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세다 광야(빈들)의 기적! (요 6:1-14/막 6:32-44)
신앙이 좋은 한 집사님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딸을 데리고 교회에 왔습니다. 어린 아이는 목사님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아버지가 딸아이에게 묻습니다. "너 오늘 목사님 설교를 열심히 듣더구나! 그래 어떤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니?"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있어요! 교회에서 더하기를 보았어요!" 그 아이는 십자가를 더하기로 본 것입니다.
맞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더하기의 진리입니다. 적은 것이라도 내 손에 있는 것을 주께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더해 주시던가 곱해주시던지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십자가의 도가 잘못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때는 마이너스(-)가 되게도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끝나버리면 삶의 모든 조건이 산산조각으로 나누기(÷)가 되어버립니다.
오늘 우리 모두 십자가의 더하기 축복이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할/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바로 더하기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도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성경 4복음서에서 이 사건을 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소개!▶
1. 본문의 배경을 알아보자!
예수님의 생애에서 비통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러 이 땅에 왔던 당대의 의인 세례요한이 정의를 외치다가 살로메의 춤 값으로 헤롯왕의 칼날에 무참하게 목이 잘렸다는 소식입니다.
이 비보를 들은 예수님은 그 시대의 악함과 그 악한 시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은 제자들에게 특수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해 제자들 만을 데리고 한적한 곳, 벳세다 들판에 갔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식사할 겨를도 없어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피로도 풀 겸 한적한 곳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군중들은 주님의 설교에 배고픈 것조차 잊어버리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전념하면 배고픔을 모릅니다. 1742년 4월 헨델이 그 유명한 메시야를 작곡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영감을 놓치기 싫어 23일간이나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작곡에 열중했습니다. 대단한 열정 아닙니까?
23일 만에 작곡을 마친 헨델은 하인에게 밥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가져온 밥상을 개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는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습니다. 무엇이든지 전념하면 배고픔을 모릅니다.
그 날 벳세다 광야에는 장정만 5천이 넘는 군중이 들판에서 배고픔도 모르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주님께 말을 합니다. "이 곳은 들판이요, 해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주님은 빌립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에게 특별한 명령을 하신 것은 빌립의 고향이 바로 벳세다였기 때문입니다.
요6;7절을 보면 "한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나이다"라고 빌립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로 떼를 지어 앉게 하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 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라 하시니 그 많은 군중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모았더니 열 두 바구니에 가득하게 넘쳤습니다.
2. 기적의 장소가 '빈들'(광야)입니다(마14;13).
눅9;10절은 '벳세다 빈들'이라고 구체적인 지명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빈들'이라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입니다. '빈 들'은 삶에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지 않는 곳입니다. '빈 들'은 의지할 데가 없는 곳입니다. 동시에 '빈 들'은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이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곳입니다.
반면에 도시는 편리한 곳입니다. 모든 필요한 것들이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빈 들'이요, 광야입니다.
이 '빈 들'에 배고픈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곳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제자들은 걱정합니다. 이제 곧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제자들은 걱정했습니다. 물론 제자들에게는 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 먹일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서 이 사람들을 해산시켜서 각자가 식사를 해결하도록 하자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는 빈들(광야)이라는 말은 또 다른 영적인 의미는 '그 시대 역사적 암흑기'임을 증거 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때 당시 사회상은 진리와 정의의 빛은 사라지고, 악이 판을 치고 있던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날이 저물어 가는, 점점 어두워져 가는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양심이 어두워지니 보험금을 노리며 처자식을 죽이고 불을 질러 위장했다가 범죄가 들통이 났습니다.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합니다.
일찍이 '알버트 슈바이쳐'는 "현대 문명은 황혼기에 이르렀다"고 했고, '아놀드 토인비'는 "현대문명은 위기에 직면했다"고 했고, '오스왈드 스핑글러'는 "현대문명은 몰락 기에 접어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롬13;12-14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고, 베드로는 벧전4;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굶주린 빈들(광야)입니다. 그 당시 사회는 영육 간에 굶주린 기갈의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 인류들도 먹을 식량이 떨어져 가는 광야 같은 세상에 처해 있다고 봅니다. 지금이북도 형편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도 영혼의 양식의기갈입니다. 암8:11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3.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네 종류의 인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①목자 없는 양 떼들을 발견합니다.
막6;3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왜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보았습니까? 이것은 우리 인생 전부를 상징한 말로써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은 온순하지만 한번 목자의 품을 떠나면 자신 스스로는 길을 찾아 돌아올 수 없는 짐승입니다. 고로 양은 꼭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양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곳이 많이 있습니다. 마9;36절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존재로 말씀하셨고, 마10;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요10;12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정말 예수님을 따를 때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시23;1-2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할/
그런데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인생의 참 만족과 행복을 위해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수 없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소비하면서도 인생의 참 만족을 얻으려고 얼마나 애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생의 참 만족과 행복을 돈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에서, 어떤 사람은 권력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진정 참 만족과 위로를 받지 못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성자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 첫 페이지에서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는 다른 곳에서는 안식을 얻을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림동 대광교회 양춘식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얼마나 주색을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한번 술집에 들어가면 아예 문을 닫아 놓고 술집을 전세 얻어 여자들과 함께 술을 퍼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세월 속에서도 인생의 참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가정에서는 늘 불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경영하는 가구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모두가 타 버렸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땅 뿐이며 또 그 땅은 남의 땅이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어 인생의 방향을 모르고 흘러가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인생이 바뀌어져 갔습니다. 자신의 모든 오만을 버렸습니다. 놀랍게도 끊어야 할 것들을 끊고 신기할 정도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그의 사업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니까 사업이 놀랍게 번창해 갑니다.
지금 그의 재산은 수십 억이 넘었고, 매월 십일조 감사를 수백만을 한답니다. 전에 술집에 퍼부었던 버릇대로 지금은 하나님의 성업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데 가정은 화목 되어지고 마음의 기쁨과 감사가 그렇게 넘쳐 날 수가 없다고 신앙 잡지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10;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고, 요4:14절에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러분! 길 잃은 양들을 주님께 인도합시다. /할/
▶요6장에 빌립과 안드레가 나옵니다. 먼저 빌립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②빌립은 계산이 빠르고 사리를 잘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들판에서 떡을 먹은 남자가 5천이나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여자와 아이들과 노인들을 제외한 장정들만 계산한 수치입니다.
성경에서의 인구 파악은 남자 장정만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들판에는 적어도 2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근거는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들을 다 먹이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빌립은 즉시 계산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보고하기를 "먹을 것을 조금씩 나누어준다 해도 200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6;6절을 보면 빌립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주님이 그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빌립은 주님의 신앙 테스트 앞에 그만 사무적이고, 수학적인 보고를 드린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해 보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을 바치라고 시험해 보셨고, 동방의 의인 욥에게도 엄청난 고난을 주어서 시험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시험해 보십니까? 약1;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빌립은 머리가 좋아 계산해 보니 200데나리온의 돈이 있어야 먹일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당시 일꾼이 열심히 일하고 받는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200데나리온이면 일곱 달치 월급의 액수입니다. 빌립은 정확하게 문제를 파악했지만 주님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과학적인 수치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산적이고,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사람에게는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이루십니다. /아멘!/
▶오늘도 빌립과 같은 계산에 빠른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인생살이가 자신의 계산적으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생각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아직도 교만이 있는 한, 주님은 어떻게 할 것을 미리 아시고도 그대로 내버려두십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가 낳은 위대한 수학자요, 천문학자요, 저술가였습니다. 온 세상이 '천동설'을 믿고 있던 시대에,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경이적인 '지동설'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사람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깊이 경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부패했던 천주교회의 핍박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믿음은 변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약한 몸으로 일생을 마칠 무렵에 그는 자신을 과학자나 천문학자로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죄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무덤의 묘비에 아래와 같이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이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을 간구하지 않습니다. 또는 바울에게 내려주신 능력을 간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주님과 함께 달렸던 강도에게 베푸신 그 자비만을 구하나이다. 진정 그 자비를 구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내 자신이 하찮은 보리떡같이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주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는 자에게만이 기적을 일어납니다.
▶영국 황제 루이스가 어느 날 저녁 런던 근교 농촌 을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농민들의 삶이 어떤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어디선가 구성진 노래 소리가 들려오므로 왕은 노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초라한 농가에서 노인의 노래 소리였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노인은 행복한 얼굴로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노인에게 2절을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2절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루이스 황제는 내가 2절을 불러 보겠다고 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 사람 영국 황제 부러워하나, 영국황제 루이스는 널 부러워 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라고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황제가 부러워하는 노인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노인, 행복한 노인'이었습니다.
사람의 참 행복은 소유의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풍요롭고, 마음이 편안하고, 속 사람이 즐거울 때 행복한 것입니다. 이는 주님을 내 마음에 모셨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③믿음의 사람 안드레가 나옵니다.
그는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숫자의 개념에 약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도 아주 적극적인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어린 아이 한 명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안드레는 적극적인 믿음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부탁했던 행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의 역사는 가만히 앉아서 실망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 하심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믿/
여러분! 기도하고 찾으십시오. 기도하고 구상하고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은 기도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허락지 않으십니다. 안드레처럼 적극적으로 찾아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찾아 나설 때,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시고 조건과 여건과 환경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도 빌립처럼 계산적이고 타산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안드레처럼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면서 부딪쳐야 합니다. 전도도 부딪치십시오. 모든 문제는 그 문제 속에서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능력을 주셨습니다. 까치는 수 백 년이 지나도 집을 짓는 방법이 똑같습니다. 왜? 창조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주택문화는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안드레처럼 찾으면 길이 보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벳세다 들판에서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햇살을 받으며 굶주리고 지친 군중들은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요,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에 '세 가지 핑계'를 됩니다.
첫 번째 핑계는 빈들이라는 장소적 핑계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장소'를 항상 핑계합니다. 예수님도 그 곳이 빈들인 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왜? 믿는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빈들이 아니라면 그리고 시장 터라면 그들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도록 내어버려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불가능하다는 자보다는 '가능하다는 자'을 찾으시고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람들은 장소가 나쁘다는 핑계를 많이 합니다. 가게 터가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업장은 장소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핑계는 날이 저물었다는 시간적 핑계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세상일에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해가 저물었기 때문에 먹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면 항상 때를 핑계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늦은 때를 심각하게 보신 것이 아니라 늦은 시간까지 '주려 있는 무리들'을 심각하게 보시고 먹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나 중심적' 사고가 있고, 예수님의 마음에는 '너 중심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의 필요를 나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할/
또 사람들은 나이 핑계를 많이 됩니다. 40대 사람을 만나면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도~" 50대도, 60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이 일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나이입니다. 시간, 나이, 핑계되지 마십시다.
세 번째 핑계는 200데나리온이 부족하다는 돈 핑계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부족하다고 자본금 핑계를 가끔 합니다. 그러나 자본금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부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신앙 안에서 적은 자본으로 대 사업을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거대한 디즈니랜드는 작은 생쥐 그림 하나를 놓고 기도하다가 얻어진 축복이랍니다. ▶E 랜드의 박성수 장로님은 500만원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 안드레처럼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의 삶을 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할/
④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바친 어린아이입니다.
이 어린아이는 감사하는 마음과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자신의 점심을 굶으면서 희생과 헌신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헌신이 5천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실 때 꼭 인간들을 동참시키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온 이 어린아이가 없었다면 이 기적을 행하지 못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어린아이 없이도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시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시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우리 인간을 참여시켜 은혜를 누리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가장 놀라운 체험을 하고 복을 받은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자신의 도시락을 바친 어린아이였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많은 것에 감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삶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가 드린 것은 지극히 하찮은 보리떡이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를 어디에다가 쓰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손에서는 다섯 개로 끝나 버리지만 하나님의 손에서는 5톤의 기적이 일어나는 재료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한 동역자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당신의 놀라운 계획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없어지면 교회 일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디 맛 좀 봐라'는 식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누군가가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쓰시고 크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일할 수 있게 부르시고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아니라 특권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어린아이와 같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리는 자가 되어 열 두 바구니가 남아도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할/
4.기적이 언제 일어납니까? 기적이 일어나게 된 몇 가지 진리를 알아보자!
①하나님께서는 현재 있는 것을 통하여 기적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기적을 이루시고자 하실 때, 현재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고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마14:18절에 보면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게 가져 오라"고 하셨고, 미디안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양치는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들어 날 위해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이 지팡이를 사용하여 바로 왕의 교만을 꺾었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켰으며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치고,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가 가지고 있던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였습니다. 가나안을 향하는 광야 길에 온통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어 세상을 뒤흔들어 버리는 지팡이로 삼으신 것입니다.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묻습니다.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가루 한 움큼과 한 방울의 기름 뿐입니다" "그것으로 나를 위해 떡을 만들어 달라"고 할 때 순종했더니 3년 반 동안 밀가루 통과 기름병에 마르지 않는 축복의 기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 지식, 물질, 재능'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리면 오병이어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축복은 지금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욉니까? 히13: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할/
②하나님의 기적은 보잘것없는 것에서 일어납니다.
어린 소년, 보잘 것 없습니다. 그가 가지고 온 도시락,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그 도시락으로 어떻게 5천을 먹일 수 있습니까?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과 물고기는 당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보리떡은 지금 말로 표현하면 개떡이나 풀빵으로 비유되고 물고기 두 마리는 어부들이 버린 물고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고기의 원어는 '이크수스'라고 합니다. 갈리리 호수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게 되면 가지고 가는 고기를 '다가'라고 표현합니다. 정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품에 가치가 있는 고기를 '다가'라고 불렀고, 너무 작아서 상품의 가치가 없는 것, 즉 못 먹겠다고 버리는 고기를 '이크수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찌꺼기'라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간다고 하니까 도시락을 싸 주었을 것인데 싸 줄만한 양식이 없으니까 답답하여 갈릴리 해변 가를 거닐다가 어부들이 버린 작은 고기 '이크수스'를 주어 왔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주님 손에 넘기어 축복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너무 작아 보일 때가 있고, 초라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을 하고, 좌절을 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우리도 하나님께 붙잡히기만 하면 위대한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어린 소년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니까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기드온은 300명으로 미디안 군사 13만 5천을 물리쳤습니다. 너무 적다고, 보잘 것 없다고 과소평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것을 들어서 축사하시고 5천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겼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③하나님의 기적은 나눠줌으로 일어납니다.
본문은 무리들에게 나눠 줄 때 일어납니다. 기적은 나누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나누는 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자연의 원리도 나누어 줄 때 늘어납니다. 하나님의 법칙도 나누어 줄때 축복이 옵니다. 본문 속에 기적도 떡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손에서 받아 제자들이 나누어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쌓아두려고만 합니다. 그러다가 심령도 썩고 물질도 썩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줄 때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어린아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렸는데 실컷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를 더 받았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④하나님의 기적은 주님이 축복할 때 나타납니다.
사람이 복을 받고 싶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습니다. 주께서 오병이어를 드시고 하늘을 향하여 축사를 하시고 나누었을 때 축복이 임했습니다. 여러분! 주의 종의 축복기도를 과소평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전권대사로 세웠습니다. 오늘도 주의 종의 축복기도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기 '축사'는 '감사를 돌리다'는 의미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할/
⑤오늘도 내 인생 광야 같고 빈들 같은 '막다른 골목'에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기적은 막다른 골목에서 일어납니다. 인생 사면초가에 있을 때, 그리고 철두철미하게 망하고 실패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때 새 길이 보입니다. 새 문이 열립니다. 새 눈이 뜨입니다. 새 생각이 열립니다. 이 때 '믿음의 주요 온전케 인도하시는 예수를 바라봐야' 됩니다.
출15;26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4;2절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⑥기적의 통로는 뭐니뭐니해도 '순종'의 터널을 건너야 합니다.
기적은 막다른 골목에 처하기만 하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세상에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입니까. 그렇다고 그들 모두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또 순종이라는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삶에는 이 순종이라는 요소가 참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아람왕국의 국방장관 문둥병자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선물을 가득 싣고 갔더니 문도 열어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7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내 나라에도 요단강보다 더 깨끗한 강이 있는데, 내가 누군데, 내다보지도 않고, 그럴 수 있느냐 하고 불쾌해서 그냥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때 하인이 말합니다. "그 보다 더 힘든 일도 해야하는데 7번 씻기만 하라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쉬운 일을 왜 못합니까. 한번 해 보십시오" 그래서 가서 씻었더니 문둥병이 깨끗하게 고쳐졌다고 했습니다. 그 날의 기적은 순전히 순종의 결과입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어느 소경이 예수께 찾아와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흙에 침을 뱉어 이겨서 그 흙덩이를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 소경도 순간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흙에 침을 뱉어서 이기더니 그 흙덩이를 눈에다 바릅니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에게 실로암까지 가서 씻으라고 합니다. 남들은 다 그 자리에서 고쳐주던데 왜 앞도 보지 못하는 나에게 굳이 실로암까지 가서 씻으라고 하는가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소경은 갑니다. 가서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눈이 뜨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소경에게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겸손을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적을 일으키는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어린 아이의 순종이 귀합니다.
⑦모든 기적의 근원은 '오직 예수'입니다. /할/
모든 기적의 열쇠는 예수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예수님이 주체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는 모든 문제의 열쇠입니다. 예수는 모든 문제의 해결사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기적의 본질이십니다. 모든 문제는 예수님만 계시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나의 목자로, 나의 인도자로, 나의 영혼의 주인으로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안드레와 같이 시도하는 사람이 있어도, 아무리 어린아이와 같이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도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결코 축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사랑하는 자에게 또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하는 자에게 오늘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믿/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욕구는 6천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몇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⑴공기; 공기는 물 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풍부한 공기가 있어서 공기 의 중요성을 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공기를 5분만 안 마시면 사람은 죽습니다. 공기는 생명입니다.
⑵물; 사람의 몸은 물이 70%입니다. 어떻게 보면 물은 음식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물처럼 좋은 물도 없답니다.
⑶빵입니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우리 육신은 힘을 못씁니다. 그래서 정력에 좋다면 별 희한한 것도 먹습니다.
⑷옷;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주고, 몸을 가리어 줍니다.
⑸집; 가정의 보금자리입니다.
⑹교육; 아는 것이 힘입니다. 전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⑺직업; 사람은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일의 열매를 먹고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직업-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⑻재물이 있어야 합니다.
⑼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혼자 못삽니다. 더불어 살아야 행복합니다.
⑽건강; 모든 것들이 다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건강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런데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분이 없으면 지옥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모셔들이고 살아야 가장 큰 축복입니다. /믿/
본문에 왜 예수께서 이런 기적을 행하셨나요? 중요한 핵심입니다.
요6;14절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할/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 세상의 구주, 하나님이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은 바로 디베랴 바닷가 무리들에게 떡을 주었듯이 이 세상에 생명의 떡을 주시는 하늘 양식으로 죄로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시는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5년 9월 4일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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