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힘! (요 16:32-33/요1서 5:1-4)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나가 평생을 헌신한 노부부 선교사가 은퇴를 하여 조국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뉴욕 항에 도착하자 선창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 있었고, 군악대가 환영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노부부는 자신들을 환영해 주는 인파로 생각하고 너무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들을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유명한 비행사 '린드버그'를 환영하는 인파이었습니다. '린드버그'는 단발 비행기로 대서양 힁단 비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선교사 부부가 탓 던 배에 같이 타고 왔던 것입니다.
한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몸과 마음이 피곤해 지쳐 기진맥진해 돌아온 선교사를 맞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오직 '린드버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영의 축제를 벌이고 야단들이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오라는 사람도 없어서 뉴욕 시내에 어는 삼류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방에 들어가자 맞아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한평생을 복음 증거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충성하다가 돌아왔는데 한 사람도 환영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대서양을 한번 힁단한 '린드버그'를 위해서는 전 뉴욕 시민이 환영을 하고 있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자기들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투정 조로 기도했는데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노부부에게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종들아 들어라! '린드버그'는 그의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희는 아직 하늘 본향에 돌아오지 않았노라! 너희들이 하늘나라 본향에 돌아올 때는 린드버그가 환영을 받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그 때는 너희들을 환영하기 위해서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고, 먼저 천국에 올라온 사람들이 모두 마중을 나갈 것이며 내가 직접 너희들의 손을 잡고 인도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참아라."는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천국에 올라가면 천군 천사가 우리를 환영할 것이고 우리 주님이 우리의 손목을 잡고 환영해 줄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적인가? /할/
그런데 누가 천국에 올라갈 수 있습니까?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자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멘!/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해야 합니다.
벌써 2006년도를 마감하는 12월입니다. 여기까지 '에벤에셀'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다시 올 2007년도의 새해를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믿/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요16: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시면서 이 성만찬에서 주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며칠 후가 아닙니다. 몇 시간 후에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 사실을 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너희는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 얼마나 통쾌한 승리의 선포입니까? /할/
또 믿음의 거성 바울은 고전15:5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한다고 했고,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한국 씨름과 일본 씨름(스모)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씨름은 샅바를 잡고 온갖 기술을 동원해 상대를 넘어뜨려야 합니다. 삼판양승 제도입니다. 세 번 싸워 두 번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씨름판도 평지에 평면으로 만들고 모래를 깔아 만듭니다. 씨름선수들의 복장이나 차림새도 단순합니다.
그러나 일본씨름판은 위치가 높습니다. 단판에 결판이 납니다. 한번 밀려서 밖으로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머리를 요상하게 꾸미고 소금을 뿌리고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쳐 댑니다. 한번 떨어지면 그것은 끝납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긴 사람은 함성을 지르고 소리를 지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씨름뿐이겠습니까? 모든 경기가 다 그렇고 인생이 그렇고 신앙이 그렇습니다. 이겨야 기쁘고 소리 지를 수 있고 노래 부를 수 있고 그리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겨야 합니다 ◀제목소개!▶
철학자 '야스퍼스'는 '싸움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운명적 상황'이라는 겁니다. 부득불, 원치 않지만 우리는 싸워가며 살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숙명적인 존재라는 말입니다.
첫째는 자연과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위와 싸워야 하고, 때로는 더위와 싸우고, 홍수와 싸우고 또 때로는 가뭄과 싸우고, 그리고 지진과 싸우고, 무서운 바람과 많은 재난 사건들과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 자연이 그리 순한 것만이 아닙니다. 자연도 싸움의 대상이 됩니다.
또 하나는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전쟁터'입니다. 보이지 않게, 귀에 총 소리, 대포 소리가 안 들리지만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무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이런 팽팽한 긴장 속에서 우리는 무한경쟁, 무한투쟁,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자기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죄와 정욕과 욕심과 자존심과 특별히 시기 질투 아주 못된 마음 이런 것들과 싸웁니다. 양심을 위한 싸움입니다. 나아가서는 우리의 믿음도 나와의 싸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그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한 자 인줄 믿습니다.
그 싸움은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교회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의 싸움에서 우리 모두 승리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어떤 싸움이라도 이길 힘이 있어야 이기고 승리합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 알아야 면장 질도 한다.'고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 아니고, '가진 것이 힘' 입니다. 재물을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가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해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는 '믿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진 것이 힘이긴 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 없이 가지기만 하면 문제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것 못지 않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 보다, 가진 것보다 더 중요한 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
가진 것은 없어질 때가 있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또 아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지만 한계가 있고, 조금만 지나도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의 영원한 힘이요, 완전 보증이 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도 상대가 있습니다. 믿음의 상대가 사람일수도 있고, 권세일수도 있고, 돈 일수도 있고, 배경일수도 있습니다. 또 믿음의 상대가 하나님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믿음의 상대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의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 주님이 이긴 세상이기에 우리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마루틴 루터'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며 외쳤답니다.
<오!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격려이며 보상인가? 이 말씀이야말로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면서라도 전해야 될 가치가 있는 말씀이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이 선포는 세상에 있는 '환난, 시험, 고통, 아픔, 죽음'까지 다 이겼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는 담대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겼는데 왜 내가 좋아하고 우리가 담대해야 합니까? 그것은 세상을 온통 이기신 주님이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바쳐주어야 합니다. /믿/
1. 모든 승리는 힘과 연결이 됩니다.
운동경기에 이기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하고, 전쟁에 이기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강할수록 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싸움에서도, 전쟁에서도 지는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선거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언젠가 국내 여자 농구 결승전이 1점차로 끝난 일이 있었습니다. 1점 뒤지고 있던 팀이 게임 종료 5초 전에 공을 넣어 이긴 것입니다. 이긴 팀은 얼싸안고 기뻐서 울고 진 팀은 코트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동경기에 지는 것과 전쟁에 지는 것은 비교가 안 됩니다. 운동경기는 자존심의 싸움입니다만 전쟁은 생명을 건 싸움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삼손은 당시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슈퍼맨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졌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하게도 두 눈이 뽑히고 소처럼 연좌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유대나라에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유대는 강국인 바벨론 군대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싸움에 크게 패하자 성이 불타고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또 남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지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인생 길에도 너무도 많은 강적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는 것이 인생문제요,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에게 이길 만한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도 강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2. 싸움을 이기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내 힘 가지고 힘껏 싸워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힘에는 한계가 있고 제한이 있습니다.
②나보다 강한 다른 힘을 빌려서 이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동생이 밖에서 얻어맞고 돌아오면 형이 좇아 나갑니다. 동생은 형의 힘을 빌려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약합니다. 사탄 원수 마귀는 우리보다 강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백전백패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본문에서 그 다른 힘을 찾아야 합니다.
③'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위대한 승리의 선언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강대국 미국을 이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나 중국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전 세계와 거기 사는 사람과 그리고 지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 주님은 온 세상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영계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환난과 고통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더 큰 것은 사망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강대국들은 총칼로 나라를 빼앗고 땅덩어리를 빼앗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권세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사망권세를 이기신 분입니다.
▶바울의 외침이 무엇입니까? 고전15:55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또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할/
고전 15장은 예수님의 부활과 그를 믿는 성도들의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죄와 죽음을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망권세를 이기게 하신 분이 고난과 아픔과 실패를 이길 수 없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다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김을 주시는' 이 뜻은 현재 분사로써 한번만 이기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승리의 삶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운동선수들의 소망은 경기 때마다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망일 뿐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마라톤 선수는 경기 때마다 1등을 하고 싶은 것이고, 야구 선수는 경기 때마다 홈런을 날리고 싶은 것이고, 권투선수는 경기 때마다 상대편을 KO로 이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이지 그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이기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단 그 승리는 내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구원받았을 때 된다는 말입니다. 즉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이김을 주십니다.
3.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①승리의 전제가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세상을 이깁니까? 하나님께로서 난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입니다. 거듭난 자, 새로 난 자,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 된 자, 중생한 자, 바로 예수 믿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로서 날 수 있습니까?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자니"라고 했습니다.
②승리의 대상입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여기 세상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에서 지면 낙오자 인생이 됩니다.
③승리의 방편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이기네♬ 찬송가 가사와 같습니다. 승리의 방편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믿는 성도들에게 '무기, 힘, 능력, 자본, 방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라" 또 말씀하십니다. "네가 돌이킨 후에 믿음을 굳세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마9:22절을 보세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 '네 믿음'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치료)을 얻으리라는 열 두 해로 고통 받았던 혈루증 여인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원하십니다. 눅18:8절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했습니다.
④요한 1서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편지입니다.
⑴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빛 되신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엡5:8-9절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이것이 빛에서 빛으로 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입니다. /할/
⑵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입니다.
⑶믿음은 우리에게 완전 보증이 됩니다. 보증이 무엇입니까?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은행에 돈을 빌려도 보증을 서든지 땅이나 가옥을 저당 잡혀야 대출을 받습니다. 보증물건의 가치에 따라 액수가 정해집니다. 믿음은 바로 우리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할/
여러분들은 어떤 대상을 보증으로 삼고 있습니까? 자신의 건강이 보증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나, 남편이, 아내가, 친구가, 돈이 여러분들의 장래를 책임져 줄만한 그런 보증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게 믿는 다면 여러분들은 속은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보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지는 것 같지만 이기는 것입니다. 실패한 것 같지만,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
4. 요16:33절을 보면 몇 가지의 귀중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자녀라도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환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 환난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경제적인 것, 정신적인 것,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 육체적인 것' 등 그 수를 다 셀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병에 걸리고 사업에 부도가 나고 이 모양, 저 모양 문제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신앙인의 자세가 분명해야 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이 왜 왔을까?' 원인을 분석해 보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것이 귀합니다.
▶한 집사님은 열심히 신앙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특별히 남을 해롭게 할 일도 없었고, 남에게 못할 짓도 안 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을 내조하는 가정주부로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환난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고, 살림집은 가압류가 되어 딱지가 붙었고, 남편은 어디론가 잠적해 버렸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속에 불 신앙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죄 없는 우리 가정을 이토록 풍비박산을 만들 수 있으며 왜 우리가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 신앙이 찾아 왔을 때, 목사님이 그 가정에 와서 권면을 합니다. "집사님의 당하는 환난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주님은 환난 날에 더 기도하라고 하셨고, 더 하나님과 가까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집사님, 히12장을 마음에 무릎을 꿇고 읽어보세요!"
이 집사님은 잠시 일어났던 불 신앙을 회개하고 히12장을 펴고 읽다가 환난의 의미를 깨닫고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히12:6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8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11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이나 징계를 통해서 당신과 멀어진 자녀들을 다시 부르시고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축복도 주십니다. /믿/ 이것이 영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과 멀어지면 질투하십니다.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칼빈'은 '성도가 받은 환난은 결단코 그의 구원에 해로운 것이 아니고 도리어 유익한 것'이라고 했고,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환난은 실로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름 길'이라고 했습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대하20:9절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시91:15절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환난 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환난 바라보지 말고 환난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또 환난을 이용하셔서 우리를 연단 시키고 성숙 시켜서 더 크고 더 중요한 일에 사용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거기서 귀신들린 여인, 점치는 여인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갇힙니다. 매도 맞고 수갑과 착고에 채워져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령은 평안합니다.
왜? 그들은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 마게도냐로 건너 온 것이고 그곳 첫 성 빌립보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해 뭔가를 하실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천사들이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그들을 구해 냅니다. 그들은 그 사건으로 인해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을 구원하게 됩니다. 거기서 나온 유명한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②환난을 당할 때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믿는 것은 자신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고 어떤 문제를 푸는데 자신감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자신이 먼저 포기해 버리면 사업은 재기하기 어렵습니다. 병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감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환난을 담대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담대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달려듭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사람은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다니엘은 정적들의 음모로 신앙생활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음모를 알고도 담대히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결과는 응답이 아니고 사자 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자 굴에 던짐 받은 후에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으로 머리칼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났으며, 그 일로 원수들을 한 방에 일망타진을 했고, 다시 왕의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
'담대하라'는 히브리어는 '하자크'인데 기본 어원의 뜻은 '달라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역동사로 변하면 '묶는다, 갇히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또 '담대하라'란 말은 '즐거워하라', '용기를 가져라'는 뜻도 지니고 있고, 또 '확신을 가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⑴누가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달라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달라붙고 자신을 하나님께 묶어 버리면 담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엡3:12절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⑵누가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사람이요, 구원에 확신에 거하는 자들이 담대해 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확신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신앙은 담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⑶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16:32절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우리 성도가 죽을 때까지 조금도 의심치 말고 믿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며,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
삶을 살다보면 절망 속에 넘어지고 흔들리고 쓸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심지어 죽고 싶은 상황이 여러분에게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사랑하던 제자들이 도망치고 유대인들이 자기를 처형하려고 달려들어 온갖 욕설과 비방을 다 퍼부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저 멀리 계시는 분, 내 형편과 사정을 잘 모르시고 계시는 분, 그래서 내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해야만 한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면 염려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사43:1-3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세상이 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혼자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데 무엇이 두렵고 떨립니까? 어떤 어려움이 와도 환난이 와도 신앙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③'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승리는 교회의 승리요, 예수님의 이김은 나의 이김이 됩니다. /믿/ 바울은 이 사실에 감사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지금 카타르 도하에서 아세안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수영에서 3관 왕이 된 17세의 소년 박태환이 국민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우리 한국 야구팀이 부진해서 동메달에 머물러 국민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축구는 8강 전에서 북한을 3대 꽝으로 기분 좋게 이겼습니다. 우리는 우리 축구팀의 저력을 믿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4강의 위업을 달성한 팀입니다. 그때 전 국민은 기뻐 환호했습니다. 우린 그때 운동장에서 뛴 일도 없고 거기 간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가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김이 이런 이치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교회의 승리요, 예수님의 승리는 나의 이김입니다. /믿/ 예수님의 이김이 곧 나의 이김이라는 고백 끝에 바울은 고전15: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견고한 믿음,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우리를 승리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이기는 싸움, 우리는 믿음으로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우리는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정복한 것'이라고 했고, 중국의 '노자'는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를 아는 자는 명철한 자다'고 했고, 솔로몬은 잠16:32절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자기를 이기는 자가 가장 큰 자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불은 강철을 시험하지만 유혹은 바로 인간을 시험한다.'고 했습니다. 유혹은 휴일이 없습니다. 유혹은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탈무드에 '너희 오른 손이 유혹을 받으면 너희 왼손으로 물리쳐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를 이기고 정복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5. 선한 싸움에서 승리자가 됩시다!(딤전6:11-12).
바울 사도는 그의 영적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①우리는 선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롬12:21절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②실력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세상과 싸워 이기려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를 이기게 하는 도구는 실력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해서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 실력을 쌓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인도하기 위해서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실력은 바로 사용되어야 실력입니다. '내가 알고 있다' '나는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실력이 아닙니다.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돈을 벌어서 가진 자로서의 실력자가 아니고 돈을 멋지게 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지금까지 팔백육십억 불의 기부금을 냈습니다. 계산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는 어마어마한 돈을 가졌지만 어마어마한 기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부를 한 그의 동기가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을 벌어서 쓸 줄 아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답니다. 쓸 줄 아는 실력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③어떤 고난에서도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겨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할/
시34:19절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④죄와 사망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고전15:55-5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는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⑤원수 마귀로부터도 승리해야 합니다(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⑥믿음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⑴믿음은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러분,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부부간입니다. 그래서 무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인을 안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안사람이란 집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집 안에 있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사람, 그래서 언제나 나와 함께 있는 사람,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 거하면 '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면 예수 밖에 거하면 '원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부림쳐도 안 되고, 발을 동동 굴려도 안 되는 이유는 내가 아직도 예수 안에 거하지 않고 예수 밖에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⑵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지한다.'는 말은 '믿는다.'란 말보다 더 강한 뜻이 있습니다.
렘17:7-8절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엄청난 축복입니다.
'더위가 올지라도'는 '시험과 재난이 올지라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가무는 해에도'는 환난과 재해가 와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한 말씀에서 열매는 맛있고 영양 있고 보기 좋고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⑶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믿음의 원리입니다. 요일5: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솝우화 가운데 사냥을 잘하는 들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동물도 들개의 빠른 발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토끼 한 마리를 뒤쫓았는데 그만 잡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개들이 놀려댔습니다. 말 그대로 개망신만 당했습니다.
그때 그 들개가 해명하기를 "그놈의 토끼는 목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뛰었고, 나는 그저 저녁 식사거리를 위해서 뛰었기 때문이야"
목숨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달리는 자와 먹이를 위해 적당히 달리는 자는 그 뛰는 모습이 다르고 결과도 다릅니다.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죽어라고 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최선의 믿음이 우리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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