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행 2:37-47)
우리 민족의 신앙 선배인 '최 권능' 목사님은 언제나 '예수 천당'을 외치며 전도했습니다. 하루는 말을 타고 오는 일본군 순사를 행하여 '예수 천당'하고 외쳤더니 이 소리에 놀란 말이 뛰었고 일본 순사는 말에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화가 난 일본 순사는 최 목사님을 지서로 끌고 가서 고문하면서 몽둥이로 최 목사님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곤봉으로 찌를 때마다 '예수 천당'만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 천당'에 노이로제에 걸린 일본 순사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건드릴 때마다 '예수 천당'만 합니까? 이때 최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내 안에 예수하고 천당이 꽉 차서 건드리기만 하면 나오니까 듣기 싫거든 건드리지 말라"고 했답니다.
이번 성회 때, 우리 모두 은혜 받아 예수로 충만, 천당으로 충만해서 건드리기만 해도 '예수 천당'이 나오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예수가 생명이고,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믿/
그 뿐만 아니라 이번 성회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뜨거운 신앙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뜨겁다'는 말은, '기도가 뜨겁다는 말이요, 전도하는 열심히 뜨겁다는 말이요, 봉사하는 열심히 뜨겁다는 말이요, 구제하는 마음이 뜨겁다는 말이요, 찬양하는 열심히 뜨겁다는 말이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세가 뜨겁다는 말이요, 주님을 섬기는 마음이 뜨겁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은혜 받고 나타난 초대 교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설교는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예수를 믿어라!' 또 하나는 '성령을 받아라!'입니다. 때는 어느 오순절 날 장소는 다락방 교회요, 설교자는 베드로이고, 설교의 주제는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입니다. 그 날 은혜 받은 성도들의 반응이 37절에 나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번 성회를 통하여 '우리가 어찌할꼬?' 통회가 터져 나오는 성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목소개!▶
1. 왜 '어찌할꼬?' 했는가?(37)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여기 '이 말을 듣고'에서 이 말은 베드로의 설교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자신들도 모르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했다는 말입니다.
왜? 이런 탄식이 터져 나왔는가? 그의 설교가 너무도 은혜롭고 감격스럽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의 심령이 찔림이 온다는 것은 복 받을 조짐이요 우리 신앙의 인격이 변화되는 즉, 물이 포도주 되는 과정인줄 믿습니다.
①베드로가 어떤 설교를 했습니까?
'주 예수를 믿어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설교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이것이 모든 설교의 주제요, 핵심입니다. 사실 예수 없는 설교는 설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전한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입니까? 우선 나사렛 예수님이십니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름, 나사렛 예수를 강조하므로 기독교의 역사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인 것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님만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이기 때문에 권능, 기사, 표적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예수님을 전했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역시 유대인들이 본 바요, 들은 바요, 그대로 골고다산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기독교의 실패가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계획이다'라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베드로가 전한 예수님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외쳤습니다.
32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 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인지라"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②베드로의 설교 속에 '너희가 예수를 죽었다'고 외쳤습니다(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한마디로 너희들이 메시야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 예수를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통해서 이구동성으로 감동을 받고 가슴을 치면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했다는 것입니다. ▶이 탄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가장 놀라운 인간의 자아 각성에서 나오는 부르짖음입니다.
③예배 시간이 어떤 시간입니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시간입니다.
생각하면 우리의 형편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잿더미에서 앉아서 회개해야 될 형편입니다. 먼저 정치 지도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이, 각 분야 지도자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찔림을 받고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여기에 살길이 있고 여기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민족이 살길은 오직 회개뿐입니다. 니느웨성이 회개하여 민족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 있습니다. 저마다 피리를 불어도 슬퍼하지 않고, 소고를 쳐도 춤을 출 줄 모릅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정말 '어찌할꼬?' 탄식할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질병 때문에 '어찌할꼬?' '가정문제 때문에, 자녀들 문제, 사업문제, 물질문제, 고난문제' 때문에 '어찌할꼬?' 탄식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차원의 탄식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탄식해야 합니다.
바로 믿지 못한 것 때문에, 충성하지 못한 것 때문에 '어찌할꼬?' 탄식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믿지 못하고 살지 못한 것 때문에 이 탄식이 나와야 합니다.
부정적인 입술, 용서하지 못한 것, 인간의 수단과 방법대로 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지 못한 것 때문에 '어찌할꼬?' 탄식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못한 것도, 주일 성수 못한 것도, 감사하지 못한 것도 '어찌할꼬?' 탄식해야 합니다.
④'어찌할꼬?'는 회개의 탄식입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⑴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일1: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⑵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8:1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주님의 은총으로 용서를 받았는데, 돌아가서 계속 간음을 행하면 참 회개가 아닙니다.
⑶죄와 멀리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의 경우 "내 소유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은 4배로 갚고, 다시는 토색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하였을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⑷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 회개가 넓은 의미로 적용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한 가지 잘못을 뉘우치고 깨닫고 돌이키는 것도 회개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를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버리고 떠날 것'을 가르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야곱을, 요셉을, 모세를, 다윗을, 사도 바울을 하나님이 불러서 쓰실 때마다 제일먼저 요구한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그 회개는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하나님께서 네 고향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인생을 회개시키는 작업입니다. ▶회개는 떠날 것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지 않고는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고향 아비 집을 떠나서 외가인 하란 땅으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 형제를 떠나서 야곱을 다듬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요셉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를 고향 부모로부터 떠나 애굽으로 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기 위해서 40년 동안 자기를 길러준 양어머니를 떠나게 했고, 40년 동안 살았던 궁중을 떠나게 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에 400년 동안 살았던 애굽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회개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떠나는 구분이 있어야 하고, 떠나는 경계가 있어야 합니다. 끊고 결단하는 믿음이 없이는 회개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떠나야 변화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야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 나쁜 생각을 떠나야 합니다. 불 신앙을 떠나야 하고 죄를 떠나야만 회개가 됩니다.
⑸진정한 회개는 손을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약4:8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정결케 하라" 손을 깨끗이 한다는 말은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바로 하라는 말입니다. 손의 행실 곧 우리의 삶입니다. 불결한 마음은 두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이 나누어지는 것이 더러운 마음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도 손이 깨끗한 것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영향권은 우리 마음과 손으로 하는 일속에 옵니다.
약4:9절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회개를 바로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유대인의 회개는 굵은 베를 입고 땅바닥에 앉아서 티끌을 쓰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회개에 대해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베를 입고 티끌을 쓰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진정한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고 가슴을 치라는 것입니다.
⑹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겸손해 집니다.
약4:10절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기에 강조되는 말은 '주 앞'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거짓, 위장, 속임수가 다 통합니다. 그러나 주 앞에서 낮추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식 앞에서 낮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프로정신입니다.
신앙 인들은 프로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의 신전의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 영적인 기본자세를 갖출 때 프로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나는 십자가만 쳐다보면 나의 값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으면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면서까지 나를 구원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만 쳐다보면 나의 값을 발견하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진정한 프로의 고백입니다.
⑤'어찌할꼬?'의 결과는 무엇인가?
사실 '형제들아 어찌 할꼬?' 이 탄식은 유대인들이 죄 문제의 해결책을 몰라서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대목에서 이 찔림이 왔습니까? 36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너희가 죽인 예수가 우리의 주가 되었으며 그리스도가 되었다" 이렇게 말할 때 저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죽였으니 어찌할꼬?" 이렇게 통곡하면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가운데는 분명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살려달라고 외쳤던 무리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너희가 바로 예수를 죽인 자다' 이렇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저들은 이 말을 듣고 회개하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이 천년 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선포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들려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죽인 자가 누구입니까? 당시에 우리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고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예수를 죽인 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은 손과 발이 지은 죄 때문이요,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관 쓰심은 나의 머리로 지은 죄 때문이요, 예수님이 옆구리에 창 찔려 피를 쏟으신 것은 내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이니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죽인 자는 예루살렘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예수님을 죽인 자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는 살인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죽인 자들을 향하여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 흘리시면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죄 사함을 받으라" /할/
우리는 예수를 죽인 죄인들이면서도 주님이 십자가에 흘린 피로 용서함 받은 죄인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 아래 머물지 아니하고 사망에 머물지 아니하고 자유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아래 있는 자의 은총입니다. 사53: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죄 사함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한 맺혀 있는 죄의 멍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으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에서 우리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멘!/
38절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41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세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⑴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를 사함 받는 비결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오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제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살겠다는 서약입니다.
⑵새롭게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 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다시 새롭게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 받은 다음부터는 천국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죄에 대해선 날마다 죽는 생활을 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육신의 혈기, 교만, 욕심, 불의한 모든 자신의 정욕은 날마다 죽는 생활에 힘쓰고 이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새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육신의 사람이 죽으면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뜻입니다.
⑶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는 '인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백성, 내 자녀다'라고 인 치신 것입니다.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⑥'어찌할꼬?' 탄식 뒤에 오는 선물은 무엇인가?
38절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번 성회 중에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선물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과 성령 받았다는 것과는 다룹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이 땅에 40일간 계시면서 11번이나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찾으신 적이 없습니다. 꼭 예수를 영접한 여인들에게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받아라!'고 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꼭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오셔서 성령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내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체험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주님께 붙잡히는 강도가 높습니다.
손으로 땅을 파는 것보다는 호미로 파는 것이 쉽고, 호미로 파는 것 보다 삽으로 파는 것이 더 쉽습니다. 그러나 포크레인으로 찍어버리면 게임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성령의 은사 받으면 게임이 끝나버립니다.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경은 성령 충만과 술 취함과 대조시켜 말하고 있습니다.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술 취하게 되면,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담대해집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겁이 없어집니다. 간덩이가 커진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도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술 취한 사람은 술에 힘이고,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신앙인인 '올리버 크롬웰'이 영국의 개혁을 위해 힘쓰다가 국왕의 미움을 받아 사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집행은 저녁때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집행하도록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종이 울릴 시간이 되었는데도 종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종을 쳤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아 사형 집행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종탑에 올라가 보니 한 여인이 종 추에 매달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그녀는 크롬웰의 약혼녀였습니다. 크롬웰의 약혼녀는 자기를 사랑해준 크롬웰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다가 '네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마음의 음성을 듣고 크롬웰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하고 종 추에 매달려 자신의 몸을 희생하였던 것입니다.
한 여인의 뜨거운 사랑과 희생이 왕에게 전달되어 왕을 감동시켰고, 크롬웰은 사형집행이 면제되었으며, 후에 영국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⑦어느 때 '어찌할꼬?'가 일어났는가?(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무슨 말을 들었습니까? 베드로가 전하는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들이 '어찌할꼬?' 하고 회개했습니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어라!" 말씀을 듣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루터'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변화되었습니다. '웨슬리'가 이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슈바이처'가 이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아서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말씀이 능력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은 12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아들 링컨을 불러 놓고 이런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링컨아, 나는 너에게 줄 금은 보화도 없고 문전옥답도 없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그 보다 더 귀중한 보화를 유산으로 물려주나니 이것은 성경이다. 이 성경을 네가 어려울 때 읽고, 답답할 때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에게 하늘 문을 열고 축복해 줄 것이다."
어린 링컨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언제나 성경을 읽었으며 그 말씀 붙들고 기도해서 그는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이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링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 성경을 통해서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성경 때문에 운명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이 땅에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도 모르고,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를 모르다가 형벌 받는 지옥으로 갈 뻔했습니다. 상상만 해도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입니까?
▶요즘은 관리시대입니다. 신앙관리, 인격관리, 물질 관리를 잘 해야 성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세상은 남편관리, 아내관리, 자녀관리, 학생관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관리 중에 최고로 중요한 것이 건강관리입니다.
물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인격을 잃은 것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남의 머리를 빌려 쓸 수 있으나 건강만은 남의 건강을 빌려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관리하는 별 보약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태국에 가서 살아있는 간에 대롱을 끼고 쓸개즙까지 먹는 세상입니다. 건강식품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부자가 얼마 전에 서울대병원에서 죽었습니다. 병명은 보약 중독증이었습니다. 오래 살려고 보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보약 중독증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먹어도 탈이 없는 최고의 양약이 성경 속에 있습니다. ▶잠언서에 양약이라는 말이 모두 5번 나오고 있습니다.
⑴즐거움이 양약입니다.
잠17: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요즈음 웃음이 의학적으로 얼마나 좋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즐겁게 사는 것만큼 양약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상구 박사의 지론을 보면, 사람의 핏속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습니다. 적혈구는 핏속에 산소를 공급하여 피를 맑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백혈구는 인체에 병균이 들어오면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상처에서 하얀 고름이 나오는 것은 병균과 싸우다가 죽은 백혈구입니다. 이 백혈구는 병균이 들어오면 보자기로 싸듯이 싸서 죽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백혈구 속에는 B 임파구가 있고 T 임파구가 있습니다. B임파구는 보통 병균을 죽이고, T 임파구는 암세포를 죽이는 말하자면 특수 부대병사입니다. 병균이 인체 내로 침범하면 B 임파구는 얼른 알아내어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자체적으로 발생되는 세포입니다. 그래서 B 임파구는 그런 암세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암세포는 T 임파구가 잡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암에 안 걸리려면 T 임파구가 강해야 합니다. 누구나가 하루에 5개 내지 6개씩의 암세포가 생기는 것이라고 원종수 권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암세포를 T 임파구가 강해서 매일 잡아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T 임파구가 강하기 위해서는 엔돌핀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엔돌핀은 사람의 뇌에서 발생되어 온 몸을 돌게 되는데 즐겁고 기쁘고 명랑하게 살면 이런 엔돌핀이 많이 발생하여 암세포를 잡아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양약인가를 보십시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또 잠18:14절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좀 어려운 일을 당해도 '그까짓 것!' 해버리고 하나님께 맡기시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의 보약입니다.
⑵지혜로운 말, 선한 말이 양약입니다.
잠12:18절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잠16:24절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선한 말이란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말' 또는 '위로의 말'을 뜻합니다. 음식도 영양가가 있는 음식이 있고 영양가가 없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말도 영양가가 있는 말이 있고 영양이 없는 말이 있습니다. 선한 말은 양약이 됩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가 상대방을 온통 괴롭게 만들고 뼈를 마르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한 신하가 왕의 친서를 가지고 이웃나라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떠났습니다. 그는 이웃나라의 왕을 만나서 말하기를 "본국의 왕이 초승달이면 대왕께서는 보름달입니다" 이 말 한마디로 양국 간의 문제가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하가 귀국했는데 왕은 노고를 치하하기는커녕 "나를 초승달이라고 말했다면서?" 호된 책망을 합니다. 현자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폐하! 보름달은 기울어 끝나는 달입니다. 초승달은 이제 시작하는 달이지요. 초승달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보름달은 소멸될 뿐이고 미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그 신하에게 큰 벼슬을 주고 더 신임했다고 합니다.
⑶충성된 일군이 양약입니다.
잠13:17절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악한 사자란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을 말합니다. 충성된 사신이란 자기를 보낸 자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었습니다.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는 것은 양약이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큰일에도 충성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보장됩니다.
⑷성결하게 사는 것이 양약입니다.
잠3:5-8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 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한마디로 거룩하게 살라는 말씀이요, 성결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2. '어찌할꼬?' 회개하고 세워진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42-47절은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 생활에 대한 기록입니다. 초대 교회는 오늘날 모든 지상 교회들의 '표준적이고 이상적인 교회 상'입니다. 우리 성림의 공동체도 이번 성회를 통하여 초대교회를 닮아가야 합니다.
①가르침을 잘 받는 배우는 교회입니다(42).
'저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소망이 있는 교회는 배우는 교회이며,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성도도 배우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설교 시간마다 아멘! 아멘! 하면서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주의 종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고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배우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삼대법칙이 있습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자!'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바로 알고, 성령을 바로 알고 믿을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②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입니다(42).
"서로 교제하며" 교회라는 헬라어 원어는 '코이노니아'로 많이 알려진 단어입니다. 이는 '교통, 연합, 동거, 동업, 친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과 교제가 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 형통을 바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물통하고, 물통하면 형통한다"는 말입니다.
③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이들은 특별한 소원이 있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교회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화평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히 핍박을 이기기 위하여, 믿음을 잘 지키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기도는 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 부르짖으라는 말은 땀을 짜며 눈물을 짜며 피를 짜고 생명을 짜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렘29:12-13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골4:2절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창업한 지 7년만에 우리나라의 '카 오디오' 수출 1위를 달성한 '글로리아 전자'의 사장 '김 귀형 장로'의 간증입니다. 그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몸이 불편합니다. 그런데 저는 장로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기 원하는데, 제가 축복을 받아야 남을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 시편 1편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저도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악한 사람의 꾀를 좇지 않겠습니다. 죄인의 길에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겠습니다' 기도해서 복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④경건함이 있는 교회입니다(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퍽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경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 있는 신령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특별히 사도들의 영적 권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모름지기 교회에 들어올 때는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전5:1절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그렇습니다. 발 한 번 딛는 것도 삼가는 두려움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경건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⑤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교회입니다(43).
지금도 기사와 표적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납니다. 기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끝나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잠잠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요.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행3:6-8). 그 후로는 사람들이, 사도 베드로가 가는 곳마다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나와서 고침을 받게 했습니다(행5:15-16).
막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고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느니라"고 하셨습니다.
⑥서로 나눔의 공동체였습니다(44-45).
초대교회는 자발적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사랑의 구제를 했습니다. 사랑의 손길이 여기저기서 넘쳐 났습니다. 우리도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마지못해서 헌금을 할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물질과 정성, 몸과 마음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영광 돌릴 때, 하나님께서 더 크고 풍족하게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6:19-20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⑦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46).
초대교회 교인들은 날마다 교회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배우려면 학생은 학교를 매일 가야 합니다. 우리도 온전한 신앙을 가지려면 교회에 매일매일 나가야 합니다.
히10: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여야 뭐가 되도 됩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모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번 성회에 우리 모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도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예배드리는 자체가 복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들이는 것이 예배입니다.
▶초대교회는 교회에서만 모인 것이 아니라 가정예배도 잘 드렸습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가정예배의 정감 넘치는 풍경입니다.
⑧초대교회는 모여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47).
"하나님을 찬미하며" 교회는 찬양하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성전에 모여서는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히13:15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 찬양이 뜨거운 교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번에 우리 한번 기적을 일으킵시다!
⑨초대교회는 칭찬 받는 교회입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우리 교회가 칭찬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입장은 욕을 먹든지 칭찬을 받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장미꽃이 살아서 향기를 발하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습니다. 살아서 향기를 발하면 칭송의 대상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시거나 칭찬과 존경의 대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⑩부흥되는 교회이다(47).
결론입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놀라운 축복입니다. 믿는 자의 수가 삼천 명으로, 오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수는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말하자면 초대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번 성회가 우리 교회가 부흥되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아멘!/ (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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