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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창 35:1-15)

by 【고동엽】 2022. 2. 4.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창 35:1-15)

 

로마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때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황제의 정예 부대 안에도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겼다는 보고가 네로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네로는 부대의 지휘관에게 "그리스도인을 색출하여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지휘관은 그 부대의 군사 중 그리스도인은 모두 모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지휘관 앞에 선 병사는 모두 40명이나 되었습니다. 모인 병사들에게 지휘관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죽이라는 황제의 분부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신앙을 버리는 자는 살려 준다."고 마지막 통첩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죽음의 형벌을 받기 위해 알몸으로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 세워졌습니다. 추운 겨울 살을 에이는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놀랍게도 그들은 그 곳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 소리는 얼어붙은 호숫가 전체에 울려 퍼져 나갔습니다. 한편, 호수 가까운 곳에는 천막이 쳐졌고, 그 안에 더운물이 가득 담긴 목욕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신앙을 포기하는 자를 살려 주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40명의 병사들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만 더욱 드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병사가 호수 위를 가로질러 천막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한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 뜨거운 목욕통에 몸을 담갔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비명을 지르더니 곧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얼었던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근 결과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지휘관은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 갑자기 병사들이 서 있는 호수 위 하늘에서 40명의 천사가 40개의 면류관을 들고 춤을 추다가, 그 중 한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휘관은 재빨리 투구와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용감하게 호수의 얼음 위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을 버린 병사의 죽음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했으며, 그가 버린 면류관을 대신 받고자 죽음의 길로 나갔던 것입니다. 계3:11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제목 소개▶

 

축복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야곱의 나그네 인생 길의 행로는 실로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피한 세월이 20년이 지났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한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로 인하여 고향땅 가난안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창31:3).
외삼촌 몰래 도주하던 야곱은 추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라반에게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창31:24)고 간섭하셨기에 결국 외삼촌 라반과 화해하고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20여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형 에서와의 만남은 실로 극적이었습니다. 원한과 복수의 칼이 아닌 뜨거운 형제애의 사랑으로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며 고개를 어긋맞기고 눈물을 흘리는 재회의 시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인생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렇게 고심했던 에서의 위기가 해결되자 야곱은 해이된 마음으로 숙곳과 세겜에서 지나치게 지체하다가 세겜에서 커다란 시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서원했던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 곳에 도착한 야곱은 장막을 치고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일백 개를 주고 그 땅을 구입하였습니다(창33:18-19).
그는 벧엘에서의 하나님과의 약속은 잊어버리고 세겜에 안주하려고 한 것입니다.

①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야곱이 그 형 에서를 피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본래는 벧엘은 루스라는 곳인데, 그곳을 야곱은 벧엘이라 이름을 지어 부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루스라고 하지만 하나님과 야곱은 언제나 루스는 벧엘로 통합니다(창28:19).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이듯이,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의 집(성전)'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시고, 나는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야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 받은 곳이듯이, 내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으며, 은혜를 받는 곳, 바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곳이 비록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초라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우리 성림교회 성도들에게는 이곳이 벧엘입니다. 이곳에서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예배 장소를 지정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속한 교회가 바로 그곳입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예배당에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나오는 성도들을 축복하십니다.
시122:1-2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여러분! 교회 가자는 말을 기뻐하세요. "오 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다 보니 술집에 와 있도다!" 그런 사람되지 마세요. 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발걸음이 성전으로 왔도다!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장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주일마다 성전에 올라가는 예배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②벧엘은 야곱(성도)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곳입니다(창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어떤 언약입니까?
▶야곱이 누었던 벧엘 땅을 주리라! ▶네 자손이 티끌같이 번성하리라! ▶모든 족속이 네 씨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너를 이 땅으로(벧엘) 돌아오게 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믿/ 한마디로 완벽한 동행이요, 최고의 약속입니다.

③이에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언약)했습니다(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서원한 기도가 무엇인가?
⑴예배중심으로 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이 될 것이요" 하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신앙이 귀합니다.
⑵성전건축(성전중심)을 서원했습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성전 건축은 대부분 건물로 이해합니다 만은 엡1:22절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노력과 헌신과 수고와 기도와 전도와 봉사로 주님의 몸을 이 땅에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⑶온전한 십일조(감사)를 드리겠나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십일조는 신앙의 씨앗이요, 축복의 씨앗이요, 기적의 씨앗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받은 야곱은 베개 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언약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약속을 지키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아니하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결혼하면 돌아올까? 자녀를 낳으면 돌아올까? 재산을 모으면 돌아올까? 1년이 가고, 5년이 가고,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돌아와야 할 백성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세검에 안주하고 있는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던 때를 잊어버리고, 축복 받던 때도 잊어버리고 살아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야곱을 찾으셨습니다.
1차: 창31:13절에 밧단아람 외삼촌 집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했습니다.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2차: 야곱이 벧엘의 가기를 잊고 아예 세겜 땅에 집을 짓고 살고자 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한 사건을 일어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환경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가 나타났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다가 그 곳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창34:1-2).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하고 그 때를 이용해 그곳의 남자들을 다 죽이는 살인을 자행하게 되었습니다(창34:25-29).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은 후한이 두려워 깊은 탄식을 하였습니다.
창34:30절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 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벧엘을 망각하고, 벧엘을 등지고 살던 야곱! 그는 불 신앙의 세겜 사람들 틈에 끼여 슬픔과 위험과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탄식하게 되었을 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워 떨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장면이 오늘 본문의 1절입니다.
"일어나 벨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을 듣고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전 같으면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벧엘은 세겜에서 남쪽으로 120리입니다. 우선 '이 많은 식구들과 양 떼들을 끌고 그 먼 길을 어떻게 가?'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동하는 동안에 습격을 받으면 어떻게 하지?'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습격을 받으면 어떻게 방어를 해 보겠는데 이동 중에 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3절에 보면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제 야곱 일행은 벧엘을 향해 떠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여 추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쯤 되면 세겜 추장 일족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몰살당한 일이 널리 알려졌을 것입니다. 주변부족들이 들고일어나 원수를 갚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야곱의 집안이 이동 중이어서 습격하기 더 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셔서 추격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셨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은 많은 경우에 구체적인 정황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사37:36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해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이 전멸 당할 때도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의 진중에서 쳤다"고만 기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1.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몇 가지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①올라 기기 위해서 먼저 '세겜을 떠나야' 합니다.
떠남이 없이는 새로운 곳에 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합니다. ▶세겜은 세상의 안전한 곳이요 살기 좋은 곳이요, 쾌락의 장소요, 보기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을 떠나고 잃어버린 장소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겜이 좋아서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 아픔을 만나고 불안에 떨고 있는 야곱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대로 머무르면 안됩니다. 아무리 쓰라린 상처를 입었다해도 과거의 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을 망쳐서는 안됩니다.

②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일어나십시오. 신앙에 실패했습니까? 공부에 실패했습니까? 사업에 실패했습니까? 인생에 실패했습니까? 교제에 실패했습니까? 과거 실패하였습니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슬퍼하며 낙담하며 좌절만 할 것이 아니라 일어나야 합니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나를 두렵게 만들고 나를 범죄 하게 만드는 곳 신앙을 정체하게 만들고 아니 신앙을 후퇴하게 만드는 곳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신앙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는 것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일어나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일어서야 합니다. 병을 이기고 일어 서야합니다.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인생입니다. 포기는 불 신앙입니다. '포기'란 말은 딱 한군데서만 쓰는 단어입니다. 배추포기 셀 때입니다. 일어섭시다! 가정도 일어서고, 교회도 일어서고, 직장도 일어서고 기업도 일어서고 사업 터도 일어서고, 자녀도 일어서고, 나라도 일어서야 합니다.
③지금 잠잘 때가 아닙니다. 낙심하고 원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일어서야 합니다.
⑴왕상19:5절에 로뎀나무 아래 지쳐서 쓰러져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서 떡과 물을 주시며 '일어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⑵사60:1절에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⑶요5:8절에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⑷행3:6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자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⑸엡5:14절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사망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나태와 게으름의 병에서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체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일어나'라는 말은 현재의 불 신앙과 절망의 자리, 실패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설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넘어질 수가 없습니다. 아니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성도의 특징입니다.
또한 '거기 거하며'는 세속적인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벧엘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겜에 있는 야곱을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겜에서 벧엘까지는 약 50㎞의 오르막길이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도록 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예배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중생 받은 영혼이 세겜에 살면서 온갖 세속적 습관과 살인과 부정으로 더럽혀지기를 원치 아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 거하라',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④하나님은 야곱에게 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까?
⑴처음 신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처음에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고 구원의 감격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했던 그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처음 믿음, 처음 사랑, 처음 열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세겜이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으면 참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도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의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믿을 때 그 신앙으로, 처음 세례 받을 때의 그 마음 자세로, 처음 직분을 받을 때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역자도 처음 전도사가 될 때의 순수한 마음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같이 부족한 것을 주의 일군을 삼아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므로 감사 감격하여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며 헌신을 다짐했던 순수한 신앙을 되찾아야 합니다. /할/
▶하나님을 잘 믿던 어느 집사님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그 분은 택시 운전을 했는데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운전을 하는데 하루는 이상하게 물체가 어른거려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병원에 갔더니 영양실조에 정신적인 피곤이 겹쳐서 그러니 안정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안정을 취하면 될 거라고. 그래서 의사선생님의 지시대로 한 1개월 정도 쉬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런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헛것이 보이고 정신이상이 나타나자 주위에서 굿을 해 보라고 합니다. 그래 유명한 무당을 데려다가 많은 돈을 주고 굿을 했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 후 불공을 드리면 낫게 된다는 말을 듣고 먼 거리에 있는 절에 가서 정성스럽게 불공도 드렸지만 별 진전이 없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집에 부처님을 모시고 조석으로 예불을 드리라고 권면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값비싼 금부처를 하나 사 가지고 구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6개월 간을 불공을 드렸지만 병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때서야 이 집사님은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까운 교회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살려 주세요. 통곡하며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가 사실대로 다 얘기하고 목사님을 모시고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불상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부적을 불에 태우고 찬송가 38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승리의 찬송을 다 같이 불렀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십자가를 걸어 놓으니까 그 날부터 귀신은 나타나지 않게 됐습니다. 그 후 집사님은 첫사랑, 첫 믿음을 회복하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사람이 됐었습니다. /할/

⑵하나님을 만나던 때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광야에서 혈혈단신으로 밤에 돌 베개를 하고 잘 때, 하늘 문이 열리며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던 환상을 보던 그 때를 생각하게 하기 위하여,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 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삭개오가 가끔 말없이 집을 나가곤 해서 그의 아내가 뒤를 밟아 보니까, 전에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던 것을 생각하고, 그 나무에 물을 주고 그 나무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어느 기도원에서 목사로서 처음으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던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해마다 그날이 되면 그 기도원에 가서 그 자리에 앉아서 며칠씩 기도하고 온다고 합니다.
처음 은혜 받고 감격스러웠던 때를 잊어버리고 있지나 않습니까? 그 때의 첫 열심과 첫 사랑을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계2:4-5절에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경고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잘못된 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격했던 그 때를 늘 잊지 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물망초'라는 꽃이 있습니다. 그 꽃의 이름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의 뜻입니다. 이 꽃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영원히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해 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 이상으로, 우리 자신이 주님께 드렸던 서원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⑶그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 받던 때'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리면 우쭐대고 교만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늘 살기를 원한다면, 매일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의 축복임을 기억하고 명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되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신8:17-18절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⑷벧엘의 서원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야곱이 서원했습니까? 예배중심, 성전중심,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시킨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야곱이 세속에 취해 살만해지니까 까마득하게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벧엘 신앙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집(성전)을 떠나지 않는 신앙!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약속 위에 살고 그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며 이루어 나가는 신앙입니다.
시15:4절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116:18절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 전5:5절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사19:21절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⑸제단을 쌓아라! 무슨 제단을 쌓아야 합니까? ▶참회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기도의 제단! ▶감사의 재단을 쌓아야 합니다.

 

2.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2).

 

벧엘이 어떠한 곳입니까? 그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예배가 드려지는 곳입니다.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행동하였습니다. 비록 실패했던 야곱이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줄 아는 야곱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 받은 자의 철저한 순종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즉각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①이방 신상을 버리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야곱의 가정에 이방 신상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한 일었습니다. 이것은 곧 야곱의 묵인으로 인한 범죄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야곱의 가정이 상당히 세속화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라헬이 친정에서 남편을 따라 나올 때 자기 집안의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나왔습니다. 라헬은 그 드라빔을 그대로 간수한 것입니다. 그들은 세겜에서 사는 동안에 가나안 풍습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4절을 보면 야곱 집의 사람들이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었다고 했는데 이 귀고리도 가나안 풍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신상의 모습을 한 귀걸이에 신비스러운 글자로 새겨 귀에 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 귀걸이에 마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야곱 집안의 사람들은 이 귀걸이들을 떼어서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우상뿐 아니라 귀고리 사치품까지 버리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회개했다는 증거입니다.
▶세겜의 상수리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의미인데,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처음 도착한 곳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였습니다(창12:6).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던 곳입니다.
뒷날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완성한 다음에 백성들을 모아 "우리는 여호와만 섬기겠나이다"하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여호수아는 큰돌을 가져다가 세겜의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수24:27)고 선포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언약이요, 갈보리 십자가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세겜 땅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우상들을 묻은 것은 하나님께 나가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을 완전히 청산한다는 결단의 표시요, 그리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순수한 신앙으로 복귀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 숭배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②자신을 정결케 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죄를 회개하십시오.
요일1: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③의복을 바꾸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의복을 바꿨다는 것은 외모의 성결, 즉 생활 습관을 바꿨다는 말입니다. 마음만 바꿔서는 새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삶의 모양도 바꿔야 합니다.
계19:8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다운 옳은 행실이 성도의 세마포가 됩니다. 믿는 사람이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안믿는 사람과 똑같이 처신하면 안됩니다. 성도의 합당한 말과 행실로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골3:12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긍휼과 자비의 옷을 입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만의 옷을 벗고 겸손과 온유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세상 때묻은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3. 벧엘신앙이 회복되면 어떤 축복이 옵니까?

 

9절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야곱과 그의 일행은 긴 여행길(약50Km)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에 도착하였습니다(6절).
실로 약 30년 만에 다시 찾은 벧엘입니다. 회개를 촉구하시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동으로 옮긴 야곱에게 하나님은 다시 오셔서 축복하셨습니다.

①야곱을 이스라엘로 개명하였습니다(10절).
물론 이스라엘이란 개명은 창32:28절에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그 개명의 확증이요 갱신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야곱은 "발꿈치를 잡았다", "지기 싫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힌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적인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너는 세속적인 성품을 가진 존재이지만 이제 신앙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겠고"하는 은총의 말씀입니다.

⑴여기서 우리는 1절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에서 다시 야곱이라고 부르신 경우를 알아봐야 합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처럼 살지 못하고 그때 야곱이 사기꾼처럼 살고 있는 현장에 하나님은 오셔서 그 때 그 이름을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말씀은 해당됩니다.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믿/

⑵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얍복강의 기적을 상고해 보자!(창32:24-28)
야곱은 처자식과 많은 짐승들을 거느리고 성공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형에서를 속인일 때문에 만 날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형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여러 짐승을 보냈지만 받아줄런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짐승을 여러 떼로 나누어 강을 건너게 한 뒤 얍복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사람은 홀로 있을 때에 자신의 가면을 벗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나님과 호젓하게 마주 대하고 앉았습니다. 야곱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받은 벧엘의 약속은 땅위의 그런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았습니다. 야곱은 어느덧 모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누구를 의식할 수 도 없는 얍복강변에서 그는 "하나님!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주세요. 형님과의 관계가 원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이 비열한 성품을 바꿔주세요" 야곱은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얍복'이란 '비우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얍복강의 이름은 우연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거기 흐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씨름(25).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날이 밝아오지만 하나님을 꽉 잡은 그의 손은 도무지 풀릴 줄 모릅니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하였습니다. 그러자 더 지체함을 허락지 않고 야곱을 떼어내기 위해 야곱의 환도 뼈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는 씨름이 아니라 아예 매달리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가게 하라" 세상에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야곱에게 제한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단호한 의지를 들어 보세요 "내게 축복 해주시지 않으면 결단코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거룩한 욕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28).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질문은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품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예 저는 야곱입니다. 맞습니다. 도적놈, 사기꾼, 비열한 인간입니다" "그래, 이제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라" 마침내 야곱은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며 그 의미를 해석하면 "하나님이 통치하다, 지배하다, 점령하다, 다스리다"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그 의미는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보호받는 하나님의 기업 그 자체인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정치가 바로 되어 있고 선진국이며 신사의 나라가 영국입니다. 민주주의가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원래 신사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영국은 원래 바이킹, 즉 해적이었습니다. 북 게르만족이라고 하는데 A.D. 8세기에서 10세기에 노르웨이, 덴마크, 영국의 템즈강 지역을 점령했고, 앵글로색슨족과 함께 영국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이킹들이 머리가 대단히 우수하였습니다. 훌륭한 후손을 키우기 위해 고민하다 훌륭한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 여성들을 도둑질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억지로 끌려와서 해적들의 아내가 되었지만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훌륭하게 양육시켰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해적이었지만 어머니의 훌륭한 교육으로 아들은 신사가 되어, 오늘날 영국이 신사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교과서였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와서 세운 학교가 있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은 모두 이들이 성경공부하기 위하여 세운 학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최우수 대학이 되었습니다. 이 학교들이 300년 간 미국의 교육을 주도하고 세계 선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성경공부, 탈무드 공부는 최고의 공부요 천재 교육입니다.

②생육과 번성의 복입니다(11절).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자손의 번성은 육적 이스라엘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수한 신자들이 일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③메시야의 복(왕들이 나옴)입니다(11절).
예수 그리스도는 후대 다윗의 계보를 따라 만왕의 왕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야곱, 하나님과의 약속의 자리로 돌아온 야곱, 벧엘을 찾은 야곱, 이 야곱을 통해서 새 이스라엘을 만드시겠다고 처음으로 예고하신 것입니다. 야곱, 한 사람의 회개가 그 집안을 새롭게 만들었고, 야곱의 집안이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새 이스라엘의 기초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④기업을 얻는 복입니다(12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이 기업은 육적으로는 가나안 땅이요, 영적으로는 우리가 가야 될 하늘나라입니다. ▶이 모든 복은 야곱의 조부 아브라함 때부터 전승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시고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이 음성은, 첫 믿음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이 캄캄한 세겜의 죄악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시며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실패한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 거하라! 거기서 단을 쌓으라!
이것은 실패와 허물로 얼룩진 인생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음성입니다. 이 축복된 하나님의 음성 앞에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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