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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주시는 '샬롬'의 은총! (요 14:27)

by 【고동엽】 2022. 2. 6.

주님이 주시는 '샬롬'의 은총! (요 14:27)

 

인생은 누구나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불안이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의 불안이 있습니다. 권세 없는 사람도 불안하지만. 권세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백악관 주인인 대통령은 '링컨 리무진'이라는 차를 타는데 이 차의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억원이 넘는 그런 차입니다. 이 차는 겉으로 보면 날씬하게 보이지만 껍질의 무게만 2톤으로서 장갑차에 가깝고. 천장은 전투기의 껍질을 쓰고 있습니다. 유리도 모두 전투기의 유리라 총알이 관통하지 못합니다. 타이어도 특수설계에 의하여 네 개가 모두 터져도 전 속력으로 50마일을 더 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전한 차이지만 그 속에 탄 사람은 언제나 불안해서 경호원들이 밀착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인간 실존에서 오는 '존재의 불안'이라고 해서 크게 세 가지를 말했는데 ▶죽음의 불안 ▶죄책감의 불안 ▶실패의 불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 비결은 없는가? 딤후1: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불안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시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할/ 오늘 본문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크게 두 가지의 축복을 받게 되는데, 그 첫 번째가 영생입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도 말하고, 죄 사함이라고도 합니다. 또 하나는 평안입니다. 즉 마음의 안식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옵니까? 마음에 평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곧 평안입니다. 평안 없는 행복은 없습니다.
평안은 '헬'어로 '에이레네' 즉 평화라는 뜻이요, '히'어로는 '샬롬'이라는 말로 '평화와 안녕'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미국사람들은 만날 때는 '하이'라고 하며, 헤어질 때는 '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날 때도 '샬롬', 헤어질 때도 '샬롬'이라고 하는데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 빕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은 막연한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임재 하셔서 동행하시고 다스리시며 지켜주신 결과 나의 마음속에 임한 평안의 상태를 '샬롬'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도 사실은 수고를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고향도 버리고, 배와 작업도 버리고, 가족과 헤어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 같은 제자들에게 주님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 이 평안이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사람은 고통 가운데 나서 고통 가운데 죽습니다. 엄마의 태중에서 나올 때 울면서 태어나고, 죽을 때도 울음소리를 들으며 죽습니다. 인생이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생로병사입니다. 즉 '나서 늙고 병들고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고통에서 떠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인생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것은 인생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에게 주어진 병이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그 어떤 위인도 인간에게 평안을 약속한 사람은 없습니다.
▶한 때 세상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에게 한 신하가 물었습니다. "황제여, 황제의 생애 중에 행복한 날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 때 나폴레옹은 "나의 전 생애를 걸쳐서 행복했던 날은 일주일도 안 되지"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대양에 넘실거리는 파도는 세상에 오고 간 사람들의 눈물이요, 육대주에 부는 바람소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들의 한숨소리로다."
모세는 시90: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또 솔로몬은 그에 전도서 2:23절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그 마음속에 한숨이 있고, 탄식이 있으며 괴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부자라고 해서 근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난하다고 해서 근심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고민이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저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이 자리가 안식을 얻는 자리인 줄 믿습니다. /할/
예수님 당시 유대 땅의 학대받는 고달픈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로부터 압박 당하고 착취당하고 굶주림과 헐벗음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보면서 또 오늘날 수고하고 짐 진 인생들을 내다보시면서 우리 주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평안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제목소개!▶

 

성경을 깊이 살펴보면 평안이 두 가지로 구별됩니다. 하나는 '살롬'으로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평안이고, 또 하나는 '피이스'(peace)의 평안입니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해 본다면 '살롬'은 히브리식 평안이고 '피이스'는 로마식 평안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살롬'은 풍파와 핍박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샬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분을 의지할 때 예수님이 내려주시는 은총을 말합니다. 본문의 '평안'을 말합니다. 그러나 '피이스'는 힘에 의한 평화입니다. 총칼로 빼앗은 평화입니다. 돈을 많이 모은 뒤에 누리는 평안이요, 올라갈 만큼 올라간 자의 평안이요, 취할 것을 다 취한 후에 누리는 평안입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흔들리는 평안이요 불안한 평안이요, 세상이 주는 평안입니다.
저 북쪽의 검은 안경을 끼고 뒷짐을 잘 지는 김정일 동무가 다스리는 이북주민들은 뚝하면 '어버이 수령이 주시는 평안, 지도자가 주는 평안'을 꼭두각시처럼 외쳐댑니다. 이것은 김정일이의 독재의 힘에 눌려 그 큰 힘 앞에서 누구도 반란을 도모치 못하는 상태에서의 고요함입니다. 그러기에 엄밀히 말하면 이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힘 앞에 꼼짝 못하고 누구도 대항치 못하게 만드는 공산 사회에서 누리는 평화를 어떻게 평화라 할 수 있습니까?

 

1. 오늘 주제는 평안입니다.

 

①우리에게 주신 평안을 빼앗아 가는 마귀의 무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⑴탐욕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평안을 빼앗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소유욕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해야 평안할 줄 알고 탐욕을 부려 보지만 이것은 속임수입니다. 남이 나보다 잘 사는 것을 보면 평안하십니까? 남이 나보다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있으면 평안하십니까? 왠지 모르게 평안을 잃어버렸다면 내 속에 아직도 탐욕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⑵야망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성취욕입니다. '내가 반드시 뭐가 되고 말 거야' 때로는 이것이 우리들에게 성공하게 하고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야욕은 우리를 괴롭힙니다. 결국 그 야망이 자기를 고민하게 하고 괴롭히게 되고 맙니다. 그러면 평안이 사라집니다.
⑶질투입니다. 왜 가인이 아벨을 죽었습니까? 질투심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이것에 붙들리면 사람이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⑷분노입니다. 이 분노는 한마디로 자기 마음을 통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안 할 말을 합니다. 부리지 말아야 할 혈기를 부립니다. 그리고는 금방 후회합니다. 여기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⑸교만입니다. 잠16: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②우리의 마음 속에는 평안을 빼앗는 6가지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⑴자기도취의 감옥입니다. 항상 자기가 최고인줄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공주병' 또는 '왕자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옥에서 탈출해야 진정한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⑵비판의 감옥입니다.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비하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마7:1절 이하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하느냐? 책망하셨습니다.
⑶절망의 감옥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의 감옥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평화를 소유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⑷과거지향적인 감옥입니다. '옛날이 좋았다'고 거듭 과거에 안주하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도전정신이 약해집니다. 과거 지향적인 감옥에서 벗어날 때,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게 되고, 희망과 용기와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⑸선망의 감옥입니다. '비교의 감옥'이기도 합니다. '남의 떡이 크게 보인다.'는 우리 속담이 여기에 속합니다. '남의 자식들은 서울대도 잘도 가는데! 돈도 잘 버는데!' 남을 비교하다 보면 실망이 되고 평안이 깨어집니다.
⑹증오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감옥입니다. 남이 잘되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 배가 아픈 사람입니다. 이런 감옥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믿/

 

2.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과 조건과 상대에서 오는 것입니다. 돈, 출세, 높은 자리, 권세, 자식, 남편, 아내가, 형제가 평안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평안을 줍니다. 돈이 넉넉하면 자동차도 살 수 있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또 내 집도 장만할 수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으며,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 건강도 우리에게 평안을 줍니다. 사고라도 나서 다리를 쓸 수 없게 되면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혈압이 높으면 언제 어디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질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합니다.

①세상이 주는 평안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이 평안을 줍니다. 그런데 그 환경이 수시로 변하기에 문제가 됩니다.
⑵가까운 사람끼리만 누리는 평안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연인이, 형제가, 친구가, 이웃의 관계가 잘 되어질 때 누리는 평안입니다.
⑶세상이 주는 평안은 문제가 없어야 평안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까? 인생 자체가 문제덩어리입니다. 자식문제 해결되면 남편 문제 생기고 남편 문제 해결되면 시부모 문제 생깁니다. 하루도 문제없는 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주는 평안은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상대적인 것이고, 순간적인 것이고, 찰나적인 것이고, 변하기 쉬운 것'입니다. 사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욕구 충족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바라는 소원이 성취됨으로 오는 평안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끝없는 욕구는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부리다가 평생 동안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 사업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고생합니다. 욕심 때문에 자기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들까지 어렵게 만들고, 처가 쪽까지 다 빈털터리로 만든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욕심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죄에서 오는 것입니다. 약1: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3. 믿음으로 받는 평안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요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 걱정이 없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고, 이 세상을 정복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염려,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맡기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일찍이 노벨의학상을 받은 카렌박사는 '근심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모르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일이 온통 근심 덩어리이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방편입니다. 모든 문제를 주께 맡기십시오, 백 번의 근심보다 한 번의 기도가 낫습니다. 천 번의 탄식보다 한 번의 감사가 우리에게 은혜를 줍니다. /할/
'스펄전' 목사님은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뚫고 나가면 됩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라도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과거에도 우리를 인도하셨고, 지금도 인도하시며, 미래에도 우리의 생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믿/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입니다. /아멘!/ 나의 모든 문제는 주님께 의탁하십시오, 문제 따로 있고, 신앙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도 맡기고, 우리의 운명도 맡기십시오, 하나님 안에서는 운명도, 팔자도, 다 안 통합니다. 막9: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한 여자가 남편의 부도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파출부로 뛰면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다니는 외동딸이 문방구에서 학용품을 훔치다가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도둑놈의 집'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자 부인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딸이 잠든 후에 가스를 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옵니다. 찬송소리를 듣는 순간 어린 시절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 죽을 용기가 있으면 기도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어 빨리 일어나 가스를 닫고 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더니 하나님의 위로가 강같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은 그 후에 모든 것이 회복되어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평안이 있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우리의 믿음 하나만 제대로 붙잡고 있으면 사건이 달라집니다. /믿/ 믿음 붙잡는 것이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아멘!/

 

4. 감사로 받는 평안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을 얻기를 원한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평안이 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근심과 걱정과 탄식이 따릅니다.
어떤 환경에 놓여 있을지라도 감사하십시오, 우리 마음에 불안이 있고, 근심, 걱정, 우수사려가 가득하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근심과 걱정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느니라." 부모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하면 자녀들의 마음에 기쁨이 생깁니다. 주의 종에게 감사해 보십시오, 삶의 표적이 나타납니다. 사르밧 과부가 체험한 축복입니다. /할/

▶미국의 적극적인 사고가이며 상담학자인 '노만 빈센트 필'목사님에게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낙심하여 찾아와서 "목사님 이제 저는 죽게 되었습니다. 다 망해서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아 그러세요, 그러면 당신에게 정말로 아무 것도 없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 오늘 당신에게 있는 소중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세어 봅시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얼 세워봅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당신에게 자녀가 있습니까?" "예! 착한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당신에게 아내가 있습니까?" "예! 늘 저를 격려해 주는 착한 아내가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당신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예! 건강 하나는 타고났지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예 믿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진단을 내리십니다.
"당신은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있소,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자녀, 사랑하는 아내, 당신의 건강,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진짜 최고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빈털터리가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은 크게 깨닫고 용기를 얻어 새롭게 삶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반딧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호롱불을 주시고, 호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전기 불을 주시고, 전기 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태양 빛을 주시고, 태양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저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마음입니다. /할/
▶빈민 운동가출신인 김진홍목사님의 사모님이 쓴 수기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사모님은 결혼 때부터 어려웠습니다. 목사님이 빈민 운동하다가 교도소에 있을 때 결혼을 했고, 그 후부터 어려운 생활에 어려운 사람들 뒤치다꺼리하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 김진홍 목사는 외고집이어서 부인하고 의논 한마디 없이 일만 저지르고 뒷감당은 늘 사모님 몫이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날 남편에게 "여보 나는 당신을 만난 것이 너무 불행해요. 어쩌면 당신 그럴 수 있어요?" 목사님이 "당신은 불행이 취미인가?" 점잖게 나무랍니다. 속이 상해서 교회에 가서 "하나님! 들으셨지요. 보셨지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라고 해서 결혼했는데 당신의 종 김진홍 때문에 저는 불행합니다."하고 눈물의 기도를 하는데 성령께서 이런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내가 언제 너 더러 김진홍 때문에 행복하라고 했느냐? 너는 나를 인해서 행복해라! 너는 나를 믿는 사람이지, 남편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제가 한 말은 취소합니다. 이제는 김진홍 때문에 불행하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행복하렵니다."하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남편을 보니까 그렇게 멋지게 보이더랍니다. 하늘의 평강이 샘물처럼 솟아오른 것입니다. /할/
▶그런데 감사는 넘치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골2:7절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가득 차면, 입만 열면 절로 감사하는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가득할 때, 절로 우리 몸에는 감사한 행동이 배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는 넘치게 해야 합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또 마지못해서 억지로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5. 기뻐하는 자에게 평안이 옵니다.

빌4: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며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샬롬의 축복을 주십니다. 먼저 '주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주 밖에서' 기뻐하는 삶은 잠시 적인 기쁨일 수밖에 없고, 세상의 쾌락을 따라 사는 자로서 결국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맙니다. 주 밖에 기쁨은 순간적인 기쁨은 될지 모르지만, 영원한 기쁨을 간직할 수는 없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속에 기뻐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시인이며 안산제일교회 담임목사이신 고훈씨는 '목자의 고백'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불평하고 있는 동안 난 아직 땅에 살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있는 동안 난 이미 하늘에 삽니다. 방황하고 있는 동안 난 아직 땅에 살고 있습니다. 경배하고 있는 동안 난 이미 하늘에 삽니다. 근심하고 있는 동안 난 아직 땅에 살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있는 동안 나 이미 하늘에 삽니다. 이리하여 하늘과 땅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있습니다.> /할/

 

6. 선한 일로 모든 사람으로 평안의 주인공으로 살아라!(롬12;17-18)

 

▶어느 초원에서 생긴 일입니다. 하루는 동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굶주린 하이에나가 사자의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는 그 사실을 알고서 노발대발하며 사자는 모든 동물을 한 자리로 불러 모아놓고 하이에나를 전멸하겠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을 듣고서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고, 동물의 왕인 사자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다른 동물도 예외 없이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일은 이번 일로 인해서 초원의 평화가 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코끼리가 조용히 사자를 찾아가서 조심스럽게 이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왕이시여, 물론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마땅히 응징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초원의 모든 동물들이 이번 일로 인해서 평화가 깨어지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번 일에 대한 노여움을 푸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사자가 화를 벌컥 내면서 "무엇이라고? 내 새끼를 잡아먹은 놈을 보고 그냥 참고만 있으라고? 그렇게 비겁해서야 내 어찌 동물의 왕이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코끼리는 다시 사자에게 "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자기 힘을 휘두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왕께서 크신 아픔을 당하셨지만 평소와 같이 침착하고 위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초원의 모든 동물들은 왕을 더욱 존경하고 잘 따르게 될 것입니다."
역시 사자는 동물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코끼리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자기의 분노를 참고 코끼리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초원의 평화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멀리 달아났던 하이에나는 그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을 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자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있는 동물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사자는 겁이 많은 동물이야. 나하고 싸우기가 싫으니까 나를 피하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나이 많은 코끼리가 하이에나를 찾아가서 코끼리의 큰 발로 하이에나를 사정없이 짓밟은 채 "이놈아! 똑바로 들어라. 사자가 너 같이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짐승을 정말 두려워해서 참고 있는 줄 아느냐? 사자는 모든 동물의 평화를 위해서 자기의 아픔을 억누르면서 참고 있는 거야!"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평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툼이 있고, 싸움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으로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일의 평화를 위해서 오늘은 싸우고, 다투고,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힘으로서는 이루어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롬12;17-18절에서 평화를 이루어내는 올바른 방법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말씀이 시34:14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할/

 

7. 평안을 얻으려면 우리가 몇 가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거듭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주의 평안을 얻으려면 주안에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육신적인 것은 죽이고,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
이렇게 예수 안에서 거듭나면 하늘의 평안이 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살기가 고달프지? 지겹고 힘들다고 탄식을 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안에 깊이 들어오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주님이 누구 신가를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믿/ 그래서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풀리게 되어있습니다. 저주도, 가난도, 질병도, 지옥도, 실패도, 예수 안에서 다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②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루이제 린저'라는 작가가 '왜 사느냐'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탄식할 겨를이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일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그가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의 석공이 대리석에 예수 상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이때 한 기자가 와서 "무엇 때문에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첫 번째 사람은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고, 두 번째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은 달랐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사람에게는 품삯이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그 일 때문에 힘이 생깁니다.
▶옛날의 한 영주가 자신의 영지를 거니는데 한 젊은이가 열심히 일합니다. 정원을 손질하는데 솜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성스럽게 꽃을 가꾸며, 또한 화분 하나 하나마다 아름다운 조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영주가 속으로 감탄하며 그에게 다가가 말하기를 "젊은이. 솜씨가 좋은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품삯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마치 자네 정원처럼 정성스럽게 가꾸고 아름답게 만드니 고맙네." 젊은이가 말합니다. "영주님! 저는 이 일이 정말 즐겁습니다." 영주는 그의 성실성에 감동이 되어 그를 데려다가 조각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가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입니다. 사람들은 그 영주를 기억하지 않지만 미켈란젤로는 기억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믿/

③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참 평안은 내가 주님 안에 완전히 매여 있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나의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면 주님에게 내가 꼼짝할 수 없을 만큼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느슨하면 안 됩니다. 풀어져도 안 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사랑의 쇠사슬로 매여 있어야 되고, 삽겹줄로 매여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주님의 종이 되고 내가 자원해서 스스로 매이는 것, 이것이 행복입니다."
옛말에 '한 사람에게 매이는 것이 가장 큰 자유인 것을 아는 사람만이 결혼 할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매이고, 한 여자에게 매이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하면 안 됩니다.
사실 한 사람에게 완전히 얽매이고 한 가정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요, 참 평안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매이고, 아내는 남편에게 매이고, 매일 뿐 아니라 미쳐야 합니다. 몸은 매였는데 마음은 따로 돌아가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매여야 합니다. 무한한 자유는 매이고 미칠 때 주어집니다. 몸만 매이는 것이 아니고 정신까지 함께 메이고 미쳐야 정말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 매이고, 주님을 위해서 미쳐야 합니다. 몸만 매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도, 정신도, 심지어 나의 운명까지도 그의 손에 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울처럼 '나는 죽어도 주의 것이요, 살아도 주의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④내세관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종말에 대해서 불확실하면 천하없어도 평안이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천국이 보입니까? 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늘 그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몸이 조금만 아파도 덜컥 겁이 나고, 가까웠던 친구 하나만 죽어도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게 됩니다.
천국의 확신만 있으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바울은 온통 마음속에 복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천국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디에 가서도 입만 열면 복음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리고 입만 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천국'에 대한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울은 오로지 복음뿐이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 따위 문제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못 벌었느냐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됩니다. 좋은 학교를 나왔느냐가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예수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⑤위를 보고 살아야 합니다.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왜 우리가 위를 보고 살아야 하는가? '귀한 것은 모두 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참되고, 신령하고, 값이 있는 것은 모두 패역한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저 높은 곳으로부터 오고, 위로부터 내려옵니다.
만나가 거기로부터 내려 왔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모두 거기로부터 왔습니다. 이다음 주님도 그곳으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재림). 그래서 '존슨 오트만'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시121편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 고 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저 높은 곳입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도움은 어디서 오느냐 하면 모두 저 위로부터 온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의 일을 다 집어치우고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기도나 하고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은 삶의 초점을 저 높은 곳에 두고 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귀하고, 신령한 것들은 모두 저 높은 곳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위에서 왔습니다. 또한 천국이 위에 있습니다. /할/
▶위를 보고 사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며 삽니다. 롬5: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위를 보고 사는 사람은 사람들과도 화목을 이루며 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화가 있을 때 우리 마음에 평안할 수 없습니다. 또 사실 하나님과 화평했다는 증거가 사람사이에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게 산다는 사람이 사람과 화평하지 못한다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마5:23절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로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화해하고 예물을 드리라."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합니다. 요16:22절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으니 그래서 순교자들이 감옥에서도, 불 속에서도, 죽으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엡2:16-17절 "십자가로 이들을 한 몫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전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⑥철저하게 회개하는 길이 평안의 길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불안이 찾아오고 염려가 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열매 먹고 나서 얼마나 두려워했습니까?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두려워서 피해서 숨었습니다.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덮었습니다. 더 멀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상실하게 합니다. 그리고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죄인은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간다고 했습니다.
▶수양대군이 형 문종대왕의 충신 6명을 죄 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조카 단종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살아갑니다. 사람을 죽이고 숨어살면 잡히지 않아도 매일 스스로 고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죄인들의 형벌입니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불교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고다 공원자리에 절을 지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다고 근본이 치유되지 않는데 편안해 지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그는 왕위에 오른 지 10년 만에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을 두렵게 만듭니다. 행2:38절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평안입니다. 마음의 평안, 영적인 평안, 하나님과의 평안, 주안에서의 평안, 이 평안은 세상에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왜 초청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믿/ 주님이 주시는 평안만이 근심도 두려움도 없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우리 모두 받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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