤 드레가 되어 떨어져 자고 있습니다.
여러분, 싸움은 결정이 나버렸습니다. 다윗의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이 다윗 편이 되시면 이렇게 쉽게 이깁니다. 다윗은 부하들의 손 끝 하나 상하지 않고 원수들을 잔멸하고 잡혀간 처자식을 만나 얼싸안고 울고, 춤추고, 잃어버렸던 재산 뿐 아니라 그보다 30배, 60배, 100배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니 보술 시냇가에 남아있던 200명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④물질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덕을 세웠습니다(24).
다윗이 개선하여 돌아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22절 이하에 보면 원수를 끝까지 따라가 큰 승리를 이루고 돌아온 400명의 군대들이 나머지 200명에게 '처자식은 돌려준다 할지라도 전리품은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늘 여러분이 이겼다고 여러분이 잘 싸워 이긴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전략이 좋아서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이긴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이겼다고 교만하지 맙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니 우리 동지들 간에 똑같이 나누어 가집시다."
다윗의 물질 처리는 너무나 잘했습니다. 이 일 후에 200명의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400명의 부하들도 다윗 장군의 위대한 덕망에 감격했고, 그 뒤에 더더욱 다윗에게 충성하는 충신들이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여러분,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배울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 속에 믿음의 인물들을 잘 배워서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 속엔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 행한 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복 받은 사람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복 받은 원인과 저주받은 원인을 규명해 보면 단순하고 간단한 원인 때문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계명을 지킨 사람들은 복을 받아 번영했고 성공했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저주를 받았고 실패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가르치고 암송했습니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써서 암송하고 그것을 손목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세계민족 가운데 가장 두뇌가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영재교육 조기교육이라 해서 4-5세부터 과외를 시킵니다. 과외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영어, 피아노, 미술, 웅변, 컴퓨터, 태권도 등을 가르칩니다. 그뿐입니까? 자녀 교육을 위해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등지에 가 있고 남편은 혼자 한국에서 김치 담그고 라면 끓여먹으며 삽니다. 외롭게 홀로 하늘 바라보며 산다고 해서 '기러기 아빠'라는 별명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노벨 의학상, 문학상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평화상은 건국이래 최초의 사건입니다. 집을 팔고 부부가 헤어져 있으면서 자식을 공부시키지만 우린 아직 노벨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친 유대인들은 노벨상 수상 단골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1901년에서 1990년까지 90년 간 물리, 화학, 의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404명이라고 합니다. 평화상은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만 있으면 받기 때문에 머리가 나빠도 상관없지만 물리, 화학, 의학은 머리가 뛰어나야 합니다.
404명의 종교를 분석하면 기독교 65%, 유태교22%, 천주교 11%, 불교 0.9%, 회교 0.1%입니다. 기독교와 천주교를 합하면 87%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부르고 성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두뇌가 좋아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을 받은 나라를 꼽아보면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미국, 독일 순으로 모두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태인으로 상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에 정착해 살면서 연구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국과 소련이 과학기술개발을 위해 비슷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뭘 말합니까?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고, 예수를 믿는 나라가 선진 국가이며 경제 부강 국가이며 노벨상 수상국가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배우는가? 그것은 성경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믿음의 덕을 배웠습니다. 다윗의 신앙을 우리 모두 전수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4. 이제 이 사건 뒤에 다윗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상은 31장으로 끝이 나는 31:12-13절에 보면, 블레셋과 이스라엘 전쟁이 끝났는데 이 전쟁에서 다윗을 그렇게도 괴롭혔던 사울 왕이 죽고 세 아들도 죽고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삼하 1-2장에 보면 다윗은 시글락에 머물지 않고 600명의 부하들과 더불어 본국으로 돌아오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임금으로 추대하고 열렬히 환영을 했습니다(삼하2:7).
▶다윗의 시글락 사건은 왕이 되기 전에 지도자의 자격증을 딴 기회였습니다. /할/ 고난 뒤에 축복이 다윗에게 왔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신앙으로 이겼더니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원수들을 제거하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영적 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육신 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을 만난다 할지라도 오늘 다윗의 4가지 덕인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고 ▶아무리 바빠도 예배중심, 기도 생활을 철저히 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물질 관리를 잘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서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큰 축복 속에서 승리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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