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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먼저…' (마 5:23-24/6:33/7:1-5/마 23:26)

by 【고동엽】 2022. 2. 6.

'너희가 먼저…' (마 5:23-24/6:33/7:1-5/마 23:26)

 

오래 전에 한 마을에 마음씨가 착한 농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밭에다 무와 배추를 심고 정성껏 가꾸어 가을에 뽑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정성껏 가꾸었든지 보통 무보다 몇 배나 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 농부는 이렇게 좋은 무를 혼자 먹기에 아까운 생각이 들어 제일로 큰 무 몇 개를 골라 먼저 고을 원님께 가져다 받쳤습니다.
"원님! 소생이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만 이렇게 크고 좋은 무는 처음입니다. 이 모두가 다 원님이 고을을 잘 다스려주신 덕으로 생각되어 맨 먼저 무 몇 개를 가져 왔사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원님은 너무나 기쁘고 그 정성이 기특해서 하인에게 명합니다. "여봐라! 요즘 관가에 선물로 들어온 것 중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하자, 하인은 "엊그제 들어온 황소 한 마리가 있습니다." 원님은 그 황소를 마음씨 착한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 날 그 농부는 맨 먼저 고을 원님에게 무 몇 개 가져다주고 황소 한 마리를 받아 왔습니다. 이 소문이 고을에 퍼지게 되자 배 아파하는 농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무 몇 개 갖다 주고 황소 한 마리를 얻어왔다면 나는 황소 한 마리를 갖다 바치고 더 큰 선물을 받으리라'는 마음을 먹고, 아끼고 아껴 소중히 키운 황소를 끌고 꿈에 부풀어 원님에게 갔습니다.
"원님! 저는 수십 년 황소를 키워 왔지만 이렇게 크고 힘센 황소는 처음입니다. 이는 다 원님이 고을을 잘 다스려 주신 덕으로 여깁니다. 원님 생각이 나서 가져왔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원님이 이번에도 매우 기뻐하면서 하인에게 "여봐라! 요즘 관가에 들어온 선물 가운데 제일 값진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이 농부에게 주어라!" '네이'하고 광에 들어간 하인이 큰 무 몇 개를 들고 나오더니 "요즘 들어온 것 선물 중에서 이것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원님은 "그것을 저 농부에게 주도록 하여라." ▶욕심이 많은 이 농부는 황소 대신 무 몇 개를 들고 식은땀을 흘리고 돌아왔다는 '어느 회사 사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접근하는 뜻과 목적을 보십니다. 목적이 귀하고 뜻이 귀하면 하나님은 그 원님보다 더 몇 배나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 ◀제목소개!▶

 

마5-7장을 가리켜 산상보훈이라고 합니다. 갈릴리 바다 서 북편 가버나움에 소위 팔복 산이라고 불리는 '헷딘산'이 있는데 주님께서 이 산에 올라가시어 천국의 대 헌장을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산상보훈은 성경을 읽는 모든 성도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은 불신자들 가운데서도 산상보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숭고하고도 심오한 교훈 앞에 찬탄과 경배를 금하지 않습니다.
사실 산상보훈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 교훈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세계의 모든 귀한 문고 중에 최대의 보물이며 그리고 모든 종교의 서곡이기도 합니다. ▶'가르디니'는 산상수훈의 교훈을 가리켜 '하늘과 땅에 진동'이라고 했고, 인도의 위대한 민족주의지 '간디'는 비록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평생에 산상보훈을 애독하였고, 그의 삶의 기준으로 인생철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는 산상보훈을 가리켜 '진정한 인간정신의 요람'이라고 극찬했으며, 그의 금식, 무저항주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에 토대를 두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 주석학자 '흑기'는 '산상보훈은 수백의 보석으로 꾸며진 왕관이다.'라고 했고, '톨록'은 '산상보훈은 하나님 나라의 대헌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산상수훈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삶의 내용입니다. 또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윤리강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의 황금률'입니다. 유명한 대 문호 '톨스토이'는 '성경이 다 없어진다 해도 산상보훈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살던 곳이요,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이요, 시내산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이요, 호렙산은 모세가 소명을 받은 산아요, 갈멜산은 엘리야가 바알신과 대결하여 이긴 산이요,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산인데, 후에 예루살렘의 성전이 들어선 산이요, 갈보리 산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산이요, 감람산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산입니다.
산은 하나님의 계시의 터전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설교하시고, 산에서 변형(화)되시고,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산이 좋습니까? 산에 올라가면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초월하게 됩니다. 또 산에 올라가면 전체를 한 눈에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 올라가셔서 말씀하신 내용이 인간의 삶을 한눈으로 내려다보시면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천국시민의 생활원리를 말씀하시면서 팔 복을 강론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가 천국의 주인이 됩니다.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습니다. 무엇을 애통해야 하는가? 바로 살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애통이요, 자기 죄를 바라보고 애통하며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영이 임하십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온유는 주님의 성품입니다(마11;29). 온유한 자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서 의는 옳은 행실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옳은 생활, 사람들에 대하여 옳은 생활, 사회에 대하여 옳은 생활'을 하는 것이 의에 참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의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 의를 말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가식이 없이 순수한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속에 거칠고 냄새나고 추한 것들이 있다면 없애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주님과의 화평, 자가와의 화평, 이웃과의 화평'을 이루는 자는 하늘 보고의 상속권이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천국에서 상이 큽니다. /할/

예수님은 팔 복을 전하시고 나서 마5:13-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생활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로마의 속담에 '소금과 햇빛은 이 세상을 생기 있게 만들고 향기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은 '이것들은 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값진 존재이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교회가 썩으면 세상을 거덜납니다. /믿/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요즘 매스컴의 보도들을 접해보면 문자 그대로 썩어진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진 지가 오래 되었고,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 땅바닥에 떨어진지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가 본을 보이고 덕을 세우고 빛을 들어내야 합니다. 주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당부하고 계십니다. 또 소금은 맛을 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맛을 잃은 자들에게 맛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꿈과 비전을 주어야 합니다. 최고의 비전은 '복음'입니다. /믿/
또 빛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또 빛은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어두움 속에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가는 밝은 길을 제시해 주고 빛을 밝혀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마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착한 행실을 보이는 것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은 예수 믿더니 뭐가 달라도 달라! 사람이 변했어! 그래 우리도 저렇게 살아야 돼!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저가 믿는 예수를 믿어야 돼!' /할/ 이 소리를 들으면 우리도 기분이 좋지만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살라고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멘!/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빛과 소금처럼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들에게 먼저 우선해야할 진리 네 가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⑴마5:24절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⑵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⑶마7:5절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⑷마23:26절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우리는 좌우명이란 말을 종종 씁니다. 책상 우측에 명심해야할 글을 써놓고 항상 마음에 세기며 묵상하며 생활에 지표로 삼고 살리라고 다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을 버리자! 마음을 비우자! 사랑하자! 감사하자!' 다양하게 다짐들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의 다짐은 '나는 십자가아래 매일 죽노라!'입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입니다. 저의 목회 좌우명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성도의 좌우명'을 주십니다. '너희가 먼저…' 먼저란 우선순위의 첫 번째입니다.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는 것이 귀합니다.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선순위가 바로 정해질 때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자기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자기 삶의 우선순위가 돈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은 돈을 목표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의 목표가 학위이면 그 사람의 우선순위도 학위에 가 있을 것입니다. 사업을 해서 큰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자기 사업에 모든 관심을 쏟을 것입니다.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여러분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서 네 가지를 차례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먼저 가서 '너희 형제와 화목 하라!'고 하십니다(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은 대인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화목'이라는 말은 '서로 뜻이 맞고 매우 정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서로 간에 거리낄 것이 없는 매우 화기애애한 상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형제와 화목 하라는 말씀은 '깨진 화목을 회복하라'는 말씀도 되고, 또한 '없는 화목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라'는 말씀도 됩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형제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우리가 매일 만나고 접촉하는 대인관계에 대한 교훈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관계를 말합니다. 가족 간에 화목 하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화목, 부모와 자식간에 화목, 형제간에 화목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직장에 나가면 직장 동료들이 있습니다. 상관들이 있습니다. 동료들이 있습니다. 부하들이 있습니다. 그 계층 간에 화목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교우들이 있습니다. 주의 종과 성도간에 화목, 성도와 성도간에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하든지 대하는 삶마다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이 형성되어지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예수님은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 하라고 철저히 가르치십니다. 먼저 가서 대인 관계를 잘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입니까?/
그리고 그 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웃과의 관계를 잘 가지는 것이 곧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기초가 됩니다. /믿/
이웃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잘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16:19절에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원한과 미움과 원수를 맺으면 하늘에서도 원수를 맺는 것이 됩니다. 즉 하나님과도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온전히 사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고 불평불만이 있고 혈기가 있으면 성령이 떠나가십니다. 그러면 찬송이 끊기고 기도가 막히고 감사가 떠나갑니다.
요일4:20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진리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화목과 평안과 평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시29:11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롬15:3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고전14:33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는 평화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평화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평화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눅2:14절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또 부활하신 주님은 요14: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새 계명으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과 화목하게 되고 이웃과 화목을 이루는 자는 하나님과도 화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사랑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질책합니다. 또 잘한 것은 칭찬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매를 들기도 하고 상처의 아픔을 쓰다듬어도 주고 싸매기도 해 주십니다. 분명히 참사랑은 확실한 질서와 공의가 있습니다. ▶고전13:4-7절에서 사랑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기독교의 사랑은 만드는 것입니다. 생각만으로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나를 만들고 다듬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을 다듬기도 합니다. 미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스럽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미운 친구라고 해서 차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랑은 적극성을 가지고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아픔을 싸매어 주고 허물을 가리어 주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세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부터 해결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감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방법은 이웃과 가까워지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원망을 들을만한 형제나 이웃이 없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만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가까워짐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웃에게 욕을 먹는 사람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다.'면 안 되는 말입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미워하고 이웃에게 욕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사랑합니다.' 이런 것은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 의무 중에 최대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해입니다. 만약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품고 욕을 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부부간에 막힌 담이 있습니까? 이 시간 다 헐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형제간에, 부모 자식간에, 이웃 간에 문제가 있습니까?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까? 다 풀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예배 의식이 아니라 불화한 형제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받으시고 축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믿/

 

2.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마6:33)

 

초대교회 교부였던 '오리겐'은 '너희는 먼저 하늘의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세상의 것도 덤으로 주시겠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하고, 먼저 하나님을 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하루라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를 생각하고 염려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것들이 인간생활에 필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육신의 3대 조건이 무엇입니까? '의/식/주'입니다. 이것 때문에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3대 조건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사람은 육신보다 영혼이 더 귀중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는 육신의 요구로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의 문제라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인간이 사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믿/
여러분, '육신보다 영혼, 본질보다 생명, 세상보다 천국'이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사는 방법보다 목적이 더 소중해야 합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아야 하고, 일어나기 전에 먼저, 그리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일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봐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을 위하기만 하면'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더해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믿/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면 하나님은 구하지 아니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이 자리를 보고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이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십시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원하십니까? 먼저 공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일부터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급한 사정이 생겼다고 빠지고, 무슨 일이 생겼다고 못나오고, 집안에 문제가 있다고 빼먹고, 사업상 바빠서 건너뛰고 하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 전에 나와 봉사하고, 전도하고, 충성하는 그 모습을 보시고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십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쓸 것 쓰지 않고, 입고 먹을 것 쓰지 않고, 하나님께 정성어린 헌물을 드림으로 그 물질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더 많은 것으로 풍성하게 형통하게 넘치게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거꾸로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생각합니다. 나를 먼저 위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나의 욕심이 먼저 앞서고 자신의 생각이 생활의 표준으로 착각합니다.
모든 죄악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데서부터 옵니다. 그러나 자신의 중심을 떠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그 사람의 하는 일 위에 형통함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기서 더 하시리라는 말은 '더해주시고 배정해주신다'는 뜻으로 '플러스, 알파'의 축복입니다. ▶빌4: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미국 백화점의 선구자였던 '존 워너 메이커'는 1896년 자신이 경영하는 뉴욕백화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붙였다고 합니다.
<전 사원에게 알립니다. ▶주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출근하지 말고 교회에 출석할 것.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5불 이상의 헌금을 정성으로 바칠 것. ▶예배를 마치고 올 때는 꼭 목사님과 인사하고 올 것>.
우리는 이 사람의 신앙 관을 보면서 '워너 메이커'가 세계적인 부를 누리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축복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 받게 됩니다.
▶전 세계 90여 개의 선교기관에 2,500만 달러의 헌금을 지원한 미국의 실업인 '스탠리 탠' 박사는 기독 실업 인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1940년 '스태니타' 재단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선교를 위해 수많은 돈을 헌금했고, 도처에 322개소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 그가 1976년에 제3기 척추 암의 진단을 받게 되자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한 결과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져 의사도 놀라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5가지 인생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⑴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라! ⑵누구에게든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 하라! ⑶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라! ⑷결코 성내지 말며 사랑으로 행하라! ⑸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매일 세 가지 이상 실천하라!
한마디로 먼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마르지 않고 넘치는 모든 형통한 복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미국이 오늘날까지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떵떵거리고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의 조상 청교도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출발이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출발할 때, 망망대해를 두 달 동안 향해하다가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북미 '폴리머스' 항에 상륙하여 폭풍한설이 천막을 뒤덮을 때, 먼저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다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지어 바치는 사람, 그 자손들까지 복을 주십니다. /할/
청교도들은 그 해 인디언의 습격 속에서도 그 풍토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땅을 개척하고 씨를 뿌려 그 해 추수한 첫 곡식을 안고 먼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위한 삶, 복을 받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먼저 교회를 생각합시다. 시간도, 노력도, 물질도, 먼저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할 때,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쏟아 부어주시면 누가 막을 자도 없고, 빼앗아 갈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시고, 그 물질을 지킬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인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리면 말짱 헛것이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를 보세요, '이제 먹고 마시고 편안히 쉬자'고 할 때 하나님이 "이 어리석은 부자야 오늘밤 내 생명을 거두어 가면 저 창고에 싸놓은 재물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생명을, 건강을, 축복을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3. 먼저 내 눈 속에 들보를 빼라고 하십니다(7:1-5).

 

⑴형제를 비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비판을 받습니다(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인간의 비판은 불완전하고 불공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는 사람은 비록 자기 나름대로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되어도 하나님이 보시면 역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도 비판을 받아야 될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오만과 편견이 있고 이기적인 동기와 욕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죄인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비판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옳은 것을 비판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감정따라 치우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에게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모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살아야 백 살입니다. 힘세 보아야 쌀 한가마니 듭니다. 병들기도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 이상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라 온 환경과 부모의 영향력, 문화적 배경에 얽매어 있으므로 그로 인하여 사람의 가치 기준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격과 기질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와 동향이거나 선후배간 그리고 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잘못이 있어도 잘 봐주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물을 감싸주려 합니다. 또 누가 그 사람을 욕하면 도리어 변명하여 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가 평소에 미워하고 감정이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잘하는 것도 깎아 내리고 가능하면 점수를 짜게 줍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옳고 그름을 말하고 정의감을 말하지만 정의감 뒤에는 인간의 죄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합리적으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갖다 붙이고, 정의라는 말도 붙이고, 진리라는 말도 붙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비판 대신에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⑵2절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비판을 받을 것이요' 라는 말은 법정 용어로 '재판하다'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은 '양이나 길이를 재는 경제적인 용어'에서 나왔습니다.

자칫하면 법으로 처리하겠다는 원칙론 자와 걸핏하면 돈으로 따지고 돈의 힘을 과시하면서 이웃을 가혹하게 대하고 무시하는 자들은 참된 재판장이시고 만물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도리어 비판과 정죄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⑶내 눈 속에 들보를 먼저 빼어야 합니다(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여기서 '티'란 '지푸라기나 왕겨'를 말하고, '들보'란 '기둥이나 서까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내가 형제의 눈에서 발견한 티는 내 눈 속에 있는 들보와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똥 묻은 개가 재묻은 개를 나무래는 격'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열심히 관찰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소경입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가장 무지하되 특히 자기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합니다. 영적인 눈을 가지고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유치하고 오만하고 거드름을 피우는지, 또 얼마나 교만하고 뻔뻔스럽고 가증한지 아십니까? 롬3:13-15절을 보세요!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4-5절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는 이 구절에서 '먼저'라는 단어와 '후에' 라는 두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어야 합니다. 문제는 '나' 입니다. 내가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밝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 속에 티를 빼어 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리라.' 이 말씀은 자신의 허물을 먼저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비판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위해서 격려해 주고 깨닫고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기 '빼어낸다'는 말은 '치료한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허물과 범죄에 대하여 그 사람이 그런 처지에까지 가게 된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때 그 사람은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의 들보를 발견한 순간 형제의 티는 결코 허물이 아니요 우리의 사랑의 대상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는 생활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먼저 내 눈 속에 들보를 보고 그 들보를 빼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남을 쉽게 판단합니다. 목사를 비판하고, 재직들을 비판하고, 형제를 비판하고, 이웃을 비판합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행동의 표준은 자기에게 맞추는 사람입니다. 모든 행동의 표준은 하나님께 맞추는 사람은 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옛 말에 사람의 허물을 덮는 주머니가 둘 있는데, 큰 주머니는 남의 허물을 담아 앞에다 차고, 작은 주머니는 자신의 허물을 담아 뒤에다 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허물을 정확히 보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삼하12장에 보면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악을 책망할 때 다윗이 깨닫고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리지 아니하고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이 죄를 범하지 않아서 성군이 된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했기 때문에 성군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엘리야가 회개하지 않으면 3년 6개월 간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회개는커녕 오히려 그 원인이 엘리야에게 있다고 죽이려고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여러분! 남의 눈의 티를 보고 정죄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눈 속에 들보를 찾는 일에 먼저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불의를 깨닫고 자신의 부족을 깨달을 때, 비로써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축복의 길이요, 은혜의 길입니다. 그래서 먼저 내 속에 들보를 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할/

 

4.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하십니다(마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여기 보면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먼저 해야 할 것 제쳐놓고 나중 해야 할 것부터 합니다. 다시 말하면 겉부터 단장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먼저 안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안을 깨끗이 해야 겉도 깨끗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여기 먼저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제일 먼저라는 말이고 사건 적으로 최우선'이라는 말입니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여기에서 '너는'누구일까요? 바로 '나'입니다. 믿지 않는 이방인과 구별해서 믿는 우리 모두입니다.
인간의 심각한 문제는 인간의 내부(마음)에 있습니다. 안이 깨끗해야 겉도 깨끗해집니다. 중심에 생명이 있어야 생활에 열매가 있습니다. 생명의 씨가 없는 무정란은 아무리 어미 닭이 품고 있어도 병아리가 되지 아니합니다.
▶요일5:1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인생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속과 겉이 영 딴판인 점입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경건하게 보입니다. 믿음이 굉장한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현미경으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잠23:7절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맞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 신앙의 칼라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다윗을 성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고백하기를 '죄악 가운데 태어난 인생, 모태에서부터 죄를 범하였나이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직한 마음을 창조하옵소서.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기도했습니다(시50). 하나님의 백성은 우선 마음, 양심이 깨끗해야 합니다.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빛처럼 영롱해야 합니다. /할/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겉 사람이 강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엡3:16)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는 벧전 3:4절에서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 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우선순위가 바로 될 때 우리의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물질 관이 달라집니다. 대인관계가 달라집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신 것처럼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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