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고 더 잘 되는 축복! (요3서 1:1-8)
노 권사님 한 분이 성경을 보시는데 이상한 것은 성경을 다 읽지 않고 사람 이름만 읽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이 이상해서 물기를 "권사님! 왜 사람 이름만 읽으세요?" "에이 목사님! 곧 하나님 앞에 갈 텐데 이 사람들이 다 천당에 있을 텐데 이름이나 외워 가야지요." 이 권사님은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넘쳐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혼자서 등산을 하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목사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용케 손을 뻗쳐 절벽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움켜쥐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목사는 절벽 위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 위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러자 위에서 목소리가 들리는데 "나의 종아! 염려 말라 내가 여기에 있노라!" "누구십니까?"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목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하나님, 살려 주시면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좋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하라. 그 나무를 놓아라." "저는 이걸 놓으면 떨어져 죽습니다." "아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 나무 가지를 놓아라!" 그러자 그 목사는 아무 말 없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소리를 지릅니다.
"하나님말고 위에 누구 다른 분 안 계세요?" ▶할머니 권사님은 구원에 확신이 있었지만, 목사는 완전히 신앙이 개털입니다. ◀제목소개!▶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종교가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종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삶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십계명과 같이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즉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 윤리적인 문제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 있고, 요3:16절과 같이 구원의 원리를, 마5-7장까지의 산상설교에서는 예수를 믿는 성도 한사람, 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윤리적인 표준을 가르쳐 주는 곳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어떻게 풍요롭게 살 수 있는가?> 하는 축복의 원리를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교회는 영적인 구원만 강조한 나머지 물질적인 축복의 원리를 등한시 할 때가 많습니다. 텍사스에 유명한 '헷셀 포드' 목사님은 <성경말씀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축복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같이 읽은 본문도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사랑의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쓴 편지인데, <가이오가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봐야 합니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기쁨, 환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에 보면 가이오라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나옵니다.
⑴롬16:23절과 고전1:14절에 나오는 가이오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해서 세례를 주었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감독이 된 고린도 교회에 가이오라는 사람입니다.
⑵행19:29절에 나오는 가이오는 바울의 동역자이면서 데살로니가와 에베소에서 고난을 함께 받았던 마게도냐의 가이오라는 사람입니다.
⑶행20:4절에 등장하는 가이오라는 사람은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하면서 그리스에서부터 마게도냐로 또는 터키의 드로아까지 함께 동행했던 더베의 가이오라는 사람입니다. ▶이 세 번째 더베의 가이오가 바로 이 요한 삼서를 수신했던 주인공 가이오라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후에 요한에 의해서 버가모지방에 첫 번째 감독으로 임명이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 가이오는 바울과 함께 복음 전도여행 중에 바울의 모든 전도 비용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의 종들을 잘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는 순회 전도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가이오는 교회를 방문하는 주의 종들을 혼자서 도맡아 대접을 했으며 그는 예수 안에서 '믿음 충만,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가이오에게 하나님의 종 요한이 복을 비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1. 가이오 장로는 어떤 사람인가?
①가이오는 주의 종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 사도가 가이오를 부를 때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가이오', '사랑하는 자여'(2,5,11) 거듭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참으로'란 말은 '진리 안에서'라는 뜻으로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진리로 행하는 사람, 진실한 사람, 참 사랑의 실천자'였습니다.
목회를 해 보면 가이오 같은 성도를 만나게 됩니다. 양 무리들 가운데 특별히 사랑스러운 가이오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차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행하는 사역이 아름답고 귀해서 목자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양 무리를 두고 하는 말합니다. 가이오는 사도 요한의 가슴에, 주의 종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양이었습니다. 우리 성림 목장에도 가이오와 같은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나올 줄 믿습니다. /할/
②성도들에게도 칭송을 받는 자입니다(3-4).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그 당시 성도들이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의 사람됨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⑴그는 진리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3절은 우리말 번역 성경에서는 접속사가 빠져있습니다. 성경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가이오는 내면적으로 신앙의 뿌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내적으로 자기 관리를 잘 한 성도입니다. 성도의 신앙의 깊이는 <진리 안에,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음을 깨달아질 때 그 신앙은 외적으로 발산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외적인 행함을 봅시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라고 한 것은 내면적으로 소유한 믿음이 외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언행 일치된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⑵주의 종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입니다(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목자의 즐거움은 자신의 양육을 받은 양무리가 이웃에게 사랑과 칭찬과 귀염을 받을 때 목자로서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습니다. /할/
③주의 종을 섬기고 대접하는 사람입니다(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여기 '나그네'는 그냥 단순한 표현이 아니고 초대 교회 당시에 베드로나 바울이나 바나바나 빌립과 같은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정처 없이 떠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또 다른 지역의 교회나 믿는 성도들의 가정에 가서 그 가정에서 묶고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들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교회가 조직화되어서 교회에서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규칙적이고 조직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의 사도들이 추천서를 써줍니다. 성경에 보면 "천거서를 가지고 다녔다(고후3:1)."고 나오는데 소위 말하는 추천서를 써 가지고 어느 지역에 가서 믿는 사람에게 추천서를 보이면 그 지역에 있는 교인들이 사도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온 복음 전도자들의 생활과 거처를 제공하고 그들을 다 뒷받침했습니다. 지금 가이오는 이런 중요한 역할을 잘 감당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④영혼이 건강한 사람입니다(2).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혁판 성경에서는 "내 영혼이 잘 됨같이'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 새 번역 성경을 보시면 "그대의 영혼이 복을 받은 것 같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또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내가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하기를 원한다."고 했고, 현대판 독일어 성경에서도 "당신의 내적인 생활이 건강한 것처럼 모든 일에 건강하기를 축복한다."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건강이 복입니다. 육체적으로도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야 합니다. /할/ 그런데 가이오를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진단한 가장 큰 이유는 가이오가 '진리 안에 서있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⑤참 성도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요즘 진짜보다 가짜들이 더 진짜 같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가짜 같은 진짜가 있고, 진짜 같은 가짜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아니 하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찰리 채플린'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그가 시골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날 때에 그곳에서는 마침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채플린은 인기가 있고 유명했습니다. 채플린은 그 현수막을 보고 흥미를 느끼며 그 대회에 참관을 했습니다.
모두들 외모부터 진짜 채플린처럼 분장을 하고 나와서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채플린은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그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평소에 하던 그대로 그곳에서도 했습니다.
그런데 심사결과는 재미있게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채플린은 3등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대회에서는 진짜 채플린보다 더 실감나게 연기를 한 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던 셈입니다. 때로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십니다. 가짜와 진짜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할/
▶시골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늘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자기의 믿음이 제일 좋은 것처럼 으스대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그의 친구가 넌지시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만약 자네에게 소가 열 마리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겠는가?" 그는 당연한 듯이 "물론이지! 소가 열 마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려야지. 그러나 내게는 소가 한 마리도 없다네." 친구는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말이 열 마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겠는가?" 그는 또 쉽게 "물론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한 마리뿐만 아니고 열 마리라도 다 드려야지. 그러나 내게는 말도 없는 걸 어떻게 하겠나."
친구는 마지막으로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돼지가 열 마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겠는가?" 그러자 그 농부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역정을 냈습니다.
"자네! 간밤에 우리 집 돼지가 새끼를 열 마리 낳은 것 어떻게 알았어?"
물론 '예화'입니다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돼지 가운데 한 마리를 하나님께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앞으로 소나 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큰 소리 치는 사람 치고 별 볼일 없습니다. 자기의 맡은 일에 충실하는 사람은 언제나 말이 없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요한이 가이오에게 축복한 것은 무엇인가?(2)
요한의 축복 속에 보면 3개의 동사가 나오는데 '잘되다'라는 동사 2개와 '강건하다'라는 동사 하나가 그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다'에서 '잘되다'라는 동사는 현재형 수동태이고, '범사가 잘되다'와 '강건하다'라는 동사는 미래형입니다.
그러니까 가이오의 영혼은 미래에 잘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 '잘되다'는 말은 '번영하다, 번창하다, 사업이 성공하다'라는 의미이며, 때로는 '좋은 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잘 된다'는 말은 '영혼이 좋은 길을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인생의 행로가 좋은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할/
①먼저 영혼이 잘 됨을 축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건강과 사업의 형통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창2: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생령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지으셨고, 영혼은 하나님의 영으로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것을 가리켜 본향이라고 합니다. 연어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회기 본능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고향에 가서 죽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이해가 갑니까?/ ▶인간은 영적으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육신이 아닙니다. 영혼입니다.
여기서 '영혼'이라는 말은 '헤 프쉬케'라는 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킵니다. 요10:10절 '하'반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 생명은 '프쉬케'로 번역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도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혼은 생명입니다. 영혼이 떠나가면 죽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더욱 풍성하게 얻어야 합니다. /할/
그런데 그 영혼이 잘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깊은 교재가 이루어질 때 영혼은 빛이 납니다. 본문의 '영혼이 잘된다'는 말은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영혼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 영혼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육신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잘 먹으면 건강하고 잘 자라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벧전2:2절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젖이 되어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다윗은 시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좋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했습니다.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⑴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이 지키는 것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세상일도 기본이 빠지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거룩한 주일을 온전히 성수 하십시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집니다. 예배에 나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헌물을 드립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믿음은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 암이라"고 했습니다.
⑵기도로 무장하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호흡입니다. 호흡이 끊기면 죽습니다. 믿음이 영혼의 영양가라고 하면 기도는 호흡입니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기도생활입니다. 여러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십시오.
▶다윗을 보세요! 다윗이 절망의 통로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시42:8절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할/ 기도는 절망과 불안에서 탈출하는 소망의 통로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수많은 절망도 이겨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는 무수한 시험과 절망과 불안을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절망 가운데도 찬양했습니다. 시42:5절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할/
불안에 처하고, 낙망할 일을 만났을 때 다윗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찬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만찬을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찬송하며 감람산으로 나아가셨습니다(마26:30).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하나님께 찬양했을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 결과 간수가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기도의 능력이, 이 찬양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⑶주의 이름을 부르고, 그 분을 높여라!
가깝다는 것은 친하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친한 사람끼리는 비판하거나 악평하지 않습니다. 변호해주고 칭찬해줍니다. 내가 하나님과 가깝다면 늘 그 이름을 부르고, 높이고, 자랑해야 합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기쁘고 감격해야 합니다.
찬85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⑷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라!
히7:19절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께 희망을 걸고, 기대를 걸고 사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함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늘 가까이 나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⑸예수 닮는 삶을 살아라!
출34:29-35절을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두 돌 판과 율법을 받은 후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고 있는 산 아래로 내려 왔을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나 백성들이 가까이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얼굴이 변하고 광채가 난 것입니다.
벧후1:4절 "정욕과 썩어질 것들을 피하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부부도 40여 년을 함께 살다보면 성품도, 취미도, 심지어 얼굴도 닮게 됩니다. 늘 바라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면 닮게 됩니다. 얼굴도 닮고, 성품도 닮고, 삶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을 닮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⑹영혼이 잘 되는 결정적인 행위는 예배입니다.
믿음 생활은 예배에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제일 먼저 출생예배를 드립니다. 백일 되면 백일 예배, 돌이 되면 돌 예배를 드립니다. 학교에 입학하면 입학 예배, 졸업하면 졸업예배, 개업하면 개업 예배를 드립니다.
취직하면 취직 감사예배, 회갑이면 회갑 예배, 진갑이면 진갑 예배, 고희가 되면 고희 예배, 돌아가시기 직전에 임종 예배, 죽으면 영결예배, 땅에 묻을 때 하관예배 그리고 그 사람의 일생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 지나면 추도 예배를 드립니다. 죽고 나서도 그 사람 때문에 예배가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배에서 시작하여 예배로 이어지다가 예배로 끝나는 것 같지만 천국에 가서도 계속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같이 평생이 아니라 영원히 드려야 하는 예배는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의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예배에 성공하는 것이 가장 큰 성공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배의 중요성을 세 가지로 말했는데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고 했고, 'A. W. 토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고 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통로입니다. /할/
⑺하나님 앞에 나아와 봉사하는 것이 복 받는 기름길 입니다.
여러분, 건강을 유지하려면 운동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관계가 건강으로 유지되려면 하나님께 나아와 봉사해야 합니다.
⑻여기서 중요한 것은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신8:14절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신8:17절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겸손함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통로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사랑하는 자여'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여!'란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찾아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도 묻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사랑의 확인을 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사랑을 확인하신 주님이 그에게 '내 양을 먹이고, 치라'는 목양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기만 하면 범사에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공식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성도의 삶은 잘되는 삶입니다.
⑼잘 되는 것과 못 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롬8: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우리에게 쓰여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교회에 나옵니까? 잘되기 위해서 나옵니다. 더 잘되기 위해서 나옵니다. 교회에는 오늘의 삶보다 더 귀한 미래의 삶에 소망을 가진 자가 나옵니다. 그냥 대충 대충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한 것을 알아 더 많은 은혜를 사모하고 나의 삶에 부족한 것을 많이 발견하고 더 귀한 축복을 받아 더 적극적으로 주를 위하여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믿/
저는 자원을 아끼는 편입니다. 그래서 전기도, 물도, 그래서 사모님이 설거지를 하면 물을 좀 아껴 쓰라고 간섭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그냥 세게 틀어 놓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설거지 할 때, 물을 많이 써야 기름때나, 세제 찌꺼기가 씻겨 나가지 조금씩 쓰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부터 물을 적게 쓰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많이 써서 깨끗하게 씻겨 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방울방울 은혜 받아서 겨우 신앙을 유지하는 것보다 은혜를 받을 바에는 수도꼭지 틀듯이 꽉 틀어 은혜를 받아야 심령이 새로워지고 영혼이 빛이 나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까?/
⑽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에 잘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시온의 대로같이 잘되어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잘되는 것 귀한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도 잘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가정생활도 잘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애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자포자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나의 삶에 복을 주시옵소서! 내 영혼이 잘 되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할/ 여러분들의 삶 속에 늘 ‘잘 되고 더 잘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우리가 잘 되는 비결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과 육체는 이 땅에 살 동안 잠시 누리다가 벗어버리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건강하게 사람들을 웃겼던 게그멘 김형곤씨도 그렇게 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벧전1:24-25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할/
우리 모두 영혼 관리를 잘 하십시다. 신앙관리를 잘 하십시다. 모든 것을 있을 때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재산도 있을 때, 건강도 있을 때, 사랑도, 우정도, 신앙도 있을 때 관리를 잘 해야지, 시험에 들어 내려가면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⑾그런데 영과 육은 항상 대립적입니다.
영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기를 좋아하는데 육은 세상을 향하여 가기를 좋아합니다. 육은 감각적이고 정욕 적이고 충동적입니다. 육은 음란의 정욕이 일어나면 음란을 행하고 술 취함의 정욕이 일어나면 술 취하고 방황하고 맙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롬7:23-25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육은 죽어야 영이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육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 같은 하나님의 종도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롬7:19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그러면서 내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따르려고 하나 내 육체는 죄를 지배하여 나를 사로잡아 온다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길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갈5: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믿음은 역사를 일으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헌신도 불사합니다. ▶성령의 인도 받는 성도는 어떤 고난도 소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소망은 인내 없이 이룰 수가 없습니다.
②본문은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 됨을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범사에 잘 된다고 하는 말은 고난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오고 실패가 옵니다. 그런데 그 고난과 실패 때문에 망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더 큰그릇을 만드시려고 고난과 실패를 허용하십니다. ▶요셉을 보면 너무나 잘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크게 쓰시려고 젊어서 큰 고난을 받게 하셨습니다. 형들의 배신과 종살이, 옥살이,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축복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범사에 잘 된다는 것은 어떤 실패도 고난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도 실패도 하나님 안에서 허용된 것이므로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믿/ 고난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실패가 오면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일이 잘되고 형통할 때만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믿습니다. 고난과 실패할 때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원망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함께 하셔서 피할 길을 내 주시고 감당할 믿음을 조건을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강퍅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먼저 버리고 배신해도 하나님은 묵묵히 참고 기다리십니다.
여러분, 범사에 형통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또 영육 간에 강건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영혼을 잘 관리하십시오,
어떤 목사님은 본문을 들어 <천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물통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맺어지는 것은 천통입니다. 기도가 올라가고, 찬양이 올라가고, 헌금이 올라가고, 봉사의 수고가 올라가는 것 다 천통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이루어진 사람들은 인통하게 됩니다. 인통은 '좋은 사람, 형통한 사람, 돕는 사람, 힘있는 사람, 지혜의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 축복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인통의 복 받아 좋은 사람만 만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인통하면 물통합니다. 물통은 물질의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본문을 <영권, 인권, 물권>이라고 설교하십니다. 영성의 거성 조용기목사님은 <축복의 3박자>라고 설교합니다. 다 귀한 말씀이고 다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믿/
③강건한 축복이 따라옵니다.
건강은 육신의 건강보다 먼저 영혼의 건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영혼은 우리의 속 사람입니다. 속 사람이 건강해지려면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은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엡3:16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할/
여기서 '강건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말로, '육신 적이고 신체적인 건강'을 가리키는 말로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일에 정상적인 사람, 건강한 시민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우리의 시간과 물질 모든 것을 건전하게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으며 '하나님의 고귀한 자녀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강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3. 이런 복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런데 성경은 복 받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복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본문의 가이오는 진리를 중시하며 진리 안에 살았다고 3절에 기록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고후9:8절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아닌 무능한 하나님을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수 없고 성도들의 행동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을 받아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믿/
성도는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교회 생활 잘하면 복을 받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예수 안에 나오면 복을 받습니다.
찬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예수 앞에 나오면 은총을 받는다.>고 했고, 찬93장은 <예수님은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할/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의 더 깊은 메시지의 의미가 무엇인가? 너희가 잘 되고 더 잘 되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내가 기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되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
여러분 본문의 포커스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본문을 선택했습니다. 성도는 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잘되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 안에서 살라는 것, 진리를 좇아가는 삶>입니다.
이 길이 더 잘되는 삶, 더 높은 삶, 더 거룩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크게 도덕적인 진리, 철학적인 진리, 종교적인 진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과학적인 진리, 지식적인 진리도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참된 것을 말합니다. 진리는 영원한 것, 변치 않는 것, 생명이 있는 것이고, 인간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진리를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진리를 추고했습니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진리를 찾고 탐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진리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았지만 진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내가 아침에 도를 찾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14: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당당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진리를 설명하신 분이 아니고 가르치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요8: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 자가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십니다. <죄에서 자유를, 사망에서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죄에서 자유를, 사망에서 자유>가 최고의 축복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람들은 죄 와는 무관한 줄 압니다. 자신이 의인인 양 착각하고 삽니다.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깨닫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살수가 있습니다.
▶영국의 '심프슨' 박사는 마취제를 발명함으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만약 큰 수술을 받을 때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합니까? '심프슨' 박사는 생애 동안에 또 많은 것을 발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생애 마지막 기자들이 "당신에게 가장 위대한 발견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나에게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발견은 내가 죄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심프슨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의 생애에 있어 가장 큰 발견"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이십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잘 되고, 더 잘되는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더 큰 소원은 <진리를 증거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두 손들고 소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길이 잘 되고 더 잘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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