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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바르게 경외(경배)했는가? (시 29:1-2/시 128:1-6)

by 【고동엽】 2022. 2. 5.

여호와를 바르게 경외(경배)했는가? (시 29:1-2/시 128:1-6)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별세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똑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는 세계가 다르고 사는 맛이 다룹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하늘의 음성을 들으며, 보통 사람들이 맛보지 못하는 신령한 세계를 맛보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남들이 없다고 하는 하나님을 있다고 믿고 보이지 않은 천국을 내 집처럼 여기고 기다리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천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으며 지금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고 보고 믿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무덤으로 끝난다고 슬퍼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사는 목적이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다르고, 가는 코스가 다르고 우리의 마지막 종착점이 다룹니다.
▶사변 후에 이북에서 월남한 자매가 남대문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포목상을 해서 돈을 많이 모았고, 언니는 그런 대로 조그마한 가게를 하며 버는 대로 주님 사업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며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 언니가 건강을 잃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동생은 언니를 부둥켜안고 탄식의 말을 합니다.
"일사 후퇴 때 사선을 넘어 살아보려고 애쓴 언니가 예수 믿고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죽으니 예수 믿고 잘 산 것이 무엇이며, 예수 믿고 덕본 것이 뭐가 있느냐?"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때 언니는 조용하게 동생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동생! 울지 말고 가까이 와봐! 사람이 한번 났다가 죽는 것은 정한 것인데 반듯이 그 후에 심판이 있어! 내가 죽는다고 슬퍼하지 마라, 나는 천국으로 간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어" 이 말을 남기고 평화스럽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 때 동생은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날마다 싸우면서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여겨졌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키며 살다간 언니가 자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 때 그는 언니의 손을 잡고 "언니! 편안히 가세요,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그리고 나도 언니의 뒤를 따라갈게요!"하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죽을 때도 아무 부러운 것이 없이 <나는 천국으로 가니 기쁘다>는 고백을 할 수 있으므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믿/
▶어느 믿음이 좋은 집사님 댁에 세무서 직원이 찾아왔습니다. "당신의 재산을 파악하여 세금을 청구하러 왔습니다." "예 저는 참 부자입니다" "그래요, 당신의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예, 저는 아들이 있기에 부자입니다. 집은 큰집이 한 채 있습니다.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집인데 천국에 있습니다. 안방 거실에는 하늘의 보화인 성경책이 있고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믿음의 동반자인 아내가 있고요, 지금 나에게는 건강이 있고, 마음의 평화, 삶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 때를 따라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필요를 채워 주시는 나의 주님이 계신답니다."
그 때 세무서 직원은 "당신은 참 부자입니다. 그러나 세금 낼 것은 하나도 없군요!" 하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별세의 사람들입니다. 별세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며 섬기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할/
오늘 저는 2005년도를 결산하면서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했는가? 형식적인 믿음은 아니었는가? 만약 바르게 섬기지 못하고 바르게 경외하지 못했다면 한 해를 결산하고 새롭게 마음을 다짐하고 2006년도를 결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목소개!▶

 

1. 하나님을 경배(경외)하라!

 

시29:1-2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128: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기 '경배'는 '절하다. 무릎 끓다. 스스로 머리를 숙이다. 스스로 엎드리다. 스스로 예배하다'라는 의미이고, '경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긴다. 높이다. 믿는다.'는 뜻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존귀하시고 위엄 있으신 전능 자이기 때문에, 그 분 앞에서는 모두 두려워하는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그의 종임을 인정하게 될 때에 그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생사화복을 다 관장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분 앞에서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고 왕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자입니다.
'경외'는 '두렵고 무서워'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두려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존경하고 그래서 가까이 하고 싶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을 가진 분이셔서 두렵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분께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내 생명과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 분께 가까이 나가서 그 분을 가까이 모시고 싶은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높이는 최고의 비결은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예배요,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의 비결도 예배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최고의 표현도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최고로 받으십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취임을 한 후 첫 주일에 가족과 보좌관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TV와 신문 등 모든 매스컴은 대통령의 주일예배 드리는 모습을 세계뉴스로 내보냈습니다.
이것은 미국적인 하나의 신앙고백입니다. 단순히 개인이 예배를 드렸다는 차원이 아니라 미국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나라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나라라는 신앙고백을 온 세계만방에 보여준 일입니다.
대통령이 주일에 예배드리는 모습을 세계뉴스로 다루는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은 크리스챤 대통령이 취임을 하고 나면 첫 주일 예배드리는 것을 뉴스의 초점으로 삼고 그것을 온 세계 앞에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통치자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예배행위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할/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출마해서 선거유세를 하던 중에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웬만하면 표를 얻으려는 뜻에서 큰 교회에 찾아가 자기선전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 주일 아침에도 자기 고향 조지아 주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23년 동안 가르쳐온 주일학교 교사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매 주일마다 가르치던 학생20명을 앞에 놓고 평소와 같이 성경을 가르쳤는데 그 날 신문 기자들이 몰려들어 70명이 되었습니다. 카터는 조용히 웃으며, 그러나 진실하게 경고했습니다. "기자 여러분, 오늘은 여기에 오셨지만 다음주일에는 여러분이 소속한 교회에 열심히 출석해 주십시오." 바른 예배자의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최고로 가치를 돌릴 수 있는 것도 예배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를 하나님은 최고의 가치로 보십니다. 롬12: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요4:23-24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은 글(문자)과 말(언어)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도덕이나 윤리 규범을 지키는 능력, 즉 짐승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절대자에 대한 경외 심과 신앙심을 가진 것입니다.
인간만이 절을 찾고 사원을 찾고 교회를 찾습니다. 제 아무리 지능지수가 높은 원숭이라 하더라도 그들 세계에는 예배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모인 곳에는 제단이 있고, 예배가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경배의 대상이나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고 문제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자를 찾고 경외하고 경배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종교 행위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찾는 종교심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전3:11절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옛날 사람들은 하늘(천), 땅(지), 달(월), 별(성) 같은 천제나 바람, 비, 번개, 우뢰 같은 자연현상들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을 '자연숭배'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인가를 새겨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것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는 행위가 있습니다. 지금도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짜리 부적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이것을 '주물숭배'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짐승을 신격화해서 숭배하는 종교행위도 있습니다. 인도는 소를 숭배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렇게나 관속에 넣어 묻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소가 죽으면 화강암에다 잘 보관하여 묻는답니다. 이런 신앙을 '토템숭배'라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숭배행위는 결국 피조물을 절대화해서 숭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인 인간들은 창조주 하나님만을 숭배하고 예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인간들을 지으셨나요? 사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예배)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10계명의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이고, 제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독교를 같은 종교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2. 왜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까?

 

①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잠1:7절과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요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창조의 근본이시며, 본체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참다운 지혜자가 되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3:5절 이하에서 자기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면서 이 모든 것보다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세상의 학문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요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초등 학문으로서 하나님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고등학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악에서 떠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잠16:6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악의 세력이 들어옴으로 인하여 죄가 들어왔으며 죄로 인하여 사망이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하게 창조된 세계에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악의 세력이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그로 인하여 인간은 죄인으로서 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는 죄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망으로 몰고 가는 악의 세력에서 우리가 어떻게 헤어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날 수 가 있습니다. 시34:6-8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구원하였도다. 건지였도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③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기 때문입니다.
잠14:2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악에서 떠나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물가로 인도하므로 생명의 샘이 됩니다.
예수님은 요7:37절 이하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생수의 강은 우리가 받을 성령입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경외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넘침으로 생명의 샘으로 인도 받아 영혼의 갈증을 해결 받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④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전12:13절 이하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삶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기를 부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지니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다른 것을 따름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떨어져 나가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놓이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지혜자 솔로몬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수고와 부와 명예는 헛된 것이라고 하며 전도서를 통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⑤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사33:6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여호와를 경외함이 우리에게 있어서 왜 보배가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구원하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를 채워 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보배가 되며 보화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4:7절 이하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⑥여호와를 바르게 경외 할 때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34:9-10절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

 

3. 어떻게 경외할 것인가? 예배하는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시29:1-2)

 

시29:1절에서 시인은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모든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예배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①예배를 계속해서 드려라!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돌리고 돌릴지어다' '계속해서 드리라'는 말입니다. ▶인체의 리듬은 일할 때 일하고 쉬어야 할 때 쉬고, 먹어야 할 때 먹고, 잠자야 할 때, 자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간격은 조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리듬은 반복되어야 합니다.
정월 초하룻날 1연분의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습니다. 사흘 휴가 기간동안 1년 밀린 잠을 다 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년에 한번이나 한 달에 한번,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예배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의 시간입니다. 친한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만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그러니까 정말 친해지면 한집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는 사람은 되는 일이 없습니다. 되는 것 같지만 실속이 없고, 문제가 터지고 어려움이 옵니다.
"여호와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고 돌릴지어다" 이 표현은 예배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영광을 돌리고 돌릴지어다'를 우리말로 적용하면 '예배하고 또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한번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한을 정해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는 지속적입니다. 계속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같은 의식이지만 반복하는 것입니다.
반복이라는 것은 깊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릴수록 예배의 깊이가 묻어 나와야 합니다. 예배를 오래 드린 성도일수록 예배의 깊이를 알고 예배를 통하여 더 큰 은혜를 받는 자리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지상에서 만의 일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계속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일 자체입니다. 예배하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배는 영원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배하고 또 예배하는 지속성과 반복성이 그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8:26절 이하에 보면,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장관이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나 세례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국사에 바쁘고 교통 조건이 안 좋았던 때였지만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남의 나라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 에디오피아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고 후대 학자들은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살던 그 나라가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주말이면 모든 상가가 문을 닫고 주일이면 가족들이 정장을 하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 미국의 국력이나, 경제적 영향력이나 정치적 힘은 세계제일이었습니다.
그러나 60년 중반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세속문화가 거세게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미국 사람들은 주말이면 저마다 문을 닫고 산으로 바다로, 술집으로 파티 장으로 빠져갔습니다. 교회는 텅텅 비기 시작했고, 문은 닫거나 건물을 파는 교회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날개를 달고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위신이 추락했고, 경제가 흔들렸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포기하자 하나님은 저들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미국을 염려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포기하는 자들을 우리 하나님도 그들을 포기하십니다. 본래 미국의 정신은 청교도 정신이었습니다. 신앙의 박해를 받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미국 신대륙에 상륙하여 맨 먼저 교회를 짓고 첫 농사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절을 드렸습니다.
청교도의 정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돌리고 돌릴지어다!> 예배는 드리고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중단해서도 아니 됩니다.

②합당한 예배를 드려라!
2상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구약의 예배 방법은 제사입니다. 모든 제사는 정해진 법대로 드려야 합니다. 제물을 선택하는 법에서부터 제물을 잡아서 드리는 법, 제사장의 제사를 집정하는 법 등이 소상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4: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고, 바울은 롬12: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제단이라고 합니다. 제단은 제물을 드리는 곳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제물로 나온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예배입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복 받기를 원한다면 웃기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합당하게 드려야 합니다. 합당한 예배는?
⑴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 찬송, 헌금, 옷차림, 마음가짐 등 미리미리 준비하는 신앙이 복 받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준비 없는 예배를 받으시지 않습니다. 준비하는 신앙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자입니다.
⑵예배시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예배시간은 잘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사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 산정현 교회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주일 날 예배를 인도하시는 그 교회 수석 장로였던 조만식 선생님이 헐레벌떡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급한 일로 늦었던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큰 소리로 “장로님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복도에 서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장로님이 늦으면 교인들이 본받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 한마디에 조만식 장로님은 그 날 선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에 목사님을 찾아가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늦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조만식 선생은 주기철 목사님이 오산 학교에 다닐 때 교장이었고, 목사님은 학생이었습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가 주기철 목사님을 담임 목사로 모시기로 하고, 조만석 장로님을 청빙 대표로 보냈습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사님, 저희 교회에 부임해 주실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제자이지만 주의 종으로 예를 다 갖추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로님의 겸손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겸손은 은혜를 박고,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재직들은 모든 예배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권사님이 본을 보이시고, 여집사님이 본을 보이고, 집사님들이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본을 보고 따라갑니다. /믿/ 특히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은 잘 지켜야 합니다.

⑶바른 자세로 드려라! 마음이 바르면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태도도 바르게, 마음도 바르게, 찬송도, 기도도, 바르게 드려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머리를 숙이거나 엎드려서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조는 것, 마귀가 좋아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감격적인 만남입니다.
2하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기서 거룩한 옷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옷을 입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라! 구약 시대에 제사장이 제사 드리기 위해 입는 옷은 평상복이 아니었습니다. 최고급 천에 수를 놓고, 금 수술을 달아 만든 거룩하고 아름다운 옷입니다. 한마디로 금관 제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입는 옷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단정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예배드리러 갈 때는 꼭 정장을 합니다. 우리도 정장을 하고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십시다.
㉡행실의 옷입니다. 바르게, 정직하게, 깨끗하게, 선하게 살았는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리고 교재가 끊기게 되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개인도 가정도 사업장도 복을 주십니다.
▶시128편은 하나님께 바른 예배 관계가 있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복입니다.

 

4.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시128:1-6)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교리대로 사는 대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삶의 표준이 최고 지침이 되는 성경 말씀을 '캐논'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만든 '캐논' 카메라는 사람이 만든 카메라 가운데 가장 좋은 표준 카메라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캐논'입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법과 명령과 기준들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천주교는 교황의 말이 '캐논'이고 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도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표준이고 기준이고 지침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명령과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산다는 것은 성경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초보운전일 수록 차선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인생 길의 차선은 성경입니다. 성경 본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복인가?

①수고한대로 먹게 됩니다. 2절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여러분, 복 받는다는 것은 일 안하고 가만히 있는데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적게 하고 결과를 얻고자 한다든지, 일은 적게 하고 결과를 많이 얻고자 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일 안하고 결과를 얻고자 하는 사행심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도박을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화투판을 펼쳐놓고 화투합니다. 들판이고, 산이고, 복잡한 공항에서까지 판을 벌려놓고 화투를 치는 모습을 봅니다.
정부, 공공기관에서도 앞 다투어 복권을 발행합니다. 이제는 카지노까지 운영합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사회가 불건전하게 나가지 않도록 잘 가로막고 건전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책임인데, 오히려 정부나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복권을 만들고, 카지노를 만들고 있습니다.
온 사회가 도박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마다 운수대통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욕심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아닙니다. 일 안하고 얻겠다는 것은 탐욕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일하고 땀 흘리고 수고했을 때에 그 결과를 얻게 되고 누리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수고하면 수고한 만큼, 일하면 일한 대로 결과를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노동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잠10:4절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할/
▶프랑스 농민 화가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끝없는 들판에 황혼이 들녘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온종일 수고의 땀을 흘린 노부부가 집으로 돌아갈 무렵에, 멀리서 교회의 저녁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모든 일을 끝낸 노부부가 종소리를 들으며 아버지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수고를 다 한 후에, 그 수고에 대한 결실을 맺게 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그 모습!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가정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밀레는 아마도 이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이 그림 속에는 세 가지 신성함이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의 신성, 둘째는 가정의 신성, 셋째는 노동의 신성입니다. 부부가 함께 노동을 해야 됩니다. 자녀들도 노동을 해야 됩니다. 노동은 결코 천한 것이 아닙니다. 프랭클린은 '일하는 노동자는 혼자 먹는 신사보다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성실하게 일하여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수고는 다른 사람이 하고 먹는 것은 내가 잘 먹는 것은 불로소득입니다. 진정한 복은 수고한 만큼 그 결과를 내가 거두는 것입니다. 수고의 대가를 거두지 못할 때 사람들은 허탈과 좌절에 빠집니다.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하고 허탈과 좌절에 빠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는 시간도 없이 컵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사업에 열중했지만, 남은 것은 부채와 실패밖에 없다면 그 사업가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수고한 만큼 노력한 만큼 힘쓰고 애쓴 만큼 얻는 축복이 정상적인 축복입니다.
그런데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고의 대가를 얻지 못하고 빈배로 돌아와 허탈에 빠진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본문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 도에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수고한 데로 먹으리라" /할/

㉡가정에 평화를 허락하십니다. 3절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포도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포도가 탐스럽게 익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감람나무는 파란 싹이 돋아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포도나무는 기쁨을 상징한 것이고, 감람나무는 번영을 상징한 나무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를 행하는 자의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가정이 복을 받아서 번성하고 화목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에, 자녀들을 어린 감람나무, 올리브 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옛말에 아내를 여우에 비유하고, 자녀를 토끼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에 비유했습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많이 맺어서 아주 풍성한 모습과 같이 복된 가정의 아내들은 자녀들을 많이 출산해서 가정이 번성하고, 살림을 잘 해서 가정이 번성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에는 많은 자녀들이 상에 둘러앉아 건강하게 음식을 먹으며, 기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화목하고 아름다운 가정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뿐입니까? 6절 "네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장수해서 자녀, 손자들이 대를 이어가며 번성하고, 잘되는 것을 살아생전에 눈으로 본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나 손주들이 다 잘되는 것을 눈으로 본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수고하고 고생하다가 이제 살만하게 되니까 세상 떠나는 경우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살아서 자손들이 대를 이어 잘 되는 것을 보는 것은 큰복입니다. 이 복은 다른 말로 하면 장수에 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가정은 이렇게 번성하고 화목한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함으로 여러분의 가정이 복 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생도록 예루살렘의 복을 받습니다. 5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영적인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에서부터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며, 백성들은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받습니다. 그 복을 얻기 위해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먼 여행길을 순례하며 갔습니다. 시온에서, 성전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하여 순례를 한 것입니다.
▶성전에서 무엇을 합니까? 예배드리는 처소입니다. 성전에서 얻는 복은 예배드림으로 얻는 복입니다. 예루살렘은 오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영원한 하나님의 품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복을 받는 자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할/

 

5. 시112:1-3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시112:1-3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후손이 복을 받습니다. 2절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은 그 당대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까지 복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부요와 재물의 복을 받습니다. 3절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경제적으로도 풍요하고 여유 있는 유족한 생활을 약속하고 있는데 그 의가 영원하다고 합니다.
▶결산합시다! 2005년도에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지 못했다면, 2006년 새해에는 목숨걸고 예배드리는 축복의 성림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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