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수 20:1-9)
일제 밥솥이 좋다는 얘기를 들은 한 부잣집 아줌마가 곧바로 일본으로 가서 그 소문난 밥솥을 구해 다가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세상에, 일제 밥솥이라 그런지 진짜 밥이 맛있네, 역시 밥솥은 일제가 최고야! 따봉!" 밥풀까지 튀겨가며 아줌마는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댔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그렇게 좋다는 일제 밥솥이 고장 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벌컥 화를 내며 아줌마는 "내가 못살아 이래서 '한전'은 못 믿겠어!" 하더랍니다.
우리는 이번 야구에 아깝게 일본에게 일등자리는 내어주었지만, 야구 때문에 민족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애국하는 마음은 우리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할/
우리는 지금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사순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제목소개!▶
인생을 살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에이 다 잊어버리고 훌쩍 떠나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쉬다 오면 좋겠다." "어디 숨을 데라도 있으면 도망가 버리면 좋겠다."
인생 길에 지치고 힘들고 고난과 역경이 오면 누구에게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아져서 이런 충동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높은 스트레스 사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경제 연구소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아시아 1위라고 합니다. 그 외에 간암 사망률이 세계 1위, 교통 사고율이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나라입니다. 또 OECD 가입국 중에 우리 한국이 후진국성 질병인 결핵이 제 1위랍니다.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갖가지 어려움, 고통, 불안 등을 효과적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그 모든 것들을 처리하는 피난처를 갖고 계십니까?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피난처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도피성 이야기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고통과 슬픔 많은 이 세상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는 성림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정복과 기업(땅)의 분배를 기록한 책입니다. 특히 13장부터 19장까지는 12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한 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정복'과 '분배'의 큰일을 무사히 마친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기업의 땅에 '도피성을 선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피성 제도는 지금에야 비로소 지시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모세 때부터 지시된 것입니다. ▶민35:9-34절에서 도피성 제도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셨고, ▶신19:1-13절에서 모세는 다시 이 도피성 제도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도피성 제도에 관한 지시를 받기 전에 이미 이 제도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1. 도피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누가 지시했는가?(2)
도피성은 피난처입니다. 도피성과 피난처는 같은 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도피성은 히브리말로 '이르 미클라트'라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살인자, 죄인을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영적으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이 제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지정하셨습니다(2).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도피성입니다. 교회는 '모든 상처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 병든 사람,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 닥치고 한계를 느낄 때 가장 안전한 품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삼하22:2-3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할/
도피성의 제도는 구약 시대에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본래 도피성 제도는 무죄한 사람이 억울하게 피를 흘리지 않도록 보복(함부로 복수하지 못하도록)에 제한을 둔 것으로 더 이상의 불필요한 살인을 방지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민35:9-15).
그 당시 이스라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의 지배 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죽임을 당하면 그 가족은 모여서 복수를 위하여 '피의 복수자'로 지명하면 지명을 받은 사람은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따라가서 복수의 살인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어찌 보면 잔인한 방법 같지만, 그 율법이 주는 교훈은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길 것을 강조하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명은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보상 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은 생명의 가치가 우습게 되었습니다.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아주 쉽게 죽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생명을 빼앗는가 하면, 돈을 위해 사람의 장기를 사고 팔기도 합니다. 유산 때문에 형제간에 법정 다툼은 다반사요, 칼부림이 나기도 합니다. 어떤 못된 자식은 부모를 죽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자살도 명백한 큰 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 있다고 해서 내 생명이 내 것을 착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너무 고귀한 존재입니다. 어떤 이유로라도 사람이 제 멋대로 그 생명을 파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21:12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돈이 생명을 대신 할 수 없으며, 아무리 높은 지위도 죽은 다음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가 비록 실수로 사람을 죽인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생명을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이런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이 가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사형 제도를 없애는 국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는 밉지만 그러나 그들의 영혼과 생명은 귀중한 것이기에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2. 도피성의 목적은 무엇인가?(3).
민35:11-12절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3절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 자를 피할 곳이니라." '부지중 오살한 자'란 살해할 의사가 전혀 없이 실수로 잘못 살인한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자들만이 도피성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민35:16-23절에는 고의적인 살인과 우발적인 살인에 관하여 잘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는 것,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이나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는 것, 미워하는 것 때문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는 것,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죽이는 것 등은 고의적인 살인에 해당합니다.
▶왜 도피성이 있어야 하는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에는 상대가 나를 죽이면 반듯이 내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그 살인자를 죽여야 합니다. 이 풍속은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어 지금도 아랍 권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죽임을 당하면 반듯이 보복을 하여 계속 중동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면 가족 중 누군가가 죽인 자를 찾아서 복수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적인 가문의 명예입니다. 그들은 원수를 끝까지 찾아가서 그의 피를 보기까지는 더러워진 가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새로운 가나안 땅에서도 계속될 그들의 복수 극을 염려하여 도피성의 제도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살인 중에는 의도 없이, 악의 없이 사전에 계획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인의 복수 자는 전통 때문에 무조건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잘못된 풍속에서 비롯된 희생자를 살리기 위해 도피성이란 제도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살인한 자가 도피성으로 피신해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복수 자가 뒤쫓아오더라도 일단 이 성에 들어오면 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성안에는 레위 인들이 살고 있어서 살인자를 보호해 주고,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보장하여 줍니다.
재판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사전에 모의하고 살인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피성에서 쫓겨나고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수로 죄를 지었다면 그는 생명을 보호받고, 살아남게 됩니다. 만약 도피성에 사는 것이 싫어서 떠나면 복수 자가 죽여도 됩니다.
그렇다면 평생 이 성에서 살아야 하는가? 한 번 기회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 이후에는 그 도피성을 떠나도 됩니다.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죄 사함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예표입니다.
도피성은 피난처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들에게 도피성을 예비하신 하나님!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 복수심이 가득하여 또 다른 사람을 살인하지 못하도록 이런 제도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피해를 입힌 사람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 당한 사람이 또 다른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배려입니다.
3. 도피성은 어떤 곳에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정하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이스라엘 어디에서나 도망갈 수 있습니다. 몇 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신19장에는 도피성을 지을 때 쉽게 갈 수 있도록 도로를 닦아주라고 했습니다. 편하게 도망가서 숨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이 너무 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 얻는 길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을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피난처입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쉬우니 안 믿는 것입니다. 너무 구원의 길을 쉽게 만들어 놓으니 도리어 불 신앙 해 버립니다.
바울의 신학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일방적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완전한 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게 되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런 축복의 전당인 교회는 동서남북 사방 어디가나 있습니다. /할/
4. 도피성에 가는 길을 분명히 표시를 해 놓아야 합니다.
신19:3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삼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이 쉽게 도피성을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해 놓아야 합니다. 성경 밖의 다른 자료에 보면 이러한 도피자를 돕기 위하여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 도피자가 최단거리를 이용하도록 했으며, 모든 교차로에는 '피난처' 라는 팻말을 세워 놓아 도피자가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없도록 했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었고, 나아가서는 그 죄로 인하여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죄 성을 철저히 깨부수고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없이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공로를 쌓아도, 덕을 쌓아도 안 됩니다. 고행을 하며 수행을 쌓아도 불가능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한 성을 제시하시고 그 성에 들어가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나안에 여섯 개의 도피성을 세우신 하나님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우주 만물의 도피성으로 정하셔서 누구든지 주님 안에 거하면, 죄 사함을 받고 안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피난처로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5. 도피성의 문은 언제나 열어 놓았습니다.
당시의 성읍들은 도둑이나, 야만인, 또는 주민들을 헤치려는 외부의 침입자들로부터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을 꼭 닫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도피성은 언제나 열어 두어야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 나오는 자들을 영접하시기 위하여 주님의 품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요6: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6, 도피성은 이방인과 다른 거주자들에게도 개방되었습니다(9).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든 족속에게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롬10:11-12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할/
절대로 교회 안에서 차별이 없습니다. 인정차별도, 빈부귀천의 차별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달란트는 다 다르지만 절대 차별이 없습니다.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죄입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7.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 도피성은 요단 동편에 3개, 서편에 3개를 각각 정함으로써 손쉽게 피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살인범이 어느 곳에 있든지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도망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도피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약시대에는 장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도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장소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심 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그가 선지자임을 알아차리자마자 맨 먼저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즉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그 때 예수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 그러니까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대상입니다.
어디서 예배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리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도피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디에 도피성이 있는가를 살펴봐야 했지만 이제는 도피성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죄로 말미암아 마귀의 종 된 자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오면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도피성은
①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피성에 피했던 자가 언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6절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세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 지니라"
그러니까 도피성에 피했던 사람이 그 당시 대제사장에 죽어야만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엔 참으로 놀라운 구원의 진리가 숨겨져 있는데 여기 대제사장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히4:14절 "예수그리스도는 만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우리 인간들의 대제사장의 대제사장이 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어야 도피성에 피해있던 살인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도피성제도의 규정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이미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도피성제도는 예수 안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구약의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만이 보호받을 수 있는 죄에 대한 한계가 있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그곳에 피하기만 하면 예수님이 도피성이 되어 주시고 영원히 용서받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다 담당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그 어떤 죄든지 다 사함 받고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
③예수 그리스도와 도피성에는 한가지 차이가 나는 것이 있습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들만 가야 합니다. 고의적인 죄가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도피성입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도 다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도피성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해방 받은 사람입니다. 죄에서 해방 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노후에 기독교로 개종을 했는데,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평소 젊을 때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내 조국이 어두워지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을 때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안식이었다. 그리고 노후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믿/
8. 도피성 여섯 성읍의 이름이 뜻은 무엇인가?
①게데스: 이 성은 요단강 서쪽으로 갈릴리에 있는 최상 단에 있는 곳으로 그 이름의 뜻은 '거룩하다, 거룩한 곳'으로 '게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곳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입니다. ▶고전1:30절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성도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자입니다. 성도의 필수 조건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도 거룩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할/ 그러나 성도는 스스로 거룩해 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요1서1:7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들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이 처소가 죄 씻음 받고 의로워지는 자리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게데스는 거룩입니다. 거룩은 종교적인 용어입니다. 우리가 도피성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만이 거룩해 질 수 있습니다.
②세겜: 이 성은 요단강 서편 중간에 잇는 곳으로 '어깨, 힘, 능력'을 뜻하는 '세겜'은 정사(정부)를 어깨에 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9: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능력을 받아야 세상도 이기고, 자신도 절제하며, 죄악을 끊고 자를 수 있습니다.
정신병이 든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할 수 있거든 내 아들을 고쳐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늙고 병들고 외로운 사형수였던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③헤브론: 이 성은 요단강 서쪽 최남단에 있는 곳으로 '교제'를 뜻하는 '헤브론'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담이 있어 교제가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시매 우리가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고후5:18-19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과 나, 성도와 성도 사이에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행2: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쓰니라"
'교제하며' 무슨 뜻인가? 서로 이야기하며 친교 한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의미는 '짐을 서로 지는 것, 협력하는 것, 봉사, 헌금'의 뜻도 있습니다.
④베셀: 이 성은 요단강 동편 최남단에 있는 성으로 '안전, 요세'라는 뜻으로 '베셀'은 성도들이 피할 성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어디를 가든지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지진, 홍수, 우환, 질고, 사망>등 어느 구석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 온 세상이 홍수의 심판을 받았지만 오직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 8식구만이 구원받았습니다. 베셀은 방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91:2절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출애굽하는 그 밤, 고센 땅에 잇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설주에는 어린양의 피가 발라졌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집만 죽음의 신이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유월절,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사람은 지금도 유월의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주가 넘어가고, 사망이 넘어 갑니다. 실패도 넘어갑니다.
이 땅에는 참된 피난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피난처요, 피할 바위요, 요새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네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
⑤라못: 이 성은 요단강 동편 중앙에 있는 성으로 '높이 들린다, 높은 곳'을 뜻하는 '라못'은 성도들로 하여금 높은 하늘에 앉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엡2: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할/
⑥골란: 이 성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성으로 '기쁨, 행복'을 뜻하는 '골란'은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요15: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 주셨던 복음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시면 천국을 소유하였다는 선포입니다. 가까웠다는 말은 손에 쥐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소유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을 소유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천국 소유! 이것이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할/
9. 도피성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피난처이신 예수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시46:1절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요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평생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피난처에서 모든 위기와 절망을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꿈꾸며 일어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분, 언제나 열려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해 놓고, 그 길을 넓게 닦아 두고 밤낮으로 문 열어 두고 불을 켜 놓았을지라도 도피자가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와서 복수를 하기 전에 도피성으로 안전하게 피해야 그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예수님께서 문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생이 없습니다. 천국이 없는 것입니다. 홍해를 열어 놓았으면 그 길로 빨리 들어가야 애굽의 군대로부터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21:4절부터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호르산을 떠나 에돔의 동쪽 변방 길로 행하자 지름길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왜 먼 길을 돌아가느냐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불 뱀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심으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원망이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세에게 나와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 뱀들에게서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으로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불 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살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길은 하나님이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길에 들어가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그 분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 분 앞에서 우리들의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용서하시는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구원이 있습니다. 천하 만민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인줄로 믿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세주요, 영원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사55:1,3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아멘!/
①도피성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죄가 용서되듯이 예수님께 나아오면 누구든지 무슨 죄든지 사함을 받습니다.
엡1:7절을 보면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십자가 보배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롬8:1-2절을 보면 "결코 정죄함이 없이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얻습니다.
②도피성에 들어가면 죽을 인생이 생명을 구했듯이 예수님께 나아오면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 더 이상 죽음은 없습니다. 영생이 있을 뿐입니다. 육체의 죽음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를 보증합니다.
요5: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로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고, 요11:25-26절을 보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예수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죽음은 없습니다. 영생이 있을 뿐입니다. 육체의 죽음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신앙이 있는 성도라면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도피성에 들어가면 절대 안전합니다. 아무리 보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해치거나 건드리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안에서는 절대로 안전합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철저히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일5:18절에 보면 "세상 권세와 악한 마귀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18:2절을 보면 다윗도 온갖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자신의 반석이요, 요새요, 피할 바위"라고 노래했습니다.
④도피성에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절박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나오면 모든 고통을 해결해 주십니다.
때때로 세상에서 재앙으로 인한 고통, 질병, 시련 등이 우리에게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도와줄 수 없고, 해 주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면 분명히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46:1절에서 "연약한 인생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피난처요 큰 도움"이라고 했고, 시50:15절을 보면 "우리가 환란 중에 부르짖으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⑤도피성은 얼마든지 보호받지만 거기서 한발자국만 벗어나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떠나면 결코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요15:5-6절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 "주안에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지고 불에 던져 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이 부모 집에 있으면 다 책임져 줍니다. 그러나 가출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부모라도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품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⑥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마11:28절을 보면 죄 많은 사람도, 괴로운 사람도, 실패한 사람도, 문제를 가진 사람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의사가 병자에게나 필요한 것처럼, 주님도 죄인들에게나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⑦예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받아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주님을 닮은 '작은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13: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받아 주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서로 받아 주지를 않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이 되어 가는지 살벌합니다. 옆에서 죽든지 살든지 나 몰라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럴수록 차가운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 님들은 푸근하게 받아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도피성처럼 누구라도 다가와 접근하기 쉬운 사람, 언제라도 도움을 청하면 친절하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믿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이 직접 도피성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즉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이요, 주님께 인도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도피성을 가리키는 표지판 역할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 죄 사함과 영생, 보호해 주심과 문제 해결 등 모든 은총을 직접 누리게 될 것입니다.
'헬런 켈러'는 눈, 입, 귀가 장애자인 사람입니다. 소경, 벙어리. 귀머거리입니다. 이분이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소경인 제가 눈뜬 여러분에게 한 가지만 충고하겠습니다. 볼 수 있는 동안에 열심히 보세요! 들을 수 있는 동안에 많이 들으세요! 말할 수 있는 동안에 열심히 말하세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도 할 수 있는 동안에 열심히 전도하세요!>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죄가 관영한 세상, 이기심으로 가뜩한 세상, 도움 받을 데가 전혀 없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과연 우리 인생이 어디에 마음을 붙이고 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승리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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