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자! (엡 4:17-32)
벌써 6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6월 하면 우리는 6·25를 생각하게 됩니다. 6·25는 이제는 먼 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아픔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몇 가지만 생각해 보고 본문으로 들어갑시다!
①6·25는 피해가 컸습니다.
6·25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발발해서 1952년 7월 27일 밤 10시에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국방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만 3년 1개월 동안 우리 국군이 185.000면이 죽었고 유엔군이 38,000명 죽었습니다. 학도 의용군이 2,000명, 북한군이 290,000명, 중공군이 190,000명 죽어서 도합 705,000명이 이 전쟁으로 죽었습니다. 그뿐 아니고 민간인이 150만 명이나 죽었고 이 전쟁으로 과부가 30만 명, 고아가 20만 명이나 발생하였습니다.
②전쟁의 영향이 컸습니다.
6·25는 단순한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전쟁으로 인해서 이 작은 나라의 허리가 잘렸습니다. 이제 이 지구촌에 분단의 아픔은 우리 한반도밖에 없습니다. 이번 남북장관급 회담이 잘되어서 이산가족상봉을 합의했다고 하지만 그 얼마나 분단의 아픔으로 이산가족들이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렇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서 주어진 교훈도 참 많습니다. 이 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갖게 된 경험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엄청나게 쓰라린 고난을 통해서 평화를 배웠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 6·25라는 전대미문의 전쟁을 통해서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그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참 기구할 정도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전쟁통에 피난을 가는데 살기 위해서 등에 엎은 아이를 버리고 혼자 울면서 한강을 건너가기도 했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어머니가 아이를 강물에 버리고 강을 건너갔겠습니까?
그때 우리 민족이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고난을 당한 민족이 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압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인사가 '샬롬'입니다.
②고난을 통해서 나라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6·25를 겪는 동안 우리 민족이 얼마나 뜨거운 피눈물을 흘렸습니까? 인간에게는 3가지 액체가 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피는 용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헌혈을 마친 뒤에 느끼는 기분은 참 좋습니다. 헌혈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땀은 노력하는 사람만이 흘립니다. 사람이 땀을 흘릴 때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이 울어야 할 때 흘리는 눈물은 참 소중합니다. 멸망할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며 하염없이 흘리시던 주님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우리 민족이 6·25 사변을 겪는 동안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까? 부르짖기도 많이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이 깨달은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라의 소중함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이 점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건강한 나라가 됩니다.
▶음악가 쇼팽은 폴란드 사람인데 그가 20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갑니다.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디를 가든지 폴란드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라." 얼마나 좋은 아버지입니까? "몸조심해라, 공부 잘해라." 그런 통상적인 충고보다 얼마나 깊고 무게 있는 당부입니까? 어려서부터 그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국가관을 심어 주었습니다.
또 떠나는 쇼팽에게 선생님이 조그만 병에 폴란드의 흙을 담아 주면서 말씀합니다. "너는 어디를 가든지 폴란드를 잊지 말아라." 얼마나 좋은 스승입니까? 자라나는 어린 지성 속에 심어진 이 무게 있는 교훈이 어린 쇼팽의 평생을 좌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당부를 받은 쇼팽은 공부하는 동안 그 흙 병을 책상 위에 놓고 늘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38세의 나이로 요절을 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나의 조국 폴란드의 흙이 담긴 저 병을 내 무덤에 함께 묻어 달라." 얼마나 성숙한 정신의 유산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런 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진 자들이 국적을 포기하고 조국을 버리는 배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서글픕니까?
③전쟁을 통해서 강해졌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강해집니다. 고난은 확실히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북 출신들을 보고 흔히 강하다고 말합니다.
"고향이 어딥니까?" 물었을 때 "이북입니다." 하면 사람들은 일단 독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이북 출신들은 독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피난을 오느라고 있던 것 다 버리고 몸만 가지고 내려와서 살아가자니까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생각하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제 36년의 고난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6·25때 공산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6·25가 없었더라면 오늘 이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후진국으로 밀려나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또다시 돌아온 6월 25일을 맞이해서 이 나라를 오늘까지 이렇게 사랑하고 인도하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할/ ◀제목소개!▶
오늘 말씀은 새사람에 관한 말씀입니다. 신부는 예식 시간이 가까워 오면 하얀 드레스로 갈아입고, 신랑은 예복으로 갈아입습니다. 판사는 재판 시간이 다가오면 법복으로 갈아입습니다.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작업복을 갈아입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주님 앞에 서야할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에 죄로 얼룩진 세상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의와 진리의 거룩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7-20절에 바울은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바로 우리 교회와 나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삶의 교육장이요, 신앙의 훈련장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새롭게 변화되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나 방법이나 환경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내가 변화되어 새로워 질 때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22-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벗어버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헌옷도 벗어야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가 있습니다. 헌 옷을 벗는 것이 순서입니다. 헌 옷을 그대로 입고서 새 옷을 입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신앙에 있어서는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속에는 세상 사람인데 겉만 예수로 포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보아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속엣 것이 튀어 나와서 정체를 드러내고 맙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어느 때입니까?
'기분이 나쁜 때, 화가 났을 때, 일이 잘 안될 때, 공격을 당했을 때, 유혹을 받았을 때'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때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없을 때는 거룩하고 사랑을 말하고 성령의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이런 일을 당하기만 하면 속에 있는 옛사람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고 맙니다.
그러면 마귀는 좋아하면서 '네가 그리스도인이냐?'하면서 우리를 조롱하고 우리를 죄책으로 사로잡는 것입니다.
▶23절 말씀처럼 심령으로 새롭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심령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1. 옛 사람의 생활 상태가 어떠한가?
①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상태입니다(17).
여기 '허망하다'는 '텅 빈 것, 의미가 없는 것'을 뜻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그 허망하다는 것은 '방향이 없고 목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잘 살기 위한 수단, 잘 살기 위한 방법들이 참 많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목적과 목표는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말 가치가 없고 무의미한 것들을 향해서 달려나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 하늘 새 땅의 새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우리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향하여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코코넛 나무 밑에서 토끼 한 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쾅하고 벼락치는 소리가 들려서 자다가 깜짝 놀란 토끼는 난리가 터진 줄 알고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토끼가 허둥지둥 뛰는 것을 보고 숲 속에 있던 여우가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그 뒤에는 사슴이 그 모습을 보고 달리고, 멧돼지가 달리고 늑대도 달립니다. 모든 짐승들이 달리니까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도 따라서 달립니다. 결국 산중에 있던 모든 짐승들이 달립니다. 이유도 모르고 한 참 달리다가 이제 숨이 차고 기진맥진했을 때 누군가가 소리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서 뛰는가?" 그러자 원숭이가 "나도 몰라 늑대가 뛰어서" 늑대는 "멧돼지가 뒤는 것을 보고" 결국 토끼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그 산 속에서 무슨 날벼락이 일어났는데, 내 이 코도 한방 맞았어" 결국 토끼가 자고 있던 곳에 가보니 잘 익은 코코넛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의미 없이, 목적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풍자해서 만든 이야기입니다.
②"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18상)
'총명'이란 말은 '이해를 잘 해서 깨달아진 마음'입니다. 총명이 어두워졌으니 이해하는 것이 소경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서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데도 영접해 드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영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빛으로 나오면 그 어두운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이 나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③굳어진 마음입니다. "저희 마음이 굳어지므로 말미암아"(18하)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은 돌 같은 마음, 대리석과 같은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문에 더 가깝게 번역을 하자면 '마음이 마비되었다'입니다. 마음이, 양심이 마비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아파도 아픈 것을 모르고, 잘못하면서도 잘못하는 것을 모르는 상태, 그래서 완전히 가치관이 뒤바뀌어 버린 상태입니다. 마음이 너무나 굳어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상태, 이방인의 상태입니다.
④죽음과 심판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18하)
하나님은 생명입니다. 옛사람은 생명이신 하나님에서 떠나있습니다. 생명에서 떠나니까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더러움에 내어버리십니다(롬1:24). 더러움에 버리니까 더러운 자가 되어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포기하십니다. 영원히 버리십니다(롬1:26).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⑤무모한(희망이 없는) 삶입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19)
욕심이 생기면 무모한 일만 합니다. 더러운 것만 쫓아갑니다. 불필요한 것만 쫓아가고 죄악 된 것만 좋아하고 망할 짓만 골라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더러움에로, 부끄러운 욕심에로, 부끄러운 행동에로, 합당치 못한 행동에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떠났으니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아서 모든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불신자, 즉 하나님을 떠난 이방인의 삶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①배우는 삶입니다(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그리스도를 배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인품, 품성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지 못하고는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제1단계는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②듣는 삶입니다(21).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새사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는 삶입니다. 그에게서 듣는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십니다.
③가르침을 받는 삶입니다(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예수 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 역사 속에 나타나신 그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즉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교사도 되시고, 가르침의 내용도 되시고, 목적도 되시고, 또한 그 자신이 학교도 된다는 뜻입니다. 21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순종이 나오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전부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3. 새사람을 입어라!(24)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의 마음을 품는 삶입니다.
⑴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옳게 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기 욕심대로 살고, 물질 따라 살았으나, 하나님 앞에도 사람들 앞에도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⑵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 따라 사는 삶입니다.
⑶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은 구별된 생활을 가리킵니다. 죄와 구별되고, 세상과 구별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벧전1:15-16절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4.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가 지켜야할 진리는 무엇인가?(25-32)
①거짓말을 버리고 참말을 하라! ▶거짓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⑴거짓에는 확신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자꾸만 거짓에게 속아넘어가느냐 하면 거짓에는 사람을 감쪽같이 속일 만한 확신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3:1절에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렇게 묻고는 4절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확신을 줍니다.
여기 나오는 '결코'라는 부사는 "결단코"라는 확신의 의지를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지만 아니야, 먹어도 결단코 죽지 않아, 그러니 마음놓고 따먹어." 뱀이 이렇게 자신 있게 믿음을 줍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 선악과를 쳐다보니까 지금까지 두렵게만 보이던 열매가 갑자기 따먹어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용기도 생겼고 배짱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겁도 없이 열매를 따먹은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이 지닌 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는 것입니다.
⑵거짓이 더 진짜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거짓을 보십시오. 거짓은 진짜보다도 더 진짜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는 것입니다. 조화를 보십시오. 어지간히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실감나게 만들어 내는지 모릅니다. 거기에 향기만 뿜으면 나비나 벌들도 속고 날아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민족은 모두 다 가짜에 대해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물건을 살 때 믿고 살수가 없습니다. 시장 물건, 백화점 물건, 이웃집에서 파는 물건, 유명 회사 제품 할 것 없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이 물건이 최신형입니까?" 하고 묻고 산다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 물건이 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물건입니까?" 미국 사람들은 "이 물건이 실용적입니까?" 그런데 한국 사람은 물건을 살 때 예외 없이 묻는 말이 있는데 "이거 진짜입니까?" 묻으면 어떤 장사도 예외 없이 "이 물건은 진짜입니다" 그런데 그 진짜라고 하는 그 물건들은 틀림없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⑶거짓에는 반드시 과장된 현혹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자꾸만 거짓인데도 불구하고 속아넘어가느냐 하면 거짓에는 과장된 현혹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TV에 나오는 약 광고를 보십시오. 그 광고를 보면 세상에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그 약만 먹으면 병만 고쳐지는 것이 아니고 천년을 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과장된 선전에 넘어가서 믿음을 가지고 약을 사다가 먹습니다. 그래서 사다가 먹으면 만병통치약이 됩니까? 그저 그렇고 그렇습니다.
▶거짓말은 습관 중에서도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 나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방인의 특성이기 때문에 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거짓말하기를 특별히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아덴에서는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시민권을 박탈했고, 애굽에서는 코를 베고, 귀를 잘라 내는 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회의 문제가 거짓말을 너무나 많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②분을 내어도 죄는 짓지 말라!
사람은 세상을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고,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혜자 솔로몬은 그의 잠22:24절에서 "노를 품는 사람이나 울분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들 가운데는 특별히 불평을 많이 하는 친구가 없습니까? 또 울분이 많고 한이 많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지혜 자는 그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불만은 반드시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친구라는 존재가 얼마나 영향을 많이 끼치는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건전하던 아이들도 불만이 많은 아이들과 며칠만 어울리게 되면 며칠 가지 않아서 그대로 전염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잘못된 교제는 마침내는 영혼까지도 파멸로 이끌어 내고 맙니다.
사고를 치는 아이들을 보면 모두 불만이 가득 차 있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사고를 저지르고 다닙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고 그것이 마침내 행동으로 옮겨져서 사고를 저지른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마음에 만족함보다는 불만이 많고, 울분을 많이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모두 가슴속에 아쉬움과 부족함과 갈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을 채우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을 해하게 되고,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마침내는 사람들의 생명에까지도 손을 대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요즘 무서운 사건들이 터지고 있습니까?
유달리 불평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매사를 불평스럽게 생각합니다. 한마디를 해도 그 말속에서 소망스런 것이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의식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병든 의식은 가까이하면 옮습니다. 전염됩니다. 그래서 노를 품는 자나 불만이 가득한 자와는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분을 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실수하기 가장 쉬울 때입니다. 혈압이 있는 분은 분을 내면 결정적으로 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분을 내다가 혈압이 올라서 죽는 이도 있습니다.
사람이 분을 내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말을 막 하게 되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을 낼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더디 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될 수 있는 데로 분을 삭이라는 말입니다. ▶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⑴사사로운 분입니다. 자기 감정 때문에 내는 분을 말합니다. 이런 분은 내지 않을수록 좋고, 내되 더디 내는 것이 좋으며, 냈다 해도 오래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분을 오래 품으면 마귀가 틈을 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틈타면 모든 것이 어려워집니다.
⑵의분도 있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분노입니다. 이것은 죄와 불의를 목격하게 될 때 일어나게 되는 분노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시니 그곳에 장사꾼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예수님은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상을 뒤집어엎고 모두 내쫓았습니다. 이것은 혈기가 아니고 의분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이 하는 짓을 보고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가 간절히 기도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모두 태워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의분입니다. 이준 열사가 헤이그 만국회의에 가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연설을 하다가 의분이 일어나서 그만 자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열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 26절에서 말하는 분은 이 같은 의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분을 말합니다.
26절에서 "분을 내어도"라고 한 말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뒷말이 중요합니다. "분을 낼 수는 있으나 죄는 짓지 말라."
가인이 동생에게 분을 품었습니다. 여기 까지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분을 오래 품었고 풀지를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침내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닭이 알을 오래 품고 있다가 병아리를 부화하듯이, 사람이 마음에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살인 사건을 보면 모두 분을 오래 품은 결과 발생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을 내지 말라고 했고, 부득이 내게 되더라도 오래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③도적질하지 말라!
예로부터 내려오는 유대인의 전승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상인이 물건을 구입하기 위하여 금화 500개를 가지고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장소 근처에 있을 때 돈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여 염려가 되어 아무도 보지 않는 한적한 곳에 땅을 파고 묻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담벼락 사이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인이 가자마자 땅을 파고 그 금화를 훔쳐 갔습니다. 며칠 후 상인은 자신이 사들인 상품의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묻어 둔 장소에 와 보니 돈은 간데온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참 고민하며 절망에 빠졌는데, 고민하던 상인이 그 주위를 돌아보니 담벼락 사이로 구멍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마주 보이는 집주인이 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상인은 다음날 그 집주인에게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이 고장에서 가장 덕망 있고 신용이 있으며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기에 찾아왔습니다.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저는 장사를 하기 위해 금화가 든 두 개의 가방을 가져왔는데 하나는 금화 500개가 들어 있고, 또 하나는 900개가 들어 있는데, 이곳이 처음인지라 어떻게 할지를 몰라 우선 500개가든 가방을 며칠 전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900개가 든 가방이 더 문제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집주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그것을 누구에게 맡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여기에서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만약 맡겨 둔다면 떼일 염려가 있으니 먼저 당신이 묻어 두었다는 곳에 가서 함께 묻어 두시오 그러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도둑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금화 500개가 들어 있는 가방이 없어진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내가 금화 500개들은 가방을 갖다 놓으면 금화 900개가 든 가방도 함께 훔칠 수가 있을 거야 만약 가방이 없어진 것을 알면 묻어 두려고 하지 않을 거야"
상인은 도둑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조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밤에 나만이 알고 있는 곳에 가서 묻어 두겠습니다. 상인이 집을 나서자 마자 도둑은 급히 가서 금화 가방을 원래 구덩이에 묻어 두었다. 가까운 곳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상인은 얼른 가방을 가지고 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도적질은 남의 재산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산은 꼭 물질만이 아닙니다. 남의 인격의 손상, 명예의 손상, 신용 추락 등은 모두 상대방의 재산을 해치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모두 감옥에 갑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 보면 도적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도적놈이라고 해서 다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절도와 강도는 교도소 밖에 더 많이 있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아 갑니다. 누가 도적놈입니까? 들킨 사람이 도적놈입니다. 진짜 도적놈들은 들키지도 않고 잘도 해 먹습니다.
성경을 보면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사상이 셋이 있는데, ⑴경천 사상: 하나님을 경외하라! ⑵경장 사상: 웃어른을 존경하고 높이라! ⑶부약 사상: 약한 사람을 보호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번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22:22)",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신다(신10:18)" "나는 고아의 아버지며 과부의 하나님이라(시68:5)",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가 있으리라(사10:2)", 또 본문 22절을 보면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부약 사상입니다. 이를테면 약한 자를 보호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큰 허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 부약 사상이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가진 사람은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가지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습니다. 조금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것까지도 뺏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과부의 것도 빼앗으려고 하고, 고아의 것도 모두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은 먹을 것조차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비극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면 원망이 생기고, 불화가 생기고, 불의가 발생되고, 갈등이 유발됩니다. 사회가 이렇게 되면 그 사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잠22:21절 "약자를 보호하라" 고 했고, 22절을 보면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 재판은 흔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문에서 공개 재판을 했습니다. 그것은 공정성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아주 공정하게 재판을 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여기서 또 강조하고 있는 것은 힘없는 자를 혹시라도 불공정 재판으로 억울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진국이 무엇입니까? 선진국의 기준이 잘사는 것만은 아닙니다. GNP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지금GNP가 만 불을 넘어섰다고 해서 이제는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야단이지만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GNP가 높다고 반드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은 인권이 존중되고 약자가 보호를 받고, 생명이 존중되고, 자유가 보장되고, 장애자들에게 관심을 두고, 노인들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사회, 이를테면 인간이 그 가치를 존중받고 사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선진국입니다.
여러분, 많이 배운 사람이 반드시 인격자입니까?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잘한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좋은 신앙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잘산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회가 선진국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서 특별히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약한 자를 약하다고 압제하지 말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약한 자가 보호받는 사회, 그 사회가 바로 선진국이고, 약한 자를 보호하는 사람이 바른 신앙 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도적은 어디를 가나 다 있습니다. 이제는 도적놈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신자가 아닙니다.
지금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서울에서는 소매치기 절도 단이 조직이 되어서 주일 날마다 교회로 파견된다고 하는데 큰 교회는 30명 정도까지 파견을 한다고 합니다. 소매치기들이 교회에 들어와서는 기도하는 동안에 가방을 뒤지고 아니면 송두리째 들고 나가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가방을 꼭 붙잡고 "주여 믿습니다. "하고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소매치기로 유명한 남자와 절도로 유명한 여자가 결혼을 했습니다. 챔피언끼리 결혼을 한 셈입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병원에서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나오는데 글세 주먹을 꼭 쥐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호원이 어린아이의 손가락을 펴보니까 금반지가 쥐어져 있더라고 합니다. 벌써 나오면서 간호원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한 건 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어떤 도적이 여자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서 물건을 다 훔쳐 가지고 나와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팔리지 않은 책이 한 권 있었는데 그것이 성경책입니다. 도적이 집에 와서 심심해서 무심코 펼치니까 마침 본문22절 말씀이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여 선을 행하라, 그리고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그 순간 이 사람은 마음에 대못 같은 것이 콱 찔러 오는데 그때 그가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말씀대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생활을 청산하고 어느 농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해서 기반을 닦은 다음에 결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남편의 옷을 빨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보니까 주머니 속에 조그만 성경책 한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해서 펼쳐 보니까 자기가 사인한 옛날 잃어버린 그 성경책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이야기인지 아시겠지요? 이 사람이 바로 그 언젠가 자기 방에 들어 와서는 닥치는 대로 모두 물건을 훔쳐 갔던 그 도적놈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변화입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옷을 입어 새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이렇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스펄전은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다른 데 사용한 사람은 십일조 도적이고, 주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날 다른 일 한 사람은 주일 도적이고, 설교 안 듣고 딴 짓한 사람은 설교 도적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자는 하나님의 영광도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④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성령도 근심을 한다고 했습니다. 왜? 성령은 인격적인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성령 님을 모셔들이고 환영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섭섭하게 해서도 안되고, 슬프게 해서도 안됩니다.
성령이 언제 근심을 하느냐 하면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 근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을 낼 때, 도적질을 할 때, 남의 말을 악하게 할 때, 성령은 근심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특히 우리는 말로써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발달되는 곳이 입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말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습입니다. 옛 사람의 변화되지 못한 습관입니다.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환상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은 엉망이었습니다. 추하고 남루하고 그 중에서도 제일 입이 더러웠습니다. 그래서 "화로다 나여, 나는 이제 망하였도다, 입술이 부정한 내가 하나님을 보았도다."하고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불에 달구어진 쇠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의 더러운 입술을 지져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사야는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근심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인사를 할 때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걱정을 해준다는 말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성령을 근심하게 말라는 말은 우리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 때 성령이 근심하시고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롬8:26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 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이 무슨 탄식을 하십니까? 성도가 바로 살지 못할 때 탄식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주일 성수하지 않을 때, 믿음으로 서지 못할 때 성령 님은 탄식하십니다. 이 탄식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을 근심되게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천국 백성으로 인 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인 침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유명한 흑인가수 '놀란드 헤이즈'는 백인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검둥이한테는 안 듣겠다!"는 백인들의 야유를 받으며, 그도 같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순간! "나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모욕을 당하는데 너는 나를 위해 그것도 못 참느냐?"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 한 10분 정도를 가만히 침묵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잠시 후 모든 장내가 조용해 졌습니다. '놀란드 헤이즈'는 마음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찬양을 드리니 모든 사람들이 이 감격의 찬양을 듣고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1833년 스웨덴에 '노벨'이 태어났습니다. '노벨'은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33살 때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게 되었고, 이것으로 그는 일약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재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30년 후에 어느 동명이인이 죽게 되었는데, 그가 노벨인 줄 알고 신문에서는 크게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발명왕 노벨, 돈만 아는 노벨.., 파괴자 죽다...죽음의 사업가..." 등등의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노벨은 이 기사를 읽고 가슴이 아팠고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성령님이 깨달음을 주셔서 자기의 전 재산을 내어놓고 인류의 평화에 공헌하는 사람에게 상급을 주도록 해서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노벨상이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마땅히 옛사람은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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