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갖자! (히 11:6)
'피터 카소비츠' 감독의 '제이콥의 거짓말'이란 영화에 보면, 1944년 독일군 점령하의 폴란드 유태인 게토지역은 높다란 담벼락과 철조망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기차에 실려 수용소로 죽으러 끌려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철저히 격리되어 있습니다.
라디오조차 듣지 못하는 철저한 감시 속에서 그들은 외부 소식에 목말라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 '제이콥'은 바람에 날려 굴러다니는 신문지 한 장을 줍기 위해 좇아 가다가 통행금지 위반으로 잡혀갑니다. 독일군 사령부까지 끌려간 그는 그곳에서 독일군 라디오방송을 듣게 됩니다.
'독일군이 폴란드접경에서 러시아군을 무찔렀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폴란드 접경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은 불과 400킬로 밖까지 러시아 군대가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유태인에게는 상당히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사형을 면하고 풀려난 '제이콥'은 이 희망적인 소식을 동족들에게 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게토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동족들의 비참함 모습뿐입니다.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 하루하루의 삶에 지쳐 자살하는 사람, 무모한 탈출을 꿈꾸는 사람 등. 그런 그들에게 '제이콥'은 희망적인 소식을 전합니다. '400킬로 밖까지 러시아군대가 진격했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단 하룻밤만에 마을전체의 모든 유태인들에게 퍼졌습니다. 그들은 '제이콥'이 몰래 숨겨 놓은 라디오를 가지고 있고 확실한 정보를 전하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제이콥'은 있지도 않은 라디오에서 들은 최신 뉴스라며,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러시아군의 진격소식을 지어냅니다. '독일군이 패배했다', '미군이 참전했다', '종전이 가까워졌다' 거짓말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만약 거짓말이 탄로 난다면 그들은 얼마나 절망하겠는가?
그러나 이야기의 초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 거짓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살하려던 사람들이 자살을 멈추었습니다. 삶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잠시나마 삶의 의욕을 되찾습니다.
어딘가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을 낙심과 좌절로부터 일어나게 만듭니다.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아픔을 참게 합니다.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할/
■1930년대 미국에서는 대공황으로, 주식이 폭락하고 기업이 망하고 공장이 폐쇄되고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따라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1933년,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미국 국민을 향해 외쳤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전진합시다' 그는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뉴딜 정책을 통해서 미국을 파멸에서 구했습니다.
■1970년대 영국도 IMF를 당했습니다. '영국 병'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영국 수상 '대처'는 '우리 영국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라고 영국 국민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를 회복하여 다시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인간은 믿도록 태어났다. 나무가 과일을 맺듯이 인간은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믿/
■성경에서도 믿음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두 다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보 상단에 막9: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실었습니다.
■히11장은 믿음장입니다. 믿음은 소망입니다. 11:1절을 보세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롬4: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그가 가진 희망은 보통 희망이 아닙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희망입니다. 즉, 불가능한 현실을 알면서도 가능성을 기대하는 '절대적 희망'의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희망이요, 믿음입니다.
바라는 것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란다' 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끝장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지경에 처해 바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절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란다는 것은 절대절망을 절대희망으로 절대부정을 절대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므로 하나님이 결국 운명과 역사를 다스리시고 하나님께서는 종국적으로 우리에게 좋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바랄 길이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점에 처하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는 절망이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이란 말 대신 '소망'이란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희망이란 말은 어쩐지 막연한 것을 바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소망이란 말은 확실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바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막연한 행운을 바라지 않습니다. 확실한 대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바랄 수 없는 것을 끝까지 바라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이 올지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가 더 커집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살입니다. 사라의 나이는 90세입니다. 출산의 가능성은 완전히 0%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믿음이 견고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상식 밖의 것은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나면 '기적'이라고 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도 기적입니다. 만나가 내린 것도 기적입니다. 오병이어도 기적입니다. 동정녀 탄생, 부활도 기적입니다. 중풍병자, 문둥병자가 나은 것도 기적입니다. 앞 못 보는 사람이 눈을 뜬것도 기적입니다. 모든 것이 기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기적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능력일 뿐입니다. /믿/
1. 믿음을 정리해 보자!
■믿음이란 여러 가지 단어 중, 히브리어로 '훼민'이라고 하는데 '굳건하다, 진실함으로 믿을만하다, 뜨겁게 버티고 서다'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정의는 히11: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곧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곧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믿음, 확신을 의미합니다.
①믿음도 여러 가지입니다.
■본능적인 믿음: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인 믿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누구의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는데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은 그것을 빨면 젖이 나온다는 본능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주적인 법칙에 대하여도 본능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 4계절의 변화 등 모든 자연의 질서를 본능적으로 믿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본능적인 믿음을 가지고 생활해 나가고 있다.
■이성적인 믿음: 인간이 교육을 받고 나면 이성적인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성적인 믿음이란 경험과 과학으로 증거 된 사실에 대하여는 의심치 아니하고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은행을 이용한다든지, 병원을 찾아간다든지 하는 모든 것은 이성적인 믿음에 속합니다.
■영적 믿음: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인 믿음과 이성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믿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인간의 본능과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영적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②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단어 중에 '피스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되다고 생각하다, 기대다. 신용하다, 맡기다, 위임하다. 설득(복)되다'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완전히 기대고, 신용하여 맡겨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뿅 가버리는 것을 말하고, 폭 빠저 버리는 것을 말하고, 내 인생을 송두리채 맡겨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확신하며, 전적으로 신뢰하고 설득(복) 당하는 것입니다. 듣는 대로 설득되어 '하자는 대로 해 버리는 것'입니다. '왜?'라든지,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도 그 어떤 핑계도 없습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꾸준함을 보이는 것입니다(마9:2). 오로지 일편단심, 뒤돌아 볼 줄도 모르고, 좌우로 눈 팔 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③믿음을 통해서 허락된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대로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마9:29). 소경은 그의 눈이 보이게 될 줄로 믿은 대로 눈이 밝아졌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돈 잘 벌어 온 세계적으로 선교사업 잘 하는 성도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이 허락되었습니다(마9:22).
12년간이나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믿음은 그 처절한 절망의 질병인 혈루병에서 치료받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다 귀한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실존과 보상(보답)입니다(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됩니다(히11:4, 롬4:5).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니다(요3:16, 요5:24).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1:12, 히11:11).
■믿음으로 위대한 힘을 얻습니다(막9:23). 큰 믿음을 가지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은 성장합니다. 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예화 가운데 '바다에서 낚시하는 사람 큰 고기는 놓아주고 작은 고기는 담더라. 왜? 자기 집에는 생선 후라이하는 펜이 작기 때문이라고'
2.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①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실 때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보십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두 번째, 사랑입니다.
믿음은 구원과 생활 모든 부분에 적용됩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원 이후의 생활에도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구원과는 상관없을 수도 있습니다. 구원 이후에 채워가야 할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을 보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소리를 들으시지만 반드시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은 예배의 정성이나 열심도 보시지만 반드시 믿음을 보십니다. 찬송을 할 때도 믿음을 보시고, 봉사를 할 때도 믿음을 보십니다. 심지어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믿음 없이 하면 그것을 죄로 여기십니다.
롬14:23절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4절을 보십시오. 아벨과 가인의 제사가 다른 점을 말씀하시는데 제물의 차이나 정성의 차이를 말씀하시지 않고 믿음의 차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8장에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②반대로 우리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바다를 건너 가다가 풍랑 때문에 무서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그들이 믿음이 없음을 책망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을 때에 우리 주님은 슬퍼하십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을 하나님은 죄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성전에 기도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자랑스럽게 멋있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지 않고 외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를 주님은 책망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구제나 선행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구제하고 선행을 행하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제하고 선을 베푼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되고 자기 자랑이 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다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는 상급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찬송도 믿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찬송의 가사의 뜻을 생각하면서 내가 부르는 이 찬송을 하나님께서 지금 받으신다는 믿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참으로 귀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 헌금 감사 헌금 십일조 헌금 선교헌금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 헌금하는 일에 절대로 인색하지 않습니다. 드려도 바쳐도 늘 부족한 것 같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누리도록 축복을 받게 하는 헌금일지라도 믿음으로 하지 않은 헌금이라면 하나님하고는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믿음의 예배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일이 없습니다. 믿음이 빠진 모든 것은 하나님을 절대로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①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감히 죄인 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갈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대신 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 의지하면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어떻게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예수를 믿는다고 내 죄가 용서가 된다는 말인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며 사람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예수님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은 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 갈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생명을 받고 능력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맥상 순서를 보면 성도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받기 전에 먼저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그분으로부터 오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부르면 우리의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찬송으로 나아가십시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찬송을 드리는 사람에게 임재하십니다.
시22:3절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시95:6절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세 단어입니다. '굽히다, 경배하다, 무릎을 꿇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추고 그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굽히고 무릎을 꿇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동작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 자세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무서워하다,또는 두려워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아는 믿음이 믿음다운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알기를 헌신짝처럼 압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압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공의의 하나님 즉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롬12:1절에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어떤 제사를 말합니까?
■순종의 제사를 드려라! 삼상15:22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감사의 제사를 드려라! 성도는 감사하므로 천국의 문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시100:4절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시50: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기쁨이 넘치고 마음이 편안합니다. 둘째,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일이 자꾸 더 생깁니다. 셋째, 감사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삽니다. 넷째, 감사하는 사람은 존경과 칭찬을 받습니다. 다섯째, 감사하는 사람은 받은 축복을 나누어주는 풍성한 삶을 삽니다.
■상한 심령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51: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히13:15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롬12: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만든 것, 내가 행한 일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배의 본질은 바로 나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 신앙의 본질은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할/
■사45:18-25절에 보면 믿음의 성장과정이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단계(20)입니다. "너희는 모여 오라 한 가지로 가까이 나아 오라"
둘째, 하나님과 상의하는 단계(21)입니다.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셋째, 하나님을 앙망하는 단계(22)입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사40:31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넷째, 하나님을 자랑하는 단계(25)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②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최소한 두 가지 믿음이 필요합니다.
첫째, 그분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지금도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도 능력도 믿지만 하나님을 좋으신 아버지로 믿지 못하고 단지 무서운 신으로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믿음 생활을 운동장에서 달음박질하는 운동 선수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탁하기를 상을 받도록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만 바라보고 달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 궁궐에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히11: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상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상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시되 믿음을 보시고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③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첫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은혜 받지 못하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품과도 상관없습니다. 좋은 성품은 믿음 생활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믿음을 갖는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은혜 받기 전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 때는 성경 말씀을 들어도 다 거짓말처럼 들렸습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지 않고 사람들이 지은 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존재도 부인했습니다. 교회를 나가면서도 믿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성경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존재도 믿어지고 하나님이 좋으신 분인 것도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믿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했는데 은혜 받고 난 후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둘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은혜로 받지만 믿음이 자라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자랍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서 되어지지만 잘 자라가려면 육체에 양식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자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받고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못 믿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의 믿음은 자라게 됩니다.
성실하게 예배를 드려보십시오. 마음을 열고 찬양을 부르시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도움을 구하십시오. 지혜를 구하십시오.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봐야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체험하려고 하십시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예상치 않았던 폭풍을 만났습니다. 놀란 부인은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고 온 몸을 떨며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요동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조급해져서 "이봐요, 이게 얼마나 위험한 풍랑인데 당신은 그렇게 자신만만해요? 조금도 무섭지 않으세요?" 그런데 남편은 대답대신 엉뚱하게도 칼을 꺼내들고 아내의 가슴을 겨누며 말하기를 "당신 내가 무섭소?" 부인은 "아니요" 남편이 다시, "내가 한 번만 휘둘러도 당신은 죽을 텐데 그래도 안 무섭소?" 부인은 "만일 이 칼이 도적의 손안에 있다면 무섭겠지만, 사랑하는 당신 손에 있기 때문에 당신을 믿어요" 그 때 남편이 "맞았어. 이 풍랑도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 손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소" 이런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인줄 믿습니다. /할/ (2003년 10월 5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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