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자! (수 24:14-18)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담임선생님이 졸업생들에게 "너희들의 장차 희망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찬란한 장래의 꿈을 말을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고, 정치가, 판검사, 배우, 의사 과학자 등 모두가 화려한 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아이가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진지하게 대답하기를 '나는 장차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소년이 어른처럼 대답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계시던 선생님들이 마음속 깊이 새기기를 '장차 이 아이가 무엇이 될 것인가?'하고 관심을 갖고, 주목을 했는데 그 아이가 후에 미국의 그 유명한 제20대 대통령이 된 '가필드'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판검사가 되고 장군이 되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먼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학자들도, 사업가들도, 각 정당의 대권주자들도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질 때 이 사회는 정의가 구현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얼마나 잘 다스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언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고, "자기를 다스리는 자가 큰 성을 빼앗은 자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보면 마음공부입니다. 요즈음 '리모델링'이라는 말이 유행되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고 헌 건물도 리모델링하면 새 건물이 됩니다. 집도 리모델링을 하면 훨씬 편리한 집이 됩니다.
리모델링할 때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더 위로! 더 밑으로! 더 옆으로!> 넓히게 됩니다. 그러면 더 커지고, 더 넓어지고, 더 쓸모 있어지고, 더 편리하여지고, 더 기분 좋아집니다.
그런데 마음의 리모델링도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리모델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6:11-13절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마음을 넓히는 리모델링을 하십시오! 마음을 넓게 리모델링하는 방법은 이제 꿈을 크게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실 때 꿈부터 주십니다. 그래서 그 꿈을 통하여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올 새해 큰 꿈을 가지시기를 소원합니다.
어느 부잣집 아들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많은 유산을 물려주면서 물었습니다. <너 이 돈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니?> <싼 땅을 엄청나게 사들이고 싶어요> 아버지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다시 물기를 <넓은 땅을 사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냐?> <넓은 땅에 나무를 가득히 심겠습니다.> <그래서?> <크게 기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점점 믿음직스러워지고 대견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무를 다 베어서 이빨 쑤시게를 만들겠습니다.>
아버지는 대 실망했답니다. 큰 꿈을 가지는 것 같더니 겨우 이빨쑤시게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넓은 마음을 가지라' 즉 '마음을 리모델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사람은 중간자라고 말했습니다. 천사처럼 될 수도 있고, 악마처럼 될 수도 있는 천사와 악마의 중간자입니다. 선과 악의 중간자입니다. 하늘과 땅의 중간자입니다.
▶마음을 넓히려면 바다같이 넓어질 수도 있고, 마음을 좁히려면 바늘구멍보다 더 작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어느 사람은 공중전화를 오래 한다고 시비를 하다가 살인까지 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좁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손 양원 목사님처럼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자기 아들로 삼아 평생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좁히라'는 말씀을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마음을 넓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사람들을 용서할 때 몇 번씩이나 해 주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옹졸하면 마음이 좁아지고 용서하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할/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주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새 해에 기쁨 충만! 성령 충만의 해로 표어를 정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서 승리하는 성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소개!▶
1. 본문의 배경을 먼저 생각해 보자!
수23-24장은 여호수아의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무리 장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23장을 한번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온지 벌써 스물 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지금 가나안의 모든 땅이 이스라엘의 지배아래 놓여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정권을 인계 받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수많은 전투에서 크게 이겨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킨 후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으며 나라를 안정시킨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 여호수아도 어느새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어 그의 인생을 결산해야 할 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습니다.
수23:1-2절을 같이 읽어보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했습니다. 세월이 25년이 흘러갔습니다. 이제 여호수아의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은 여호수아의 일종의 유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언은 글자 그대로 남기고 가는 말입니다. 마지막 남기고 간 유언은 진실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유언은 진실합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이 메시지는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해 오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함께 가나안 정벌에 참여했던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간절한 사람의 마음을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날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호수아의 충실한 동역 자요 격려 자요 후원자였던 갈렙이 있었을 것이며, 대제사장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전쟁터에서 피와 눈물과 땀을 함께 흘렸던 동지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들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23-24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 있어요, 잘 가세요'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 찾습니다.
수23:3절을 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또 23:5절을 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3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분'임을 강조했고, 5절에서는 '그 땅을 주시는 하나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지금도 싸워 주시는 분입니다. 또 우리들에게 좋은 땅을 예배해 놓고 계시는 분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여호수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향하여 강조합니다. 23:11절에서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강조했고, 오늘 본문 14절에서 "우상을 버리고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고 했고, 15절에서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마지막 가면서도 외쳐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1절과 2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마지막 고별 설교 한곳이 '세겜'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25절에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더라."
▶여호수아서를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 있어서 아주 의미심장한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 세 곳이 나옵니다. <길갈과 실로와 세겜>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의 영적인 의미를 바로 알아야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가를 더 깊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①길갈은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열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운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모맥을 거두는 시기로 우기 때라 요당 강물이 넘쳤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여호수아는 언약 궤를 맨 제사장을 앞세우고 요단강에 들어서니 강이 갈라져 길이 생겨 잘 무사히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나 죽음의 강처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강으로 인식된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요단강을 건넜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통과한 것이나 다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죽음의 강 요단을 건너서 주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장소입니다. 오늘 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고치는 곳입니다. 우리 교회 영원한 표어가 '가르치며 전파하며 고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성령의 바람으로 인격을 고칩니다. 습관도, 환경도, 질병도 성령이 밀어주시면 끝장이 납니다. /믿/
길갈의 또 다른 의미는 '거듭남'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필코 길갈을 통과해야 합니다. 여러분! 길갈을 통과하셨습니까?
②실로입니다.
수18:1절을 보면, 실로라는 장소는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들은 그곳에서 장막을 세웠습니다. 장막은 성막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희막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장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장소를 성별하여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셨습니다.
실로는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반듯이 실로를 찾아 나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실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 실로입니다.
③본문에서 나오는 세겜입니다.
세겜은 그리심산과 에벨산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입니다. 세겜이 어떤 곳인가 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때,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하나님! 여기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며 아브라함이 첫 예배를 드렸던 장소가 바로 이 세겜입니다.
또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돌아오다가 그의 처첩들이 이방 우상을 가지고 왔는데 야곱이 그 모든 우상을 땅 속에 묻고 다짐하기를 '하나님 제가 온 생명을 다 바쳐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한 곳이 바로 세겜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제 자신의 삶의 무대에 막을 내리면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에 초청해 놓고 그는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세겜에서의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의 초점은 한마디로 말하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겜은 하나님만 섬길 것을(아브라함도 야곱도) 다짐하고 헌신하는 곳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세겜인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잘 섬기십시오. 주님만 잘 섬기십시오, 섬김은 논리도 이론도 아닙니다. 섬김은 삶 그 자체이어야 합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실 섬김이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지닌 욕구가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어서 머리가 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려는 욕망입니다. 이러한 욕구가 인간의 본능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가정에서 거리에서 직장에서 삶의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란 것이 누가 크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누가 일등이고, 누가 반장 할 것인가? 이것 때문에 치맛바람이 일어납니다. 직장에서는 누가 빨리 높아질 것인가? 회사는 누가 랭킹 일 위냐 하는 논쟁이요 싸움입니다.
인간의 반만년 역사는 화살에서 핵무기까지 누가 크냐는 싸움입니다. 이 경쟁으로 발전도 했지만 또 전쟁의 비극도 가져옵니다.
이 욕망은 예수님 측근에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인류를 섬기는 최후에 길입니다. 이 길을 가시면서 주님은 "내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어 나를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끝내는 십자가형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3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며 가는 길입니다.
이때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와 말하기를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서는 그의 어머니 살로메가 말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막10:45절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는 교회도 잘 섬깁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는 이웃도 잘 섬깁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가까운 사람들을 잘 섬깁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잘 섬깁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은 섬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는 더욱 더 겸손해 져서 이웃을 잘 섬기게 됩니다.
2.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15).
①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는 신앙의 결심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절대 둘이 없는 유일한 하나님, 상천하지에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나 외에는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해야 그것이 하나님만 사랑한다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왜 하나님은 자기만 사랑하라고 합니까?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사랑해야만 사랑하는 자가 복되기 때문입니다. 절대사랑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를 향해서 나만 사랑해달라는 것이 독단입니까? 아닙니다. 신성한 사랑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너는 나만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독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참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하고 후회한 사랑은 아무도 없습니다.
②여호수아의 신앙의 결단입니다.
마치 갈멜 산상에서 단호한 어조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18:21)고 했던 엘리야처럼 결단을 촉구하는 '메세지'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냐 우상이냐를,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선택하여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순간의 선택을 바로 잘 함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선택을 순간적으로 잘못함으로 말미암아서 일생을 불행한 가운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택의 윤리학'에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 세 가지 선택을 잘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직업의 선택을 잘 해야 된다고 합니다. 둘째로는 배우자의 선택을 잘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교의 선택을 바로 잘 해야 된다고 합니다. 이 종교의 선택을 잘 하지 못하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⑴올바른 선택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체험했고, ▶광야 40년 동안 철저하게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체험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⑵선택을 우물쭈물해서는 안 됩니다.
선택은 빠른 결단이 요구됩니다. 미루어서는 안 되고 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마틴 루터'는 사탄의 최상의 전술 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차차 하지. 다음에 하지. 나중에 하지'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용기와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항상 우물쭈물하게 되고 우물쭈물하고 선택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은 항상 후회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할/
⑶일단 선택했다면 확실히 실천해야 합니다. 작심삼일은 절대 안됩니다.
3. 신앙생활은 섬김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들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왕상17:1절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단6:20절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롬12:7절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롬14:18절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롬15:25절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롬15:27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①섬김에는 높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듯 중심으로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섬기듯 사람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②섬김에는 길이가 있습니다. 언제나 섬기는 자세가 같아야 합니다. 집사 때 섬기는 자세로 있다가 권사 되어 섬김을 받으려하면 큰일입니다. 가난한 때는 잘 섬기는 생활을 하다가 부자 되었다고 섬김을 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이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슈바이처'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매우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섬기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섬김을 받으려하는 사람은 마음이 빈곤해지고 불평과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성 프란시스'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섬겼습니다. 어느 날 말을 타고 지나가던 중 보기에도 참혹한 문둥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마음에 움직임을 받아 말에서 내려 그 문둥이를 껴안았습니다. 그런데 그 품에 앉긴 얼굴을 보니 그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성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③섬김은 이론이 아닙니다. 섬김은 형식이 아닙니다. 섬김은 삶 그 자체입니다.
여기 '성실'은 '온전함', '순수함'을 의미하며, '진정'은 '견고함', '확실함'을 의미하는 말로 이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잡다한 생각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 향하는 순수한 마음과, 어떠한 유혹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마음가짐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④섬긴다는 말속에는 종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종은 주인만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의 신분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야말로 성도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⑤주님은 섬기는 자를 귀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요12:26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할/
이 세상의 지위를 누릴 때는 당당하나 그 지위를 잃고 빼앗기면 비참해집니다. 그것 때문에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의 지위는 누가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막10:43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는 이웃도, 교회도 잘 섬깁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겠노라고 결단합니다.
4. 왜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합니까?
①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인류 역사의 대주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삼상2:8절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며 찬양했습니다.
②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 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보호하십니다. /할/아멘!/
③거룩하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19).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밀 애'를 즐겨하십니다. 조금만 하나님의 관심 밖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회초리를 드십니다.
여러분, 징계 받는 것, 염려하지 마십시오. 한때는 코미디 안이었던 김희자권사는 '이런 징계 저런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 만나므로 감사했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사랑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질투하고 아내가 질투하면 (아하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④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하나님은 그 분이 우리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고백을 들어보십시다. 삼상2:6-7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할/
이런 하나님을 우리는 잘 섬겨야 합니다. 사장님을 잘 섬기면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부장도 되고 상무도 됩니다. 대통령을 잘 섬기면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요직에 두루두루 앉아 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을 잘 섬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수지 맞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5.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①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겨야 합니다(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 심히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두렵고 떨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존엄에 대하여 두려움과 무서움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내가 바로 서지 못함을 두려워하고 떨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그분에 대한 존경심으로 경건과 봉사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⑴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까?
▶수4:24절에 "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130:4절에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시115:11절에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되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할/
⑵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시145:19절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또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리라'고 다짐합니다. 그 섬기는 첫 번째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②성실과 진정으로 섬겨야 합니다(14).
공동번역에서는 일편단심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형식이나 위선이나 가식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마22:37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섬겨야 합니다. 일편단심으로 섬기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 섬기십시오.
③우상을 버리고 섬겨야 합니다(14, 16, 23)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계명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상을 그냥 두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을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시106:36절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우상은 꼭 어떤 형상에만 섬기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이 되고, 명예와 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④결단하며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십니다(16).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니" 여러분, 신앙생활은 결단이 귀합니다. 자를 것은 자르고 끊을 것은 끊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결심이 약한 사람은 쉽게 넘어집니다. 기도도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단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을 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몽땅 버리십시다.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더더욱 열심히 매달립시다
⑤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본문이요 의무입니다.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할/
6. 하나님을 바로 잘 섬기는 자는 어떤 복을 받습니까?
①천사의 보호를 받습니다. 시34:7절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②범사에 잘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전8:12절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③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히5:7절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④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신5:29절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⑤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시103:17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⑥기근 때도 살게됩니다. 시33:19절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⑦하나님의 기념 책에 기록됩니다. 말3:1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⑧치료의 광선을 받습니다. 말4:2절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잘 섬겨서 이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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